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26화 (26/505)

00026  준비(準備)  =========================================================================

26.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은비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해요. 말만 저렇지 생각도 깊고 꼼꼼해서 지홍이를 힘들게 하진 않을 거예요.”

“맞습니다. 착하고 예쁜 손녀를 제가 데려가는 게 죄송할 뿐입니다.”

“아닐세. 난 괜찮네. 대신 좋다고 해놓고 뒤에 가서 물리기 없기네. 반품, A/S 불가네.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끝까지 책임지고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야지. 암 그래야지.“

최광석은 항상 은비가 걱정이었다. 아들 부부가 죽고 10년을 혼자 키우며 마음 졸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래도 소연이 수시로 드나들 땐 걱정이 덜했는데, 신선 공대에 들어가며 점점 소원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항상 불안했었다.

거기다 적이 많아 밖에 내놓기도 겁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권력을 잡은 자, 돈을 가진 자, 법을 주무르는 자, 범인을 체포하는 자, 펜을 마구 놀리는 자,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모든 이가 최광석의 적이었다.

이건 최광석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친일파와 매국노를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 국민 모두의 잘못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그렇게 걱정이 가득했는데 이젠 든든한 상급 능력자를 짝으로 맞이하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소연까지 평생 함께할 수 있어 무거웠던 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소연아! 사촌오빠 되는 김갑수 공대장을 내가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그럼요. 당연히 만나보셔야죠. 제가 바로 연락해서 날짜를 잡을게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남인가요? 할아버지 손녀잖아요.”

“그럼! 넌 은비 언니이자 내 손녀지. 암 그렇고말고. 하하하~“

소연의 연락을 받은 김갑수는 멘탈리스트를 구했다는 기쁨에 방안을 마구 뛰어다니며 환호성을 질러 됐다.

안 그래도 멘탈리스트인 진영수가 빠지며 공대 전력이 떨어져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북한지역은 남쪽보다 중급 레드몬이 훨씬 많아 현재의 전력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정부와 기업이 강제로 밀어붙여 하는 수 없이 동참하게 된 거지 김갑수는 북쪽에 올라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명성도 실력도 달리는 김갑수는 정부와 재벌에 반기를 들 수 없어 코가 꿰인 소처럼 끌려가는 것이지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몸을 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오성 공대(오성 그룹) 총괄 공대장이자 대한민국 능력자 랭킹 2위인 중급 피지컬리스트 김일권과 국내 최고의 피지컬리스트로 평가는 받는 랭킹 1위 청사자 공대장 박용규, 국내 유일의 중급 힐러 김아리도 찍소리 못하는 곳에서 김갑수가 부당함을 토로했다간 그날이 다음 해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다.

공대원의 숫자라도 늘려 위험을 줄이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신선 공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서 신규 공대원 모집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한숨만 늘어가던 차에 소연에게 걸려온 전화는 타들어 가는 속을 적셔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하급 멘탈리스트인 은비는 물방울이 떨어져 퍼져나가는 것처럼 에너지가 물결을 치며 생명체를 공격하는 에너지 파동을 고유 스킬로 사용했다.

에너지 파동은 포스를 모으는 시간에 따라 최소 3m부터 최대 10m 반경 안을 3분간 3초 단위로 연속해서 공격했다.

또한, 공격 범위 안에 든 물체는 파동의 진동 영향으로 마비증상을 일으켜 쉽게 공격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주일 후 김갑수가 서울로 은비와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이 자리엔 소연과 나도 함께 동석했다.

프라자 호텔 커피숍에서 30분 먼저 도착해 우릴 기다린 김갑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할아버지를 맞이했다.

집안끼리 잘 알고 지내는 데다 귀한 인재를 모셔가는 마당에 작은 실수로 일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동생 이상으로 잘 돌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이는군. 고맙네.“

“어르신이 저희 집안에 베풀어주신 은혜가 있는데 제가 어찌 다른 마음을 품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김갑수는 시종일관 집안 어른을 모시는 자세로 할아버지를 대했다. 김갑수는 민소연과 고종사촌(姑從四寸)으로 어머니 민영희가 할아버지의 은혜를 입고 자란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소연의 할아버지 민조용이 일제의 고문에 옥에서 돌아가시고, 재산까지 모두 빼앗긴 소연의 집안은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을 만큼 가세가 기울었다.

독립운동가 가족 대부분이 민씨 집안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들 대부분이 일제의 탄압에 목숨과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친일파와 매국노의 득세에 이방인처럼 살고 있었다.

오죽하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험담까지 있을 만큼 이 나라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에겐 고통만을 줄뿐 작은 명예조차 아까워했다.

