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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4화 (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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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각성(覺醒)

1975년 1월 5일 미 국무부 발표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아이들에 한해 의무적으로 능력자 검사를 했다.

1962년 12월 22일 이후 태어난 만10세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1회 무료로 검사받을 수 있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스 협회 검사관들은 무료이자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능력자 검사조차 돈을 요구했다.

있지도 않은 약품비와 출장비 그리고 점심값까지 포함한 비용은 나와 같이 가난한 자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대한민국도 미국처럼 뛰어난 능력자를 양성하기 위해 포스 전문학교를 설립했다. 포스 전문학교는 강사진과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하지만 포스 전문학교에 다니는 절반 이상이 비능력자들로 이들은 검사관에게 돈을 주고 기록을 조작해 입학한 기업인과 정치인, 경찰, 검찰 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식들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능력자 발굴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능력자의 가치는 다가올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이자 미래였다.

몇 년 전부터 능력자들을 구성된 레드몬 사냥팀이 큰 성과를 내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던 레드몬과의 싸움에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또한, 레드스톤과 레드몬의 사체가 에너지와 신소재로 떠오르며 기업들은 레드몬 산업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레드스톤은 레드몬의 심장에서 나온 루비처럼 붉게 빛나는 달걀형의 광석으로 강력한 에너지의 결정체였다.

세상 그 어떤 물질보다 안전한 무공해 청정에너지로 손쉽게 전기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레드몬의 사체는 가장 약한 최하급 레드몬조차 방탄기능이 있었고, 뼈와 손발톱은 금속과 혼합하면 강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져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를 레드몬이 석탄, 석유, 텅스텐을 대신해 새로운 에너지원과 금속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머리부터 손발이 모두 썩어 뇌물이 판치는 사회로 가장 말단인 검사관마저 쥐꼬리만 한 권력을 이용해 부모들의 돈을 강탈하고 있었다.

이런 풍토 속에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국가가 법으로 정한 검사마저 받지 못한 채, 애먼 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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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이후 세상은 가난한 자에겐 더욱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드몬(레드문 이후 발생한 괴물에 대한 지칭)의 수가 늘어나자, 정부는 도시를 중심으로 강력한 방어선을 만들었다.

두꺼운 콘크리트로 만든 방벽은 군대와 전투경찰(준 전투부대-중화기로 무장한 경찰병력)이 상주하며 방어했다.

이들은 대도시와 공장 그리고 기반시설인 도로·항만·철도·통신·학교·병원 따위를 주로 방어했다.

하지만 병력이 모자라 방벽 너머 도시 외곽은 항상 불안했고, 방벽이 허술한 지방의 경우 레드몬으로 인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부자들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도심에 숨어들거나 고가의 문스톤을 사들여 안전지대를 만들었다.

문스톤은 달과 거대 운석 고스트가 충돌하며 떨어진 운석 파편을 말했다.

미 국방연구소가 밝혀낸 문스톤의 효용은 운석에서 발생하는 고유의 에너지가 레드몬의 뇌파를 자극해 쫓아내는 것으로 지름 5cm크기의 문스톤에 감마선을 쪼일 경우 최대 600m 반경을 안전지대로 만들 수 있었다.

최하급과 하급 레드몬 30여 종을 실험한 결과 효과가 입증되자 세계적 부호들과 국가들이 문스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운석이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라 찾기가 쉽지 않아 5cm 문스톤 하나의 가격은 300억 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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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6세가 된 1985년 2월, 난 서울의 외곽의 빈민촌도 모자라 도시의 방어벽 밖으로 쫓겨났다.

난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서울은 내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행복인 엄마마저 빼앗아간 저주받은 도시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순간 온통 슬프고 괴로운 기억만 가득한 서울에서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숨어 살기로 결심했다. 배운 것도 아는 사람도 없는 내가 사회에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레드몬은 선공형(주로 포식자)과 비선공형(주로 초식성)으로 나뉘는데, 비선공형 레드몬은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좀처럼 한 사람을 헤치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어설픈 지식이라 맞을지 알 순 없지만, 어차피 30만 원으론 도시에서 살아갈 방법도 없었다.

동냥질을 시작하면 그 길로 앵벌이 조직에 끌려갈 게 뻔했고, 주머니에 꼬깃꼬깃 숨겨둔 30만 원도 비실비실한 몸으로 지켜낼 힘도 없었다.

그럴 바엔 나이가 들어 취업이 가능한 청년이 될 때까지 몬스터가 없는 산속에 들어가 나물과 약초를 캐 먹고 사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레드문 이후 숲을 드나드는 약초꾼과 심마니가 크게 줄었고, 시골에도 사람이 많이 빠져나가 아이 하나 먹을 식량은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량리역에서 강원도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반시설은 군인이 보호하고 있어 고속도로나 철도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었다.

여기서 비교적 안전한 편이란 말은 절대 안전과는 거리가 먼 뜻으로 레드몬의 습격이 빈번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현재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최하급 레드몬는 주로 비선공 레드몬으로 20mm 벌컨 기관포와 12.7mm 바렛(Barret) 대물 저격총으로 사냥이 가능했다.

문제는 최하급 레드몬도 매우 민첩하고 빨라 한두 방에 처리하지 못하면 난폭해진 놈에게 당할 수 있었다.

또한, 회복력과 재생력이 매우 뛰어나 작은 상처는 금세 아물고, 청력과 시력, 후각 등도 매우 발달해 사정거리 안까지 접근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급 레드몬은 최하급 레드몬보다 최소 2~3배 이상 강한 레드몬으로 강철마저 찢어발기는 파괴력과 단단한 가죽,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군대도 피해를 보는 레드몬이었다.

