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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1화 (11/505)

00011  보조사냥꾼  =========================================================================

11.

최두식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2년 넘게 신선 공대와 같이 한 만큼 수색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최두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최두식은 지금까지 22번이나 수색조에 뽑혔다. 2년간 22번이나 수색조에 뽑혔다는 건 찍혀도 엄청나게 찍혔다는 뜻이고, 22번 동안 살아남은 건 억~세게 운이 좋은 것이었다.

"윗분들 뒤에서 따라가는 것도 알고 있지?“

“.......”

“더 길게 말하지 않을 테니 조심해서 다녀와. 갔다 오면 탁주는 내가 쏘마.“

“알겠습니다.”

한 손에 정글도 쥐고 다른 손엔 섬광 조명탄을 쥔 채 우린 말없이 손가락이 가리킨 산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간혹 최두식이 무전기에 작은 기침 소리를 내어 우리가 무사하다는 것만 김응수에게 알려줄 뿐 한 마디 대화조차 없이 우린 걷고 또 걸었다.

섬광 조명탄은 무전기와 함께 레드몬의 습격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수단으로 심지를 잡아당기면 강력한 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의 안전과는 무관한 것으로 뒤따라오는 능력자들의 안전을 고려한 아이템이었다.

수색조가 가진 물건 중에 레드몬을 만났을 때 삶을 도모할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 들어서자 한낮임에도 초저녁처럼 어둠이 찾아왔다. 정글도를 휘둘러 길을 만들며 산을 올랐다.

내가 길을 만드는 동안 최두식은 나침반을 들고 방향을 수시로 점검했다. 굴곡이 많고 하늘이 잘 보이는 않는 어두운 숲에선 언제든 방향을 잃을 수 있어 수시로 방향을 확인해야 했다.

김갑수 공대장은 사냥터가 다른 공대에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 이동 중엔 두꺼운 천막으로 트럭을 가렸고, 수색조에겐 지도조차 주지 않았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는 노력이 가상하긴 했지만, 1년만 공대에 몸담아도 대충 위치를 알 수 있어 인심만 잃는 짓이지 결코 공대에 도움이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숲은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고작 산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야영할 경우 예정한 시간까지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린 챙겨온 주먹밥과 비스킷, 초코바 등으로 허기를 달래며 계속 산을 넘어야 했다.

높은 산을 오르는 건 아니지만, 길조차 없는 악산을 쉬지도 않고 넘어야 해 힘이 두 배로 들었다.

3시간쯤 지나자 23번째 수색에 나선 최두식도 힘이 드는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일부러 최두식에 맞춰 숨을 헐떡거리며 걸었다.

체력을 타고났다고 해도 몇 년째 산을 탄 베테랑보다 산을 잘 타면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귀찮지만 힘든 척 보조를 맞춰줘야 오해 살 일이 적었다.

사람의 왕래가 끊긴 숲엔 생지황, 백복령, 천문동, 구기자, 삼지구엽초, 영지버섯, 상황버섯을 비롯해 동충하초와 석청, 목청까지 최고의 명약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길을 내며 약초와 버섯이 보이면 잽싸게 뽑아 얼른 가방에 쑤셔 넣거나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걸었다.

몰래 먹는 과자가 더 맛있듯 몰래 먹는 약초가 더 썼다. 쓴 만큼 몸에 좋다고 억지로 나 자신을 위로하며 약초를 씹어 삼켰다.

우린 어두워 앞도 보이지 않는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적당한 자리에 방수포를 깔고 침낭에 들어가 딱딱한 가래떡을 씹었다.

만든 지 3~4일은 됐는지 가래떡이 돌덩이처럼 딱딱했다. 이게 오늘의 저녁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선 딱딱해도 무조건 씹어 삼켜야 했다.

열심히 가래떡을 씹고 있자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23번째라고 해도 무리한 산행은 일반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최두식이 확실히 잠들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총알처럼 날아가 낮에 보아둔 석청을 채취해 왔다.

꿀벌이 만들어 자연 숙성시킨 꿀은 맛과 영양성분 모두 최고의 식품으로 통째로 뜯어온 석청에는 꿀(honey) 말고도 로열젤리(Royal Jelly와 프로폴리스(Propolis) 함께 들어 있었다.