일제강점기 때 쪽발이 밑에서 일한 매국노들이 떵떵거리며 살며 국회의원과 재벌까지 해먹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치부를 가리기 위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모두 죽이지 못해 안달 난 나라에서 명예를 운운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무장독립 투쟁에 투신하기 전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러워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일본 동경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웬만한 머리론 일본 유학길에 나서기도 힘들었고, 그중에서도 일본 최고의 명문 동경대학에 조선인이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동경대학에 입학한 할아버지는 4년간 경영부터 기계, 금속, 화학까지 조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밤낮없이 익힌 후 일제의 회유를 과감히 뿌리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중일전쟁으로 강제징집이 시행되며 일본군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하자 그 길로 만주로 넘어가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했다.

해방 후 6·25 전쟁으로 나라가 폐허가 되며 일본에서 유학한 친일파들이 조국을 등질 때도 할아버지는 청계천에 작은 공장을 만들어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 기계·금속 공업을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

그동안 온갖 탄압에 시달리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과 은행 빛이 없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20대 기업에 드는 세계적인 회사로 미래정밀을 성장시켰다.

할아버지는 친구 민조용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해 민정국과 민영희를 친딸처럼 돌봤다.

생활비는 물론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학비를 모두 댔고, 민정국이 독재정권 타도에 앞장서다 투옥되자 옥바라지까지 했다.

지금은 민정국이 정회원으로 있는 대한민족사관연구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연구회 운영비까지 모두 부담하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김갑수가 은인으로 대하고, 민소연이 손녀로 자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이렇게 만나자고 한 건 부탁이 있어서 그랬네.”

“부탁이라니 당치도 않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냥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어르신이 말씀하시면 뭐든 따르겠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네. 자네도 엄연히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인데 그래선 안 되지.”

“알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다른 게 아니고 여기 박지홍군을 부탁하려고 하네.”

“저희 공대에 넣어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네. 지홍군은 이미 자네 공대에서 일하고 있네.”

“저희 공대에서 일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신선 공대 보조사냥꾼으로 올해 3월부터 일하고 있었네.”

“아~ 그렇습니까? 미처 몰랐습니다. 미리 알려주셨으면 그런 위험한 일을 시키지 않는 건데, 죄송합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네.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박지홍군을 은비와 소연 곁에 있게 해 달라는 것이네.”

“네에?”

“원산에 들어가면 은비와 소연은 한집에서 생활하기로 했네. 그 집에 지홍군을 넣어달라는 거지. 지금과 같이 보조사냥꾼으로 일하며 숙식은 그 집에서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되네. 내 부탁이 너무 어려운 건가?”

“아닙니다. 전혀 어려울 게 없습니다.“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구먼?”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지홍군이 내 손녀사위라 그러네.”

“예에?“

김갑수는 할아버지 말에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김갑수가 놀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일개 보조사냥꾼이 여성 능력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국내 20대 기업 안에 드는 미래정밀의 유일한 상속녀를 차지한다는 건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내가 인생 경험을 쌓으라고 자네 공대에 들여보냈네.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게.”

“오빠! 죄송해요. 제가 할아버지께 신선 공대를 추천했어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아닐세. 내가 소연이 있는 곳에 보내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그런 것이네. 그리고 자네가 알면 편의를 봐줄까봐 말하지 말라고 그랬네. 이해해주게.”

“아닙니다. 보조사냥꾼으로 들어와 고생한 게 문제지 일한 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아직 정식으로 등록은 안 했지만, 손주사위도 능력자인 피지컬리스트라네.”

“아하~ 그렇군요.“

이제야 앞뒤가 맞는 것 같았다. 그냥 보조사냥꾼이 아니라 능력자라 미래정밀 상속녀와 사귀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보조사냥꾼 일을 경험이라고 보낸 것도 그렇고, 더 위험한 북한에 둘을 같이 보내는 일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은 저 때문이에요. 제가 원산에 들어가자 은비가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려 지홍이도 함께 가기로 했어요.”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자네만 알고 있게.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비밀이네.”

“예! 말씀하십시오.“

“은비와 소연이 둘 다 지홍군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네.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되네. 알겠나?”

“예에? 아... 알겠습니다.”

최은비에 이어 사촌 여동생 소연까지 듣도 보도 못한 새파란 청년에게 시집간다고 하자 김갑수는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일부다처제를 주장하는 김갑수의 입장에선 이상할 게 없는 내용이었다. 다만 꽃 같은 여성 능력자 두 명을 차지하는 것이 살짝 부러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라 질투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자네가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말고 셋이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바라네. 가능하겠나?”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해서도 안 되고, 자네도 알려 해서도 안 되네. 내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왜 그래야 하는지 자네는 잘 알고 있을 것이네. 그렇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오늘 들은 이야기는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김갑수가 의심해 내 뒷조사를 하면 과거가 들통 날까 봐 자신에게 적이 많다는 걸 김갑수에게 상기시켜 입을 닫게 했다.

김갑수도 은비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삼촌과 어머니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악덕 친일기업 대유 그룹 산하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족이 당한 고통까지 잊고 사는 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대화형식을 수정했습니다. 4/9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