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9 상급 레드몬 에오히푸스(eohippus) =========================================================================
19. 상급 레드몬 에오히푸스(eohippus)
은비의 말처럼 이건 명백한 반칙이자 사기였다. 하지만 세상은 반칙과 사기가 난무하는 곳이었다.
나처럼 태어날 때 썩은 나무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금 숟가락도 모자라 다이아몬드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서 공평한 것을 찾는다면 단 하나 죽음밖에 없었다.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이지만, 죽음만은 누구도 피할 수 만고의 진리였다.
중급 피지컬리스트의 능력과 하급 멘탈리스트 이상의 멘탈포스를 동시에 가진 능력자를 듀얼 리스트라 불렸다.
피지컬리스트가 멘탈포스 50을 넘기 힘들다는 점과 멘탈리스트가 중급 피지컬리스트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출 수 없다는 점에서 두 가지 능력을 동시에 갖춘 듀얼 리스트는 매우 희귀한 존재로 여겨졌다.
내 경우는 듀얼 리스트의 영향인지 저항력이 크게 증가해 독이나 이상 상태를 유발하는 다양한 스킬 공격에 잘 걸려들지 않았다.
레드몬의 등급이 높을수록 공격력과 방어력 등 물리적인 힘이 증가하는 것도 위협적이지만, 중독·출혈·침묵·혼란·공포·마비·화상·동결·질식·실명 등 다양한 이상 상태를 유발하는 스킬 공격이 더 큰 위협이었다.
이상 상태를 유발하는 레드몬의 스킬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선 힘·민첩·체력·정신력의 4대 핵심 능력치 중 체력과 정신력이 높아야 했다.
물론 힘과 민첩도 크게 영향을 끼치지만, 중독·출혈·화상·동결·질식 등은 체력이 높아야 저항과 방어가 가능했고, 침묵·혼란·공포·마비·실명 등은 정신력이 높아야 이겨낼 수 있었다.
힐러인 마샤 타이엘나(Masha Tyelna)와 공격형 피지컬리스트인 아폴로 윌리엄스(Apollo Williams)는 모든 이들이 꼽는 최고의 능력자였다.
마샤 타이엘라는 우크라이나 출근 미국인으로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Raphael)로 불렸고, 아폴로 윌리엄스는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정의의 천사 미카엘(Michael)로 불렸다.
이들은 상급 레드몬 에오히푸스(eohippus)를 사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미국에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1990년 3월 17일 미 행정부 대변인은 세계 최초로 상급 레드몬 에오히푸스 사냥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에오히푸스는 신생대 제3기 에오세 초기인 6,000만 년~5,000만 년 사이 북아메리카와 유럽,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던 말의 조상으로 30cm의 작은 키에 여우와 비슷한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에오히푸스로 명명한 상급 레드몬은 높이 10m, 길이 20m의 대형 레드몬으로 미연방 정부는 에오히푸스의 출현을 1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급 레드몬은 고사하고 바로 아래 단계인 엘리트 레드몬조차 사냥에 성공한 사례가 적어 촉각만 곤두세운 채 사고가 없기만을 기도하고 있었다.
다행히 에오히푸스는 사람과 다툴 생각이 없는지 서부 산악지대인 네바다(Nevada) 머스탱 모뉴먼트(Mustang Monument)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유지되던 평화를 깬 건 마약에 취한 어린 철부지들이었다. 평화를 깬 20대 초반의 백인 남성 세 명은 에오히푸스를 감시하던 군부대에서 두 달 전 제대한 병사들로 마약과 술에 취해 황당한 내기를 했다.
이들은 에오히푸스를 사냥할 수 있다 없다는 사소한 말다툼이 원인이 되어 황당한 내기까지 걸게 되었다.
제대 전 알고 있던 은밀한 루트를 이용해 에오히푸스에게 접근한 영웅들(?)은 총질을 해대며 자신의 용기를 뽐냈다.
하지만 에오히푸스는 귀찮은 인간들을 상대할 마음이 없어 총알 세례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약에 취한 놈들은 에오히푸스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더욱 날뛰었다.
