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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선 공대
1962년 12월 22일 북한의 백두산
백두산 천지의 호수가 끌어 오르자 순식간에 마그마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곧이어 엄청나 폭발과 함께 붉은 용암이 하늘을 날았다.
용암과 함께 눈처럼 쏟아져 내리는 시커먼 화산재가 북한 전역과 만주, 연해주를 강타했다.
백두산 폭발로 북한은 엄청난 인명피해와 함께 산업시설이 초토화됐고, 군사시설과 무기들까지 화산재에 덮여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건물과 지하에 마련된 무기고도 수십 미터에 이르는 화산재를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거나 갇혀 사용할 수 없게 변해버렸다.
1년이나 계속된 백두산 화산폭발로 도시는 화산재에 잠겼고, 논과 밭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몸부림쳤지만, 폭동과 쿠데타가 끊이질 않았고, 중국과 소련도 도와줄 입장이 안 돼 손쓸 방법이 없었다.
결국, 굶주린 주민과 군인들이 평양으로 몰려들자 김XX를 비롯한 최고 지도부는 중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헬기가 야산에 추락하며 탑승자 전원 사망해 북한은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북한이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지구촌 누구도 북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물론 중국과 소련, 미국마저 천재지변으로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견할 처지도 아니었고, 당장 자국민이 굶주리는 상황에서 한 톨의 쌀도 원조할 능력이 없었다.
예전처럼 우라늄의 가치가 높았다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원자력을 대체할 청정에너지 레드스톤이 발견되며, 다 부서진 북한은 계륵보다 못했다.
그렇게 버려진 북한은 화산재와 내전으로 많은 주민이 죽고 대한민국과 중국, 소련 등으로 탈출한 주민은 고작 100만 명도 되질 않았다.
1987년 3월이 되자 대한민국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땅 북한을 흡수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25년간 국제사회로부터 방치된 북한은 작게는 수천, 많게는 수십만까지 원산, 함흥, 신의주, 남포 등지에서 고립된 채 도시국가 형태로 끈질긴 삶은 이어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 무정부 상태에 놓인 북한은 지역별로 살아남은 군인들이 자신만의 왕국을 세워 서로 싸우고 죽고 죽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삶은 너무도 비참한 상태였다. 산업시설이 모두 파괴된 상태에서 군인의 폭정까지 이어지자 이들의 삶은 아프리카 난민보다 더 열악했다.
정부는 1985년부터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각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군사정권을 능력자와 특작 부대를 이용해 일시에 정리했다.
그렇게 온 국민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통일은 1987년 4월 25일 조용히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통일은 엄청난 이슈지만, 중국과 소련, 미국 등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들만 정전협정위반이라며 짧은 항의 성명을 낸 게 전부였다.
먹을 것도 없고, 달콤한 과실은 없고, 천문학적인 통일비용만이 남아 있는 북한 땅에 관심을 가질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온 국민이 소원하던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엄청난 통일비용에 국회는 연일 주먹 오가고 고성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10년간(1987년 5월 1일 ~ 1997년 5월 1일) 북한지역의 출입을 통제했다. 허가받지 못한 사람은 출입이 통제됐고, 북한지역에 살고 있던 주민들도 남한으로 내려올 수 없었다.
정부는 10년간 차근차근 기반시설을 확충해 통일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간만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아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러자 북한 지역을 레드몬 사냥터로 활용해 통일 비용을 충당하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또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줄 거란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입을 닫은 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호수 위에 오리가 우아한 자태로 물 위를 미끄러져 이동하지만, 그 아래 물속에선 정신없이 발을 움직이듯 그렇게 북한에 대한 경제 분할이 정부와 재벌 사이에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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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 28일
강릉에 도착한 지 만 5년 만에 키는 185cm까지 자랐고, 몸무게도 80kg까지 늘어났다.
큰 키에 비해 몸은 여전히 호리호리했지만, 구석구석에 잔 근육이 가득해 여자처럼 가녀려 보이진 않았다.
