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보조사냥꾼 =========================================================================
10.
열이 받은 공대원들이 모두 천막으로 사라지자 부팀장 김응수가 나를 불렀다.
“심장 모아서 최대한 멀리 버리고 와. 길바닥에 버리지 말고 땅에 깊이 파묻어. 근처에 버리다 걸리면 죽을 줄 알아.”
“네.”
“빨리 갔다 와. 농땡이 부리지 말고. 할 일 태산이야.”
“알겠습니다.”
최대한 멀리 가져가 파묻고 오라고 해놓곤 빨리 오라는 김응수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싶었다.
레드래빗의 심장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1km를 걸어 내려갔다. 도로 옆 시냇가로 내려가 부서진 심장을 물에 대충 헹군 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씹었다.
아직 점심도 못 먹어서 그런지 심장이 달게 느껴졌다. 열두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후 냇물에 피를 닦고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김응수가 심장을 땅에 파묻으라고 한 건 후각이 예민한 레드몬에게 발각될 것을 염려해서였다.
간과 쓸개는 챙겨 먹으면서 심장은 왜 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배고픈 내 허기를 잠시라도 달래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땅보다 더 안전한 뱃속에 심장을 파묻고 돌아오자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땔감을 주워오고, 물을 길어 나르고, 선임들이 팽개친 장비까지 모두 치운 다음에야 차디찬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 먹을 수 있었다.
설거지까지 모두 끝내고 천막에 들어가자 그림 맞추기에 열중하는 보조사냥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속에서 ‘시팔’ ‘좆팔’이 난무했다. 판돈도 제법 커 파란 배춧잎이 왔다 갔다 했다.
신선 공대 보조사냥꾼 중 절반이 목숨 걸고 번 돈을 노름과 계집질로 탕진하고 있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만, 죽음의 공포가 클수록 사람은 또 다른 욕망이 강해진다고 했다. 어쩌면 섹스와 노름, 술이 이들의 불안을 달래줄 유일한 친구일지도 몰랐다.
작은 책상이 놓인 구석진 자리에 팀장 노일수와 부팀장 김응수, 오재욱이 탁주를 한잔 하며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팀장님! 이번 사냥은 계속 이 자리에서 죽치고 하는 겁니까?"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그렇겠지.“
"신문에서 보니 북한에 레드몬이 많다고 하던데... 혹시 신선 공대도 북으로 올라가는 거 아닙니까?"
“그 일로 공대장님이 서울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거로 봐선 그럴 가능성도 있지.”
"위험하지 않을까요?"
"모르지. 어차피 우리가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따라가야지 어쩌겠나."
노일수 팀장의 목소리가 자조적으로 들렸다. 노일수가 신선 공대에 몸담은 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지금은 팀장 자리를 꿰차고 뒷돈도 챙기며 강릉에선 나름 성공한 보조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처음엔 사냥을 나설 때마다 3~4명은 기본으로 죽어 나갔다.
사냥터를 확인하고 체계를 잡는데 무려 3년이 걸렸고, 그동안 죽어간 보조사냥꾼만 300명이 넘었다.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기며 여기까지 왔는데, 북한으로 올라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아 생사를 기약할 수 없었다.
1956년생인 노일수 팀장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싸움꾼으로 축구부터 농구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중학교 코치들이 운동을 권할 만큼 자질이 뛰어났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꿈을 접어야 했다.
밑으로 동생만 8명이었고, 병든 아버지까지 있어 15살부터 중국집 배달부, 구두닦이, 철거용역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어렵게 이 자리까지 왔지만, 집안 사정은 여전히 어려웠다. 아버지는 20년째 병석에 누워계시고, 결혼 못 한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거기다 한창 크고 있는 세 아이를 생각하면 북한이 아니라 지옥이라도 따라가야 할 판이었다.
“이러다 예전처럼 떼 몰살당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새로운 사냥터 확인하고 레드몬 파악하려면 피해가 엄청날 수 있습니다.”
