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2 윤아영 =========================================================================
32. 윤아영
간신히 소연과 은비를 떼어놓고 원산 호텔을 빠져나왔다. 꽃샘추위로 기온이 떨어져 거리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30년 전 원산은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군사도시이자 항구도시였다. 백두산 폭발로 전 국토가 화산재로 뒤덮일 때 남동쪽에 있는 덕분엔 원산은 가장 피해가 작았다.
화산재를 피해 피난민들이 원산으로 몰려들며 한때 인구가 200만 명까지 증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양의 몰락과 함께 군인들은 폭군으로 돌변했고, 도시와 마을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며 도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30년간 끊이지 않는 내전, 레드몬의 습격, 끊겨버린 생필품과 의약품 등으로 200만이 넘던 인구는 50만 명으로 급감했다.
4년 전 통일과 함께 원산을 차지한 대유 그룹은 주민들을 총동원해 항구를 중심으로 무너진 건물들을 모두 밀어버리고 도시를 새롭게 건설했다.
먼저 10m 높이의 두터운 철근 콘크리트 방벽을 둘러싸 내성을 쌓았고, 외성은 벽돌과 시멘트로 무너진 방벽을 보수했다.
이렇게 완성된 내성에 항만시설과 공장지대, 번화가, 부유층 주택가 등 중요시설이 들어섰다.
외성과 내성 사이엔 내성 주민을 위한 농경지가 조성됐고, 내성에서 쫓겨난 주민 30만 명은 북쪽과 남쪽에 새롭게 조성한 아늑한(?) 판자촌으로 이주했다.
나머지 주민은 전진기기인 장전과 금강산, 회양, 백암, 추애에 2만 명가량 배치되고, 18만 명은 주민이 모자란 동해라인에 고르게 나누어 배치됐다.
내성은 20mm 벌컨(Vulcan)과 기관총, RPG-7, 판저파우스트 3, 장갑차, 헬기 등으로 보호받았고, 레드몬이 언제 난입할지 모를 외성은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비대가 전부였다
이렇듯 내성과 외성의 차이가 극심한 이유는 대유 그룹이 사람의 가치를 다르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통일과 함께 원산엔 세 가지 계급이 생겨났다. 가장 위엔 존귀한 대유 그룹 임직원과 남쪽에서 올라온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고, 그 아래엔 대유 그룹에 충성하는 원산 출신 경비대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헐벗고 굶주린 원산주민이 있었다. 이 땅의 실제 주인인 이들은 통일이 됐어도 여전히 인간 취급도 못 받으며 비가 줄줄 세는 판자촌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잠을 자던 보조사냥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유흥가로 몰려갔다.
모레 전진기지로 이동한다는 이야기가 있자 비너스와 제우스 공대 보조사냥꾼들도 모두 술집으로 몰려갔다.
석 달에 한 번 원산에 내려와 회포를 풀게 해준다는 말이 있었지만, 석 달에 한 번은 평균 30대 초반인 보조사냥꾼에겐 너무 적은 수였다.
석 달이나 여자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한지 뛰듯이 술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항구를 통해 남쪽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자 원산에도 자연스럽게 유흥가가 생겨났다.
처음엔 대폿집이 들어서더니 얼마 후엔 주점이 생겼고, 다음엔 노래방, 가라오케, 룸살롱까지 점점 술집이 고급화하며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김응수를 따라 골목에 들어서자 미아리와 청량리, 영등포 집창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붉은 유리창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빨간 조명 아래 팬티만 입은 아가씨들이 가슴을 그대로 드러낸 채 유리창에 매달려 우릴 유혹하고 있었다.
김응수가 자신의 단골집이라며 끌고 들어간 집은 방석집이었다. 원산에 온 지 이제 겨우 3일인데 방석집을 얼마나 많이 드나들었는지 나이 든 마담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김응수를 맞이했다.