기이한 산삼과 기감력은 궁합이 잘 맞는지 하루가 다르게 능력을 쑥쑥 자라나게 해줬다.
손이나 무기에 힘만 집중해도 파란 예기가 50cm가 넘게 자라났고, 예기를 사용하면 바위부터 쇳덩어리까지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기감력도 그사이 크게 증가해 반경 1km 안의 작은 생명체도 모두 잡아낼 수 있었고, 기를 투사해 생명체의 기본적인 정보도 더욱 세세하게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양기가 하체에 몰리며 고추가 비정상적으로 커졌고, 밤마다 뻗치는 정력으로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1990년 3월 10일
읍내에 들러 신발과 옷, 모자를 샀다. 이발소에 들러 그동안 한 번도 자르지 않은 긴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다.
거울을 들여다보자 잘생기지도 못 생기도 않은 평범한 얼굴이 있었다. 너무 평범해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쌍꺼풀도 없고 눈썹도 짙지 않고 코도 높지 않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었다. 다만 티끌 하나 없는 피부와 날카로운 눈만이 남과 구분되는 유일한 특징이었다.
인간의 몸은 60조 개 이상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하루에 수억 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을 거쳐 인간은 나이가 들고 죽어갔다.
능력자는 일반인보다 세포의 파괴와 노화가 현저하게 낮았다. 과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능력자의 수명이 일반인과 비교해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 이상 오래 살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세포 때문인지 아니면 뛰어난 회복력과 재생력 때문인지 능력자들은 남녀 구분 없이 피부가 잡티하고 없이 맑고 아기 피부처럼 곱고 부드러웠다.
이 때문에 읍내에 나올 땐 일부러 모자를 쓰고 얼굴을 지저분하게 하는 등 나름 변장까지 하고 다녀야 했다.
강릉시청 맞은편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이 신선 공대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은 공대장인 김갑수의 건물로 신선 공대는 지상 5층부터 지하 2층까지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새 옷에 새 신발, 새 모자까지 쫙 빼입고 머리까지 자른 이유가 이곳에 오기 위해서였다.
3층에 올라가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안내데스크에 제법 반반한 얼굴의 20대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여직원 : 무슨 일로 오셨죠?”
“지홍 : 보조사냥꾼을 모집한다는 모집광고를 보고 왔습니다.”
“여직원 : 여기 서류에 나이와 성함, 주소, 연락처 등을 기재해주세요. 한글은 알고 있죠? 모르면 지금 말하세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지홍 : 아닙니다. 제가 작성 할 수 있습니다.”
보조사냥꾼 지원자 중엔 나처럼 학력이 짧은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국민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많아 여직원이 지원서를 대신 적어주는 일도 아주 흔했다.
“여직원 : 그럼 저기 테이블에 앉아 신청서 작성해주세요. 여기 볼펜~”
“지홍 : 감사합니다.”
볼펜을 받아 들고 테이블에 앉아 나이와 이름, 주소지, 신체 사이즈 등을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는 것은 관할 경찰서에 범죄사실을 조회하기 위해서였다. 나머진 모두 형식적인 일로 대충 적어도 문젯거리가 될 게 없었다.
신청서를 작성해 여직원에게 가져다주었다. 여직원이 서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살짝 들어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곤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일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젊다는 뜻 같았다. 하지만 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나이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직원 : 내일 아침 10시까지 이곳으로 다시 나오세요. 체력 테스트와 면접이 끝나면 결과는 팀장님이 바로 알려주실 거예요.”
“박지홍 : 감사합니다.”
계단을 걸어 내려와 가까운 여인숙에 숙소를 정했다. 보조사냥꾼은 신체조건을 보고 사람을 뽑았다. 면접은 도망자와 미친놈만 아니면 결격 사유가 없었다.