하급 레드몬은 RPG-7 대전차 로켓은 있어야 사냥이 가능한 놈들로 20mm 벌컨포로 잡으려면 십자포화로 제대로 걸려야 잡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이런 레드몬들이 도로와 철길에 출몰하는 일이 잦아 간혹 대형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2시간을 달려 강원도 강릉에 도착한 후에야 내가 16살짜리 어린 꼬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정부는 레드몬 위험지역을 지도로 만들어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 엉터리로 지도에 나와 있는 레드몬의 서식지가 실제와 다른 경우가 태반이었다.

더구나 정부에서 파악조차 못 한 레드몬도 많아 지도를 따라가다간 이승을 하직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었다.

16살에 간신히 학교 교육의 허실을 깨닫게 된 난 그래도 운이 좋아 앞자리에 앉은 30대 아저씨의 이야기에서 조금이나마 레드몬에 대해 알게 됐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아저씨는 레드몬 사냥팀에서 보조사냥꾼으로 일하고 있었다.

보조사냥꾼은 레드몬 사냥팀에서 사체운반과 탐색, 노가다 등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을 말했다.

아저씨는 강원도 강릉을 연고로 하는 레드몬 사냥팀 ‘신선’에서 보조사냥꾼으로 일하고 있었다.

입담이 센 아저씨는 자신의 무용담과 레드몬의 무서움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장장 12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어 됐다.

기차에 탄 호기심 많은 승객이 아저씨의 무용담을 듣기 위해 술과 안주를 들고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1985년은 인터넷도 휴대전화기도 없던 시대라 신문과 뉴스가 아니면 레드몬에 대한 얘길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운 좋게 만담꾼 아저씨의 맞은편 창가에 앉아 공짜로 재미난 이야기를 12시간이나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아저씨의 이야기 솜씨는 대단해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치 내가 능력자가 되어 레드몬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자 개미가 기어 다니듯 온몸이 간지럽고 따끔거리다가 종래엔 고열까지 시달렸다.

얼굴은 시뻘게 달아올랐고, 이마와 머리엔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심장마저 터질 듯 쿵쾅거려 온몸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아저씨는 상기된 내 얼굴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고 느끼는지 연신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아저씨 얘기를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주제에 이 기회가 아니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귀중한 정보였다.

아침 일찍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14시간 만에 강릉역에 도착했다.

아저씨의 이야기도 강릉에서 들어서는 순간 기가 막히게 끝을 맺었다. 사람들은 한바탕 재미난 경극을 본 것처럼 신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밀치며 기차를 빠져나갔다.

모든 사람이 내리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급히 기차에서 내려섰다. 2월의 강릉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로 맹추위에 전신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온 듯 뿌연 수증기가 한참이나 올라오다 영하 10도의 추위에 서서히 사그라졌다.

이상한 건 그토록 아프던 몸이 피곤함과 추위는커녕 알 수 없는 상쾌함과 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릉역을 빠져나와 역 근처 허름한 여인숙에 5,000원을 내고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봐야 얼기설기 꿰면 가방에 구멍 난 팬티 두 장과 양말 두 짝 그리고 해진 바지 바지와 구멍이 숭숭 뚫린 난방이 전부였다.

남들에겐 쓰레기나 다름없지만 이게 내가 가진 전 재산이자 유일한 옷이었다.

따뜻한 물조차 나오지 않는 세면장에서 몸을 씻고 땀 냄새에 전 옷을 빨았다. 기차에선 몰랐는데 여인숙에 들어오자 코가 썩을 만큼 악취가 심했다.

까맣다 못해 오물같이 시커먼 때가 옷과 몸에 가득했다. 세면장에 있는 빨랫비누로 10번이 넘게 문지르고 씻어내자 그제야 지독한 악취가 가셨다.

상쾌하게 목욕을 끝내고 방에 돌아와 눅눅한 이불에 몸을 뉘었다. 평소 같으면 허기진 배와 피곤으로 금세 곯아떨어졌을 텐데 오늘은 피곤하긴 고사하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 잠조차 오지 않았다.

강릉을 연고로 하는 신선 공대는 힘에 특화된 피지컬리스트 김갑수가 공대장으로 능력자 12명과 보조사냥꾼 30명으로 구성된 레드몬 사냥팀이었다.

능력자는 힘, 민첩, 체력, 정신력의 네 가지 수치를 가지고 피지컬리스트와 멘탈리스트로 분류했다.

멘탈리스트는 정신력 수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피지컬리스트는 공격형은 힘, 원거리형은 민첩, 방어형은 체력 수치에 크게 좌우됐다.

능력자는 다시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능력자로 구분했다. 최하급 능력자는 타격력과 스피드 모두 떨어져 주로 정부나 군대에서 일했고, 하급 능력자부터 레드몬 사냥팀에서 활동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당장 거처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주머니 속에 든 27만 원으론 변두리인 강릉에서도 몇 달을 버틸 수 없었다.

16살 치고는 아주 작고 볼품없는 난 145cm의 키에 35kg의 몸무게로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학력도 중학교 2학년 중퇴라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먹고살며 돈이라도 모아 장가라도 가려면 체력을 키워 만담꾼 아저씨처럼 보조사냥꾼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중국집이나 식당에 취업해선 미래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더러운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고 싶진 않았다.

모질고 독하게 살아남아 남들처럼 호사를 누리며 살고 싶었다. 태어난 것이 가난하다고 일생을 그렇게 살기엔 가슴속에 쌓인 증오와 분노가 너무도 컸다.

기필코 성공해 억울하게 죽어간 엄마의 원한을 풀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었다.

그게 이 더러운 세상에 내가 복수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 작품 후기 ============================

4월 1일부로 많은 부분이 바뀐 레드문이 새롭게 연재됩니다.

내용부터 형식, 등장인물, 레드몬 능력 등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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