개업 이후 최고로 많은 손님이 찾아 방석집은 축제 분위기였다. 기생집에서 유래한 방석집은 고가의 기생집과는 달리 저렴한 대신 아가씨들의 급수가 많이 떨어졌다.
보통 남자 여러 명이 미리 가격을 흥정하고 가게에 들어가는 것이 관행으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성적 서비스를 받기도 하지만 성행위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성행위는 술자리가 끝난 후 별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그건 남쪽 방석집 이야기였고, 이곳에선 그런 규칙을 지킬 남자는 없었다.
30명이 모두 자리에 앉자 곧바로 술상이 들어왔다. 술상이 차려지자 아가씨들이 들어와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 옆에 앉았다.
모두 하얀 와이셔츠에 팬티만 걸친 모습이었다. 여자가 가장 섹시해 보인다는 그 차림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나도 남자인지라 고개를 돌려 눈으로 아가씨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역시 방석집답게 눈에 확 들어오는 예쁜 아가씨를 찾아볼 순 없었다.
그래도 나이가 모두 어려 보조사냥꾼들의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가씨도 잘해야 22~23살 정도였고, 가장 어린 내 파트너는 많아야 14~15살로 보였다.
명백한 미성년자 불법고용에 미성년자 성 접대 등 죄목만 몇 가지나 됐지만, 원산에서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에 굶주린 놈들이 술이 한 순배 돌기도 전에 와이셔츠를 열어젖혀 가슴을 빨고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음부를 더듬으며 아가씨들을 희롱했다.
“잠시 주목해라!”
“주목~ 주목!”
노일수의 말에 김응수가 재빨리 보조사냥꾼들의 소란을 잠재웠다.
“회양에 들어가면 우리 밑으로 따까리를 100명을 뽑기로 했다. 이들을 이용해 레드몬 서식지와 종류를 파악할 것이다. 사고가 나면 나는 만큼 충원해주기로 공대장님이 약속하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무조건 내 명령만 따르면 돈도 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알았나?”
“네에~”
“오늘 술값은 모두 내가 낸다. 오입하고 싶은 놈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마음껏 데리고 놀아. 오늘은 마음껏 먹고 신나게 노는 거다. 알았나?”
“아와~”
“잔을 들어라. 건배!”
“건배~”
신명이 난 보조사냥꾼들이 크게 환호성을 질러대며 건배와 함께 시원하게 맥주와 소주를 들이켰다.
술도 공짜였고, 여자도 공짜였다. 거기다 원하는 만큼 술도 마실 수 있고, 여자도 마음껏 품을 수 있었다.
더구나 보조사냥꾼을 보조할 따까리까지 뽑아주기로 해 불안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날아가며 보조사냥꾼 회식은 처음으로 잔칫집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이 모든 것은 김갑수가 노일수에게 지시한 심리전이었다. 따까리를 뽑아 총알받이로 세운다고 해도 함께 올라온 보조사냥꾼들의 피해는 강릉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매우 간사해 자신을 대신해 죽을 존재가 있다고 믿으면 마음을 놓기 마련이었다.
술과 여자는 그런 분위기를 띄우는 안주이자 떨어진 사기를 충전하는 보양제와 같았다.
그런 깊은 뜻도 헤아리지 못한 단무지 김응수는 신이 나 한꺼번에 두 명의 아가씨를 끼고 신나게 술을 마셔댔다.
김응수는 창피한 것도 없는지 어느새 아랫도리까지 벗고 왼쪽 아가씨에겐 고추를 빨게 하고 자기는 오른쪽 아가씨의 가슴을 빨며 나에게 술까지 권했다.
김응수만 그런 게 아니라 절반 이상이 아랫도리를 아가씨들에게 맡기 상태였고, 개중에는 이미 오입을 시작한 놈도 있었다.
보조사냥꾼은 거친 사람들이었다. 전직 군인부터 조폭까지 다양한 군상이 그 안에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나와 같이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사람들로 사회에선 가장 밑바닥 인생이었다.
