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8화
시후가 날린 탄지신공 한 발이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이화경에 닿자 미끄러지듯 안쪽으로 튕겼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포달랍궁의 승려들.
본래라면 몸 어디엔가 시원한 바람구멍이 났겠지만.
피잉-
붉은색 좌불상 형상이 그들을 보호했다.
그것이은 바로 제갈재민의 명령으로 펼쳐진 라마진이었다.
외부의 그 어떤 공격도 튕겨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포달랍궁의 술진(術陳)이다.
그런데 문제는 라마진에 막혀 튕겨 나간 탄지신공 그 한 발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포달랍궁 승려들을 포위하듯 자리한 어마어마한 수의 이화경.
튕겨 나간 탄지신공이 이화경에 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더한 문제가 발생했다.
핑-
이화경에 닿은 탄지신공이 속도를 더해 포달랍궁 승려들에게로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라마진에 막혀 튕겨 나오고 다시 이화경에 닿아 튕겨 나가고.
이화경과 라마진을 반복적으로 튕기는 탄지신공.
거기에 점점 속도가 붙어 결국에는.
피비- 비핑-
이제는 포달랍궁 승려들을 포위한 누군가가 기관총이라도 쏴대는 것 같았다.
“크악! 강시후!”
그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제갈재민이 고함을 질렀다.
시후는 그 꼴을 보기 위해 탄지신공 한 발에 정성을 포함한 엄청난 내기를 가득 담았다.
‘앞으로 5분은 고생 좀 할 거다.’
쉽게 소멸하지 않을 탄지신공이 저들을 공격하는 동안 시후는 다른 녀석을 챙겨야 했기에 무리했다.
핑-
시후의 목을 베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아 매화검을 휘두르는 평치혁 때문에 말이다.
시후는 그런 평치혁을 주시했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그와 이화경 안에 갇혀 고함을 지르는 제갈재민 사이에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분명 녀석의 저 술법은 반선라마의 것을 진화시킨 거라 했단 말이지.’
조민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탈영활강시 술법은 반선라마가 사용하던 활강시 술법을 진화시킨 거라고 했다.
시후는 그 정보를 토대로 한 가지 추측을 했다.
‘그놈이 그놈인 거야.’
평치혁을 탈영활강시로 만든 술법의 기초가 되는 반선라마의 활강시 술법.
시후는 천 년 전 천마신교 영역에 발을 들여놨던 사령신자를 떠올렸다.
홀로 중원을 넘볼 수단으로 좀비들을 끌고 다녔던 그와 반선라마가 같은 인물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시후는 평치혁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사령신자와 직접 대결한 경험이 시후에게 해결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일전과는 다르게 저런 눈빛을 빛내는 평치혁을 진화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휙휙-
“이렇게 활어처럼 날뛰어서야.”
가만히 송장처럼 누워 있어도 성공할까 말까 한데 죽어라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그 방법을 써먹기 힘들었다.
그래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주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평치혁의 동공이 무섭게 요동치는 것도 봤다.
시후는 목을 베려는 매화검을 피해 뒤로 훌쩍 날아오르며 뒤를 힐끗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크루즈선이 항구에 다다르고 있다.
거기에 크루즈 선수에는 지금 가장 필요한 이가 상당히 불안한 표정으로 어서 크루즈가 항구에 정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후는 다시금 평치혁을 봤다.
좀 전과 다르게 곧장 따라붙어 검을 휘두르지 않는 평치혁.
그것이 조금 전 목소리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박초연!!”
시후는 큰 소리로 박초연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이제는 평치혁이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시후는 확신에 찬 전음을 그녀에게 보냈다.
- 평치혁의 이름을 크게 외쳐.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전음이 닿은 것인지.
“평 장로님!!”
박초연의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휙휙-
부들부들 떨던 평치혁이 갑자기 움직였다.
무엇이 불만인지 검에 흉흉한 기를 가득 담은 상태였다.
“……?”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후는 그 검을 한 치 앞에서 피할 수 있게 천마보를 펼쳤다.
‘뭐가 문제야? 설마?!’
시후는 다시금 박초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 체면 차리지 말고, 너희 둘만 있을 때처럼 불러!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
그런데 좀 전과는 다르게 곧장 박초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시후는 미간을 좁히며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질렀다.
“박초연!!”
그 덕분일까.
“펴, 평! 하!”
박초연의 수줍은 듯한 외침이 들렸다.
“평하? 그게 뭔… 어?!”
둘만 있을 때 하는 아무 말이나 해보라고 했건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싶은 그때였다.
매화이도를 펼치려던 평치혁이 우뚝 멈추었다.
거기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치는 눈동자를 포함해서, 처음으로 무표정한 얼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반응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더!”
시후는 박초연에게 더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평하! 쵸여니~와혀효!”
박초연의 혀 짧은 목소리가 항구를 울렸다.
순간 시후는 평치혁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꿈틀댔다.
그뿐인가.
“이거 닭살이야?”
시후는 팔뚝에 오돌토돌하게 돋아나는 닭살에 부르르 떨었다.
더 대박인 건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던 제갈재민도, 조금 전 박초연의 목소리를 듣고는 입을 다물었다는 거였다.
슬쩍 보니 무언가에 질린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뭐, 됐다.”
시후는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니 되었다 싶어 평치혁을 관찰했다.
요동치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독안공을 펼쳤다.
‘됐다.’
반응이 격한 만큼 그의 심기가 크게 흔들렸고, 덕분인지 그의 몸을 지배하던 제갈재민의 지배력까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일렁-
평치혁의 정수리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휙-
시후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턱-
“좀 아플 거다. 부디 참거라.”