로열젤리는 꿀벌 유충의 영양 섭취에 사용되는 꿀벌의 분비물로 벌꿀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 아미노산 등이 포함돼 있었다.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각종 식물로부터 채취한 식물 수지에 타액과 효소를 섞어 만든 천연물질로 면역력을 높여주고 통증을 완화해 주는 천연항생제였다.

커다란 비늘 봉지에 가득 담긴 석청을 몰래 따온 버섯, 열매, 약초와 함께 맛나게 씹어 먹었다. 5년간 독초부터 독사까지 가리지 않고 먹자 웬만한 독기는 몸에 기별도 안 갔다.

더구나 능력이 향상될수록 각종 저항력도 덩달아 높아져 벌꿀과 로열젤리에 함유된 독쯤은 따끔거리지도 않았다.

벌 역시 레드문의 영향으로 몸집이 두 배로 커지며 독성도 함께 증가했다. 이로 인해 벌꿀과 로열젤리에도 레드문 이전보다 독소가 더욱 많이 함유돼 잘못 먹을 경우 중독증상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후 기감력을 수련하며 밤을 지새웠다. 기감력을 터득한 후 감각이 예민해져 잠이 들어도 위험이 닥치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야외에서 무방비 상태로 잠이 든다는 건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잠든 상태에서 기감이 가능하다 해도 거리와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최악의 경우 ‘악~’ 소리도 없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최두식은 고양이처럼 목숨이 아홉 개거나 배포가 하늘에 닿아 숙면을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목숨이 하나에 배포가 쥐꼬리만 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새벽 4시에 침낭을 개고 일어나 부스럭거리자 그 소리에 잠이 깬 최두식도 일어나 짐을 정리했다.

짐을 정리하자마자 다시 목표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아침을 비스킷과 물로 간단히 때우며 열심을 발을 놀리자 첫 번째 목표지점인 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칙~ 정상!”

“칙~ 수신!”

짧은 대화로 통신이 끝나자 능선을 타고 제2지점을 향해 걸었다. 숲을 빠져나오자 이때부턴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날듯이 달려 2시간 만에 제2목표지점에 당도한 우린 ‘도착’을 외치고 빠르게 산에서 내려와 야영지로 돌아왔다.

역사에 남을 23번째 수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지만, 우릴 반겨줄 사람은 보초를 서고 있는 보조사냥꾼 세 명이 전부였다.

공대원과 보조사냥꾼들은 도착이란 통신을 받자마자 레드라쿤독을 사냥하기 위해 야영지를 떠났다.

최두식과 난  천막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수색조의 유일한 혜택은 살아서 돌아오면 천막을 통째로 차지한 채 조용히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자 사냥을 마친 공대원들이 돌아왔다. 이번 사냥감인 레드라쿤독은 너구리가 변이한 하급 레드몬으로 성체의 경우 두동장 1.8m, 꼬리 길이 0.5m, 무게 70kg으로 하급 레드몬 중에선 가장 약한 개체 중 하나였다.

너구리는 북반구에 있는 갯과 중 가장 원시적인 동물로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처럼 인간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애교까지 부리는 동물이었다.

주로 들쥐와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개구리나 야생조류의 알,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도 잘 먹는 잡식성 동물로 임신 기간은 62일이었고, 한 번에 8∼10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레드라쿤독 역시 레드문으로 영향으로 임신 기간부터 생육 속도, 새끼 숫자까지 모두 두 배로 증가해 빠르게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수고했어.”

“.......”

“너무 서운해하지마라. 나라고 계속 너를 보내고 싶어서 보내겠냐? 1팀에서 계속 지랄을 떠니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 거야. 네가 이해해라.”

“.......”

“너도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최두식은 1팀을 책임진 오재욱 부팀장과 팀원들에게 단단히 찍혀 있었다. 최두식이 신선 공대에 들어오고 얼마 후 1팀과 싸움이 벌어졌고, 이때 주먹다짐 속에 사랑과 우정이 아닌 증오가 싹텄다.