"괜한 말 퍼트려서 소란스럽게 하지 마! 잘못되면 북한에 가기도 전에 까마귀밥이 될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김응수와 오재욱의 계속되는 질문에 노일수 팀장이 짜증이 나는지 언성을 살짝 높였다.
난 노름판을 구경하는 척하며 소곤거리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정부에선 북한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북한을 레드몬 사냥터로 개발할 거란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언제일지 정확히 모를 뿐 이미 어떻게 진행될지 모두 알고 있었다.
백두산이 폭발하진 28년이 지났다. 화산재가 겹겹이 쌓여 지형마저 바뀌었다. 그렇게 아무도 살 수 없을 것 같던 북한도 레드문의 붉은빛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화산재 위에 싹이 폈고, 나무가 자라고, 그 속에 동물들이 다시 찾아와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레드문은 화산재로 쑥대밭이 된 북한을 28년 만에 밀림으로 만들었다. 이는 레드몬이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에서 레드몬은 재앙이자 축복이었다. 가공 수출에 주력하던 대한민국에 사우디와 같은 산유국의 지위를 내려준 게 레드몬이었다.
정부는 산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북한을 레드몬 생산기지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일부에선 레드몬을 가축처럼 사육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레드몬을 안정적으로 사육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쥐라기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우리 속에 가둔 채 먹이를 주며 키우겠다는 발상과 같은 것이었다.
정부는 레드몬 사육 대신 쥐라기 공원처럼 거대한 사냥터를 만들어 안정적으로 사체와 레드스톤을 공급한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자본이 필요했다. 도로부터 항만까지 갖춰야 할 게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도시와 지역을 재벌에게 나눠주고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안엔 엄청난 이권이 숨어있었다. 정부는 달콤한 이권도 챙기고 국가도 발전시켰다는 명분까지 함께 거머쥘 생각이었다.
신선 공대는 열흘간의 사냥을 통해 아흔아홉 마리 레드래빗을 잡고, 열한 개의 레드스톤을 챙겼다.
첫날 허탕을 친 것에 비하면 성적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보조사냥꾼들에게 돌아올 몫이 늘어나는 건 아니었다.
몇 마리를 잡고 몇 개의 레드스톤을 얻든 보조사냥꾼의 몫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열흘간의 사냥이 끝나자 5일간 휴식이 찾아왔다. 난 곧바로 사냥터로 되돌아가 레드래빗을 사냥했다.
그것도 곶감 빼먹듯 레드스톤이 있는 레드래빗만 골라 쏙쏙 잡았다. 기감이 발달할수록 상대의 상태를 더욱 정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어떤 스킬을 쓰고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알 순 없지만, 심장에서 요동치는 강력한 에너지는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레드스톤이 무려 열아홉 개로 개당 250몬으로 계산해도 4억 7,500만 원이었다.
가죽과 이빨 손발톱은 따로 모으고 고기와 심장, 간, 쓸개 등은 뱃속에 모두 저장했다.
사냥이 지속된 열흘간 고기 한 점 없는 웰빙 식단만 고집했더니 빈혈이 올 지경이었다.
그나마 버리는 심장과 약초, 뱀 등을 잡아먹으며 간신히 버텼지 20일간 사냥했다면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갔을 수도 있었다.
산삼 복용 이후 식욕이 더욱 왕성해져 하루에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먹어야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병이 아닌가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몸을 기감하고 나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먹는 족족 뼈와 세포로 영양분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마디로 겉은 호리호리하지만, 속 알맹이는 점점 탄탄하게 여물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후엔 먹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많이 먹는 만큼 난 강해졌고, 내 꿈을 펼칠 기회는 더욱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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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예쁜 민소연은 김갑수 공대장과는 고종사촌 사이로 포스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재작년 봄 신선 공대에 들어왔다.
