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Loose and Tight (4)
“와, 진짜 어렵다. 두 번 하는 거라서 더 어려운 것 같아.”
온기현이 죽는소리를 하며 카페 테이블 위 종이 더미로 풀썩 엎어졌다.
“그러게. 그 교수는 혁명 어쩌고 하면서, 막상 평가 방식 레퍼토리는 작년이랑 바뀌지를 않네.”
류주호도 마찬가지로 동의를 하며 응수했다.
전체적으로 우드 자재를 사용해 인테리어한 카페 내부는 편안하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황빛의 은은한 조명이 곳곳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조용한 재즈 선율이 귀를 편안하게 하고 따듯한 감성을 자극하는 아로마 계열의 향이 코끝에 맴돌아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이 카페는 둘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곳이었다.
집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고, 학교에서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이 카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매일같이 한가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주인이 카페에 신경을 덜 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메뉴 구성이나 커피 맛에 상당히 공들인 티가 났다.
첫눈에 보자마자 자신의 맘에 쏙 든 카페를 류주호도 좋아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공부하거나 리포트를 쓸 때, 그리고 동시에 밖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싶을 때 이 카페를 즐겨 찾게 됐다.
이곳은 어느 순간부터 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카페에는 손님이 딱 류주호와 온기현 둘뿐이었다. 둘은 마주 보는 방향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눈치챘을 때는 이미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의자가 가까워져, 결국 테이블 밑으로 서로의 손을 꼼지락댈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일단 내가 주제를 몇 개 생각해 왔거든.”
“진짜?”
류주호의 말에 온기현이 반색하며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류주호의 노트북을 같이 들여다봤다. 재수강하게 된 이번 수업은 운 좋게도 단둘이서만 조 모임을 하게 됐다. 올해는 조 구성이 자유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거 봐. 이런 주제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 그러게. 와, 완전 많이 조사했다. 이거 다 언제 한 거야?”
감탄스럽다는 듯 와아, 하고 입을 벌리면서도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마 류주호는 당장 취업이 절실할 것이다. 류주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이 매우 극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졸업하는 학기도 허투루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다른 취준생들은 보통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는 수업 한두 개만 수강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기에 바빴다.
하지만 류주호는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벌써 저랑 같이 듣는 수업만 해도 세 개나 되었다. 류주호가 수강 변경 기간에 온기현을 따라 강의를 변경한 탓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스터디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자신과 찰싹 붙어 다녔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온기현이 마우스로 스크롤을 쭉 끌어 내리며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차근차근 머릿속에 집어넣던 때, 류주호가 심상하게 대꾸했다.
“방해꾼들이 없으니까 금방 하게 되던데.”
“방해꾼…….”
우물거리며 같은 말을 되뇌었다. 류주호가 말하는 방해꾼들이란, 지난 학기와 같이 무임승차를 기대하는 뻔뻔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때를 상기한 온기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나도 그렇게 큰 전력은 아닌데, 사실…….”
온기현이 새삼스럽게 그렇게 읊조렸다. 그때 제가 조장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떻게 보면 깡다구를 부린 것에 가까웠다. 스스로가 멋쩍어졌다. 그러자 류주호의 중저음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래? 나한테는 너무나 큰 전력이라,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 죽겠는데. 매일매일.”
“놀리지 마.”
괜한 공치사에 민망해서 괜스레 류주호의 다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에 턱을 괴고 얼굴을 모로 돌려 온기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류주호가 씨익 웃었다.
“자꾸 건들면 뽀뽀하고 싶어져.”
“허.”
순간 놀란 발에 힘이 들어가 다리를 퍽 차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때리면 키스하고 싶고.”
“뭐어? 왜 때리면, 아니. 야. 너 밖에서 그러지 좀 말라고 했지, 내가. 우리 안 그러기로 했잖아.”
대낮의 변태스러운 발언에 온기현이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말소리를 죽였다. 눈을 세모꼴로 치켜떴다. 하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뽀뽀에서 키스로 단계가 발전한 후에는 거의 급물살을 타듯 키스의 빈도가 높아졌다. 거의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술을 부딪치고 혀를 얽었다.
이제는 입맞춤은 예삿일이었다. 거의 인사처럼 주고받는 가벼운 키스도 그렇고, 입술이 퉁퉁 불어 터질 정도로 질척하게 섞는 키스도 그렇다.
하지만 그러다가 조금 더 분위기가 짙어져, ‘위험한데.’라고 느끼는 순간에는 온기현이 먼저 몸을 물렸다. 스스로 감도가 예민해졌다고 느끼기는 했다.
그리고 아직은 좀, 류주호와 깊게 맞물리는 게 거북스럽기도 했다. 마음의 저항감이 조금 남아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류주호도 마찬가지로, 키스는 진하게 해 오면서도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물러서는 태도 또한 그렇게 미련이 남는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요새 그런 류주호를 보며, ‘얘도 지금의 거리가 딱 좋은 거구나.’ 하는 약간 실망스러우면서도 다행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딜레마에 살짝 빠져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듣기는 했었다. 동성끼리는 굳이 삽입하지 않는 관계도 많다고 말이다. 예전에는 충동과 관성에 의해 몸을 섞었던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마음 없이 몸만 남는 관계라 어떻게 보면 지금보다 훨씬 유대감이 부족한 행위라고 생각됐다.
지금처럼 충만하게 안이 차오르고 행복감에 매일이 기다려지는 만족감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다. 류주호의 진심은 온기현에게 와닿았고, 온기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 밉고 진절머리가 난 적은 있을지언정 류주호를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래서. 약간의 애무와 간지러운 흥분만으로도 만족하는 관계라면, 그것도 나름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요새 들어 도통 제어되지 않는 제 신체 반응이 문제긴 했지만.
그리고 이렇게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온기현이 무어라 한마디 하면, 류주호도 선선히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했다.
결국 류주호는 그냥 저를 놀리고 싶은 것이다. 매번 제가 펄쩍 뛰며 놀라는 반응을 보이니 그게 재밌어서 그러는 거다.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의 짓궂은 성미가 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생크림이 가득 올려져 있고 자바칩이 위에 듬뿍 뿌려진 스무디를 굵은 빨대로 쭉 빨았다. 혀가 얼얼할 정도의 달달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우자, 행복하고 노곤한 감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며 입가가 흐물흐물 풀어졌다.
“그렇게 맛있어?”
“응. 너도 먹어 볼래?”
온기현이 빨대를 내밀려다가 제 타액이 닿아 자국이 남은 것을 보고 아차, 싶어서 그대로 손을 물렸다.
“잠깐만 기다려 봐. 빨대 하나 더 달라고 할게.”
“아니.”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려 하자, 류주호가 그런 온기현을 말로 막았다. 그러더니.
쪽.
느닷없이 후드를 머리 위로 확 뒤집어쓴 류주호가 고개를 기울이더니, 온기현의 입술을 소리 나게 살짝 빨았다. 그리고 은근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달다.”
“헐…….”
완전히 벙쪄서 말을 잃은 채 입을 벌린 온기현이 순간 화들짝 놀라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카운터 너머의 카페 주인도 어디 갔는지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지만, 새가슴처럼 심장이 콩닥거렸다.
“너 미, 미쳤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아무도 안 봐.”
“볼 수도 있지.”
“아무도 안 보여 줄 건데.”
“그렇게 말한다고 안 보이는 게 되냐? 헉, 저거 봐. CCTV 있잖아.”
“저거 고장 났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너 진짜…….”
진짜…… 큰일이다.
우리 진짜 큰일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스킨십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자꾸만 밖에서도 류주호와 닿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사귀기 시작했을 때야, 막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던 때였고, 또 아직 류주호를 향한 해묵은 감정이 풀어지지 않았던 때여서 서먹서먹하고 그랬다. 그리고 찌든 때가 낀 것처럼, 예전 류주호가 했던 못된 말이 생각나서 함께 있더라도 가끔은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류주호는 그런 온기현의 속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온기현의 처진 눈꼬리가 가느다란 호선을 그릴 때까지 연신 애정 어린 말을 귓가에 퍼부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허물어져 가던 마음의 얇은 유리 벽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있었다. 완전히 마음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것은 신체적인 접촉에서도 드러났다.
저번에는 학교에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류주호의 손을 덥석 잡으려다가 제풀에 깜짝 놀라서 류주호를 퍽, 밀어 버린 적도 있었다. 아야, 하고 장난스레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린 류주호를 보며 괜히 제풀에 성질을 내 놓고서는, 결국 나중에 집에 와서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입술을 빨렸다.
아무리 요새 세상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특히 대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는, 제아무리 머릿수가 많다 하더라도 모난 돌이 유독 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입방아에 오르기 쉬운 화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항상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류주호는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았다. 예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축제 때 숲 안에서도 그랬고…….
하도 경험이 많아서 그런 걸까.
반면, 온기현은 이런 것에 전혀 면역이 없었다. 누군가를 사귀게 된 자체가 처음이어서 그런지, 더더욱 여러 가지가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비단 동성 간의 관계라서만이 아닐 것이다.
류주호와는 달랐다. 류주호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으로만 축구단을 만들고자 한다면 리그 한 시즌은 뛸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금세 제 속을 다독였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예전에 바라보기만 했을 때는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목격하더라도 오히려 태연하게 넘길 수 있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과거를 반추하며 신경질이 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는 감상도 들었다.
다시금 생각했다. 그랬던 류주호이기에 더더욱,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우리 좀 떨어져 앉자.”
“왜.”
“그냥. 그러고 싶어서.”
온기현은 별일 아닌 것처럼 대답하며 괜히 엉덩이를 좀 더 멀찍이 떨어트리며 제 노트북을 가까이 끌고 와 마우스를 딸각거렸다.
“……왜, 갑자기 그러고 싶어?”
