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8 보조사냥꾼 =========================================================================
8. 보조사냥꾼
다시 사무실로 올라와 김응수의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한참이나 들어줘야 했다. 김응수는 자기 자랑과 함께 날 친동생 같다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그렇게 황당한 얘기를 1시간이나 듣고 나서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첫 달 임금은 50만 원이었고, 수당과 상여금은 없었다.
3개월 후 10만 원씩 임금을 올려 1년간 잘 적응하면 100만 원까지 봉급을 올려주겠다며 마치 자신이 사장인 양 거드름을 피웠다.
계약서가 아주 심플하고 마음에 든다며 속으로만 욕을 한 채 어제 도장가게에서 만든 막도장을 꾹 눌러 찍어줬다.
기분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다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당시 기업들의 횡포는 극에 달해 노동자는 소모품이나 다름없었다.
죽지만 않으면 나쁠 것도 없는 계약서였다. 물론 1년에 보조사냥꾼만 수백 명이 죽는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장비는 본인이 준비해야 했다. 정글도와 작은 단도 그리고 손도끼와 밧줄 등 숲에서 필요한 장비부터 소독약과 감기약, 설사약 등도 준비해야 했다.
모레 아침 6시까지 건물 앞으로 나오라고 말과 신입이니 1시간 일찍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를 끝으로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강릉엔 대략 20여 종의 레드몬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중 최하급 레드몬이 8종이었고, 나머진 하급과 중급 레드몬이었다.
최하급 레드몬은 레드마우스(쥐), 레드칩(다람쥐), 레드래빗(토끼), 레드몰(두더지) 등이 있었고, 하급 레드몬엔 레드디어(고라니와 사슴), 레드무스텔라(족제비), 레드와피티(붉은 사슴), 레드삵(삵), 레드링스(살쾡이), 레드위증(작은 족제비), 레드오터(수달). 레드벳저(오소리), 레드라쿤(너구리), 레드쉽(양) 등이 있었다.
중급 레드몬은 레드와피티 수놈과 레드고랄(산양), 레드마틴(담비) 그리고 가장 위험한 멧돼지인 레드보어 등이 있었다.
그리고 집을 나간 개와 고양이가 레드캣츠와 레드독으로 변이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레드몬 중엔 집단으로 서식하는 레드몬도 많았다. 레드마우스와 레드칩, 레드래빗, 레드라쿤, 레드벳저 등으로 레드마우스의 경우 수백 마리가 집단으로 서식해 골치는 썩이기도 했다.
1989년 1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엔 총 1,207명의 능력자가 한국 포스 협회에 등록돼 있었다.
이중 중급 능력자는 전체의 1%에도 못 미치는 10명에 지나지 않았고, 20%는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최하급 능력자였다.
전 세계적으로 80% 이상이 피지컬리스트였고, 멘탈리스트 20%, 가장 숫자가 적은 힐러는 0.1%에 머물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인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해가 떨어지지 않은 대낮인데도 옆방에선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헉”
“하아~ 아흑~”
나도 나이가 21살이라 남녀의 신음이 무얼 뜻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으로만 배운 성 지식은 너무도 얇아 섹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상상만 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조용히 눈을 감고 옆방을 기감했다. 배불뚝이 중년 아저씨 밑에 엎드린 젊은 여성이 엉덩이를 치켜든 모습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저씨의 작은 성기가 엎드린 여성의 엉덩이 사이로 드나들 때마다 야릇한 소리와 함께 자지러드는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지금껏 상상만 하던 섹스를 오늘에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동냥질로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몸속에 드나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자세를 취하는지, 기분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30분간 이어진 아저씨와 젊은 여성의 섹스는 5분 단위로 자세가 계속 바뀌었다. 앉고, 엎드리고, 서는 등 상상도 못 했던 자세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아저씨의 숨소리가 급박해질수록, 여성의 앓는 소리가 커질수록 괴물 같은 내 고추는 딱딱하게 굳다 못해 바지를 뚫을 듯 요동을 쳤다.