총소리에 놀란 경비대에 비상이 걸렸다. 급히 출동한 부대장은 에오히푸스가 민간인을 공격한다는 황당한 판단을 내렸다.
헬기와 장갑차, 전차까지 총출동시킨 부대장은 마약에 취해 쓰러진 청년을 에오히푸스가 공격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했다.
지난달까지 이라크에 근무했던 부대장은 살짝 맛이 간 상태였는지 참모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아파치 헬기의 대전차 로켓과 M1 에이브럼스 전차의 열화우라늄탄 공격에 분노한 에오히푸스의 발 구르기 한방에 수십 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시작된 전투는 하루 만에 꽃다운 청춘 1만의 목숨을 앓아갔다.
네이팜탄과 열화우라늄탄으론 에오히푸스의 털끝조차 태울 수 없었고, 빈자의 원폭이라는 불리는 기화폭탄으로도 놈의 질긴 껍질을 태울 수 없었다.
화약 무기를 완벽히 방어하는 에오히푸스 앞에선 재래식 폭탄의 10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기화폭탄도 불장난에 불과했다.
화약 무기론 에오히푸스의 화만 돋을 뿐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하자 미연방 정부는 수소폭탄을 준비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인 수소폭탄마저 실패하면 미국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었다.
1만여 명의 소중한 목숨이 사라지는 동안 미연방 정부는 능력자를 강제 소집했고, 7,010명 중 6,841명이 급히 네바다 주에 모였다.
멘탈리스트 1,400명이 원거리에서 에오히푸스를 견제하는 사이 85명의 중급 피지컬리스트가 방패와 메이스, 워 해머를 들고 근접전을 펼쳤다.
이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 능력자는 9명의 힐러와 12명의 멘탈리스트 그리고 15명의 피지컬리스로, 이 중에서도 힐러인 마샤 타이엘나와 공격형 피지컬리스트인 아폴로 윌리엄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마샤 타이엘나는 20~30명을 한꺼번에 치료할 수 광역 힐러로 치료 속도가 일반 힐러보다 3배나 빨라 부상당한 능력자를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려놓으며 에오히푸스와의 전투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아폴로 윌리엄스 역시 블리딩 스워드라는 출혈 스킬을 사용해 에오히푸스를 끊임없이 괴롭혀 전투의 추를 미국으로 가져간 일등 공신이었다.
8시간의 혈투 끝에 에오히푸스를 쓰러뜨린 미국은 12,708명의 군인과 384명 능력자를 잃었지만, 세계 최초로 상급 레드몬을 사냥한 국가로 기억됐다.
마샤 타니엘라
힘-36 민첩-38 체력-102 총합-176 멘탈포스-1,098
아폴로 윌리엄스
힘-189 민첩-191 체력-173 총합-553 멘탈포스-21
마샤 타이엘나는 현재까지 확인된 멘탈리스트 중 유일하게 멘탈포스가 1,000이 넘었고, 아폴로 윌리엄스는 중급 능력자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며 최강의 피지컬리스트로 평가받고 있었다.
“오빤 어떤 멘탈 스킬을 사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멘탈 스킬은 아직 없어. 주변을 읽고 느끼는 정도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야.”
“주변을 읽고 느끼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주변 1km 안에 어떤 물체가 있는지, 무얼 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야.”
“1km 안에 있는 모든 물체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돼!”
“당연히 전체를 다 알 순 없지. 움직이는 물체와 내가 원하는 부분만 선별적으로 느낄 수 있어.”
기감을 통해 지형과 물체를 확인할 순 있지만, 생명체나 움직이는 물체는 한 번에 50개가 한계였다.
반경 1km 안을 손바닥 보듯이 한다는 말은 허구이자 이상이었다.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체가 그 안에 있는데 그걸 모두 기감할 수 있다면 그건 신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레드몬도 찾을 수 있어?”
“응!“
“우와~ 우린 레드몬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오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놈들의 움직임까지 다 파악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그것도 1km 안에 있는 놈들은 모두 다.”
“전부 파악하긴 힘들어. 50마리가 한계라고 봐야 해.“
“지금 자랑하는 거야? 우린 놈들이 옆에 오기 전엔 어디 있는지도 몰라.”
