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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3화 (23/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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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민소연

깨끗이 몸을 씻고 1층으로 내려오자 시간이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린 아주머니가 차려준 점심을 얼굴을 푹 숙인 채 먹었다.

낯짝이 두꺼워도 고개를 들기 어려운 마당에 첫날밤을 함께 보낸 새신랑 새색시인 우리가 고개를 빳빳이 든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정원에 나가자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 쫑이가 꼬리를 흔들며 은비에게 매달려 재롱을 부렸다.

“오빠! 나 아무래도 오빠하고 언니 따라 원산에 같이 들어가야겠어.”

“자리 잡고 오는 게 편하지 않겠어?“

“아니! 편하고 안 편하고의 문제가 아니야. 밤새 생각해 봤는데, 오빠가 옆에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소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아. 소연 언니랑은 상관없어. 내가 못 참아서 그래.”

“흐음...“

“오빠가 소연 언니를 사랑하는 거 알고 있어. 난 오빠가 소연 언니를 사랑하는 거 싫어하지 않아. 언니도 오빠 사랑하고, 나도 언니와 오빠를 사랑해. 사랑하는 우리 셋이 함께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셋이 같이 살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욕할 수도 있어.”

“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미국도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로 바뀌기 직전인데, 왜 사람들이 우릴 욕해. 설령 욕한다고 해도 난 두렵지 않아. 우리 사랑이 중요하지 남의 시선 따위는 상관할 필요도 없어.”

“할아버지가 싫어하실 거야.“

“아니! 할아버지는 오히려 잘 됐다고 하실 거야. 누구보다 날 잘 알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소연 언니가 옆에 있으니까 더 좋아하실 거야.”

“그건 네 생각일 수도 있어.“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아~“

은비가 반대해도 무조건 소연을 같이 데리고 살 작심한 내게 은비의 말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렇다고 덥석 은비의 말을 받을 순 없었다. 마음이야 쾌재를 불렀지만, 난 속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얼굴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저녁 식사에 맞춰 돌아오신 할아버지는 이미 우리 사이를 눈치 채셨는지 의미심장한 눈빛을 내게 보낸 후 별다른 말이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늙은 생강이 매운 건 나이가 든 만큼 연륜과 지식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됐는데 젊은 청춘을 갈라봐야 좋을 게 없었다.

더구나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말괄량이를 시집살이시킬 시부모도 없는 전도유망한 젊은이에게 보내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능력자로 각성한 후 아직 체계적으로 무술을 배워본 적인 없다고 했지?”

“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럼 내가 괜찮은 스승을 한 분 소개해줄까 하는데 어떤가? 마음이 있으면 실전무술의 달인을 소개해 주겠네.”

“번번이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사양할 것 없네. 자네도 좋고, 나도 좋고, 은비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할아버지가 소개해준 이기석 사범 한 자루 잘 벼린 칼 같은 남자로 대한민국 고유무술 승무도의 18대 전수자였다.

승무도는 조선 중기인 임진왜란 때 ‘승병’의 무술이 민간에 전승된 것으로, 당시 승병은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왜와 단병접전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조선의 군대 중 하나였다.

이기석 사범은 시중에서 가르치는 가짜 승무도가 아닌 일인 전승으로 내려온 진정한 승무도의 전인으로 능력자는 아니셨지만, 칼을 잡는 순간 몸에서 자연스럽게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예기는 오랜 세월 각고의 수련을 통해 얻은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이것이 진정한 자연의 기운이었다.

처음 일주일간은 승무도의 기본검식을 따라 배웠고, 다음은 실전 검술과 승무도의 투로를 익혔다.

그렇게 두 달 넘게 승무도를 몸에 익히자 마구잡이식 싸움이 아닌 고수들의 싸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더구나 미처 몰랐던 기를 쌓는 방법과 선도(仙道), 수련 할 때 마음가짐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기감력을 좀 더 세심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는지 이젠 알 것 같았다. 똑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는 것이 혼자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것보다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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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와 사랑을 나눈 이틀 후 소연이 짐을 싸들고 집으로 왔다. 나와 은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지만, 소연의 독심술을 속일 순 없었다.

작은 표정 변화에도 상대의 심리를 귀신처럼 꿰뚫는 소연 앞에서 미안하고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우리 모습은 차라리 둘 사이를 알아달라고 외치는 것과 같았다.

“나 없는 사이에 둘이 연애라도 했어? 아주 다정해 보인데.”

“.......“

“역시 언니 눈은 속일 수가 없네. 미안해!”

“설마 날 날 속이려고 한 거야?“

“아니. 내가 왜 언니를 속여. 오빠는 속여도 언니는 속이면 안 되지. 언니는 세상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럼. 너와 난 가족 그 이상이지.“

“소연아! 미안해! 내가 참지 못해서 그만...”

“아니야. 조금 빠르고 늦고 차이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내가 이 집에 널 데려온 이유가 무기와 방어구 때문이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은비에게 널 보여주려고 데려온 거야.

“언니! 그 말 정말이야?”

“응! 지홍이는 눈치가 없어서 몰랐겠지만, 날 보호해주기 위해 북한에 따라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마음의 결심을 했어. 내 일생을 지홍과 함께 하겠다고.”

“아하~ 그래서 오빠에게 살갑게 대했구나. 반찬도 올려주고, 옷도 챙겨주고. 남자라면 끔찍이 싫어하던 언니가 웬일인가 했어.”