“어?”
순간 바닥을 긁는 듯한 낮은 목소리에 얼굴을 들자, 류주호는 한 손으로 턱을 괸 모습 그대로, 입가에 그린 듯한 웃음을 띠며 저를 빤히 보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의 길게 쭉 뻗은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느릿하게 두들긴다.
공중을 유영하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의 동작을 좇았다.
스포츠 브랜드 로고가 작게 박힌 새까만 후드 티 하나만 걸쳤을 뿐인데도, 시선을 빼앗는 재주가 있었다.
길고 곧게 뻗은 콧날과 깊은 눈매가 어우러져, 어떤 옷을 걸치더라도 언뜻 우수에 젖은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이놈은 거적때기를 걸쳐도 아마 하이패션이라고 칭송받을 것이다. 바투 깎았던 옆머리는 어느새 좀 자라, 눈꺼풀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갈래로 흐트러진 모양새까지도 잡지 모델처럼 미끈하고 잘생겼다.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저만 이렇게 매번 넋을 놓고 쳐다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류주호가 아무리 저를 좋아한다고 절절한 고백을 해 왔더라도, 그래도 제가 이제껏 류주호에게 반했던 횟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작게 쿵쿵거리며 후끈해지는 심장과는 달리, 괜히 불퉁한 말이 튀어나왔다.
“뭐. 그러면 안 돼?”
“…….”
“너무 막 붙어 있는 거 그냥, 좀 가끔.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날씨도 점점 따듯해지니까 덥기도 하고.”
얼렁뚱땅 가져다 붙인 대꾸를 하며 시선을 화면에서 떼어 내지 않았다. 그냥 의미 없는 스크롤질만 드륵드륵 해 댔다.
“…….”
그러다가 류주호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선을 들어 류주호 쪽을 흘긋 쳐다봤다.
“……이제야 봐 주네.”
“어…….”
류주호는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기현아. 나 밀어 내지 마. 자꾸 불안해지니까.”
그리고 약간은 농담조로 덧붙였다. 류주호의 시선이 온기현이 마시던 음료수의 빨대 끝을 향했다. 그것까지 모조리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양, 그윽한 시선이었다.
머리 위를 덮는 새까만 후드 탓인지, 류주호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네가 그렇게 밀어 낼 때마다 나는,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이야. 순식간에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
“정말 이러다가 잠깐……. 아주 잠깐 정신을 놓으면, 손도 쓸 수 없는 범죄자라도 될 것 같아.”
허. 온기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야, 무슨 비유를 그렇게 해. 네가 무슨 범죄자야. 농담이라도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 마.”
“……진짠데.”
“야아, 너.”
얘 삐졌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먹히지도 않을 재미없는 농담을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것을 보니 삐진 게 확실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나 저거 안 사 주면 숙제 안 할 거야, 라고 떼를 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류주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시선을 허공으로 던지고 있었다.
‘진짜 삐졌나 보네.’
아마 예전이라면 무표정한 류주호를 보며 이런 감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지금, 연결된 마음이 점점 단단해져 가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요즘으로서는 그저 류주호의 뚱한 얼굴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게 좀 귀여웠다. 아니, 많이 귀여웠다.
“주호야.”
온기현이 조그맣게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쪽.
허리를 내밀어 볼에 입술을 눌렀다가 얼른 뗐다. 후다닥 몸을 물렸다. 류주호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괴고 있던 턱이 천천히 위로 들렸다. 놀란 눈이 저를 빤히 응시했다. 저도 해 놓고서는 왜 저렇게 놀라는지. 괜히 헛기침을 하던 때.
류주호가 대뜸 낮게 욕을 지껄였다. 그러더니 빠른 동작으로 후드를 깊게 눌러쓰더니, 대뜸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허리를 숙여 멀찍이 떨어져 있던 온기현의 입을 위에서부터 감쳐물었다.
“읍.”
“하아.”
온기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류주호가 내쉬는 따듯한 숨과 함께 코 속으로 청량한 체향이 들어찼다. 머리 위로 진 그림자가 다시금 물러났다. 온기현이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쩐지 어른 몰래 나쁜 장난을 친 꼬마애가 된 느낌이다. 문득 웃음을 참지 못한 온기현이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었다. 하지만 푸스스 새는 바람 빠진 소리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을 보는 류주호의 눈이 마치 꿈결을 노니는 듯 몽롱함을 띠며 옅게 빛났다.
테이블 아래로 두 개의 손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서로 얽혔다.
빈틈없이 맞물린 그것을 꽉 맞잡았다.
* * *
두 사람은 노을이 거리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카페에서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서 자취방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근처 공원에 들렀다. 너무 넓지 않고 벤치 몇 개와 가로등만 군데군데 세워진 이 공원은 인적이 드물고 동네 사각지대에 위치해, 예전에는 불량 청소년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주민들의 항의로 인해 야심한 시각에는 주민들이 번갈아 가며 순찰을 돌게 되어 찾는 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겨울보다 길어진 해 덕분에 가로등과 노을빛이 만나 공원 주변을 수북하게 둘러싼 나무의 잎과 밑동이 진한 주홍빛을 띠었다.
함께 밥을 먹고 산책 겸 두세 번 온 적이 있는 공원은 오늘도 한산했다.
“와, 밤에는 좀 쌀쌀하다.”
온기현이 맨투맨 소매를 손등까지 길게 빼어 잡으며 작게 부르르 떨었다. 한 손은 류주호의 손에 붙잡혀 있어서 왼손을 꼼지락거리며 소맷단 안으로 둥글게 말아 넣었다.
밖에서 접촉하는 것에 다소 껄끄러움을 느끼는 온기현과는 달리, 류주호는 카페에서 그랬듯, 어디에서건 항상 자신의 체온과 닿으려고 했다.
제가 말하는 건 다 들어줄 것처럼 말은 번지르르 잘하더니.
류주호는 온기현이 질색을 하면 알겠다고 하면서 잠시 물러났다가, 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꼭 이렇게 어딘가를 닿아 왔다. 마치 이렇게라도 닿아 있지 않으면 온기현이 어디로 도망가기라도 할 것처럼 약간 강박적인 불안 증세로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뽀뽀나 키스는 절대로 하지 않았지만,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손잡는 것 정도야 용인해 주는 편이었다.
“내가 웃옷 걸치고 오랬잖아.”
류주호가 부드러운 뺨을 살며시 감싸 쥐며 제 체온을 나눠 줬다. 그러자 기현이 작게 도리질 치며 손을 떨궈 냈다.
“밤에 입을 카디건 같은 거 하나 사야겠다. 인터넷으로.”
“내가 준 건 왜 안 입고.”
“아, 그거…….”
온기현이 말끝을 흐렸다. 어느 날 류주호가 봄옷 하나를 가져오며 너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선물해 주었다.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며 잘 입을게, 하고 웃는 온기현을 보고 류주호는 한차례 꽉 끌어안고서는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류주호는 계속해서 하나씩, 하나씩 옷을 사 왔다. 예전에도 온기현에게 이것저것 입히고 싶어 했던 류주호다.
아무리 예전과 같은 금전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만 원, 2만 원도 열 번 모이면 10만 원이 되기에, 사 오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리고 그 뒤에, 류주호가 사 준 옷을 학교에 입고 갔던 온기현은 이윤규의 한마디에 파랗게 질렸다.
“형! 이거 그거 아니에요? 명품 그거 존나 비싼 거, 맞죠. 오오, 대박. 저 이거 사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넣어 둔 지 몇 달 됐는데.”
“명품? 에이, 아니야. 그냥 되게 싼 걸 텐데.”
“잉? 형은 형이 입고 있는 옷도 몰라요? 이거 이 무늬랑 여기 박음질 특이하게 돼 있는 거. 딱 그거예요.”
“아……. 그래? 그럼, 이거 짝퉁이다.”
“짝퉁이에요? 헐.”
“응. 짝퉁 맞아.”
“……형, 미안한데 저 태그 한번 까 봐도 돼요? 혹시 내가 사려는 것도 짝퉁인가 비교해 보려고요.”
이윤규의 말에 온기현이 선뜻 목덜미를 빼내어 보여 줬다. 이윤규는 이게 절대로 짝퉁일 리가 없다며, 짝퉁이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결국 집에 가서 류주호에게 물어본 온기현에게 류주호는 매장에서 산 거라서 짝퉁 아니라며 안심하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에 차마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걸 사는데?’라며 말하지는 못하고,
“이제 나한테 옷 같은 거 사 오지 마. 나 옷 많아.”
라고 거절했다. 류주호는 마뜩잖은 얼굴을 하고는 제가 하고 싶어서 사 오는 거니까 받기만 하라고 했지만, 기현은 한사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류주호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다른 핑계를 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네가 고르는 거 내 취향 아니야. 그냥 내가 사는 게 나아.”
“그래? 그럼 같이 가서 고를까?”
“아니. 싫어. 안 갈래.”
“예전에는 같이 갔었잖아.”
“그때는 네가 갑자기 끌고 간 거고. 나 원래 매장 가서 옷 사는 거 안 좋아해. 진짜. 인터넷이 짱이야. 가만히 있어도 배송 해 주고. 택배 받을 때도 즐겁고.”
온기현이 박박 우기며 코를 찡그리자, 류주호는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왜. 내가 옷 사 주는 게 다른 흑심이라도 있는 걸까 봐서 그래?”
라고 조용하게 물었다.
“뭐어?”
그에 놀라 고개를 휙 돌리며 대답했다.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거였다.
“무슨 흑심?”
“내가 너……. 하. 아냐.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사 주는 거야. 취향에 안 맞으면 같이 가서 바꾸면 되고. 응? 그냥 받아 주라.”
온기현이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싫어. 괜히 돈 들어.”
“이 정도 가지고 그래.”