갈 곳이 없고 생계를 위해 마지막 택하는 직업이 보조사냥꾼이었다. 그래서인지 절반 이상은 미혼이었고, 돈이 생기면 노름과 계집질로 탕진하는 방탕한 사람도 많았다.
주민들을 얼마든지 동원해도 된다는 박도준 원산 시장의 말을 듣고도 김갑수가 보조사냥꾼들에게 생돈을 쓰는 이유는 북쪽 주민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김갑수는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보조사냥꾼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들이 있으므로 자신이 안전할 수 있고, 수고로움을 덜 수 있음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노일수만큼 유능한 보조사냥꾼을 원산에서 얻는다면 모를까 그때까진 남쪽에서 데려온 보조사냥꾼들을 다독이며 끌고 나가야 했다.
내 옆에 앉은 앳된 소녀는 워낙 못 먹어서 그런지 키도 작고 가슴도 콩알만 했다. 파트너로 나온 아가씨들은 와이셔츠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단추도 3개씩 풀어놔 가슴을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소녀는 다른 사람과 달리 조용히 앉아 술만 받아먹는 내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팔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남들처럼 뽀뽀도 하고 가슴도 빨고 음부도 희롱해야 하는데 내가 말도 없이 묵묵히 앉아 술만 마시자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에 불안함이 가득했다.
“이름이 뭐야?”
“윤아영이요.”
“몇 살이야?”
“17살이요.”
예상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지만, 15살이나 17살이나 미성년자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아~ 언제부터 여기 나왔어?”
“일주일 됐어요. 하지만 손님은 오빠가 처음에요.”
“왜?“
“장사가 잘 안되는지 손님이 거의 없어요.”
“술 좋아해?“
“아니요. 술 못 마셔요. 그래도 주시면 마셔볼게요.”
“못 먹는 술을 왜 달라고 해?“
“술집이니까 마셔야죠.”
“마시지 않으면 내가 쫓아낼까 봐 그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윤아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게 내가 쫓아낼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윤아영을 보고 있자 불쌍하고 가련한 생각이 들었다. 윤아영의 모습은 몇 년 전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모습, 겁에 잔뜩 질린 눈, 무섭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 거리는 몸, 윤아영의 모습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바로 내가 가졌던 두려움과 연민이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니요. 이제부터 먹어야죠.”
“안주로 저녁이 돼?”
“그럼요. 아주 훌륭하잖아요.”
상위엔 과일과 마른안주, 계란말이, 명태전 등 잡다한 음식이 안주로 나와 있었다. 집에서 먹던 잔치 요리와 비교하면 조잡하지만, 과히 나쁘진 않았다.
아가씨들은 술보단 안주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 몸을 팔 만큼 가난한 여자들이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는 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어린 시절 나 역시 하루에 두 끼면 감지덕지했다. 가난은 공평해야 할 밥그릇 수까지 차이를 뒀다.
“밖에 나가도 돼?”
“네! 나가시게요?”
“옷 입고와. 따뜻하게.”
“알았어요. 금방 올 테니 가지면 안 돼요.”
내가 나가자고 하자 윤아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자리에서 쫓겨나면 오늘 일당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술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여물지 못한 윤아영에게 좌우에서 들리는 신음은 무서움이지 쾌락이 아니었다.
원산에 있는 술집은 어디나 아가씨가 있었다. 남쪽은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치외법권 지역인 북쪽에선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윤아영이 일하는 방석집은 그중 급수가 가장 아래라 이곳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었다.
집창촌이라도 있으며 그곳에서 몸을 팔면 되지만, 가난한 원산에선 집창촌이 없었다. 강간이 범죄가 아닌 곳에서 집창촌이 생길 리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곳이 대폿집인데 고객이 원산주민들이라 여자에게 팁을 줄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대화형식을 수정했습니다. 4/9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1편이 누락되서 다시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전체수정을 하다보니 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