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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33화 (33/505)

00033  윤아영  =========================================================================

33.

원산엔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3개월 전 가동을 시작한 전자제품 조립 공장과 제재소, 통조림 공장, 신발 공장 등이 있었지만, 고용 인원이 5,0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력인 레드몬 관련 공장이 돌아가면 인원이 대폭 늘어나겠지만, 레드몬 사냥팀이 들어온 지 이제 겨우 3일이라 공장이 돌아가려면 빨라도 한 달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남자들은 경비대와 부두에 일자리가 좀 있지만, 여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공장과 집단농장밖엔 없었다.

원산 시청에서 집계한 일자리는 경비대를 포함해 20,000개 규모로 고용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조그만 소녀가 넝마 같은 허름한 옷을 입고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옷차림이 얼마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게 내가 그냥 갔을까봐 겁을 잔뜩 먹은 모습이었다.

“뛰지 마! 그러다 넘어지면 다쳐.”

“하아~ 하아~ 네!“

윤아영은 몇 걸음 뛰지도 않고 숨을 헉헉댔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뼈다귀가 가죽에 간신히 붙어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몸에 체력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여관으로 가셔도 돼요.”

“말해봐. 뭐가 먹고 싶은지.”

“음... 그럼 아무거나 사주요. 전 뭐든 잘 먹어요.”

“고기 좋아해?“

내 물음에 윤아영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영을 앞세워 깨끗한 고깃집을 찾아갔다.

자리를 잡고 한우 꽃등심을 시키자 윤아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돼지고기도 못 먹어본 윤아영에게 값비싼 꽃등심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많이 먹어. 천천히 체하지 않게.”

“왜 저에게 잘 해주세요?”

“뭘 잘해줘?“

“술집에 나온 지 일주일밖에 안됐지만, 오빠 같은 손님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술 마시고 때리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했지 누구도 방석집 여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오늘 봤으니까 됐잖아. 고기 탄다. 어서 먹어.“

“......”

겉만 살짝 익힌 꽃등심을 하얀 쌀밥 위에 올려주자 윤아영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서 먹으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육즙과 함께 사르륵 녹아내린 고소한 맛에 윤아영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소고기가 맛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고소한 게 입에서 살살 녹아요. 정말 맛있어요.”

“그렇게 맛있어?“

“네! 너무너무 맛있어요.”

“소고기는 처음이야?“

“네! 천재지변 이후엔 가축이 모두 사라져 지금은 닭도 돼지도 남은 게 없어요. 소는 구경도 못 해봤고요.”

“고기를 구할 수가 없겠네?“

“그렇진 않아요. 사냥꾼들이 가끔 동물을 잡아와 시장에 팔기도 해요. 너무 비싸 저희 같은 사람은 사 먹을 엄두도 못 낼 뿐이죠.”

“그럼 고기도 못 먹어 봤겠네?“

“아니요. 낚시로 물고기를 잡거나 개구리와 참새, 들쥐 등을 가끔 잡아먹었어요. 워낙 사람이 많아 잡기가 쉽진 않지만, 그래도 몇 마리 잡아 식구들과 나눠 먹은 적이 있어요.”

“고기부터 먹자. 탄다.“

“네!”

원산은 대가족 형태로 60세 이상 노인은 각종 질병과 영양 부실로 찾아볼 수 없고, 아이가 많아 한집 당 평균 5~6명이 있었다.

전기도 없고, 마땅한 놀이도 없고, 피임 도구도 없는 원산에서 어두운 밤에 할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빈곤이 심한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높고, 잘사는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저조했다. 또한, 유아사망률도 빈곤국가가 선진국보다 몇 배나 높았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원산에서 5~6명의 아이가 살아남았다는 건 적어도 두 배 이상 아이를 낳고, 살아남은 아이 이상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약도 없고, 병원도 없는 원산에서 영유아 생존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50%를 넘길 수 없었다.

통일 이후 정부에서 무료로 지원하던 쌀과 밀가루, 생필품은 대유 그룹이 도시를 인수한 다음부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주민들을 동원해 방벽을 쌓고, 외성 밖의 숲을 불태워 개간하는 등 일을 시킬 때만 정부에서 지원한 식량과 생필품을 선심 쓰듯 조금씩 나눠줬다.

20,000개 일자리는 가족이 15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 가족당 1명이 돌아가는 꼴로 대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숫자였다.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아이들은 6~7살이면 낚싯대를 들고 강과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았고, 철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풀을 뜯어 살림을 보탰다.

하지만 그거론 주린 배를 채울 수 없었다. 숲이 안전했다면 넘쳐나는 동물과 열매, 약초 등을 캐 먹으며 살아갈 수 있겠지만, 숲은 너무도 위험해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가족은 몇 명이야?”

“밑으로 동생이 세 명 있어요.”

“부모님은?”

“지난달에 식량을 구하러 숲에 들어가셨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혹독한 겨울에 먹을 게 없으면 죽을 걸 알면서도 숲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앉아서 굶어 죽으나 레드몬에게 잡아먹히나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윤아영의 아버지는 쫄쫄 굶는 자식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숲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네가 가장이야?”

“네! 동생들이 아직 어린 데다 셋 다 여동생이라 저밖엔 일할 사람이 없어요.”

“집이 어딘데?”

“외성 북촌요.”

“아줌마! 여기 꽃등심 10인분만 싸주세요.”

“저 배불러요. 그만 시켜도 돼요.“

“동생들 가져다 먹여.”