“됐거든.”
지금은 둘 다 아껴서 저축해야 할 때였다. 옷이야 계절마다 적당한 두께의 것만 잘 찾아 입으면 그만이었다. 짝퉁이나 사고 말이야.
고집스러운 온기현의 말에 류주호가 잠시 멈춰 섰다. 그에 온기현도 덩달아 발을 멈춰 옆에 선 류주호를 사선으로 올려다봤다.
“난 너한테 뭐든 다 해 주고 싶어.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 뭘 입어도 뭘 먹어도 예쁘고 좋아서.”
“……또 느끼한 말.”
“진짠데.”
“알았어.”
“진짜라니까.”
“그래그래. 암튼 저축이 최고야. 저축 많이 해 두자, 우리. 청약 저축도 하고. 음, 나중에 둘 다 취직하면 연금 저축도 들고 그러자. 어, 또 뭐 있지?”
류주호가 가끔 이렇게 진중하게 던지는 느끼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류주호의 말을 끊고 막 앞으로 가려던 때였다. 제 오른손을 쭉 잡아당겼다. 류주호는 가만히 서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온기현이 왜 그러냐며 입을 벙긋거렸다. 류주호의 등 뒤로 뉘엿뉘엿 지던 석양이 완전히 도심 속으로 숨어들어, 사위가 점점 어둑해졌다. 순간 빛이 사라지며 밤과 낮의 경계에 선 류주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눈이 찰나의 어둠에 익숙해졌을 때, 류주호는 마치 제 안에서 주체할 수 없게 넘치는 감정을 형언하는 언어를 찾지 못해 헤매는 사람처럼, 멀거니 서서 아득한 시선만 온기현에게로 던지고 있었다.
“어…….”
그에 덩달아 말문이 막혔다. 영문 모를 표정으로 류주호를 돌아보던 온기현이 뒤로 끌리듯 비틀었던 상체를 류주호에게로 돌리던 때였다.
지잉― 지잉―.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며 울렸다. 주머니에서 부르르 떠는 핸드폰의 감각이 느껴졌다.
“아. 자, 잠깐만.”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잡았던 손을 빼고는 주머니에 꽂힌 것을 빼내었다.
“어?”
핸드폰의 발신자명에는 ‘감후석’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얘가 어쩐 일이지?’
그리고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류주호가 물었다.
“누구야?”
“어? 아니, 후석, ……이.”
물 흐르듯 질문에 대답하려던 온기현의 말이 살짝 어물거리며 줄어들었다. 그리고 잠깐 어색한 공기가 둘을 덮쳤다. 그러고 보니, 경찰서 앞에서 감후석과 통화를 했던, 부러 이용했던 일이 불시에 떠올랐다.
아, 망했다.
그 일에 대해서 류주호는 아예 없었던 일처럼 치부하며 묻지조차 않았고, 자신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
말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니 제 친구인 연채우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감후석과 연인 관계이므로 성별에 대해서도 알게 될 텐데 그의 성적 지향성을 제 입으로 털어놓는 게 맞는지 헷갈렸다.
“받아 봐.”
“응?”
번쩍 고개를 들었다. 류주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긁적이다가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아냐. 별일 아니겠지.”
“……그래?”
“응.”
“중요한 일이면 어쩌려고.”
“아닐걸? 나중에 다시 전화해 보지, 뭐.”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일인지 나는 궁금한데. 나름 친해져서 서로 집까지 아는 사이 아니었어? 난 그런 줄 알았는데.”
“아, 응. 맞아. 과에서 좀 친해져서. 동갑이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로 지내기로 해서…….”
“그렇구나.”
미묘하게 중심에서 벗어난 질문이었다. 핵심을 부러 피해 확신에 차서 물어보는 말이었다. 당황해선지, 말을 해도 자꾸 혀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얼렁뚱땅한 말에도 류주호는 그저 단조롭고 부드러운 어투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실 괜히 찔려서 땅바닥만 보고 있느라 그림자로만 알 수 있었다.
쭈뼛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류주호는 어투와는 다르게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온기현의 시선을 느낀 류주호가 손을 들어 제 입과 턱 부근을 감싸듯 가렸다. 그리고 순간 표정 관리를 미처 못 한 것이 낭패라는 듯 곤란한 표정을 한 그의 미간이 미미하게 좁혀졌다.
놀란 눈을 깜빡거렸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되었다. 속이는 거 없이, 서로 기만하는 거 없이, 제대로 새로 시작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나, 나 사실.”
류주호가 온기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짓말했어.”
“……무슨, 거짓말.”
그 말에 류주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여전히 손으로는 입을 가린 채였다. 문득 팔을 당기는 힘을 느꼈다. 류주호의 손등 위로 힘줄이 불거지며, 온기현을 잡은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사실, 나.”
“…….”
“후석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음?”
류주호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아니 오히려 ‘사과는 빨갛다’처럼 당연한 말을 들었다는 듯 의아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냥, 그때는 너 떼어 놓으려고 거짓말한 거였어. 격의 없이 지내게 된 거는, 사실 내 고향 친구랑 감후석이랑 엄청 친한 사이여서. 나도 덩달아 가끔 같이 어울리면서 좀 친해진 거야.”
“…….”
“…….”
털어놓고 보니 정말 별거 아니었다. 두다다 빠르게 말을 뱉은 온기현이 류주호의 앞에 마주 보고 서서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나머지 손으로 류주호의 한쪽 손을 마저 잡았다.
“그럼.”
조용한 저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응.”
“네 애인은 누구야?”
심상한 질문이었다. 느닷없고, 새삼스럽지만, 또 당연한.
온기현이 배시시 웃었다.
“류주호.”
입 안에 구르는 음절이 간지러웠다. 내 애인, 류주호.
몇 년 전에는 상상이나 했었을까. 류주호와 이렇게 애틋한 사이가 되리라고. 불시에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새삼스럽게 우리가 이런 사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류주호가 팔에 힘을 주어 제 품에 온기현을 가두고 어깨를 빠듯하게 끌어안았다.
사랑해.
그가 귓가에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다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음으로써 뭔가 속에서 북받친 듯 조금 더 억눌린 음성으로.
“하아……. 사랑해. 온기현.”
라며 나직한 탄성과 함께 다시금 달콤한 언어를 귓가에 속삭였다.
온기현도 등 뒤로 팔을 둘러 그를 꽉 안아 주었다. 문득 류주호의 등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실루엣이 짙푸른 어둠 속에서 완전히 하나로 엉켰다.
약간 들뜬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장을 보고는, 류주호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제철 과일인 딸기로 후식까지 챙겨 먹었다.
이제는 여분의 칫솔을 류주호의 자취방에 가져다 놓은 터라 마치 제집인 것처럼 씻고 양치까지 한 기현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욕실에서 나온 온기현이 매트리스 위로 올라가 벽에 등을 댔다. 오늘은 어쩐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붙어 있고 싶었다.
엄청나게 긴 영화를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노트북을 앞으로 끌어 러닝 타임이 최대한 긴 영화가 뭐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류주호도 씻고 나왔다. 머리의 물기를 수건으로 탈탈 떨며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먹는 뒷모습을 흘긋흘긋 쳐다봤다.
“뭐 재밌어 보이는 거 있어?”
“어, 응. 이거 재밌을 것 같아.”
온기현이 찾은 것은 러닝 타임이 장장 네 시간이 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였다.
류주호는 그러자며 기현과 마찬가지로 벽에 기댔다.
몸이 가까이 붙자마자 살냄새와 류주호의 남성적인 체향이 섞인 냄새가 훅 끼쳤다.
바깥 공기는 아직 쌀쌀한데. 갑자기 후끈거리는 열감이 느껴졌다. 맞닿은 팔뚝으로 전해져 오는 온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적인 반응에서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어쩐지 좀 더 달라붙고 싶었다. 사실 맘 같아서는 류주호의 몸에 문어처럼 딱 달라붙어서 당장의 행복을 음미하고 싶었다.
새까만 화면이 보이고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영화가 시작됐음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단침이 입 안에 고였다.
“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안타까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볼 부근이 뜨끈했다. 홍조가 올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제 욕심을 어떻게 가눌 수가 없었다. 온기현이 팔을 뻗었다. 그리고 류주호의 딴딴한 팔을 살며시 잡았다. 누가 봐도 의도가 있는 것 같은 몸짓이었지만, 온기현은 제가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호야, 나……, 응……!”
“하아…….”
하지만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류주호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급박하게 틀어 얼굴을 위로 덮었다. 가벼운 키스에서 진한 것으로 천천히 바뀌어 가는 그런 평소의 것이 아니었다. 아예 처음부터 혀를 삽입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류주호가 살덩이를 이용해 기현의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축축한 것을 밀어 넣었다.
평소와 달랐다. 이전의 행위들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에 나누었던 간질거리고 달콤한 그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저항 없이 벌어진 목구멍에서 헐떡거리는 소리가 마구 흘러나왔다. 방만하게 풀어진 성감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둘 사이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그저 속을 훤히 내보여도 좋을 사이라는 믿음이, 온기현의 마음의 자물쇠를 완전히 풀어 헤쳤다.
“아으응……! 흐……! 응…….”
“하아, 후. 기현아…….”
하지만 그건 류주호도 마찬가지였다. 연신 온기현의 이름을 입 안에 머금으며 입 안을 샅샅이 훑었다. 치열 뒤쪽의 점막과 입천장을 비비고 찌를 때는 온기현의 허리가 위로 움찔거리며 튀었다. 입술 사이로 흐르는 침조차 류주호는 입술을 이용해 빨아 댔다. 그에 입술 주변이 금세 질척하게 젖어 갔다.
