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9 보조사냥꾼 =========================================================================
9.
김응수 부팀장의 명령에 따라 트럭에 올라타자 두꺼운 천막이 내려지고 곧바로 트럭이 출발했다.
밖이 보이지 않도록 두꺼운 천막을 덮은 어두운 트럭 안엔 널브러져 자는 보조사냥꾼들의 코 고는 소리만 요란했다.
달리 할 일도 없어 신선 공대원을 기감했다. 공대원 중 여자는 세 명으로 민소연은 나와 같은 21살이었고, 이서인은 23살, 조은영은 25살이었다.
민소연과 이서인은 170cm에 날씬한 몸매였고, 조은영은 173cm에 살짝 근육질의 몸매였다.
민소연은 이목구비가 뚜렷한데 반해 이서인은 선이 부드러운 한국형 미인이었고, 조은영은 살짝 서구형이었다.
셋 다 군살이 없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어 누가 봐도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미인들이었다.
난 셋 중 민소연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같은 것도 좋았고, 웃을 때 반달이 되는 눈도 좋았다.
작지만 오뚝한 콧날, 선이 분명한 눈썹, 가름한 얼굴까지 내가 꿈꿔왔던 여성의 모습 그대로였다.
2시간을 달린 트럭이 8시가 되자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로 들어갔다. 1시간 넘게 차가 좌우로 요동치다 멈추자 김응수 부팀장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빨리빨리 내려 씨발놈들아! 이쪽에 천막치고, 저쪽에 솥 걸어. 이 새끼 뭐해? 빨리 안 움직여?”
“죄송합니다.”
“개새끼가 놀러왔어? 씨발놈이 장난하나? 빨리빨리 안 날라? 그딴 식으로 하면 넌 돌아가자마자 끝이야. 알았어?”
“잘하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김응수가 얼빵한 신입을 다그치는 동안 대형천막과 조리기구, 사냥에 필요한 물품들이 재빨리 내려져 자리를 잡았다.
강릉과 달리 산속에 들어오자 보조사냥꾼 모두 신속하게 움직이며, 천막을 치고 취사 도구를 거는 등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강릉이 사회였다면 산속은 군대처럼 위계질서가 꽉 잡혀있었다. 신선 공대 보조사냥꾼은 노일수 팀장과 오재욱, 김응수 부팀장이 이끌었다.
사냥이 시작된 순간 팀장과 부팀장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만약 명령을 어기면 작게는 체벌과 제명이었고, 크게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대형천막 한 개와 중형천막 열한 개, 식당으로 이용할 천막 한 개, 취사용으로 이용할 천막 한 개를 쳤다.
중형천막은 공대원을 위한 개인 천막으로 김갑수 공대장과 열 명의 공대원에 하나씩 돌아갔다.
식당천막은 공대원들이 식사하는 곳이고, 취사용 천막은 공대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 주방장이 머물 공간이었다.
보조사냥꾼 30명은 대형천막에 한 개에 함께 잤고, 식사는 천막 뒤편에 커다란 솥단지 걸어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먹었다.
공대원들이 요리사가 만든 훌륭한 음식으로 점심을 즐기고 있을 때 난 마른나무를 구해오고, 근처 시냇가에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그렇게 빠릿빠릿 뛰어다니자 고기도 없는 뭇국에 밥을 말아줬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밥과 국은 한 대접을 말아줬다.
종일 산을 뛰어다녀야 하는 보조사냥꾼에겐 머슴밥도 부족했다. 간식거리도 없는 시대에 밥이 유일한 보약이었다.
한 대접을 뚝딱 해치우고 설거지와 주변 정리를 하고 나자 2.5톤 트럭이 야영장에 들어왔다.
짐은 모두 공대원들의 것으로 야영이 아니라 집에서 생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다양한 짐이 있었다.
공대원들과 비교하면 보조사냥꾼의 생활은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30명을 비좁은 천막에 몰아넣자 온갖 악취가 진동했다.
발 냄새와 땀 냄새는 물론 이와 벼룩까지 득실거렸고, 냄새를 맡고 날아온 벌레들까지 가세해 천막 안은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거기다 담배 연기와 욕설, 코 고는 소리까지 밖에서 밤이슬을 맞고 자는 게 편할 지경이었다.