파직-
시후는 당부의 말과 함께 뇌전신공의 기운을 평치혁의 백회혈로 흘려 넣었다.
활강시의 특징 중 하나가 점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았다.
그랬기에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그를 멈추게 하려면 벼락을 몸에 때려 넣어 신경을 마비시키는 게 최선이다.
“크어….”
털썩-
평치혁이 입에서 검은색 연기를 토해내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사이 시후 일행들이 탄 크루즈 선이 항구에 다다랐다.
정박을 위해 배를 돌리고 있지만, 경공술에 능한 자들은 이미 배를 뛰어내렸다.
“모두 주군에게로!”
조민의 지시에 따라 달려온 모두가 시후 주변에 모여들었다.
시후를 중심으로 겹겹이 포위하듯 그를 경호하는 이들.
한눈에도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시후는 순식간에 그들과 포달랍궁 승려들을 저울질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저들이 이화경과 탄지신공에 놀아나는 시간이 끝나게 되면 이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은 벌어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 시간은 바닥에 쓰러진 이 멍청한 녀석에게 사용할 생각이다.
“버텨라.”
“네!”
시후의 한마디에 모두가 사기가 충만해지며 기를 끌어올렸다.
언제든 무슨 일에도 즉각 반응하겠다는 결의가 보였다.
그사이 조민은 바닥에 깃발을 꽂았다.
“오빠, 걱정하지 마세요. 이거 쉽게 뚫릴 진법이 아니니까요.”
“그래. 부탁하마.”
“네!”
조민 역시 시후의 말에 결의를 보이며 포달랍궁 승려들을 주시했다.
시후는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에 평치혁의 백회혈에 다시 손을 올렸다.
“후우, 백치가 되어도 원망하지 말아라. 다른 놈의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움찔-
시후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시후의 살기를 느낀 것인지.
평치혁의 몸이 움찔거렸다.
시후는 피식 웃고는.
“천마흡기공.”
사기를 흡입하는 천마흡기공을 펼쳤다.
* * *
‘여긴… 어디?’
평치혁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자신의 주군인 시후가 나타나자 그의 목에 매화검을 휘두르는 것을 봤다.
절규하며 수없이 매화검으로 자기의 목을 베고자 발버둥을 쳐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절망뿐.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의 지시로 항상 붙어 다니던 박초연 방주.
아니, 이제는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가까워진 그녀의 목소리가 말이다.
문제는 그 후였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몸의 전원이 꺼져버렸다.
‘내가 기계도 아니고, 전원이 나가다니. 그런데 정말 여긴 어디야?’
일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암흑은 아니었다.
뭐랄까.
‘안개가 가득한 호수 한가운데에 홀로 둥둥 떠 있는 느낌?’
그래서일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니 그동안에 자신이 살아온 길이 떠올랐다.
언제나 가면을 쓰고 다니며 대력공방의 눈에 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멍청한 짓들을 골라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주군을 만났지.’
시후를 만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한 고수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고 그의 행보를 뒤따라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손으로 자하신공을 펼쳤을 때, 그 희열.’
화산의 맥을 이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은 없었지만 시후가 가르쳐준 무공이 결실을 본 그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었다.
그래서 그때 다짐했다.
‘주군이 가시는 길에 검이 되리라.’
시후가 하고자 하는 일에 가장 빛나는 검이 되어 앞을 밝히리라 각오하며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신세는 고작 주군의 목에 검을 들이대는 탈영활강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서인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인지했다.
시후와 제갈재민의 결투는 고작 둘만의 은원 관계를 해결하거나 하는 그런 졸렬한 승부가 아니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이 결투.
거기에 투입된 인원과 문파와 세력.
포달랍궁 쪽은 모르겠지만 시후가 패하게 된다면 한국, 아니 무림의 맥을 잇는 모든 문파에 화가 닥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대력공방의 방주인 박초연도 무사하기는 힘들 터.
평치혁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어 전전긍긍했다.
그때였다.
- 백치가 되어도 원망 말아라. 다른 놈의 꼭두각시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주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 주군? 주군?!!’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목 놓아 불러봤다.
이 상황을 타파할 사람은 오직 시후뿐이라 생각했다.
욕심을 좀 부려 백치까지는 아니어도 포달랍궁의 마수에서 벗어나 그녀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주, 주…. 어, 어?!’
다시 한번 목 놓아 불러 보려던 순간 주변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아아-
주변을 감싸고 있던 짙은 안개가 하늘 위로 향했다.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이 한 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으, 으윽!’
평치혁은 속이 울렁일 정도로 몸이 뒤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 출렁이는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덧 주변을 감싸고 있던 안개가 모두 사라지자 요동치던 몸도 진정이 되었다.
‘여긴?’
그제야 평치혁은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화산이었다.
그것도 매화나무가 가득한 화산.
매화 꽃잎이 만개하여 사방이 선분홍색으로 물든 장소였다.
‘내가 이런 곳에… 어, 어?!’
절경에 넋을 잃으려던 순간 갑자기 몸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발버둥을 쳐보려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 가만히 좀 있어라.
어찌해야 하나 싶은 순간 주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드디어!’
평치혁은 드디어 시후가 자신을 구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몸에 힘을 뺐다.
그러자 점점 솟구치는 몸에 가속도가 붙어 안개가 사라졌던 그 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발밑에 매화 꽃잎이 만개한 화산의 절경이 다시 짙은 안개에 가려지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잠시 후 점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거대한 손이라는 것을 인지할 만큼 가까워졌다.
평치혁은 이미 그 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았다.
‘주군!’
다시 한번 시후의 이름을 되뇌며 거대한 손에 빨려들어 간 평치혁.
“주군!”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로 시후를 부를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