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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8화 (18/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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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능력자 기준

“우씨~ 할아버지! 언니 오자마자 일러바치기야?”

“네가 하도 집에만 처박혀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한창 놀 나이에 왜 집에만 있어? 남자친구도 만나고, 맛난 것도 먹고, 영화도 보러 다녀야지.”

“됐거든~ 그런 거에 관심 없거든.“

은비와 할아버지는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버릇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난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네 분 중 단 한 분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두 분 모두 전쟁고아로 의지할 때 없는 혈혈단신(孑孑單身)이라 명절에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었고, 찾아뵐 친척도 없었다.

가족이 많은 사람은 대소사가 많아 귀찮을지 몰라도 가족이 없는 사람에겐 그것마저 사치스럽게 보였다.

당장 길바닥에 죽어도 관심 가져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은 외롭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모자람이 많았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소연이 남자친구라고?”

“아... 예! 안녕하십니까. 박지홍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소연이 친할아버지나 다름없는 최광석이네.”

올해 72살인 최광석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 정밀부품을 산업을 육성한 장본으로 미래정밀을 설립한 창업주이기도 했다.

“무기에 중급 레드스톤을 접목해 에너지를 끌어 쓸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그런 기술을 가진 국가나 단체는 없네. 레드스톤은 세상에서 알려진 대로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원이지. 그걸 다른 말로 풀이하면 안정성이 지나치게 높아 무기에 사용할 만큼 많은 에너지를 끌어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더구나 소모한 에너지를 채울 수도 없고, 포스를 증폭하는 기능도 없지. 안타깝지만, 아직 에너지 그 이상의 가치는 없네.”

“혹시나 해서 여쭤본 겁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단 밥부터 먹으며 이야기하세.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허기가 지면 말하는 것도 버겁네.”

“또 엄살 부리시네. 몸에 좋다면 바퀴벌레도 다 잡아 먹으면서 뭐가 버거워. 팔팔하기만 한데.”

“그런가? 음하하하~”

건물 1층으로 내려가자 우리가 탈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차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도로를 달려 목동으로 이동했다.

음식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도착하고 보니 최광석 회장님의 자택이었다. 잔치라도 여는지 커다란 상엔 불고기, 갈비찜, 잡채, 명태전, 고기전, 나물 등 잔치음식과 간장게장, 양념게장, 굴비, 전복, 장어구이, 새우튀김 등 다양한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가득 차려져 있었다.

“사양하지 말고 많이 들게. 잘 먹는 게 음식을 차려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니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오늘 생일이야?”

“소연이 온다고 아침부터 포천댁 들들 볶아서 만들어놓고 왜 애먼 할애비 생일이냐?”

“헤~”

상 위에 차려진 음식 중 태반이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 땐 고등어 한 마리만 해도 대단한 반찬이었고, 산에서 혼자 살 땐 음식을 할 줄 몰라 삶거나 굽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소연을 만난 후 회, 갈비찜, 짜장면, 순두부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지만, 잔치음식과 게장, 전복 등은 아직 접해보지 못 했었다.

내가 뭘 먹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소연이 불고기와 잡채, 굴비, 고기전 등 반찬을 집어 밥 위에 올려주었다.

독심술에 뛰어난 소연은 내 표정만 봐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쑥스럽긴 했지만, 고맙다는 표시로 웃음을 지어주곤 올려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언니! 오빠랑 무슨 사이야? 아까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정말 애인 사이야?”

“무... 무슨 사이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

은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침착한 소연도 당황했는지 볼이 빨개졌다. 조금 전 할아버지가 남자친구냐고 물어봤을 때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평생을 같이할 마음이 있다고 해도 아직 정식으로 사귀자고 한 것도 아닌데 여자인 자신인 먼저 애인이라 밝히긴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어?”

“.......”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친구끼리 밥에 반찬도 올려줘?”

“네 밥에도 올려줬잖아.“

“오빠만 주면 이상하니까 나도 주는 거잖아. 아니었어?”

“크흠... 어서 먹자. 음식 식겠다.“

“딱 걸렸어. 좀 있다가 나 좀 봐. 물어볼 게 아~주 많아.”

난 음식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게 무얼 말하는지 오늘에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음식에 빠진 난 소연과 은비의 야릇한 분위기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음식을 뱃속에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커다란 밥그릇에 고봉밥을 일곱 그릇째 먹자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능력자가 일반인보다 식사량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 봐야 2~3배였지 나처럼 10배는 아니었다.

능력자가 대식가인 이유는 에너지 소모량이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많기 때문이었다. 포스를 사용하는 건 순간적으로 몇 배의 에너지를 몰아 쓰는 것과 같아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여기에 항상 기감력을 사용하며 다른 능력자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아 몇 배나 많은 음식물이 필요했다.

덕분에 엥겔지수가 높아지긴 했지만, 기감력이 무럭무럭 자라나며 더욱 강력한 능력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성대한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 2층으로 올라갔다. 머물 곳이 없는 나를 위해 소연이 은비에게 부탁해 당분간 내가 지낼 방을 마련해주었다.

“오빤 이방을 써. 이방이 앞마당도 잘 보이고, 햇볕도 잘 들어.”

은비가 권해준 방은 태어나 지금까지 머물렀던 방 중 가장 훌륭했다. 곰팡내가 찌든 지하 단칸방, 버러진 폐가, 여자 신음이 생생하게 들리는 여인숙,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천막이 내가 이제껏 거쳐 온 방이었다.

책상과 침대, 작은 탁자와 의자까지 갖춰진 아늑한 방은 난생처음이었다. 특급 호텔만큼이나 근사한 방에 들어선 난 촌놈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내일 미래정밀에 들렀다가 집에 들러 아빠 좀 보고 와야 해.”

