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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준비(準備)
택시를 타고 구로동 미래정밀 본사로 가는 동안에도 우린 비좁은 뒷자리에 셋이 끼어 앉은 채 이동했다.
소연과 은비는 날 가운데 두고 양쪽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 모습을 택시 운전 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연신 힐끔거렸다.
그나마 선글라스를 끼고 있기 망정이었지 맨얼굴이었다면 고개를 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숙녀를 양옆에 끼고 있자 어깨가 으쓱하고 아랫도리가 뿌듯했다.
“말씀하신 대로 비파형 동검의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한번 잡아보시죠.
탄화텅스텐과 레드보어 본스틸를 합금해 만든 글라디우스는 호수(콧등이)가 없는 형태로 칼날과 손잡이가 한 몸이었다.
김일섭 연구원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비파형 글라디우스(Gladius)는 베기와 찌르기가 모두 가능한 형태지만, 베기보단 찌르기에 특화한 검이었다.
글라디우스는 커다란 방패와 밀집대형으로 적을 상대하던 로마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무기로 장검의 경우 어깨를 맞댄 좁은 밀집대형에선 휘두르기가 불편해 방패 사이로 찌르기가 용이한 쇼트 소드를 글라디우스를 사용하게 됐다.
레드몬 역시 찌르기 한방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아까운 가죽을 훼손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었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인 레드몬은 인간과 달리 외부에 난 상처 한두 개론 꿈쩍도 안 해 급소를 노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레드몬이라도 급소인 심장과 뇌를 다치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단단한 머리뼈와 가슴뼈를 뚫을 수 있는 강력한 한방이 필요하단 문제가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이건 레드보어 가죽을 조끼 형태로 만든 겁니다. 옷 속에 받쳐 입으시면 됩니다. 건틀렛과 뱀브레스, 신발도 레드보어 가죽을 안감으로 댔습니다. 얇긴 하지만 세 겹이라 대전차 로켓탄에 맞아도 찢어지진 않을 겁니다.”
전차의 경우 포탄에 의한 관통이 아니더라도 충격으로 전차 승무원이 사망하거나 전투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그건 방탄복을 입어도 탄알의 충격에 타박상과 내상을 입는 것과 같은 것으로 레드보어의 가죽이 대전차 로켓탄에 뚫리지 않는다고 해도 입고 있는 사람까지 멀쩡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전차 로켓탄의 관통력은 레드보어 가죽이 막아낼 수 있어도, 운동에너지까지 해소할 수 없어 사람이 전신을 레드보어 가죽을 뒤집어써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제 것만 완성된 겁니까?”
“아닙니다. 민소연님과 최은비님의 무기와 방어구도 모두 준비됐습니다.”
소연과 은비의 무기는 나와 같은 재질의 단검으로 폭이 넓고 날이 30cm나 되는 푸지오(pugio)였다.
푸지오 역시 로마 군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검으로 형태는 내가 쓰는 비파형 글라디우스와 비슷했다.
특별히 숙녀들이 쓰는 무기라 검은색인 글라디우스와는 달리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에 단검집도 가죽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방어구는 나와 같은 재질로 모양을 좀 더 여성스럽게 만든 것 빼고는 다를 게 없었다.
“부탁한 암기는 어떻게 됐습니까?
“준비해 놓았습니다. 저와 함께 지하 시험장으로 같이 내려가시죠.”
무기와 방어구를 주문하며 하급 레드몬의 본스틸과 탄화텅스텐을 합금강으로 주조해 만든 암기도 함께 주문했다.
암기는 길이 10cm, 밑지름 3cm로 뾰족한 원뿔 모양이었다. 일반 탄환은 대부분 연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라이플과 기관총 총알은 연금속에 경금속 탄피를 씌워 만들었고, 장갑판을 꿰뚫는 총알은 강화 강철 위에 탄피를 씌워 만들었다.
직물로 만든 방탄조끼를 뚫기 위해 테플론(열에 강한 합성수지) 같은 물질을 씌운 총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레드몬의 가죽과 뼈를 뚫기엔 턱없이 부족한 재질이었다. 내 경우 탄환에 예기를 씌워 관통력을 높일 수 있어 중급 레드몬까진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엘리트 레드몬부턴 탄환의 부실한 재질과 가벼운 무게론 가죽에 찰과상을 주는 것에 불과했다.
미래정밀 레드몬 연구소 지하에 마련된 무기 시험장을 내려가자 검은빛의 원뿔 암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무기 시험장은 높이 5m, 넓이 20m, 길이 50m로 생각보다 상당히 컸다. 둘레를 단단한 암석과 직물, 강철로 둘러싼 무기 시험장은 날개안정분리철갑탄으로도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시설이었다.
“중앙에 마련된 강철블록에 무기를 시험해 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검의 강도를 실험하기 위해 포스를 불어넣지 않은 상태에서 가로세로 3m 크기의 정사각형 강철 블록에 글라디우스를 연속으로 내려쳤다.
“타앙~ 타앙~”
강도도 뛰어나고 잘 벼려졌는지 기를 넣지 않은 상태에서도 강철블록에 선명한 자국이 새겨졌다.
기를 집중하자 글라디우스가 파란 예기가 뒤덮였다. 예기가 50cm까지 잘라나자 강철블록을 연속으로 빠르게 찔렀다.
강철블록이 두부처럼 쑥쑥 들어가며 열쇠 구멍 같은 홈이 새겨졌다. 본스틸 합금강이라 그런지 포스의 전달이 일반 쇠보다 훨씬 빠르고 부드러웠다.