오후 3시가 되자 보조사냥꾼 1팀에서 두 명이 야영지를 빠져나갔다. 이들은 가방에 담요와 이틀 치 식량, 망원경, 조명탄, 무전기, 밧줄, 손도끼, 정글도 등을 챙겨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난 김응수 부팀장이 맡은 2팀에 있었다. 지난달 사고로 결원이 생기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보조사냥꾼은 결원이 생길 때마다 사람을 뽑았다. 내가 죽으면 나처럼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그가 죽으면 또다시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월급 100만 원을 노리는 사람은 한강 모래알만큼 많았고, 내가 단번에 붙은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신선 공대가 이번에 사냥할 레드몬은 가장 약체로 꼽히는 최하급 레드몬 레드래빗이었다.
레드래빗처럼 비선공형 최하급 레드몬은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다. 이들은 포식자가 나타나지 않은 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살았다.
레드래빗은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는 레드몬으로 자궁이 두 개인 토끼는 중복 임신이 가능해 암컷 한 마리가 일 년에 30~40마리를 생산할 수 있었다.
토끼보다 번식력이 뛰어난 쥐는 매달 한 번씩 출산했고, 그때마다 최대 12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또한, 갓 태어난 쥐도 두 달이면 새끼를 낳을 수 있어 번식력은 포유류 중엔 최고였다.
여기에 레드문으로 인해 번식력과 성장 속도가 두 배로 늘어나며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수색조는 3개월 전 사냥한 레드래빗 사냥터를 돌아보기 길을 나섰다. 이들이 몇 년째 사냥하는 사냥터를 수색하는 건 그사이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미끼였다. 수색조가 움직이면 선공형 레드몬이 자연스럽게 수색조를 공격하고, 그사이에 신선 공대는 도주나 방어, 사냥 등을 결정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수색조는 무전기를 항시 개방한 채 이동했다. 그건 이들의 비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위험에 처한 순간 터져 나올 잔혹한 소리를 듣기 위해 무전기는 항상 개방된 상태로 유지됐다.
물론 순식간에 수색조가 죽을 수 있어 수색조 뒤엔 피지컬리스트 두 명이 멀리서 따라붙어 동태를 감시했다.
보조사냥꾼 사망원인 1순위가 바로 이것이었다. 비인간적인 행위이자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만행이었지만, 정부와 사냥팀은 레드몬을 찾을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인권을 무시하고 있었다.
레드몬이 지구에 출현한 지 28년이나 지났지만, 효율적으로 레드몬을 탐지할 장비가 아직도 개발되지 않았다.
레드몬도 능력자와 같이 포스를 이용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포스를 찾아내는 기계는 미국 엠코사가 개발한 감별기와 정밀포스측정기가 있었다.
하지만 감별기는 몸에 접촉해야 능력자인지 알아낼 수 있었고, 정밀포스측정기는 측정 거리가 10m에 불과해 레드몬을 찾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열상감시장비(TOD, Thermal Observation Device)를 이용해 레드몬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레드몬의 가죽 때문인지 측정 거리가 매우 짧아 큰 기대를 걸긴 어려웠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과 물체는 각각의 온도에 따라 적외선 형태로 복사에너지를 방출했다.
열상감시장비는 사람과 물체가 방출하는 적외선 에너지를 검출해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 변환하는 전자광학 장비였다.
열상감시장비는 빛이 없는 야간에도 물체형태를 식별할 수 있었고, 레이더의 사각지대도 감시할 수 있는 장비였다.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감지해 영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밤에도 사람과 물체의 위치 및 동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M1 에이브럼스(M1 Abrams)에 채용된 열상감시장비 TIS는 최대 3,000m까지 감시할 수 있는 장비였다.
하지만 레드몬은 길어야 1,000m가 최대 감시 거리였다. 이 또한 날씨가 아주 좋은 날 측정할 수 있는 최대 거리로 조금만 시야가 흐려져도 거리는 3분지 1 이하로 줄어들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선 적외선탐지 미사일 스팅어(FIM-92A Stinger), 미스트랄(Mistral), 이글라(IGLA) 등을 이용해 레드몬을 방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괴력이 약하고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레드몬의 특성상 하급 레드몬을 상대하기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레드몬을 탐지할 장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가난하단 이유만으로 소중한 생명을 내팽개치는 행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었다.