“언니는 나랑 함께 지내면 되니까 올 때 옷만 챙겨와.“

“알았어.”

“근데 오빠 옷 너무 없더라. 달랑 입은 게 전부야. 가져온 옷은 너무 낡아서 모두 버려야겠어.”

“산에서 오랫동안 혼자 생활해서 그래. 내일 공장 갔다가 같이 백화점에 가서 지홍이 옷 사자. 시간 괜찮지?”

“나야 남아도는 게 시간이잖아. 오랜만에 백화점 구경도 하고 좋지~”

“은비야! 고맙다. 지홍이 모텔이나 호텔에서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았어. 네 덕분에 이렇게 같이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랑 언니가 남이야? 언니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언니 일이잖아.”

“맞다. 내가 괜한 소리 했네. 미안!”

소연이 팔을 벌려 은비를 꼭 끌어안았다. 형제자매가 없는 소연과 은비는 친자매이자 친구나 마찬가지로 부탁이란 말은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오빠 혼자서 그 많은 레드몬을 사냥한 게 정말이야? 아까 낮에 공장에 들어온 트럭 보고 할아버지랑 나랑 기함할 뻔 했어.”

“사실이야. 내일 정밀포스측정기로 측정해보면 알겠지만, 내 생각엔 중급에서도 꽤 높은 수치가 나올 거야.”

“헉~ 중급? 그것도 상위권?“

“응! 확실해.”

“오~ 지홍 오빠 다시 봐야겠는데?”

서울에 올라오며 챙겨온 옷은 은비 말처럼 모두 버려야 할 쓰레기였다. 오늘 35억 원이란 거금을 손에 쥐었지만, 어제까진 무일푼이었다.

보조사냥꾼으로 받은 월급은 식대와 숙박비에 사용하면 남는 게 없었다. 최대한 식비를 줄이고자 산속을 뛰어다녔지만, 매일 누린내 나는 산짐승만 먹기엔 이미 맛난 국밥과 짜장면의 맛을 혀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서울 온다고 큰 맘 먹고 산 옷으로 질긴 청바지와 면 티셔츠, 얇은 가을용 점퍼로 시장에서 산 옷이라 질과 디자인 어느 것 하나 빼어날 게 없었다.

한겨울에 홀딱 벗고 뛰어다녀도 추운 줄 몰랐고, 보조사냥꾼들도 옷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 시장에서 산 작업복 바지와 점퍼면 충분했다.

옆방에서 들리는 소연과 은비의 말소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회는 산속과 달라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서울은 강릉과는 차원이 달라 내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겉모습에 치중하는 것이 허례허식(虛禮虛飾)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이치였다.

다음 날 다시 거하게 아침을 먹고 할아버지를 따라 미래정밀 산하 미래 레드몬으로 출근했다.

오늘은 정밀포스측정기로 몸 상태를 검사하는 날로 무기와 방어구는 정밀측정 후 고르기로 했다.

사실 수치로 강함을 표시하는 건 매우 위험하고 조악한 발상이었다. 전투는 복합적인 요소가 얽히고설킨 것으로 특정 수치가 높고 낮음으로 상대에게 이기고 지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펙에 집착해 순위를 매기길 좋아했다. 물론 4세대 전차와 1세대 전차처럼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둘이 싸웠을 때 4세대 전차가 100%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고 1세대 전차가 이길 확률도 1%는 있었다.

미래 레드몬은 능력자용 무기와 방어구를 생산하는 업체라 그런지 국내에 많지 않은 정밀포스측정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정밀포스측정기는 못을 다 벗고 누워서 검사받는 줄 알았는데, 최첨단장비가 다르긴 다른지 옷을 입은 채 3m의 짧은 원통형 복도를 걸어서 지나자 검사가 모두 끝났다.

1989년 2월 1일 세계포스협회에서 능력자 기준표를 발표했다. 1985년 정밀포스측정기가 개발된 시점부터 3년간 미국과 유럽 능력자를 대상으로 자료를 모은 세계포스협회는 피지컬리스트와 멘탈리스를 따로 분리해 능력자 기준표를 만들었다.

<피지컬리스트 능력자 기준표>

힘       민        체       총합         특이사항

일반인    7        5         8       20     20대 건장한 남성기준

최하급   50이하   50이하   50이하    -

하  급   50이상   50이상   50이상  200이상

중  급  100이상  100이상  100이상  400이상

상  급  200이상  200이상  200이상  800이상

<멘탈리스트 능력자 기준표>

일반인 : 멘탈포스 평균 10

최하급 : 멘탈포스 30이상~100이하

하  급 : 멘탈스스 100이상

중  급 : 멘탈포스 500이상

상  급 : 멘탈포스 1,000이상

1990년 11월 13일 검사 결과

민소연 : 힘-22 민첩-22 체력-28 총합-72 멘탈포스-325

최은비 : 힘-19 민첩-19 체력-25 총합-63 멘탈포스-276

박지홍 : 힘-285 민첩-300 체력-351 총합-936 멘탈포스-595

“헉!”

“지홍아! 축하해!”

“고마워. 근데 이게 축하받을 일이야?”

“상급 능력자에 최초의 듀얼 리스트인데 당연히 축하받아야지.”

“대단하군. 중급 능력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상급 능력자라니 생각도 못 했었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난 멘탈리스인데 멘탈포스가 고작 315고, 누군 상급 피지컬리스트에 듀얼 리스트라고 멘탈포스가 595나 되잖아. 이건 명백한 반칙이자 사기야.”

“.......”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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