이제까지 사용한 가장 좋은 칼이 싸구려 정글도였다. 철근 칼보단 정글도가 훨씬 뛰어났지만, 대량으로 찍어낸 정글도와 나만을 위해 수십 명이 달라붙어 만든 글라디우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강철블록과 거리를 20m 벌린 다음 원뿔 암기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처음엔 힘만 이용해 던졌다.
“타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강철블록을 10cm나 파고든 암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끝을 하급 레드몬 레드삵의 이빨로 마무리해서 그런지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이번엔 예기를 불어넣어 힘차게 던졌다. ‘팡~’ 거친 바람소리와 함게 날아간 암기가 두께 3m 강철블록을 뚫고 나가 콘크리트 벽을 때렸다.
“콰앙~”
“이러다 시험장 무너지겠다. 이제 그만해!”
“응.”
김일섭 연구원의 경악에 찬 시선을 뒤로하고 20개의 원뿔 암기와 무기를 챙긴 우린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소연과 은비에게 푸지오를 만들어 준건 근접전에서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날 지금에 있게 한 기감력을 은비와 소연에게 가르쳐 멘탈포스는 물론 피지컬포스도 함께 배양할 생각이었다.
기감력은 피지컬포스와 멘탈포스 양쪽에 모두 반응하는 스킬로 터득만 할 수 있다면 나만큼 빠르게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다.
여기에 근접전에 특화한 승무도를 가르쳐 위험에 처했을 때 잠시라도 시간을 벌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멘탈리스트 중에는 단검과 같은 타격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 능력자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레드몬 사냥에 사용하는 멘탈리스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피지컬리스트보다 체력적으로 딸리는 멘탈리스트들이 타격무기를 사용해 레드몬을 상대한다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았다.
무기에 포스를 담을 능력이 없는 멘탈리스트에게 타격 무기란 일종의 과시용이자 시위용에 불과했다.
내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듀얼 리스트이기 때문이었다.
피지컬리스트가 오직 체력적인 힘에 치중하고, 멘탈리스타가 정신력에 치중하며 반쪽자리 능력자로 활동할 때, 난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며 그들보다 몇 배나 빠르게 상급 능력자에 올라설 수 있었다.
많은 능력자각 명상과 수련을 통해 포스를 늘리며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사용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피지컬리스트가 멘탈포스 100을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로 최강의 전사로 꼽히는 아폴로 윌리엄스조차 멘탈포스가 고작 21에 불과했다.
일부에선 듀얼 리스트 역시 힐러처럼 전혀 별개의 직업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수련을 통해 누구나 듀얼 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능력자가 사용하는 포스가 후천적인 수련과 명상을 통해 얻은 능력이 아니라고 해도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능력자가 나타난 지 이제 겨우 30년이었다. 기감력이란 특별한 힘을 얻어 듀얼 리스트가 된 나처럼 우리가 모르는 듀얼 리스트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마음을 굳히는 순간 수련이 시작됐다. 전날까진 늦잠을 자든 밤새 TV를 보든 상관하지 않았지만, 수련 계획을 짠 순간부터 용서는 없었다.
“오빠! 조금만 더 잘게. 나 잠든 지 이제 겨우 3시간밖에 안됐어.”
“나도 졸려 미치겠어. 조금만.“
“안 돼! 어제 분명히 약속했잖아. 오늘부터 5시에 기상해 함께 수련하기로. 첫날부터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오빠가 밤새 괴롭혀서 이렇게 된 거잖아. 나 아직도 밑이 쓰라리단 말이야. 이 상태론 걸어 다니기도 힘들어.”
“나도 피나.“
“약 발라 줄 테니까 엄살 부리지 말고 그만 일어나. 셋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또 덮친다.”
“인간아! 그걸 지금 협박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하는 거 아니야?”
“하나! 둘! 둘에 반! 둘에 반반!“
“10분만! 5분만! 아니 1분만! 제발~ 제발 조금만 더 자게 해줘~”
소연과 은비를 안아 차가운 욕조에 빠뜨려 억지로 잠을 깨운 후 씻기고 운동복까지 손수 입혀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수련의 시작은 뭐니 뭐니 해도 달리기로 우린 주택가를 따라 10km를 달렸다. 그래도 첫날이라 산에서 달리던 10분에 1 속도로 아주 천천히 달렸다.
“하아~ 하아~ 첫날부터 10km는 너무한 거 아니야?“
“맞아. 우린 멘탈리스트지 피지컬리스트가 아니야. 이건 우리에게 무리라고.”
“멘탈리스트도 일반인보다 체력이 몇 배나 높아. 그리고 전투의 시작은 달리기야. 레드몬보다 체력이 떨어지고 느리면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 될 수도 있어. 달기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야. 다른 수련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래도 그렇지 첫날부터 10km는 무리야. 그리고 왜 이렇게 빨리 달려. 누구 죽일 일 있어?”
“무슨 소리야? 평소 달리는 속도의 10분에 1로 천천히 걷다시피 한 거야.”
“이게 걷는 거야? 날아다니는 거지.“
“내일부턴 하루에 1km씩 거리도 늘리고, 달리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질 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
“그냥 덮쳐! 그게 났겠다.”
“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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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도 같이 들어간다고?”
“예! 죄송합니다.”
“아닐세. 내게 죄송할 거 없네. 자네와 소연이 있으니 오히려 잘 된 거지. 늙은 할애비와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는 게 경험도 쌓고 훨씬 나을 거네.”
“맞아. 어차피 내년부턴 레드몬 사냥팀에 들어가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있는 것보단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백번 낫지. 마음도 놓이고.”
“나야 저 사고뭉치 치워줘서 고맙긴 한데 자네하고 소연이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성격도 개차반이라 신경이 많이 쓰일 거네.”
“개차반이라니? 설마 그게 날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
“너 말고 여기 그런 사람이 또 있냐?“
“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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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형식을 수정했습니다. 4/9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