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16화 (16/505)

00016  독심술(讀心術)   =========================================================================

16. 변화(變化)

1990년 11월 3일

노XX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공대장 63명이 모두 청와대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30개 공대가 북한으로 사냥터를 옮기는 게 결정됐다. 북으로 떠나는  공대는 내년 3월 1일까지 정부에서 지정한 공대에 남쪽 사냥터를 넘기고 4월 30일까지 이주를 마쳐야 했다.

정부는 30개 공대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잠능자 460명을 조기 졸업시켜 남은 33개 공대에 고루 배치해 이들이 빠진 자리를 대신한다는 계획이었다.

1987년 4월 25일 통일을 이룩한 정부는 이듬해부터 북한 지역에 9개 거점도시와 50개 전진기지 그리고 2곳의 군대 주둔지를 마련하고 도로망과 전력시설을 복구했다.

9개 거점도시는 원산, 함흥, 김책, 청진으로 이어지는 동해 라인과 해주, 남포, 신의주, 평양의 서해 라인으로 나뉘어졌다.

나머지 한 곳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개성으로 정부가 직접 관할했고, 국경선 근처인 만포와 혜산엔 군대가 주둔했다.

50개 전진기지는 9개 거점 도시에 딸린 레드몬 사냥기지로 2,000~3,000명 규모의 주민이 기지를 지키고 있었다.

이 중 8개 거점도시는 통일 후 재벌 기업에 골고루 나누어졌고, 개발과 관리는 물론 치안과 도시방어까지 모든 권한이 이들에게 넘어갔다.

또한, 거점도시에 딸린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량강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강원도, 평양직할시, 남포 특별시까지 모두 재벌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이는 도시뿐만 아니라 북한지역 전체를 기업에 나눠준 꼴로 토지를 정부 소유로 한다고 해도 경제권이 모두 넘어가면 땅을 넘긴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고대하던 통일을 이룩하자 권력의 실세들과 10대 재벌 총수들이 문지방이 닿도록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이들은 1년간 20번이 넘는 전체 회의를 통해 북한의 이권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극비에 부쳐진 채 밀실 모의에 가담한 일부 정치인과 재벌 총수들만이 알고 있었다.

기업들은 8개 거점도시에 레드몬 관련 산업과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이전해 수익을 증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를 개발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도시를 이양 받은 다음 해부터 도시정비와 함께 레드몬 사체가공 공장과 섬유, 신발, 인쇄, 통조림 가공, 장난감, 전자제품 조립 등 경공업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정부는 북한에서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세금을 10년간 면제했고, 그것도 모자라 북한에 진출한 기업에 초저금리로 은행대출을 알선하는 등 엄청난 혜택을 베풀었다.

8개 거점도시에 진출한 기업들의 세금을 줄여 북한지역의 빠른 발전을 꾀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였고, 속내는 시커멓다 못해 썩은 악취가 진동했다.

10대 재벌이 은행에서 무이자에 가깝게 대출해준 돈은 무려 5조 원이었다. 하지만 3년간 8대 거점 도시에 투자한 돈은 수백억 원에 불과했다.

재벌들은 북한투자를 목적으로 빌린 돈을 땅과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벌었고, 이렇게 번 돈을 흥청망청 써대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다.

처음부터 썩은 정치인들과 짜고 친 고스톱으로 이들에게 특혜를 베푼 정치인들은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거점도시의 지분까지 챙기며 든든한 노후를 준비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손에 쥔 재벌들은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도시를 정비했다.

옥수수 가루와 밀가루, 생필품 등을 조금씩 나눠주며 공장과 부두를 짓고, 도로와 방벽을 복구하는 등 땅 짚고 헤엄치기로 북한 땅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대유 그룹이 할당받은 도시는 원산과 강원 북도였다. 원산은 인구가 무려 30만 명으로 남포와 함께 가장 많은 북한 주민이 상주하고 있었다.

동해 라인의 출발점인 원산은 강릉과 속초, 부산에서 들어온 물건을 함흥과 김책, 청진으로 운송하고, 이곳에서 생산한 각종 물품을 중계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어 앞으로 북한 지역에서 가장 발달할 도시로 점쳐지고 있었다.

이중 신선공대가 할당받은 전진기지는 회양으로 원산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태백산맥 줄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타원형으로 지어진 전진기지는 높이 5m의 낮은 방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인구는 3,500명으로 남자가 2,100명, 여자가 1,400명이었다.

전진기기를 지키는 경비대 규모는 500명 정도였고, 나머지 3,000명은 이들의 가족과 신선 공대에 노동력을 제공할 노동자였다.

이미 기본적인 전력과 수도, 거주지와 창고, 경비대가 주둔할 막사까지 모두 지어진 상태라 몸만 들어가면 바로 레드몬을 사냥할 수 있었다.

대다수 전진기지는 완성한지 1~2년 정도로 식량의 자급률이 매우 낮아 식량 대부분을 거점기지에서 공급받았다.

그러나 도시에 공급하는 식량도 원활하지 않아 기지 주변을 불태운 후 화전농법(火田農法)을 사용해 옥수수와 감자 등을 재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배고픔에 시달리는 주민이 절반이 넘는 실정이었다. 산과 들엔 먹을 것이 천지였고, 통통 살이 오른 동물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녀도 잡을 수가 없었다.

레드문은 지구를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배고프고 굶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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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10일 신선빌딩 4층 회의실에서 신선 공대 공대원 전체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달 말일까지 정부에 명단을 제출해야 하니 빠지고 싶은 사람은 지금 말하도록.”

“10년간 세금을 면제해주는 게 확실한 겁니까?”