중심이 힘을 받아 일어서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마 류주호가 옆에 앉았을 때부터 그랬을지도 몰랐다. 온기현의 허리를 단단하게 붙잡고 벽으로 찍어 누르듯 입술을 부딪쳐 오는 체중도 기꺼웠다. 위압적으로 느껴질 법한 커다란 몸이 그저 위안이 되었고 믿음이 갔다. 그래서 온기현 또한 류주호의 어깨와 팔뚝을 두 손을 이용해 만지고, 또 손바닥으로 류주호의 감촉을 오롯이 느꼈다.
혀뿌리가 얼얼할 정도로 혀가 빨리자 순간 찌릿한 느낌이 등줄기를 시작해 온몸을 펑펑 터트렸다.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몸짓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류주호도 시선으로, 촉감으로, 청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흐……!”
아래위 입술 또한 번갈아 빨려서 피가 몰려 금세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자꾸만 발끝이 곱아들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 앞을 가릴 생각도 못 한 채 침대 시트 위를 발가락으로 밀고 당겨 댔다.
류주호가 손을 올려 온기현의 귓바퀴로 가져갔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여린 살을 부드럽게 쓸었다. 깜짝 놀란 온기현이 살짝 버둥거렸다. 완전히 발기한 성기 끝에 고인 액체가 속옷을 빠르게 적셨다.
‘만지고 싶어, 앞에…….’
남자로서의 본능이었다. 너무 일어서서 아프기까지 한 그곳을 표피째로 세게 문지르는 쾌감이 어떤지 알고 있는 몸이 손을 절로 앞으로 뻗게 했다. 가물거리는 눈을 떠서 아래가 어떤지 보고 싶었다. 그때 류주호의 입술이 추웁, 소리를 내며 살짝 떨어졌다.
“……하아, 하아…….”
류주호의 눈빛은 흥분 속에 절여져 잔뜩 가라앉아 있었음에도, 온기현의 속내를 파헤칠 욕구로 점철되어 있었다.
“기현아, 하아……. 우리, 각자 만질까……?”
“……하으, ……응……?”
류주호가 온기현의 얼굴 곳곳을 입술로 눌러 대며 속삭였다.
“각자, 너는 네 거 만지고, 나는 내 거, 만지는 거야……. 어때?”
“아…….”
날숨이 닿는 부근마다 온도가 확 올라갔다. 속눈썹을 부르르 떨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 다음에는 뽀뽀, 그리고 키스, 또 그다음은 이것.
키스만으로도 이렇게 버거운데, 류주호가 제 것을 만지면 정말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예전과 같은 감각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아직 닿는 부분은 입술만으로도 족했다.
맞붙은 입술을 두고 얕게 헐떡이며 눈을 질끈 감은 채 제 얇은 잠옷용 바지의 허리 밴드에 손가락을 걸쳤다.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힘을 받아 작게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발기한 성기를 미친 듯이 손바닥에 비비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고 벌벌 떨리는 손이 자꾸만 밴드를 퉁기며 헛손질을 했다.
겨우 고무줄을 늘이며 허리춤으로 손을 집어넣은 온기현이 제 바지를 엉덩이께까지 끌어 내렸다. 어디까지 내려야 하는 걸까. 잠시 주저했다. 그때, 류주호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며 면바지 끝단을 손으로 그러쥐고는 밑으로 잡아 내렸다. 머뭇거리던 손이 허공에서 잠시 팔랑였다. 엉덩이에 걸쳐졌던 속옷까지 한꺼번에 벗겨져 아래가 완전히 알몸이 됐다.
‘헉…….’
순식간에 외기가 살결에 맞닿아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제 성기는 완전히 기립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릎을 조금 오므리려 하다가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그리고 아래를 바라보고 숨을 삼켰다.
류주호의 짙은 색 트레이닝 바지의 앞섶이 완전히 위로 솟구쳐 있었다. 보기에도 갑갑해 보일 정도로 면이 찢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그것을 보던 온기현의 목에서 끙 하는 소리가 났다.
고양되는 성감에 어지러운 탓인지 벽에서 등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쪽, 추웁, 쪽. 다시금 혀가 만나 뒤엉키고 타액이 섞였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선단에서 액체를 뚝뚝 흘리는 성기에 손을 가져갔다.
흐읏. 손이 닿자마자 허리가 팟 튀었다. 절로 다리 사이가 벌어졌다. 류주호 앞에서 자위를 한다는 개념조차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괴로울 정도로 고여 있는 열기를 해소하고 싶은 본능에 손으로 성기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대로 다른 동작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손만 꼼지락대고 있었다.
“으읏……, 흐으…….”
“하아…….”
난잡하게 엉켰던 살덩이가 떨어졌다 붙는 것을 반복하며 질척하게 젖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벽을 짚고 허리를 숙이고 있던 류주호가, 제 남은 한 손으로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온기현이 무릎에 힘을 준 채로 시트를 바깥으로 밀어 대다가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그런 류주호의 동작을 눈에 담았다.
마찬가지로 밴드가 걸린 듯 류주호도 한 손으로 바지를 벗기가 쉽지 않아 보였지만 앞을 먼저 들어 올린 채로 아래로 쑥 내렸다. 온기현은 호흡이 덜컥 끊기며 아래가 확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류주호의 성기는 보기에도 아플 정도로 커다랗게 발기해 있어, 어스름한 사위 속에서도 그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류주호의 커다란 손이 비현실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살 기둥을 천천히 감싸 쥐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아, 미쳤, 어…….’
마치, 예전의 그 포르노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작금의 이것은 너무나 생생하여, 그런 화면 너머의 영상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남자답게 뼈가 불거지고 굵은 핏줄이 불거진 손이 마찬가지로 여기저기 성나서 불퉁거리는 빳빳하게 꿈틀거리는 좆을 덮었다. 온기현은 손을 멈춘 채로 그것을 멍하니 쳐다봤다. 류주호의 자위라니. 헤벌어진 입 안에 자꾸만 침이 고였다.
아래위로 한차례 스윽 훑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동작이었으며 아찔할 정도로 음란했다.
류주호는 그런 온기현의 시선을 느껴서 부러 그러는 건지, 엄지로 제 귀두 끝을 한번 문질렀다. 프리컴이 살덩이에 뒤엉겨 쿨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귀가 아릿할 정도의 야한 목소리로 온기현을 진득하게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움직여.”
그제야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류주호의 아랫도리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기현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다시금 입맞춤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아까의 것과 달랐다. 부드럽지도, 감미롭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눈물이 쏙 뽑혀 나올 정도로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목구멍으로 신음을 흘리며 키스를 겨우 받아 냈다. 그리고 움직이라는 류주호의 말을 상기해, 손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응……! 으, 하, 으……!”
거의 앓는 소리가 연신 터졌다. 류주호의 목울대가 심하게 불거졌다. 자꾸만 거친 음절을 짓씹듯 내뱉으려다 참는 것처럼 이따금 온기현의 입술을 이로 잘근 깨물기도 했고,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고개를 앞뒤로 움직이며 입 안으로 쑤셔 넣기도 했다.
몸이 금세 허물어졌다. 등이 주르륵 미끄러지고, 그에 허리가 90도로 접힌 모양이 되며 다리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온기현은 무아지경으로 손을 움직였다. 류주호의 아래를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제 것과 손이 마찰해 자아내는 젖은 소리만이 공간을 메울 뿐이었다.
류주호의 허리도 같이 숙어지며 점점 매트리스 아래로 무릎을 내리게 됐다.
“……기현아.”
“……흐.”
축축한 입술 새로 부르는 말에 대답도 뭣도 아닌 대꾸를 했다.
“구멍 빨고 싶어.”
“응……?”
“네 구멍, 씨발, 빨고 싶어. 기현아.”
제발, 응? 빨게 해 줘.
말 중간에 섞인 상스러운 욕설과 상반되는, 숨소리처럼 애원하는 소리에 기현의 뇌가 순간 텅 비어 버린 것처럼 멍해졌다. 노골적인 그의 요구에 예전의 기억이, 아래를 거세게 빨렸던 그 엄청난 쾌감의 감각이 상기되며 허리가 잘게 흔들렸다.
지금 온기현은 부끄러움과 수치에서 한 발자국 멀어진 상태였다. 서로의 것을 각자 애무하는 행위가 언뜻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성적 행위를 행하게끔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류주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몸을 아래로 훅 내렸다. 그리고 힘없이 벌어져 있던 온기현의 양 허벅지를 콱 틀어잡았다. 살짝 엉덩이가 들리며 사타구니가 훤히 노출됐다.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몸을 섞은 이래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래를 드러낸 적이. 류주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허벅지를 잡은 손끝에 빠듯하게 힘이 들어가서 부드러운 살이 움푹 파일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는지, 뒤에 설핏 힘이 들어갔다. 그에 자동적으로 구멍이 잘게 열렸다가 닫혔다.
언뜻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류주호가 매끈한 음부로 얼굴을 처박아 왔다.
“흐아……!”
갑작스레 닿은 훈기에 온기현이 깜짝 놀라서 허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류주호는 마치 며칠이나, 아니 몇 달이나 굶은 사람처럼 코를 박고는 아래를 게걸스럽게 빨기 시작했다.
“아, 아, 흐, 아아……!”
온기현이 드문드문 끊기는 신음을 내지르며 펄쩍 뛰었다.
류주호는 혀를 이용해 구멍 주위를 둥글려 타액을 흠뻑 묻히며 애무했다. 살굿빛의 주름이 어둠 속에서 번지르르 빛을 띠었다. 여리게 떨리는 근육이 벌름거릴 때마다 좀 더 진한 빛의 점막이 좀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듯 벌름거렸다. 보는 사람의 이성을 앗아 가는 광경이었다.