사실 김응수가 최두식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속내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남들처럼 상납도 하지 않는 최두식을 김응수가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23번째 수색을 무사히 마치며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했지만, 언제까지 운이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최두식이 살아남는 방법은 뇌물을 주고 김응수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신선 공대를 떠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선 공대를 떠나 다른 공대에 들어간다고 해도 안전을 보장받긴 어려웠다. 이 동네도 뒤끝이 강해 어디를 가든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결국, 최두식이 살아남기 위해선 끝없이 운이 따라주든 아니면 영원히 이 바닥을 떠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친 부모와 마누라, 아이 넷을 거느린 일자무식 최두식이 이곳을 떠나 한 달에 100만 원을 벌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럽고 치사해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최두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바람이었다.

사냥이 끝나자 이번에도 역시 5일간의 휴식을 레드라쿤독 사냥에 할애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레드스톤이 있는 놈들만 유인해 골라잡으며 하급 레드스톤 아홉 개와 가죽 등 많은 전리품을 모을 수 있었다.

레드라쿤독은 레드스톤 에너지양과 방어력을 보면 분명 하급 레드몬이 맞지만, 빈약한 공격력을 생각하면 최하급 레드몬으로 분류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하급 레드몬 중에는 레드라쿤독처럼 공격력이 형편없는 놈들이 많았다. 레드오터, 레드씨오터, 레드밤비, 레드라쿤 등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몬스터들이었다.

그렇다고 하급 레드몬이 모두 이들과 같진 않았다. 포식자인 레드삵, 레드링스, 레드독, 레드벳저 등은 난폭하고 공격성이 강해 7~8명 이상의 하급 능력자가 모여야 사냥이 가능했다.

그래도 하급 레드몬까진 공격스킬이 거의 없어 사냥이 어렵지는 않았다. 간혹 특이한 스킬을 가진 레드몬도 있었지만, 공격스킬보단 방어스킬과 도망스킬 위주라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큰 위협은 없었다.

하지만 중급 레드몬부턴 상황이 달라졌다. 하급 레드몬과는 방어력부터 질적으로 달라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 이상의 파괴력이 있어야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스피드 역시 훨씬 뛰어나 시속 120~130km는 기본이었고, 공격력은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때려 부술 만큼 강력했다.

또한, 치명적인 독과 다양한 상태 이상 스킬을 갖추고 있어 어설픈 공대는 도전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중급 레드몬은 레드보어처럼 타고난 전투력을 바탕으로 중급 레드몬으로 출발하는 레드몬도 있지만, 최하급이나 하급에서 단계를 밟아 올라온 레드몬도 있었다.

단계를 밟아 올라온다는 건 그만큼 노회하고 영악하다는 것으로 일반적인 놈들보다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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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은 민소연과 함께 신선 공대 2대 미녀인 이서인은 언제 봐도 선한 모습에 웃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예쁜 얼굴과 착한 몸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지만, 대유 그룹 막내아들 문정수의 첩이란 소문이 파다해 마음을 접어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서인이 신선 공대에 들어온 건 문정수 때문이었다. 문정수와 같은 서울 포스전문학교를 나온 이서인은 어린 시절 문정수의 마수에 걸려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 대전, 부산 세 곳에 있는 포스전문학교는 말이 좋아 포스전문학교지 사실은 귀족사립학교나 다름없었다.

재벌과 고위층 자녀들의 사교 모임장으로 전락한 포스전문학교는 능력자를 위한 전문 교육보단 승마와 수영, 골프, 사교댄스 등 귀족의 품위를 지키는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또한, 여성 잠능자(19세 미만의 능력자)을 꾀려는 도련님들과 남자 잠능자에게 거리낌 없이 몸을 던지는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탈선의 메카이기도 했다.

포스전문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자 이서인이 달아날 걸 걱정한 문정수는 대유 그룹에 종속된 신선 공대에 이서인을 맡겼다.

신선 공대는 김갑수 개인이 운영하는 레드몬 사냥팀이지만, 실상은 대유 그룹에서 만든 사냥팀으로 은주식과 전두수를 비롯해 공대원 절반이 대유 그룹에서 잠능자 때부터 지원한 인재들이었다.

문정수는 자신의 말에 꼼짝 못하는 김갑수에게 이서인을 맡겨놓고 3~4달에 한 번씩 강릉에 내려와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채우고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서인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도와주고 싶었지만, 친척도 아닌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성격이 착해 보조사냥꾼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밝은 미소를 보이려 애쓰는 이서인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말 못할 슬픔을 안고 살지만 그게 현재 진행형이라면 그만큼 큰 아픔은 세상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로 수정했습니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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