“티 많이 났어?“

“엄청나게~”

마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소연을 차지하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끝까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성을 쏟아도 안 된다면 소연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소연을 억지로 끌고 갈 수도 강간해 데리고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랑은 강요가 아니었다. 강요와 집착은 사랑이 아닌 질투와 욕망이었다. 사랑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지 폭력을 사용해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오늘 지홍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얻었으니까 크게 한턱내야지.”

“알았어.“

“우리 뭐 먹으러 갈까?”

“로브스타 먹으러 가자. 그거 먹고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저녁에 한우 먹으러 가는 거야. 중간중간 아이스크림도 먹고 햄버거도 먹고.”

“재밌겠다. 히히히~“

말은 안 했지만, 소연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었다. 서점에서 헤어질 때 소연이 은비에게 했던 말을 몰래 엿듣긴 했지만, 농담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랬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연이 내 곁을 떠날 수도 있었다.

이틀 동안 불안에 떨던 마음이 소연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안도로 바뀌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우린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나갔다. 택시 안에선 비좁은 뒷자리에 셋이 끼여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우린 함께했다.

생전 처음 맛본 바닷가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바닷가재 회는 꼬들꼬들했고, 버터구이는 달콤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우린 가장 큰 바닷가재 10마리를 애피타이저로 가볍게 먹어준 다음 시내를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음식은 모조리 맛을 봤다.

당연히 계산은 내 몫이었다. 이제 내 마누라나 다름없는 꽃 같은 소연과 은비에게  밥값을 계산하게 할 순 없었다.

레드스톤과 사체를 판 돈이 60억이 넘었다. 이 돈이면 평생 호강은 못 시켜줘도 맛난 음식은 원 없이 사줄 수 있었다.

“언니! 나도 언니 따라 원산에 들어갈래. 괜찮지?”

“사촌오빠에게 말해둘 테니까 할아버지에겐 네가 잘 말씀드려.”

“어? 놀라줄 알았는데, 안 놀라네.“

“왜 놀래? 당연히 같이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지홍이 보고 싶어서 혼자 지낼 수 있겠어?”

“아니! 절대 못 해. 언니하고 오빠 둘 다 사라지면 나 무서워서 밖에 나오지도 못할 거야.”

상상만 해도 무서운지 은비가 몸을 부르르 떨자 소연이 은비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은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언니의 모습이자 엄마의 모습이었다.

“은비야! 이제부턴 어디를 가든 함께 가는 거야. 그곳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같이 가는 거야. 알았지?”

“ 응! 그곳이 지옥이든 삶의 끝이든 앞으로 우리 영원히 함께 다녀. 오빠도 같이 갈 거지?”

“그래야지. 영원히 함께...”

거리의 매춘부와 백만장자가 사랑을 이룬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은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가 열연한 멜로 영화로 소연과 은비가 무척 좋아했다.

우리와 특별히 연결되는 것은 없지만, 굳이 찾으면 내가 줄리아 로버츠고 소연과 은비가 리처드 기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능성만 무궁한 천애 고아를 백만장자보다 수천만 배 더 큰 값어치를 가진 소연과 은비가 받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꼭 오늘 안 해도 돼. 천천히 해도 괜찮아.”

“아니야. 한시도 떨어지지 말자고 맹세했잖아. 그럼 나도 네 여자가 돼야 낮이든 밤이든 함께 할 수 있지.”

“그건 소연 언니 말이 맞아. 언니는 손 붙잡고 자고 나하고만 사랑을 나눌 순 없잖아.”

“;;;”

몸을 깨끗이 씻고 나오자 은비가 그날 마셨던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우린 조금 후에 있을 섹스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원산에 들어가서 어떻게 지낼지 그것만 궁리했다.

“오빠를 지금처럼 보조사냥꾼으로 둘 순 없어. 그러니 언니가 오빠를 우리를 개인 비서로 채용한다고 사촌오빠에게 말해. 그래야 어디를 가든 같이 다니지.”

“그건 어렵지 않아. 문제는 사냥하는 곳까지 같이 갈 수 있느냐는 거야.“

“같이 다닌다고 얘기해야지.”

“사냥은 공대만 움직이는 거라 말이 나올 수 있어. 아무리 오빠가 신선 공대 공대장이라고 해도 규칙을 싹 무시할 순 없어.”

“사냥터는 내가 알아서 쫓아다니면 되니까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개인비서라고 하면 말이 많으니까 보조사냥꾼 소속으로 그냥 놔두고 파견형식으로 내가 너희를 모시는 거로 하자.”

“오~ 좋은 생각인데. 오빠! 이제부터 날 여왕으로 모셔야 해. 알았지.”

“흐~ 알았어.“

“네가 편하면 그렇게 해. 오빠에게 말해둘게. 은비가 공대에 가입하고,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면 반대하진 않을 거야.”

“우리 숙소는 따로 있는 거야?”

“회양 전진 기지에 공대원 수만큼 2층 집을 새로 지었다고 들었어. 우린 그 중 한 채를 같이 사용하면 될 거야.”

“숙소도 해결됐고, 먹는 게 문제네. 언니도 요리 못 하지?”

“응! 완전 못해.”

“나도 젬병인데. 큰일 났네.”

“내일부터 단기 속성코스로 요리학원 다닐까?”

“그러자. 나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 이 상태로 원산 가면 오빠 굶어 죽일 수도 있어.”

“난 아무거나 잘 먹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무거나 수준이 아니니까 그렇지. 잘 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컥~”

============================ 작품 후기 ============================

대화형식을 수정했습니다. 4/9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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