급히 신문을 펼쳐 아무 내용이나 마구 읽었다. 산속 집이었다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열을 식혔겠지만, 이곳은 번화한(?) 강릉역이었다.
커다란 고추를 잡고 뛰어다니면 지나가는 행인이 모두 날 미친놈으로 오인할 수도 있었다.
필사적으로 신문에 정신을 집중하자 재미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의 레드몬 변이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인간이 능력자가 되는 건 각성(覺醒) 또는 진화라 표현했지만, 동물이 레드몬으로 진화하는 건 변이라고 표현했다.
진화(進化)는 생물이 외계의 영향과 내부의 발전에 따라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하등에서 고등한 것으로 발전하는 것을 말했고, 변이(變異)는 같은 종류의 생물 개체 사이에 형질이 달라진 개체가 생기는 것을 말했다.
이는 인간이 동물과는 다르다는 자존심의 표현으로 매우 유치한 발상이지만, 그런 구분마저 짓지 않는다면 잘난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문에선 애완동물과 가축의 변이를 막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학계에선 인공 수정된 새끼에게선 레드몬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얻어냈다.
이에 따라 사육되는 모든 동물에 대해 거세와 함께 인공수정 이외의 직접적인 교미행위는 불법으로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버려진 개와 고양이 그리고 쥐였다. 이들은 도심을 비롯해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새끼를 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1월 10일 세계 유해동물 방제청이 각국에 신설되어 도심에 출몰하는 주인 없는 개와 고양이, 쥐, 비둘기, 참새, 뱀, 도마뱀, 개구리 등 야생동물은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고 있었다.
또한, 포유류 다음으로 많은 어류형 레드몬의 수를 줄이기 위해 산과 강은 물론 바다에도 산란방지제가 뿌려졌다.
이로 인해 연근해의 어획량이 줄어들어 각국 정부는 인공 수정된 치어를 방류하는 등 후속 대책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하지만 레드문으로 인해 생물의 성장이 두 배 이상 촉진되고, 낱알과 새끼도 두 배로 임신해 농산물과 가축 공급엔 큰 문제가 없어 식량난을 격을 우려는 크지 않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레드몬은 포유류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어류, 파충류와 양서류, 곤충류, 조류 순이었다.
아직 식물형 레드몬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누구도 식물형 레드몬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레드몬으로 변이할 인자를 갖추고 있어 아직 없다고 해도 언젠간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어류, 양서류, 파충류, 곤충형 레드몬이 포유류보다 현저히 적은 이유를 뇌용량이 작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레드몬의 변이를 지능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능이 높을수록 변이율이 높고 지능이 낮을수록 변이율이 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개체수를 생각하면 곤충과 어류, 식물형 레드몬의 수가 너무 적었다. 이에 대해 아직 초기 단계라 포유류의 레드몬 변이가 빠를 뿐 시간이 지나면 이들의 수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다행히 옆방도 거사가 끝나고, 신문을 읽은 것도 도움이 됐는지 성을 내던 고추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세상엔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난 최고의 명약을 얻은 대신 남들은 상상도 못 할 고통을 앓고 있었다.
「이걸 고통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욕하겠지? 남들은 크고 싶어 난린데 난 너무 커서 걱정이네. 아저씨 작은 고추로 여자가 좋아 죽을 정도면 내거로 하면.... 이런 젠장! 또 커진다. 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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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4시, 여인숙을 빠져나와 천천히 걸어 신선 빌딩에 앞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나왔는지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3층에 모여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건물로 들어갔다.
작은 경비실에 온몸을 웅크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직 3월이라 밤공기는 겨울만큼 차가웠다. 작은 난로에 의지해 추위를 버티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3층에 올라가자 말소리가 들렸다. 뭐가 불만인지 욕을 섞어가며 흥분한 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시발! 똑같이 고생하는데 누군 몇 백만 원씩 가져가고 누군 달랑 백만 원 주고 좆같네!"