류주호는 씨근덕거리는 상체를 좀 더 낮게 내리고는 허벅지를 제 양어깨 위로 얹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래를 탐하기 시작했다. 터럭 하나 없이 미끈한 터라 아무런 걸리는 것 없이 쭉 뻗은 코가 회음부 살갗에 깊게 짓눌렸다.
“아아, 주, 주호, 야아……! 흐, 으……!”
온기현이 자지러지며 쾌감에 잠식된 신음을 터트렸다. 류주호는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아래를 혀로 들쑤셨다. 끝을 뾰족하게 세운 살덩이를 급박하게 구멍으로 박아 넣었다. 처음에는 단단하게 다물려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그곳이 점점 눅진하게 풀려 새빨간 혀를 집어삼켰다.
아래가 벌어지며 혀가 내벽을 핥고 빠는 느낌에 목을 확 뒤로 젖혔다. 온기현의 입꼬리에서는 침이 줄줄 샜다. 그리고 흥분의 극점을 찾아가듯 한 손으로 제 성기를 어설프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질척하게 젖은 아래를 강하게 빨린 탓에 자꾸만 새된 소리가 터졌다. 허리 아래가 물에 젖은 솜처럼 온통 축축한 느낌이었다. 머리털이 바짝 솟을 정도의 찌릿한 쾌감과 더불어, 몸에 힘이 쭉 빠질 정도의 눅진한 탈력감이 번갈아 찾아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류주호는 마치 초점을 잃은 사람처럼 구멍 안쪽뿐만이 아니라 회음부를 거세게 빨기도 하고, 흥분에 굳어 있는 고환을 입에 넣고 쭉쭉거리며 둥글리기도 했다. 온기현의 손이 덮고 있는 성기를 제외한 모든 곳이 류주호의 입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죄 젖어 갔다.
절정이 눈앞이었다. 온기현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신음했다. 어설프게 손을 아래위로 치대며 움직였다. 류주호도 마찬가지로 리듬에 맞추듯 얼굴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구멍에 혀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류주호가 순간 “크흑……!” 하고 거친 신음을 구멍 안으로 쏟아 내더니 혀를 박은 채로 온몸을 굳혔다.
“아, 아……!”
동시에 온기현이 희뿌연 액체를 토해 냈다. 가슴과 어깨까지 끈적한 액체가 튀었다. 류주호는 근육이 터질 정도로 몸에 힘을 준 상태였다. 그의 아래에서는 엄청난 양의 정액이 바닥으로 울컥울컥 토해지고 있었다. 온기현의 구멍을 빨면서 제 좆에는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사정한 것이다.
“하아……, 하아…….”
온몸이 축 늘어졌다. 허벅지 아래를 받치고 있던 손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매트리스 아래로 잠기듯 완전히 뻗어 버린 온기현이 가슴팍을 아래위로 들썩거렸다.
겨우 사정을 끝낸 류주호가 후희를 즐기듯 얼굴을 위로 조금 들어, 기현의 사타구니를 혀로 전부 핥아 댔다. 그리고 코로 기현의 힘 빠진 손을 옆으로 밀더니 사정 후에 잔뜩 예민해져 있는 온기현의 성기를 입에 담았다.
“으응……! 아, 그, 마안…….”
류주호의 머리카락을 잡고 당겼다. 말처럼 그만두라는 의도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쩔 줄 몰라서 손이 닿는 부근을 휘어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류주호에게는 오히려 그게 더 흥분을 돋궜는지, 대뜸 혀끝을 내밀어 선단에 고여 있는 정액을 남김없이 제 입 안으로 가져가 삼켜 버렸다.
펄쩍. 허리가 위로 튀었다. 가뜩이나 잔뜩 예민해져 있는 감각들이 무서울 정도로 선연했다. 동시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렸다. 안쪽을 꽉 채우며 두들기는 느낌이 주는 쾌락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 저도 모르게 자꾸만 더한 것을 갈망했다.
“흐으……. 주호야…….”
“응, 기현아…….”
류주호는 착실히 대답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아래를 노닐고 있었다. 류주호는 혀를 빼내어 온기현이 배 위에 토해 낸 희멀건 액체의 궤적을 따라 전부 핥았다. 뱃가죽을 혀로 진득하게 핥아 내고, 늑골 부근에서는 입술을 모아 액체와 함께 살갗을 쭉 빨아당겼다.
“무, 너 뭐 해. 그거 너, 흐…….”
“여기까지만 먹을게, 여기까지만.”
몸을 붙인 채로 점점 위로 얼굴이 올라왔다. 옆구리와 겨드랑이, 그리고 명치 부근까지 샅샅이 핥아 낸 류주호 때문에 티셔츠가 완전히 위로 들려 구겨졌다.
순식간에 어깨 아래부터 완전히 나체가 된 온기현의 몸에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류주호의 머리가 가슴께까지 도달했다. 순간, 너무 오랜만에 맡은 류주호의 살냄새가 코 속으로 들이닥쳤다. 지독히 야한 냄새라고 생각했다. 류주호는 흥분에 젖으면 이렇게까지 야한 냄새가 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아래가 다시 긴장되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더 달라붙고 싶었다. 좀 더 강하게, 좀 더 깊게.
류주호는 잠시 밭은 숨을 내쉬다가 매트 위를 팔꿈치로 짚어 어깨를 세웠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양의 류주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류주호는 무언가를 참는 듯 어깨 근육 위로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온몸을 굳혔다.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저릿했다. 헉헉거리던 숨이 조금씩 잠잠해졌다. 류주호가 막 몸을 물리려던 때, 온기현이 그를 막았다.
“주호야, 나……, 으, 가슴……, 가슴 빨아 줘…….”
제 가슴께로 손을 올렸다. 류주호는 제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파악이 안 된 듯 눈을 깜빡거리며 온기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해 줘……. 응? 읏……. 가슴, 여기…….”
딱딱해진 유두가 그 뜨거운 입 속으로 강하게 흡입되는 감각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제 손가락으로 어색하게 유두 끝을 건드렸다.
얼른……. 안타까운 마음에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정적 속에 수치심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류주호의 눈이 돌아간 것도 동시였다.
“아, 기현아……. 아, 씹. 너 왜 이렇게 야해. 사람 돌아 버리게.”
“흣……!”
류주호가 욕설을 짓씹으며 얼굴을 아래로 급박한 몸짓으로 내렸다. 그리고 진한 살굿빛으로 솟아오른 한쪽 유두를 입 안으로 가져가더니 세게 빨아당기기 시작했다.
“아, 흣!”
눈앞에서 별이 튀었다. 상당히 오랜만의 자극이었음에도 신체는 마치 지금만 기다렸다는 듯 예민하게 반응했다. 허리가 위로 들리고 가슴을 더욱 내미는 듯한 자세가 됐다. 류주호는 기대에 철저히 응하듯 등 뒤로 팔을 끼워 넣어 단단히 받치고는 본격적으로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하아……. 너 때문에 미치겠어, 기현아……. 매 순간, 너랑 있을 때마다, 씨발. 좋아서 죽고 싶어.”
죽어 버리고 싶어.
류주호는 질척이는 타액 소리와 함께 그렇게 읊조렸다. 유두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깊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 속이 얼마나 애타고, 또 지독한지 단순히 이 말만으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깊이였다.
류주호는 게걸스럽게 가슴에 달라붙었다. 이를 이용해 잘근 하고 가볍게 씹다가 다시 입을 벌려 유륜까지 한 번에 머금어 입 속에서 추웁,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빨아들이고,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유두를 짓누르는 짓거리를 반복했다.
이제껏 이걸 못 해서 어떻게 참았는지 싶을 정도로 몰두한 모습이었다. 아플 정도로 쉽게 느끼는 온기현의 반응을 기민하게 알아채며 팔뚝에 더욱 힘을 주고 꽉 옭아매었다.
“그, 하으, 아……! 흣, 아, 하으, 응……!”
벙긋거리는 입에서 울먹임과 함께 무절제한 신음이 흘렀다. 애써 죽이려 했지만, 숨을 쉬려 입을 열 때마다 속절없이 터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빨아 댔을까. 앞이 얼얼하고 따끔할 지경이 되어서야 류주호가 얼굴을 떼어 냈다. 입술을 적시고 가슴께를 흠뻑 적신 타액이 실처럼 길게 늘어졌다.
“하아…….”
류주호의 눈이 번득였다. 제가 마구잡이로 빨아 대서 안쓰러울 정도로 퉁퉁 부어오른 새빨간 젖꼭지와 반대편의 옅은 분홍빛을 유지하고 꼿꼿이 서 있는 것이 대조적이었다. 그게 눈깔이 돌아 버릴 정도로 음란했다.
이대로 가두어 버리고 싶다. 아예 바깥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게 젖꼭지를 매일같이 빨아 대서 크기를 잔뜩 키운다면 어떨까.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유두에 바람만 닿아도 바짝 일어서서는 제가 내내 빨아 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몸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런 음험한 생각이 뇌리를 가득 메웠다.
그러다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래서 저같이 수치를 모르고 애초에 태어나기를 개 같은 성질로 태어난 새끼한테는 뭐든 쉬이 허락해 주면 안 되었다. 제 목줄을 쥔 이는 온기현이었다. 제 욕심대로 할 수는 없었다. 뼈저리게 느꼈고, 뼈아프게 깨달았다. 온기현을 또다시 놓쳐 버린다면, 그때는 정말 제가 어디까지 날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제가 범죄자가 되어 버릴 거라는 말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너 없으면 사람처럼 못 살아가.
범죄자가 돼서, 쓰레기처럼 길바닥에 구르면서 살아갈 거야.
그런 얘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네가 도망가 버릴 거 같아서.
류주호가 그대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뻑뻑한 눈두덩이를 누르고는 마른세수를 하며 그대로 몸을 물리려 했다.