“흐~“
기감을 통해 반경 1km 안에선 작은 움직임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고 하자 은비뿐만 아니라 소연과 할아버지까지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1km가 충분한 거리는 아니지만, 레드몬의 움직임을 미리 탐지할 수 있어 최소한의 안전거리는 확보한 셈이었다.
현재 레드몬 탐지 장비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열상감시장비(TOD)는 날씨가 화창해도 감시 거리가 1km에 불과했고, 바람이 심하고 비마저 오면 감시 거리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더구나 레이더처럼 전체 방위를 탐지하는 장비가 아니라서 많은 수를 동원하지 않으면 레드몬을 찾아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멘탈리스트 중엔 극소수지만 레드몬을 탐지하는 디텍터도 있었다. 하지만 탐지거리가 100~200m 정도라 후각과 청각이 예민한 레드몬에게 먼저 발각당할 수 있어 효용가치는 매우 떨어지는 실정이었다.
“모양이 이렇게 해주시면 되고, 길이는 60cm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무게는 조금 무겁게 1kg 정도면 됩니다.”
“로마 군인들이 사용한 글라디우스를 말씀하시는군요?”
“비슷합니다. 대신 일자가 아닌 비파형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며칠 내로 몇 가지 도안을 보여드릴 테니 그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걸 고르시면 됩니다.”
김일섭 연구원은 미래 레드몬 수석 연구원으로 레드스톤 연구부터 방어구와 무기 제작까지 이쪽 분야에선 알아주는 기술자였다.
“알겠습니다.“
“방어구는 어떤 형태를 원하십니까?”
“가슴만 가리는 흉갑과 팔을 보호하는 뱀브레스 그리고 튼튼한 신발만 있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무기는 탄화텅스텐과 레드보어의 본스틸을 섞어 만들 겁니다. 방어구는 레드보어의 가죽을 이용해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초 계획과 달리 내게 맞는 무기와 방어구를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전시된 무기가 대체로 중병에 속했고, 방어구도 두껍고 무거워 속도와 순발력을 중요시하는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공격형 피지컬리스트는 레드몬의 가죽을 뚫기 위해 무거운 투핸드 소드나 충격을 주기 위해 워 해머, 메이스, 플레일 같은 중병을 선호했다.
방어형 피지컬리스트는 속도와 순발력이 떨어져도 레드몬의 공격을 방어하기 좋은 가죽과 본스틸을 사용한 무거운 방어구를 선호했다.
무기와 방어구 주문이 모두 끝나자 소연과 은비는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내달렸다.
오늘 쇼핑은 내 옷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백화점에 도착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둘 다 쇼핑에 목말랐는지 내 옷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들의 옷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것도 백화점 안은 다 훑으려는지 캐주얼, 아웃도어, 여성복, 가방, 액세서리, 화장품, 구두 등 가리지 않고 모든 매장을 돌아다녔다.
처음 한 시간 동안은 웃음과 맞장구로 ‘예쁘다’ ‘잘 어울려’ ‘끝내준다’는 말을 연발했지만, 두 시간이 지나자 팔다리가 끊어지고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이건 차라리 레드몬과 온종일 싸우는 게 났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했다.
“은비야! 이제 지홍이 옷도 사야지?”
“맞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미안해 오빠!“
“너무 오랜만이라 내가 흥분해서 그만... 미안!”
“괘... 괜찮아! 좀... 좀 더 구경해도 돼.“
내 손에 잔뜩 들린 쇼핑백이 미안했는지 소연과 은비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백화점에 들어온 지 3시간 만에 드디어 내 옷을 고를 수 있었다. 처음 와본 백화점은 별천지였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와 각양각색의 매장들은 너무도 화려해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곳에 온 기분이었다.
옷값도 엄청나게 비싸 보조사냥꾼 한 달 월급을 몽땅 투자해야 상하세트 한 벌을 구매할 만큼 비싼 옷이 수두룩했다.
소연과 은비가 골라주는 옷과 신발을 입어보고, 신어보고, 몸에 대보며 또다시 2시간을 끌려 다닌 후에야 지옥 같은 쇼핑이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를 수정했습니다.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