동물 가죽을 팔며 알게 된 가죽공장 김 사장은 6년 전 신선 공대에서 보조사냥꾼으로 1년간 일 했었다.
김 사장은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게 취미인지 가죽을 팔러 가면 나를 붙잡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의 영웅담을 늘어놨다.
겁이 극도로 많은 양반이 1년이나 버텼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내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줘 보조사냥꾼으로 활동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 따질 필요는 없었다.
신선 공대는 공격형 피지컬리스트인 공대장 김갑수와 3명의 멘탈리스트, 7명의 하급 피지컬리스트로 구성됐다.
한 번 사냥을 나가면 8~10일 정도 야외에서 머물며 쉬지 않고 레드몬을 사냥했고, 사냥이 끝나면 강릉으로 돌아와 5일 휴식 후 다시 사냥에 나섰다.
신선 공대는 사냥을 통해 한 달 평균 20억 원을 벌어들였다. 벌어들인 돈 중 10%인 2억 원은 공대 운영비로 사용했고, 20%인 4억 원은 김갑수가 가져갔다.
나머지 14억 원을 10명의 공대원도 나눠 가졌는데, 직업에 따라 몫이 달라 멘탈리스트가 가장 많은 몫을 챙겼고, 첨병 역할을 맡은 민첩형 피지컬리스트가 두 번째로 많은 몫을 챙겼다.
보조사냥꾼 30명이 가져가는 몫은 공대 운영비 2억 원 중 고작 3,500만 원 정도로 이도 경력과 직급에 따라 50만 원에서 150만 원까지 차등으로 지급했다.
신선 공대에서 보조사냥꾼이 하는 일은 사냥한 레드몬을 운반하고, 능력자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게 아니었다.
공대의 안전을 위해 미리 사냥터를 수색하는 일 또한 맡고 있었다. 이로 인해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당시 삼성전자의 초봉 대졸 임금이 40만 원 정도였으니 보조사냥꾼이 받는 평균 100만 원 봉급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일치곤 많다고 할 수 없었다. 이들에겐 퇴직금은 물론 흔한 상여금도 없고, 의료보험도 없어 다친 상처조차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또한, 레드몬 사냥 중 일어난 죽음은 정부조차 관여하지 않아 억울한 죽음도 만연한 상태였다.
어디 가나 돈 없고, 힘없고, 돌봐 줄 사람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살기가 팍팍했다.
다음 날 아침 근처 해장국 집에 들러 든든하게 배우 채운 후 30분 일찍 공대 건물로 올라갔다.
여직원을 설명을 듣고 20분간 소파에 앉아 기다리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검은 얼굴의 사내가 다가왔다.
말도 없이 손가락으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낸 남자를 따라 작은 책상이 놓여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신선 공대 보조사냥꾼 부팀장 김응수다."
"박지홍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허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무슨 부탁씩이나… 어찌 됐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나 잘 되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김응수는 신선 공대의 역사와 인지도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열심히만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여댔다.
30분간 정신없이 떠들다 같은 보조사냥꾼 부팀장 오재욱이 들어오자 그제야 체력테스트를 위해 나를 끌고 건물 뒤편으로 돌아갔다.
20분쯤 걷자 강릉 국민학교 운동장이 나왔다. 시험과목은 100m 달리기와 5,000m 달리기 그리고 멀리 던지기 세 과목이 전부였다.
운동장에 그려진 흰색 선을 따라 먼저 100m 달리기를 했다. 허풍쟁이 김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100m 달리기는 14초면 합격하기에 적당한 수준이었다.
나는 사전에 14초에 맞게 여러 번 뛰어보았기 때문에 전력질주 한 것처럼 숨을 몰아쉬는 연기까지 선보이며 정확히 13초 83에 들어왔다.
다음은 멀리 던지기로 69m를 던져 보조사냥균 평균을 조금 넘겼고, 5,000m 달리기는 14분 59초로 들어와 김응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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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화체 형식을 수정하였습니다.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