하지만 온기현이 그런 류주호의 팔뚝을 휙 잡았다. 열기가 올라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류주호를 바라봤다.
“어디, 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왜…….”
“……나 지금 너 다치게 할 거 같아. 그러기 싫어.”
“…….”
그답지 않게 스스로에게 자제를 거는 류주호의 말에 온기현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가 자신을 다치게 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상관없었다. 당장 지금, 온기현은 류주호와 더욱 깊게 이어지고 싶었다.
축 늘어져 있던 상체를 힘겹게 일으켰다. 그러더니 류주호의 어깨에 매달려 그의 입술을 어설프게 머금었다. 그러더니 사선으로 체중을 실어, 류주호를 아예 매트리스 위로 밀어 넘어트렸다. 순식간에 위치가 반대로 바뀌었다.
“하아, 하아…….”
류주호의 배 위를 손바닥으로 지탱하고는 무릎으로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류주호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미 스크린세이버마저 꺼져 버린 깜깜한 노트북 화면 때문에, 오로지 둘을 비추는 것은 창에서 넘어오는 어슴푸레한 달빛뿐이었다.
손을 뻗어 류주호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하나하나 되짚듯이 더듬으며 동시에 티셔츠를 위로 끌어 올렸다.
“……기현아.”
“……벗, 어…….”
류주호의 그르렁대는 음성에 잠시 망설이던 온기현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가당치도 않은 명령조의 말에 류주호가 홀린 듯 누운 채로 티셔츠를 위로 잡아끌어 벗었다.
류주호의 상체가 달빛 아래 오롯이 드러났다. 벗은 상체를 정면에서 똑바로 본 것은 몇 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비가 내리던 날은 옆모습만 간신히 눈에 담았었다.
목구멍에서 꿀꺽, 하고 침이 삼켜졌다. 천천히 손바닥을 이용해 류주호의 단단한 몸을 조심히 쓸었다. 애무도 뭣도 아닌 단지 스치기만 하는 감각에도 류주호는 괴로운 듯 미간을 찡그렸다.
“하.”
그의 입에서 낮게 긁는 한숨과 같은 소리가 터졌다. 온기현은 가슴을 얕게 들썩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기세 좋게 그를 넘어트리긴 했지만, 약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였다.
그렇게 더듬대던 손을 뒤로 뻗었다. 아까 전 서로 같이 내놓고 각자 만지기로 했던 성기를 저도 만지고 싶었다. 불룩한 장골을 짚다가 우북한 음모가 손끝에 걸렸다. 그리고 겨우, 류주호의 음경을 손에 담았다.
아…….
순간 류주호의 몸이 단단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온기현은 제 손안에 맥동하는 그것을 슬며시 감싸 쥐었다.
너무 뜨거웠다. 전부 손에 담기지 않아 보지 않아도 완전히 발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으으…….”
“기현아, 아, 온기현…….”
자꾸만 애타게 부르는 탓에 무릎에서 스르르 힘이 빠졌다. 배 위에 털썩 주저앉게 된 자세 탓에 엉덩이 골에 류주호의 성기가 밀착되어 닿아 왔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너무 가깝게 붙어서 손이 잘 닿지 않아,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류주호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리고 양손으로 온기현의 엉덩이를 덮고는 가득 짓뭉개질 정도로 움켜쥐었다. 기현의 입에서 흑, 하고 울음 섞인 소리가 터졌다.
“기현아. 하…….”
말과 동시에 류주호의 손이 엉덩이 살 아래를 비집고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쪽 손은 온기현의 얼굴로 내밀었다. 손가락 세 개를 모아 내민 그것의 의미를 기현도 알고 있었다. 이미 예전에도 했던 행위다. 정해진 듯 입을 벌려 류주호의 손가락을 머금고는 타액을 묻혀 슬며시 빨았다.
질척하게 젖은 그것을 류주호가 아래로 들이밀었다. 무릎이 잠시 세워진 틈을 타, 엉덩이 구멍 사이로 주름을 조심스레 덧그리다가 손가락 하나를 먼저 집어넣었다.
“흑…….”
불쑥 찾아온 이질감에 몸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동시에 간질거리던 안으로 침범해 오는 손가락을 환영하듯 내벽이 요동치는 것도 느껴졌다.
“기현아. 그거 알아? 너 지금 엉덩이, 흔들려.”
“으……. 몰라……. 아……!”
도리질 치는 온기현의 상체가 아래로 훅 꺼졌다. 이미 진득한 구강 애무로 인해 조금 벌어졌던 곳이다. 손가락 두 개가 순식간에 구멍으로 빨려들어 갔다. 류주호가 빠르게 아래를 들쑤셨다. 두 개였던 손가락이 세 개로 늘어난 것도 부드럽게 삼켰다. 뒤이어 찔걱거리며 빠르게 치대는 소리가 울렸다.
온기현이 허리를 움찔거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안이 빠르게 젖어 갔다. 정체 모를 액체들이 뒤섞여 음란한 소리를 자아냈다.
류주호의 말마따나 엉덩이가 절로 움직였다. 리듬에 맞춰서 흔들리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안으로 퍽 치달았던 손가락을 불시에 쑥 하고 빼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이미 눅진하게 풀어진 내벽이 더한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었다. 바들거리는 무릎을 겨우 세워 아래로 내려갔다.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을 더듬어 다시금 그의 성기 밑동을 그러쥐었다.
류주호가 온기현의 엉덩이 밑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설핏 올렸다. 날카롭게 꽂히는 시선과 함께 나직하게 읊조렸다.
“나 죽여 줘, 기현아.”
“아…….”
온기현이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감질날 정도로 느린 동작 끝에, 프리컴으로 죄 젖은 뭉툭한 귀두가 입구를 벌렸다. 동시에 둘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
“큭……!”
무릎이 덜덜 떨렸다. 오로지 온기현의 의지만으로 삽입하는 체위임에도, 어쩐지 힘겹기 그지없었다. 무릎을 내려 점점 하체를 아래로 가라앉히다시피 하며 아래로 류주호의 성기를 삼켜 갔다.
너무 버거운 크기였다. 이전에 배 속 깊숙이까지 이것을 비비고 쑤셨던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윽, 천천히. 응…….”
아이를 어르듯 둔부를 토닥이는 류주호의 말에 온기현이 입을 헤벌리며 조금 더 엉덩이를 내렸다. 구멍이 한계까지 벌어진 느낌이었다. 하도 느릿하게 삽입한 터라 통증은 없었다. 이러느니 차라리 아예 빨리 넣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읏……!”
풀썩 주저앉은 온기현의 입에서 차마 막지 못한 신음이 터졌다. 입을 벌린 채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안이 빠듯하게 조여들면서 오랜만의 침입자를 반기듯 꽉꽉 물어 댔다. 입가에 침이 고였다.
아래를 움직일 정신을 차릴 새는 없었다. 류주호가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다. 삽입 직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졌던 제어의 끈이, 단 한 번의 깊숙한 삽입으로 인해 끊어졌다.
류주호가 복근이 조밀하게 죄어들도록 상체를 반공중으로 들었다. 그러고는 기현의 엉덩이를 붙잡고 들어 올리더니, 살이 맞붙는 마찰음이 울릴 정도로 한껏 찍어 내렸다. 마른 몸에 대비되는, 손아귀에 가득 잡혀 말캉하게 짓눌린 엉덩이 살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아, 흐, 아, 아……!”
온기현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터졌다.
눈앞이 시뻘게졌다. 온몸이 탈 듯이 뜨거웠다. 동시에 가슴께가 미칠 듯이 간지러웠다. 지옥 불이 절절 끓는 나락에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부드러운 깃털이 간질이는 천상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찔한 이 기분을 앞으로 평생 느끼면서 살아갈 거라 생각하니 급작스럽게 엄청난 쾌감이 밀려들었다. 어설프게 남자를 깔아뭉개고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이 그 쾌감에 방점을 찍었다. 앞으로 수도 없이 보게 될 광경이었다. 언제든지 온기현이 원하면 원하는 만큼, 저는 그 아래에 몸을 낮추고 온기현의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 아……. 주호야, 나……. 흐, 아……. 주호야…….”
온기현이 울먹임과 함께 이름을 불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찌르르하게 아플 정도로 애틋했다.
“나, 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보니 저가 움직이는 것에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한 삽입이 몸에 부담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온기현은 체력적으로도 저와 차이가 컸다. 아무리 류주호가 엉덩이를 잡고 움직여 준다 한들, 힘겹기는 매한가지였다.
앞으로는 수도 없이 하게 될 이 체위에 온기현이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응. 알았어.”
내가 박아 줄게.
선뜻 그렇게 말한 류주호가 아래를 맞물린 채로 몸을 일으켰다. 온기현의 입에서 흑, 하고 앓는 음성이 흘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류주호는 온기현의 바르작거리는 다리를 벌리고는 제 허벅지 위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등 뒤로 팔을 둘러 한 품에 가득 들어오는 온기현을 껴안는 자세로 온기현의 등을 벽에 맞붙게 했다.
“흣, 으…….”
벽과 류주호 사이에 가두어진 채로 온기현이 남자의 어깨를 간신히 붙들며 바들거렸다. 한계까지 벌어진 내벽을 성기가 내리 짓뭉개고 있었다. 안에서 끈적한 애액이 흘러서 점막에 맞붙은 음경 전체가 눅진하게 젖어 있었음에도, 힘껏 죄는 압박감에 온몸이 뻐근하게 당겼다.
“하아, 잘 봐.”
류주호가 하얀 허벅지를 제 것으로 단단히 받쳤다. 굽힌 무릎 탓에 근육이 터질 듯이 불거져, 물컹한 살이 짓눌린 것과 선연히 대조됐다. 류주호가 온기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살냄새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잠긴 음성으로 속삭였다.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 줄게.