"꼭 이런 말을 사무실에서 해야겠어?"
"죄송합니다. 형님! 하지만 너무 열이 받잖아요. 저도 신선 공대 들어 온 지 5년이라고요. 근데 월급이 고작 120만 원이에요. 언제까지 이런 대우를 받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어쩌겠어. 놈은 이 동네 토박이고 공대장이 놈만 감싸고도는데 어쩔 수가 없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죠. 같이 고생하는데 왜 부스러기를 놈이 혼자 다 먹습니까? 우리에게도 나눠줘야죠.”
“10년 가까이 공대에 문제가 없잖아. 그러니 공대장도 인정하는 거야. 공대장은 놈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게 저 혼자 잘나서 그런 겁니까? 형님이 도와주니까 되는 거 아닙니까.“
“하아~”
“우리도 이 기회에 독립하죠. 형님하고 저하고 밑에 있는 애들 몇 명 끌고 나가면 우리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
“어차피 이렇게 살다 죽느니 모험을 걸자고요. 총만 구하면 최하급 레드몬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요. 형님도 알잖아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형님이란 사람도 전혀 생각이 없진 않은 지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일단 생각 좀 해보자. 그리고 더는 여기서 떠들지 마! 이러다가 누가 들으면 그날로 우린 죽어."
"죄송해요. 제가 흥분해서 그랬어요.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형님이라 불린 남자가 흥분한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는지 ‘툭툭~’ 소리가 들여왔다. 난 조용히 1층 내려와 현관을 빠져나왔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알력이 있기 마련이었다. 작은 파이 하나에도 수십 명이 달려들어 더 많이 먹기 위해 싸우는 곳이 사회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들의 대화가 이상할 게 없었다. 레드몬 사냥팀 중엔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꾸려진 공대도 있었다.
주로 제대한 군인들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 레드몬을 사냥했다. 최하급 레드몬은 대물 저격총이면 사냥이 가능했다.
레드래빗 가죽과 사체가격은 대략 600만 원 선으로 레드스톤까지 나와 주면 한 번에 3,00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었다.
한 마리에 3,000만 원이면 강릉에선 괜찮은 집 한 채 가격으로 누구라도 욕심을 낼만했다.
하지만 무리 생활을 하는 레드레빗은 동료의 죽음을 좌시하지 않았다. 총소리가 나는 순간 벌떼같이 달려들어 사냥꾼을 찢어발겼다.
그래도 사냥터에 대한 사전지식만 충분하다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레드마우스나 레드칩, 레드래빗을 사냥할 순 있었다.
거칠게 욕설을 내뱉던 남자가 말한 게 바로 이거였다. 5년간 신선 공대에서 잔뼈가 굵었다면 강릉 사냥터를 손에 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위험이 따르지만 몇 번만 성공해도 수십 년 치 봉급을 한 번에 벌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시계가 5시를 가리키자 김응수 부팀장이 개조한 덤프트럭 3대를 끌고 건물 앞에 나타났다.
꾸벅 인사를 하자 까딱 고개만 끄덕인 후 손가락으로 불렀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자 건물 지하로 데려가 야영에 필요한 물건들을 싣도록 지시하고 나가버렸다.
혼자서 다섯 번쯤 오르내리며 짐을 나르자 그제야 보조사냥꾼들이 한두 명씩 나타났다.
서로서로 인사를 하더니 나를 한 번씩 힐금 쳐다보곤 담배를 피워 물며 음담패설로 시간을 죽였다.
나를 포함해 5명의 초임자가 천막부터 솥단지까지 모든 짐을 차에 실어야 했다. 어디 가나 막내는 고달팠다.
6시가 되자 외제승용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화려한 외제 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선 공대에서 가장 적게 버는 능력자도 일 년에 최소 12~13억 원은 벌었다.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쓰는 건 만고의 법칙이었다.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