“기업과 똑같은 기준으로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도시를 점유한 기업들이 물가를 비싸게 책정해 사실상 면제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남한에 남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가요?”

“정부에선 그런일은 없을 거라 말하지만, 분명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당장 받아주는 사냥팀도 없을 것이고,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될 확률도 높다. 그리고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대유 그룹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이 바닥 인심이 어떤지 모두 잘 알고 있잖아.”

“하아~“

“그럼 결론이 난 거 아닙니까? 얘기할 필요도 없네요.”

“그래도 요식행위는 해야지 어쩌겠나? 정부에서 하라고 하는데...”

“강릉 사냥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사냥터는 바로 넘겨주고 2월 말일까지 원산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회장님 지시 사항이라 시간을 늦출 수가 없어.”

“그럼 2월 말까지는 휴가네요?“

“그래. 마음이 복잡하겠지만, 푹 쉬고 2월 27일 오전 10시에 다시 모이자.”

조은영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신선 공대 원산 이전 회의는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정부의 강압과 대유 그룹의 서슬 퍼런 눈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자는 신선 공대엔 없었다.

능력자가 사람들이 꿈꾸는 신인류라 해도 돈과 권력 앞엔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은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군인은 사회만 나오면 내 세상이 될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능력자도 이와 같아 등급에 맞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광속으로 하늘을 날고 거대한 땅덩어리도 들어 올리는 외계인 슈퍼맨이라면 무서울 게 없겠지만, 사람에 지나지 않는 능력자는 혼자선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다음 날 보조사냥꾼들도 4층 강당에 모여 원산으로 올라가는 일에 대해 노일수 팀장에게 설명을 들었다.

“2월 27일 우린 강릉을 떠나 원산으로 올라간다. 얼마나 있을지, 언제 다시 내려올지 알 수 없다. 위험도 강릉보다 배는 높을 것이고, 사상자도 훨씬 많이 생길 것이다.”

“무조건 원산으로 가야 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다. 빠지길 원하는 사람은 이달 말까지 부팀장인 김응수와 오재욱에게 말하면 된다.”

“강릉과 봉급은 동일한 겁니까?”

“봉급은 30~50%까지 차등으로 인상할 예정이다. 궁금한 건 부팀장에게 개인적으로 질문하기 바란다. 이상!”

노일수 팀장의 간단한 설명으로 신선 공대 보조사냥꾼 원산 이전 회의는 단 10분 만에 끝이 났다.

신입이 19명이나 돼 회의가 길어지면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것을 염려한 노일수는 돈이라는 먹잇감을 던져 놓고 재빨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100만 원에서 30%만 올라도 130만 원으로 대졸 성인 남성 한 달 치 봉급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노일수가 떠난 자리엔 새로운 곳에 대한 위험보단 왕창 오른 봉급에 대한 얘기만 무성했다.

「김갑수도 그렇지만, 노일수도 돈으로 사람 부리는 능력은 알아줘야겠어. 둘 다 상대의 약점을 잘 파고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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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이 기회에 포스 협회에 등록하고 능력자로 본격적으로 나설 거야? 아니면 계속 보조사냥꾼으로 경험을 쌓을 거야?“

“글쎄?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 누구의 눈치도 볼 거 없어. 네 마음이 가는대로 하면 돼.”

소연은 항상 내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힘을 가졌지만, 여전히 소심하고, 주눅이 든 채 살고 있었다.

이런 행동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20년을 바닥으로 산 사람이 힘을 가진다고 하루아침에 왕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힘을 맹신하다 폭력성만 높아져 잘 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소연은 그걸 걱정하며 내가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었다.

“북한은 이곳보다 훨씬 위험하겠지?“

“소문으론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호랑이, 표범, 늑대, 곰 등 위험한 동물이 많은가 봐. 최상급 포식자가 많은 만큼 남쪽보단 훨씬 위험하겠지.”

“그래?“

“호랑이와 표범, 곰 등은 중급 레드몬부터 시작하잖아. 최하급과 하급 레드몬 위주인 강릉보단 당연히 위험하지.”

“괜찮겠어?“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응!“

“히~ 그렇게 걱정되면 신선 공대에 들어와 날 지켜주면 되잖아.”

“신선 공대엔 들어가고 싶지 않아.“

조금은 차갑고 매몰찬 대답에 소연이 바짝 고개를 내밀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왜?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

“오해하지 마. 특별히 누가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다만 사람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같이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보조사냥꾼으로 있으면서 생각한 게 많았었나 보다!“

“그런 것도 있고, 살아온 삶도 있고. 난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도구로 사용하다 버려지는 건 공평하지 못하니까.”

“다 오빠 잘못이야.“

“김갑수 공대장님만 그런 건 아니잖아. 국내 레드몬 사냥팀 모두와 관리를 소홀히 한 정부의 잘못이지.”

소연의 사촌오빠인 김갑수를 탓할 마음은 없었다. 그도 그런 시스템 안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적응했다는 건 분명 잘못이지만, 그런 시스템을 만든 정부와 위정자의 잘못이 컸다.

규정과 법률은 만드는 자의 생각에 따라 국민을 죽이는 칼이 되기도 하고 국민을 살리는 방패가 되기도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보조사냥꾼으로 같이 가서 딱 1년만 있다가 나랑 같이 사냥팀 만들어 나오는 거야. 북쪽엔 남아도는 전진기지도 많으니까 공대만 구성하면 자리를 잡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지금은 안 돼?“

“지금 당장 몸을 뺄 수는 없어. 갑수 오빠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와 아빠에겐 참 잘했거든. 나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오빠 자리 잡는 1년 동안은 같이 있어 줘야 해.”

“알았어. 그렇게 하자.”

“히~ 고마워!“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를 수정했습니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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