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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7화 (17/505)

00017  독심술(讀心術)   =========================================================================

17.

우린 서로 사귀자고 말한 적도 없었고, 미래를 약속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호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이제 떨어져 지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아직 손만 만지작거리고 눈만 마주쳐도 볼이 빨개지는 풋풋한 사이지만, 조만간 소연의 입술을 훔치고 밤을 함께 보내는 사이로 발전할 날이 머지않은 상태였다.

그런 예쁜 사랑을 위험한 북쪽에 혼자 보낼 순 없었다. 마음 같아선 말리고 싶었지만, 신의를 지키려는 소연을 막을 수도 없었다.

난 2~3년 보조사냥꾼으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은 후 나만의 사냥팀을 조직할 생각이었다.

북한에서 1년 정도 같이 지낸 후 그곳에 정착해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특별히 남쪽에 두고 온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붙이고 살 동네도 없었다.

소연과 함께하는 곳이 앞으로 내 고향이자 집이었다.

“이 많은 걸 혼자 다 잡은 거야?”

“응!“

“엄청나네. 너 혼자 사냥해도 되겠다. 공대 결성할 필요도 없겠는데.”

“평생 최하급과 하급 레드몬만 잡을 순 없잖아.“

“여기 중급 레드스톤도 있잖아?”

중급 레드스톤은 레드보어 암놈을 잡고 얻은 것이었다. 레드디어를 잡으러 갔다가 세끼 두 마리와 함께 돌아다니는 레드보어와 마주쳤다.

다행히 바람이 불어오는 상태라 내가 먼저 놈을 발견했고, 작은 단도를 던져 새끼를 먼저 처리한 다음 어미인 놈을 사냥했다.

길이 4.5m, 몸무게 450kg의 중급 레드보어는 새끼를 잃은 슬픔에 광란에 빠져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미쳐 날뛰는 레드보어를 잡는 건 아주 간단했다. 놈은 새끼의 죽음에 무작정 돌격만 감행했고, 난 슬쩍슬쩍 피하며 놈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강력한 레드몬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에 불과해 10번쯤 맨땅에 헤딩하자 충격과 피로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놈이 힘을 잃고 바위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사이 뒷다리 심줄을 정글도로 잘라낸 후 엉금엉금 기는 놈의 이마에 칼을 쑤셔 박았다.

그렇게 얻은 중급 레드스톤은 크기가 8cm에 에너지양은 1,675몬으로 가격은 1억 6,750만 원이었다.

“운이 좋았어.”

“운이 좋으면 중급 레드몬도 혼자서 잡을 수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됐었네. 호호호~”

“흐~“

한국 스톤 거래소는 문스톤과 레드스톤을 사고파는 거래소로 1983년 5월 10일 뉴욕에 처음 문을 연후 서울엔 1987년 1월 5일 개장해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며 급성장 중이었다.

가격과 희소성이 높은 문스톤은 경매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고, 레드스톤은 증권거래소처럼 시세에 따라 즉시 거래가 이루어졌다.

스톤 거래소에서 소연의 이름으로 최하급과 하급 레드스톤 83개를 팔아 수수료와 세금을 떼고 현금 35억 원을 챙겼다.

양심도 없는 것들이 판매 수수료 1%와 특별세 15%를 그 자리에서 떼어갔지만, 거지나 다름없던 소년이 왕자가 되어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 돈만 해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10톤 화물트럭에 실어 보낸 가죽과 본스틸을 더하면 돈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수수료하고 세금이 엄청 비싸지?”

“생각보다 많네.“

레드몬에 붙은 특별세는 15%로 미국과 유럽보다 5%나 많았다. 레드몬에 붙은 세금은 국가별로 차이가 커 적게는 5%에서 많게는 25%까지 다양했다.

선진국은 8~10% 사이가 보편적이었고, 공산국가와 독재국가, 못 사는 나라일수록 레드몬에 붙는 세금이 많았다.

정부는 특별세를 이용해 도로와 기간산업을 보호하고, 낙후한 지역을 개발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세금이 눈먼 돈이라는 건 세 살배기 아기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최은비?”

“응! 아기 때부터 가족처럼 지낸 진짜 친동생 같은 아이야. 예쁘고 성격도 쾌활하고 대인관계도 좋아.”

“포스전문학교 1년 후배라며?”

“그것도 맞아. 내가 잠능자로 발탁되고 1년 후에 은비도 잠능자로 선발돼 서울 포스전문학교에 같이 다녔어.”

소연의 추천으로 레드몬 사체도 정리하고 내게 맞는 무기도 살 겸 구로동에 위치한 미래정밀로 가고 있었다.

“학교는 왜 그만뒀어?“

“말이 좋아 포스전문학교지 사실은 사교장만도 못해. 배울 것도 없고. 그래서 그만뒀어.”

“소문처럼 그렇게 심해?”

“내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야.”

포스전문학교는 12세부터 19세까지 8학년이 정규 코스였다. 11세(만10세) 이후에 잠능자로 선발된 아이들도 간혹 있지만, 3학년까진 일반 학교수업과 같아 학년에 맞게 입학하면 됐다.

전문 교육은 4학년 때부터 시작하는데, 이때도 전공과목은 포스와 레드몬에 대한 이론 수업이 전부였다.

잠능자는 보통 16세를 전후해 멘탈리스트와 피지컬시스트로 갈렸다. 이때부터 자신에게 맞는 전공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하지만 교수진부터 시설까지 포스전문학교란 취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 능력 향상엔 별다른 도움 안 되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비능력자들 때문이었다. 설립 목적과 달리 비능력자의 수가 학생 수의 절반을 차지했고, 이들이 모두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집안 출신이라 교과목과 시설이 이들 위주로 바뀌게 됐다.