그 말과 동시에 류주호가 허리를 조금 뒤로 물리더니, 앞으로 힘껏 자신을 밀어 넣었다.
온기현의 입에서 헉, 하는 턱 막힌 소리가 났다. 그걸 시작으로 류주호의 귓가에 음란한 신음이 내리쏟아졌다.
퍽, 퍽, 퍽!
아까의 삽입은 마치 장난이었던 듯, 류주호가 본격적으로 허리를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내벽이 차지게 달라붙어, 허리를 물릴 때면 새빨간 점막이 가지 말라는 듯 음경을 있는 힘껏 죄어 왔다. 온몸에서 피가 터질 정도의 엄청난 쾌감이었다. 관자놀이에 푸른 핏줄이 돋고, 이를 악문 턱이 뿌득하고 불거졌다.
온기현의 입에서는 발음이 제대로 영글지 않은 요사스러운 음성만이 좁은 목구멍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류주호는 온기현의 등이 벽에 마찰해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팔을 둘러,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 바람에 온기현은 육중한 몸에 의해 거의 찌그러진 것 같은 자세로, 버둥거릴 공간의 틈도 없이 그저 전신을 꽉 잡힌 채 아래가 들쑤셔지고 있었다.
“읍, 흐음, 쫍, 흐…….”
격렬한 허릿짓과 동시에 온기현의 입술에 계속해서 키스를 퍼부었다. 숨이 모자라서 고개를 저어 돌리는 것도 굳이 쫓아가 입술을 맞대었다. 눈꼬리에서 흐른 눈물까지 죄 혀를 내밀어 핥아먹었다. 혼몽한 정신에 그걸 키스로 착각했는지 저도 마찬가지로 혀를 내밀어 오는 온기현을 달래듯 다시금 난잡하게 혀를 얽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감각이 세상에 있을 수가 있는지. 온몸이 잘게 저며지는 듯한 극치의 감각이었다. 정말로 이대로 온기현에 의해 죽어 버린다고 해도, 그가 저를 죽여 버린다고 해도 흔쾌히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쾌감이었다.
류주호는 연신 아래를 처박으며 슬쩍 허리를 둥글게 말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주름 하나 없이 벌어진 구멍으로, 검붉은 성기가 뿌리까지 들어갔다가 나왔다. 저 좁다란 곳이 흡사 흉기 같은 살덩이를 욕심 사납게 먹어 치우는 광경이 꽤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씹…….”
전율이 두개골을 세게 강타하고 등줄기를 따라 내려왔다. 극치의 쾌감에 아랫배와 사타구니를 잇는 음모 사이로 핏줄이 불퉁하게 불거졌다. 그리고 내벽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액체가 엉망으로 뒤섞여, 음모와 커다란 좆에 지저분하게 엉겨 있는 모습 또한 골이 띵할 정도로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자세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류주호가 온기현을 침구 위로 눕혔다.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여서 기현은 시야가 바뀌는 것도 모를 정도로 쾌감에 휩싸여 있었다.
온기현의 허리가 위로 붕 떴다. 자세를 잡은 류주호가 위에서 찧듯이 허리를 쾅 내리박았다. 안이 무참히 짓뭉개지는 감각에 눈을 홉뜬 기현의 입에서 비명과 닮은 새된 소리가 터졌다.
크게 헐떡이며 절박하게 류주호의 어깨를 붙잡은 온기현을, 가슴팍이 맞붙을 정도로 끌어안았다. 허리를 크게 둥글려 안을 휘저었다. 그러자 온기현이 류주호의 어깨를 퍽 때리며 진저리 쳤다.
“하, 으, 안 대애……! 하, 아, 아, 아아……!”
“왜, 읏. 왜 그래. 뭐가, 하, 안 되는데.”
아이를 어르듯 대꾸하는 말 중간중간에 쪽, 춥, 하는 입술의 젖은 마찰음이 섞였다.
“나, 흑, 아……! 소리, 읏, 옆, 옆방……, 흐으, 아.”
옆방에 자신의 신음이 들린다는 얘기였다. 예전에도 방음 때문에 자취방에서 섹스를 만류하던 온기현이었다. 이제까지 그만큼 방만하게 신음을 질러 놓고는 지금에야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진심으로 사람 돌아 버리게 하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온기현은.
“괜찮아. 여기 아래, 위, 옆방 전부 다. 사람 안 살아.”
“머……? 아, 흑, 아, 아아, 아!”
의아해하며 물을 틈도 없었다. 류주호가 온기현의 어깨를 꽉 쥐어 결박한 채 미친 듯이 허리를 짓찧기 시작했다. 거센 움직임 속에서 정신이 몽롱했다. 온몸의 세포가 전부 일어서 촉각을 세우며 날뛰는 느낌이었다. 근육들이 단단히 죄어져 왔다.
“하아, 소리 내. 기현아. 윽, ……소리, 들려줘.”
고막이 저릿할 정도의 달콤한 목소리로 그렇게 온기현에게 속삭였다. 온기현의 턱에 입술을 눌러 살짝 빨고, 콧잔등 위의 까만 점 위에도 혀를 내리눌러 핥아 댔다. 하지만 깃털 같은 목소리와는 달리 하체는 철퍽 소리가 나도록 광포하게 놀리는 중이었다.
류주호의 말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제어되지 않는 것인지, 온기현의 입에서는 새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목쉬겠는데. 안쓰러운 생각은 잠깐이었다. 어떤 명곡보다 감미로우며 어떤 약보다 더 중독성 있는 음성이라고 생각했다. 고막을 열어 온기현의 소리를 전부 쑤셔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기현이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그대로 제 가장 깊은 곳에 집어넣고 싶었다. 오롯이 소유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다. 온기현이 다른 곳을 쳐다볼, 그 어떤 가능성조차 배제하고 싶었다.
정말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거센 욕구였다.
류주호는 그런 마음을 차곡차곡 갈무리해 부드러운 키스로 담아 온기현의 입술을 머금었다. 아이처럼 제가 주는 타액을 받아먹는 온기현의 행동을 보며 아래가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쾌감이 더욱 팽창되어 갔다.
“아, 온기현……. 기현아.”
철퍽, 철퍽. 고환이 둔부에 부딪치는 마찰음이 노골적으로 울렸다. 온기현의 성기에서 질질 흐른 액체가 마른 뱃가죽을 적셨다. 상체를 딱 맞붙인 탓에 류주호의 가슴팍에도 마찬가지로 미끈거리는 온갖 난잡한 것들이 넓게 비벼졌다.
흥분에 못 이긴 온기현의 허리가 꾸물꾸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박자에 맞춰 뒤로 갈 때는 잠시 주춤했다가, 류주호가 샅을 처박으면 저도 허리를 가깝게 끌어 올려 율동했다. 본능적으로 제가 기분 좋은 곳으로 유인하는 듯한 동작 같기도 했다.
‘하.’
야한 몸이었다. 좁디좁은 안과 깊숙한 배 속을 굵은 것으로 들쑤시는 것을 이제는 온전한 쾌감으로 받아들인 몸이었다. 류주호가 아니었으면 아마 평생 알지도 못했을.
순간 화가 치밀었다. 저에게 던지는 분노였다. 조금 더 천천히 할걸. 이런 거 알려 주지 말걸. 시뻘건 목 줄기에 핏대가 불거졌다.
“흐읏, 으……, 흣, 조아……, 좋, 아…….”
주호야, 주호야.
무자비하게 아래가 들쑤셔지면서도 벼랑에라도 매달린 듯 갈급하게 류주호를 부르는 음성에 금세 희열에 휩싸인다.
류주호는 이를 악물면서도 착실히 대답해 주면서 아래를 휘저었다. 상체를 세워 아래를 내려다봤다. 거친 음모가 하얀 둔부 살에 비벼져 새빨갛게 부풀었고, 작은 엉덩이 사이로 커다란 성기를 품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새빨갛게 익어 물을 뚝뚝 흘리는 성기까지도.
갑자기 쑥 성기를 빼낸 류주호가 느닷없이 온기현의 성기를 입 안에 머금었다.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쭉쭉 빨던 그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온기현의 예민한 살갗을 혀로 핥고서는 다시금 몸을 들어 퍽, 아래를 쑤셔 넣었다. 그 짓을 간헐적으로 반복했다.
철퍽!
온기현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벌어진 목구멍은 완전히 쉬어서, 더 이상 새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헤벌어진 구멍은 열심히 좆을 삼키면서도 계속해서 죄어 왔다. 격렬하게 쾅, 내리찧는 몸짓에 온기현이 팔다리를 굳히며 허리를 들었다. 사정감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온기현이 매트리스를 손 갈퀴로 긁으며 아아, 하고 가느다란 비명을 터트리더니 온몸을 굳혔다. 팟. 성기에서 물이 터졌다. 한차례 정액이 뿜어져 나왔음에도 분출이 멈추지 않았다. 부러 안을 느리게 왕복하며 온기현의 성기를 손으로 감싸 애무했다. 온기현이 허리를 뒤틀며 투명한 물을 연신 쏟아 냈다.
“흐아, 아아…….”
“허억…….”
이윽고, 뇌수까지 함께 안으로 쏟아 낼 것만 같은 지독한 절정이 후두부를 강타했다. 류주호가 욕설과 함께 내벽으로 정액을 사출했다. 요도구에서 터진 끈적한 액체가 여러 번 멈출 줄 모르고 끊임없이 안을 채워 나갔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잔열을 안으로 쏟아붓고자 느리게 치받는 허릿짓을 두어 번 하며 정액을 마저 쥐어 짜냈다. 그럴 때마다 핏, 핏 하고 온기현의 새빨간 귀두에서 같은 박자로 물이 튀었다.
“하아……. 하, 씹…….”