“.......“

“술집 말고 다른 일자리 구해줄까?”

“네에?“

“인신매매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납치해봐야 팔아먹을 때도 없어. 누가 너같이 발육도 안 된 못난이를 돈 주고 사겠냐? 안 그래?”

“맞아요. 저처럼 못생긴 애를 받아줄 곳은 없을 거예요.”

“크흠... 다시 술집에 안 들어가도 되지?”

“네!“

“다 먹었으면 가자. 집까지 바래다줄게.”

“.......”

여관으로 갈 줄 알았는데 집까지 바래준다고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넋을 놓고 있는 윤아영의 손을 잡아끌고 내성을 빠져나가 북촌으로 올라갔다.

내성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도로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외성은 자동차 도로를 벗어나면 벽돌조차 없는 진창길이었다.

거기다 가로등도 100m 마다 띄엄띄엄 하나씩 설치돼 있어 밤눈이 어두운 사람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딱이었다.

“전기도 안 들어와?”

“가로등도 얼마 전에 설치한 거예요. 그전에는 달빛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내가 살던 산동네는 열악하긴 했지만, 전기는 들어왔다. 작은 백열전구로 불을 밝힌 것에 불과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밝았다.

윤아영의 느린 걸음에 맞춰 1시간 넘게 걸어 도착한 북촌은 야트막한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이었다.

몇 개 없는 공동화장실도 모두 푸세식이라 동네에 들어선 순간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쏘아댔다.

곱게 자란 소연과 은비였다면 인상을 팍 찡그렸겠지만, 일평생 이런 곳에 산 나에겐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우습지만 코를 마비시키는 악취가 엄마와 함께 살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것도 향수인지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저희 집은 저기~ 꼭대기에요.”

“바람은 잘 들겠네.“

“네에? 하하하~”

판자촌에도 빈부 격차는 엄연히 존재해 평탄한 마을 입구는 벽돌과 시멘트를 이용해 지은 집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윤아영이 가리킨 언덕 위 좁은 골목길엔 머리를 들 수조차 없는 진정한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내일 12시까지 원산 호텔 앞으로 나와. 지금 하는 일보단 훨씬 편한 일이니까.”

“원산에서 일하나요?“

“아니. 회양에서 일해야 해.”

“그럼 안돼요. 동생들을 돌봐야 해요.”

“동생들도 데리고 가면 되잖아.“

“정말요?”

“그래. 이거 받아.”

고깃값을 내고 남은 돈 30만 원을 윤아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자 윤아영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흑~ 처음 만난 저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하아~ 나도 너 같은 때가 있었으니까.“

“오빠는 괴물을 잡는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저와 같을 수가 있어요?”

“괴물 잡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능력자들이야. 우린 그 밑에서 잡다한 일이나 하는 사람들이야.“

“.......”

“그만 들어가. 춥다. 내일 동생들 데리고 꼭 나와. 맛난 거 사줄 테니까.”

훌쩍이는 윤아영을 집에 들여보내고 바람처럼 달려 호텔로 돌아왔다. 밥 사 먹이고 북촌까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다녀오자 어느새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 여자애랑 놀다 온 거지?”

“흐흐흐~“

윤아영 얘기를 하자 은비가 대뜸 고추를 꺼내 냄새를 맡았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지만, 하는 짓이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었다.

“아침에 오빠에게 말할게. 회양 들어가면 어차피 일할 사람 구해야 하니까 데리고 가는 건 별문제 없을 거야.”

“오빠! 내일 만났는데 언니하고 나보다 예쁘면 죽을 줄 알아.”

“이때까지 살면서 너하고 소연이 만큼 예쁜 여자는 본적도 없어.“

“피~ 바람둥이!”

예쁘다는 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입이 귀에 걸렸다. 은비는 반응이 재깍재깍 나와 무슨 얘길 해도 재미가 있었다.

반응이 없으면 말하는 사람도 기운이 빠졌다. 말이란 서로 주고받아야 재미가 있는 것이지 한쪽만 일방적으로 떠들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설교였다.

다음 날 아침 소연이 일할 사람 4명을 원주에서 데리고 들어간다고 하자 김갑수 공대장은 군말 없이 승낙했다.

원산 책임자 박도준 시장이 충분한 인력지원을 약속한 만큼 어린아이 4명 데려가는 일은 문제도 아니었다.

은비에게 밤새 시달리다 새벽에 들어간 숙소엔 보조사냥꾼이 한 명도 없었다. 방석집에서 한 오입만으론 성에 찾지 않았는지 아니면 공짜에 눈이 멀었는지 아가씨들을 끼고 모두 여관으로 몰려갔다.

덕분에 오랜만에 푹 자고 시간에 맞춰 원산 호텔로 나갔다. 호텔에 올라가 씻고 내려올 생각으로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 아영이 동생들을 데리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새 때문에 호텔 안에 들어갈 수 없어 좁은 골목길에서 서성이고 있는 아영과 동생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일찍 왔네?”

“얘들아! 인사드려. 어제 고기 사주신 오빠야.”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아영의 말에 동생들이 입을 모아 큰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누가 봐도 연습한 티가 팍팍 나는 모습이었다.

“어젠 잘 들어가셨어요?”

“응. 동생들이 아주 예쁘네.”

“아니에요. 저 닮아서 다 못생겼어요.”

“춥다. 들어가자.”

“여기를요?”

“어.”

============================ 작품 후기 ============================

4월 9일부로 대화형식이 모두 수정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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