고유스킬은 홀드로 최하급 레드몬은 5마리, 하급 레드몬 2마리를 최대 5분간 움직일 수 없게 만들 수 있었다.
민소연보다 살짝 볼륨감이 있는 이서인은 전형적인 한국 미인으로 쌍꺼풀이 없는 대신 눈매가 아름다워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서인의 고유 스킬은 사일런스로 반경 30m를 침묵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능력이 낮아 침묵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3분에 지나지 않았다.
멘탈리스트 중 유일한 남자인 진영수는 말상으로 몬스터를 순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착란(錯亂)을 사용했다.
그러나 뛰어난 스킬에 비해 능력이 한참 모자라 최하급 레드몬만 착란에 걸려 값비싼 진주를 돼지 목에 건 것처럼 아쉬움이 남았다.
중급 능력자에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김갑수는 무기에 예기가 맺히는 수준으로 혼자서 하급 레드몬 3~4마리는 상대할 수 있었고, 민첩형 피지컬리스트인 조은영도 미약하지만, 화살에 예기를 담을 수 있어 하급 레드몬 1~2마리는 처리할 수 있었다.
나머지 피지컬리스트 6명은 무기에 포스를 담는 수준으로 하급 레드몬을 상대론 우위를 점하기도 버거운 실력이었다.
신선 공대는 60개가 넘는 레드몬 사냥팀 중 중하위권으로 대한민국 최강으로 꼽히는 오성 공대나 청사자 공대와 비교하면 바닥이라고 할 만큼 수준이 낮았다.
그나마 멘탈리스인 민소연과 이서인이 있어 레드몬 사냥팀이라는 명함을 내밀고 있었지 이들마저 없었다면 사냥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11대 1로 나와 붙어도 10분 안에 싸움이 끝날 만큼 강력한 한 방도, 튼튼한 방어력도, 끈끈한 조직력도 무엇 하나 완전하게 없었다.
「이렇게 허약해서야 배울 게 있을지 모르겠네. 다른 사냥팀으로 가볼까? 아니야.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겼는데 이대로 끝낼 순 없지. 창피를 당하더라도 대시는 해봐야지. 하아~ 근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사귀어 주세요! 사랑합니다! 내 아를 낳아도! 이런 젠장!」
1990년 6월 10일
신성 공대에서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개월이 다 돼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산속으로 들어갔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서쪽으로 이동했다. 두꺼운 천막으로 사냥터의 위치를 가리려 했지만, 기감을 통해 어디로 이동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2시간을 달려 오늘의 야영지에 도착했다. 평소대로 김응수 부팀장의 명령에 따라 천막을 치고 주변을 정리했다.
온갖 허드레 잡일로 비지땀을 흘린 후 간신히 밥을 챙겨 먹고 잠시 앉아 있자 김응수가 나를 불렀다.
신입은 늦어도 두 달 안에 수색에 나서는 게 규칙이었다. 석 달 만에 나선다는 건 김응수 부팀장이 나를 예뻐했거나 잡일을 많이 해 봐준 거라 할 수 있었다.
2년 선임인 최두식과 함께 장비를 챙긴 후 가방을 둘러매고 김응수 부팀장에게 다가갔다.
"무전기 2대 챙겼지?“
“챙겼습니다.”
“둘 다 무전기 항시 개방하고, 빠때리 넉넉하게 챙겨. 그리고 지금부터 말하는 거 단단히 새겨들어”
“네."
"산꼭대기 보이지. 그래. 거기. 거기까지 가는 거야. 그리고 이쪽 산등성이 타고 빙~ 돌아서 저쪽 산꼭대기까지 가. 무슨 말이지 알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쪽 산에 도착하면 무전기에 ‘이상무’라고 크게 외쳐. 둘 다 같이 3번씩 길~~게. 그리고 능선 타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거야. 쉽지?"
"저 산 갔다가 이산으로 가서 무전기로 도착했다고 말하고 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한두 번도 아닌데 그렇게 자세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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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로 수정했습니다.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