핑, 하고 눈앞이 돌았다. 벌어진 입의 혀까지 얼얼한 느낌이었다. 부들부들 떠는 경련이 멈추지 않았다. 몸속을 순환하는 혈액조차 움직임을 멈춘 것 같은 지독한 절정이었다.
류주호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쾌감의 여운을 그득그득 짓씹고는 서서히 눈을 떴다.
“하아……, 하아…….”
마찬가지로 멍한 눈으로 숨을 헐떡이는 온기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류주호는 허리를 숙여 빈틈없이 온기현을 품 안에 넣고 끌어안았다. 덜미에 코를 박고는 폐부 가득 모자랐던 숨을 보충했다.
“기현아……. 사랑해. ……사랑해.”
온기현, 사랑해.
목구멍이 죄이는 것처럼 작고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읊자, 저에게만 들리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사랑해…….
류주호가 괴로운 듯 미간을 찡그렸다. 찐득한 토심이 온몸을 지배했다.
영화를 보다가 온기현이 물었었다. 넌 나랑 만나지 않았으면 어떨 뻔했냐고.
흔한 연인들의 대화처럼, 난 너를 반드시 찾아낼 거야. 그리고 너랑 어떻게든 사랑할 거야. 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탈색된 것처럼 새하얘졌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런 시답잖은 가정조차 우리 사이에 끼어들게 하기 싫었다.
미친 듯이 불안한 이 감정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체취뿐이었다. 맞닿은 살갗의 감촉, 체온, 너의 웃음.
류주호는 술렁거림을 스스로 다독이듯 재차 사랑의 언어를 입에 담았다. 아무리 입 밖에 내어도 부족한 그 말은, 류주호가 할 수 있는 가장 지리멸렬하고도 최선의 표현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그는 품 안의 축축하고도 따듯한 온기를 좀 더 빠듯하게 끌어안았다.
“……으, 으…….”
몸이 무지근했다. 눈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꺼끌거리고 목구멍에서는 개구리가 우는 것처럼 괴상한 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이 축 늘어진 상태였다. 손끝을 까딱이자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어제…….’
멍하니 가느다랗게 뜬 눈을 조금씩 깜빡거렸다. 어젯밤, 아니 바로 동이 트기 전까지도 이루어졌던 행위의 기억이 명멸하듯 떠올랐다.
안에 전부 쏟아 내듯 사정한 류주호는 잠시 온기현을 끌어안고 있더니, 곧이어 두 번째 삽입을 재개했다. 눅진하게 풀려 완전히 젖은 내벽을 다시금 꽉 채운 감각이 선연했다. 버둥거리는 온기현의 팔을 제 목에 둘렀다. 다시금 허릿짓이 시작됐다.
그 뒤로 깜빡 잠들었는지 잠시 기억이 끊겼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뿌연 시야로 보인 것은 흐느적흐느적 힘이 빠진 두 다리를 제 널따란 어깨에 얹은 채 격하게 움직이는 류주호의 모습이었다. 그의 날렵한 턱 끝에 고인 땀방울이 제 배 위로 떨어지던 것을 시야에 담는 것을 끝으로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기절한 온기현을 붙들고 류주호가 내리 제 성기로 안을 들쑤셨다. 이제 쏟아 낼 것도 없어 그저 공중에서 가느다랗게 경련하던 온기현의 성기가 뜨거운 입 안으로 집어삼켜지던 장면도 드문드문 떠올랐다.
“……으…….”
온몸이 뻑적지근했다. 물먹은 솜처럼 자꾸만 몸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체 얼마나 해 댄 건지. 일어나려고 용을 쓰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온기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며 팔에 힘을 줬다. 잠자고 있던 온몸의 감각들을 억지로 일깨웠다.
“아……? 으……!”
그때 쿨쩍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래쪽에서 선연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뭐, 뭐, 야…….’
몸을 움직이려다가 놀라서 기함했다. 그리고 그제야 작금의 상황을 깨달았다. 모로 누워 있는 온기현의 뒤에서 똑같이 옆으로 누워 바투 붙어 있는 뜨거운 체온을. 그리고 여태 맞물려 있는 접합부는 완전히 헤벌어져서는 굵은 살덩이를 머금고 있었다.
“……읏…….”
류주호의 습기 어린 숨이 뒷덜미에 느껴졌다. 아직 잠들어 있는 듯 고른 숨소리였다. 마지막 기억이 어땠더라. 그때도 아래가 완전히 벌어져서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안쪽 깊숙이 넣어져 있는 것을 빼내려 허리를 앞으로 움직였다. 찌걱찌걱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직도 발기해서 크게 부푼 그것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입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샜다.
“으음…….”
“힉…….”
뒤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며, 류주호가 잠결에 온기현의 몸을 좀 더 바투 끌어안았다. 그에 겨우 미미하게 빼내었던 성기가 다시금 내벽을 찌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발끝이 곱아들고 목덜미가 부르르 떨렸다.
‘아, 쫌……!’
제 가슴 앞을 가로막은 류주호의 무거운 팔을 겨우 들어 빼내며 다시금 구멍에서 성기를 빼내려 할 때였다.
헉. 깜짝 놀라 숨을 급하게 들이마셨다. 말캉한 입술이 척척하게 젖은 목덜미에 짓눌리며 어깨를 따라 내려왔다. 으음, 하는 나직한 목 울림이 들렸다. 그리고.
“……좆 더 줘……?”
귓가에 붙은 입술이 그렇게 속삭였다. 온기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뒤로 돌리려 했다.
“어……? 너, 깨 있었……, 아……!”
“아…….”
낮은 탄성이 척추를 찌르르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옆으로 누운 채로 류주호가 허리를 슬금슬금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아……! 하지, 하지 마……! 으, 흣…….”
“좆 더 달라고, 음……. 일어나자마자 땡깡 부리는 줄 알았는데……. 하아, 아니었어……?”
“무슨, ……말도, 흑, 안 되는 소리……, 좀……!”
류주호는 춥, 춥 하고 입술이 닿는 습윤한 살갗을 눅진하게 애무했다. 엉덩이가 음모에 비벼져 따가웠다. 좀 더 본격적으로 류주호가 움직이려는 찰나, 울먹이던 온기현이 대뜸 소리쳤다.
“나! 화, 화장실 갈 거야…….”
요의가 급한 것도 사실이었다. 등 뒤로 손을 뻗어 류주호의 몸을 퍽퍽 쳐 댔다. 미약한 힘이었다.
“……같이 가.”
“뭐……? 아!”
류주호가 그렇게 말하며 넣은 자세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끼워 넣고는, 지탱해 주듯 안아서 가볍게 들어 올렸다.
너 뭔데. 하지 마, 진짜. 빼, 빼라고……! 온기현의 항의는 금세 신음으로 이어졌다. 욕실로 향하는 짧은 거리 동안 류주호는 온기현의 몸을 안은 채로 천천히 걸음을 떼며 이동했다.
“자. 다 왔어.”
“흑, 흑……. 빼애……. 빼라니까…….”
엉엉하고 결국 울음을 터트린 온기현의 뒤에서 체중을 지탱한 류주호가 소변을 뉘려 변기 앞에 섰을 때, 온기현이 이를 악물고는 류주호의 팔뚝을 퍽 내리쳤다.
“하지 말라고, 진짜……!”
너무 진저리를 치는 바람에 류주호가 그제야 제 성기를 천천히 빼내 주었다. 하지만. 내리꽂혀 있던 살덩이가 빠져나가면서 그게 잔뜩 예민해진 안쪽을 자극했는지, 결국 참지 못하고 쪼르르 변기 위로 볼일을 보고 말았다.
당황스러움에 눈가까지 새빨갛게 익음과 동시에 새파랗게 질려서는 짜증을 숨기지 못해 울음 섞인 항의를 하자, 그제야 류주호는 “미안해. 응? 미안해.” 하면서 사과하며 온기현을 다독였다.
“내가 빼라고 했잖아!”
류주호를 욕실에서 쫓아내려고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류주호가 겨우 어르고 달래서 욕조에 물을 받고 함께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아직도 화났어?”
“…….”
수치심에 귓불이 새빨간 사과처럼 붉어졌다. 뒤에서 껴안는 자세로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근 류주호가 그런 온기현을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너…….”
“응.”
온기현은 가뜩이나 힘겨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씻는 것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못마땅했다. 자기가 하는 말은 다 들어줄 것처럼 굴어 놓고서는 결국 결정적인 때에 제 맘대로 하는 류주호가 원망스럽고 또 짜증이 일었다.
“너 진짜 뭐야. 어?”
그래서 뒤에서 자꾸만 엉겨 오려는 팔을 확 치우고 그렇게 모난 소리로 물었다.
“뭔데 자꾸 내 말 안 들어주는데. 너 뭐야, 진짜.”
“나? 온기현 좆 셔틀.”
“뭐라고?”
허. 화내는 게 장난인 줄 아나.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뒤로 홱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말이 이어졌다.
“……나? 네 애인.”
“…….”
“……네 거.”
“…….”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이 날렵한 콧날 위로 떨어졌다. 한참 침잠해 있던 눈에 서서히 온기가 스며들었다.
“네 마지막.”
류주호는 그렇게 읊조리고는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려 온기현을 향해 웃어 보였다.
저만의 종착점을 향해, 그렇게 웃음 지었다.
눈썹을 찡그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손바닥을 이용해 물을 튀겼다. 찰박 소리가 나며 류주호의 얼굴이 젖었고, 류주호가 푸흐, 하며 얼굴을 흔들었다. 그에 온기현이 장난스레 킥킥거렸다.
온기현이 없던 지난날이 마치 적막에 감싸여 있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 뿌옇게 스러졌다.
눈을 감아도 들려오는 지금만이 선명했다.
어느 것보다 달콤한 사랑의 소리였다.
<5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