결국, 한해 수백억 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 부어 돈과 권력을 가진 부자집 공주님과 도련님을 무료로 가르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부잣집 남자애들은 조숙한지 13~14살이면 여자애들을 찝쩍거리기 시작해. 15살 때부턴 더 심해지고.”

“그래서 관둔 거야?”

“그것도 있지만, 배울 게 없었어. 말 타고, 발레 배우고, 사교댄스 추자고 포스전문학교 들어간 게 아니니까. 원래 꿈은 대학에 들어가 심리학을 전공하는 거였어.”

“너무 실망하지 마. 지금은 힘들지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꼭 도와줄게.“

“정말?”

“응!“

“약속한 거다. 뒤에 가서 딴말하기 없기야.”

“알았어.“

미래정밀은 자동차, 정밀기계, 선박, 비행기 등 정밀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능력자 전용 무기와 방어구도 생산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회사로 내수보단 수출을 위주로 하는 알찬 회사였다.

“기술력은 국내외를 통틀어 세손가락 안에 드는 회산데, 수요가 없어서 적자야.”

“졸업생까지 합치면 1,600명이 넘는데 적자라고?”

“우리나라 사람들 외제 좋아하는 거 몰라? 아무리 비싸게 팔아먹어도 미국, 일본 거면 환장하잖아. 일반인만 그런 게 아니라 능력자도 마찬가지야. 성능이 떨어지고 가격이 두 배로 비싸도 made in USA, made in Japan만 찍히면 모두 그걸 사.“

“같은 물건을 비싸게 팔아도 사간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야. 이젠 하도 질려서 그러려니 해.”

미래정밀 정문에 택시가 멈춰 섰다. 레드몬 사체가 실린 화물차는 강릉에서 곧바로 미래정밀로 보내고 우리 스톤 거래소에 들렀다가 오후 5시가 돼서야 도착하게 됐다.

“소연 언니!“

“은비야!”

소연과 은비는 친자매처럼 서로 얼싸안고 오랫동안 헤어진 회포를 방방 뛰는 것으로 풀었다.

은비는 소연과 같은 170cm의 키에 호수처럼 깨끗하고 맑은 눈과 한 성격 할 것 같은 짙은 눈썹, 도도함이 살짝 보이는 오뚝한 코, 귀여운 작은 입술 그리고 늘씬한 다리와 개미허리, 작고 예쁜 엉덩이 등 당장 연예계에 입문해도 인기를 누릴 만큼 완벽한 몸매를 갖춘 소녀였다.

“언니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반가워요. 지홍 오빠!”

“아... 네! 반갑습니다.“

“언니가 말대로 숫기가 없네요. 남자가 좀 터프해야 멋있는데.”

“;;;“

은비를 따라 들어간 곳은 능력자용 무기와 보호구가 전시된 공간으로 본스틸을 티타늄, 텅스텐 등에 섞어 만든 제품들이 즐비했다.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해 평범한 브로드 소드부터 고대 로마에서 사용한 글라디우스, 폭넓고 완만히 휘어진 팔치온, 기병대가 흔히 사용하던 군도 사브래, 칼날이 파도치는 모양의 프렘버그, 톱니 같은 날이 선 소드 브레이커 등 다양한 칼이 전시돼 있었다.

이외에도 메이스와 우리나라 쇠 도리깨와 비슷한 타격무기 플레일, 망치를 닮은 워 해머, 한날 도끼와 양날 도끼까지 온갖 종류의 무기가 갖춰져 있었다.

“여긴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너무 살벌해. 워 해머 크기 좀 봐! 맞으면 그 자리에서 죽겠다.”

“나도 피지컬리스트가 됐어야 이런 걸 들고 피 튀기게 싸우는 건데. 왜 하필 힘도 없는 멘탈리스트가 된 거냐고. 짜증 나 죽겠어.”

“나이도 들었는데 이제 성격 좀 죽이세요.“

“흐~ 사람이 쉽게 변하겠어. 변하는 순간 죽는 거야.”

방어구는 가슴만 가리는 흉갑과 손을 보호하는 건틀렛, 팔 보호용 방어기구 뱀브레스, 얼굴까지 몽땅 가리는 투구 등 방어구도 다양했다.

또한, 원형의 작은 라운드 실드와 오각형의 카이트 실드, 전신을 모두 방어하는 타워 실드까지 중세시대의 무기를 모두 모아 놓은 박물관 같았다.

“오빠!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처음 보는 것들이라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빠! 언니 친구라며. 그럼 나보다 한 살 많잖아. 편하게 말해. 그래야 내가 반말해도 이상하지 않지. 안 그래?”

“네에? 아...“

“내가 말했잖아. 예쁘고, 명랑하고, 솔직하고, 쾌활하다고.”

최은비의 모습은 쾌활한 게 아니라 거침이 없는 거였다. 나처럼 숫기가 없는 사람은 주눅이 들 만큼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예쁘기만 했지 밉지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도 싫지 않았고,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초콜릿 향기도 너무 좋았다.

「이래서 사람은 인물이 좋아야 하는 거야. 뭘 해도 싫지가 않잖아.」

“할아버지가 같이 저녁 먹자고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셔. 오늘은 여기까지만 구경하고 내일 다시 생각해서 오자.”

“그래.“

은비를 따라 전시실을 빠져나가 본관 건물 5층 회장실로 올라갔다.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을 기른 평범한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소연아! 오랜만이다.”

“안녕하셨어요? 어디 편찮은 데는 없으시죠?”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강릉에 있는데 자주 오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래도 가끔 시간 내서 은비랑 맛난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그래라. 애도 아니고 너 없으면 통 밖에 나가질 않으려 해서 큰일이다.”

“네! 그럴게요.”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로 수정했습니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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