이들은 배고픔과 죽음보다 더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보조사냥꾼에 지원한 것이다.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보조사냥꾼이 되었다.
국가가 이들을 교육하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면 이들이 목숨을 걸고 보조사냥꾼이 될 이유가 없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지키고 행복하게 만든 것에 있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10조의 말이 무색할 만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무관심했다.
이번에 1팀이 수색에 나선 만큼 다음번 사냥이나 그 다음번 사냥엔 내가 수색조로 지목될 확률이 높았다.
신선 공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임들은 절대 수색에 나서지 않았다. 대략 7~8명 정도로 이들은 팀장과 부팀장의 비호 속에 안전을 도모했다.
1년 이상 살아남은 선임들도 이 안에 끼기 위해 아양을 떨고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등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눈 밖에 난 선임과 나처럼 신입이 짝을 이뤄 수색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디를 가도 눈 밖에 난 사람과 신입은 살기가 팍팍했다.
다음 날 아침 수색조로부터 이상이 없다는 무전이 도착하자 우린 노일수 팀장의 지휘 아래 사체 운반기구와 그물 등을 어깨에 짊어지고 사냥터 근처로 이동했다.
다른 능력자의 사냥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우린 사냥터에서 1.2km 떨어진 언덕 아래에 대기했다. 기감력이 도달하지 않은 거리로 2시간 동안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사냥터에 따라 대기하는 거리가 달라 늦어도 2~3달 안에 기감을 통해 신선 공대의 사냥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다.
무료한 시간이 지나자 은주식 부공대장이 무전으로 노일수 팀장을 찾았다. 노일수 팀장의 명령에 사체 운반기구를 잔뜩 짊어지고 숲으로 들어갔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숲 속에 레드래빗 열두 마리가 피를 흘린 채 죽어있었다. 래드래빛은 많을 경우 백 마리가 넘게 모여 살았다.
신선 공대의 전력상 백 마리를 모두 사냥하긴 무리였고, 민첩형 피지컬리스트인 조은영과 전두수가 일부를 유인해 사냥했다.
레드래빗은 레드몬으로 변이하며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녔다. 달릴 땐 여전히 네 발로 뛰지만, 평소엔 두 발로 걸어 사람들의 귀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성격이 포악해 화가 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보이는 족족 물어 죽여 최하급 레드몬치곤 민간인 피해가 컸다.
레드래빗의 무기는 날카로운 손톱과 커다란 발 그리고 큰 귀로 뛰어난 청력을 보유하고 있어 소리를 미리 차단하지 못하면 무리 전체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신장 80cm, 귀 길이 30cm로 키가 무려 1.1m나 되는 레드래빗은 무게가 50kg이나 나갔다.
대부분이 뼈 무게로 과학자들은 레드몬의 뼈를 본스틸이라 불렀다. 본스틸은 등급에 따라 차이가 심하지만, 최하급 레드몬의 본스틸도 총알을 튕겨낼 만큼 엄청난 강도를 자랑해 합금강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금속의 단단하고 질긴 강도(剛度) 차이로 최하급 레드몬의 본스틸은 0.1ton당 1,000만 원 선에 거래됐고, 하급은 2,000만 원, 중급은 4,000만 원, 엘리트 레드몬은 1억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야영장으로 돌아오자 공대장 김갑수가 직접 나서 레드래빗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냈다.
우린 멀찍이 물러서 안보는 척 곁눈질로 구경했다. 운이 없었는지 열두 개의 심장을 모두 꺼냈지만, 레드스톤은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
레드스톤이 나오지 않자 눈치 빠른 선임들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괜히 어물거리다 화가 난 공대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치도곤(治盜棍)을 당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능력자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생각해 보조사냥꾼을 함부로 대했다. 신선 공대만 해도 여자들을 빼곤 우릴 ‘야’ ‘너’ 이런 식으로 불렀다.
하지만 능력자만 탓할 수 없는 게 보조사냥꾼 선임들도 나를 ‘이 새끼’ ‘저 새끼’ ‘이놈’ ‘저놈’으로 불렀다.
권위의식이 가득한 대한민국은 갑의 횡포가 만연한 나라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 형식을 수정했습니다.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