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65화 (265/275)

제265화

시후의 7일은 ‘나름’ 평범한 일상이었다.

제주도에서 벌어질 일에 대한 준비는 이미 모두 전달해놓은 상태이니 그쪽에 신경 쓸 일은 없었다.

그랬기에 시후는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경기도 가평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 왔다.

아직 물에 들어가기에는 추운 날씨였지만 부모님은 시후가 프로게이머가 된 선물이라 생각하고 나섰다.

거기에 시후는 태산네와 인호네도 동행하자고 건의했다.

둘도 같이 프로게이머가 되었기에 어른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성사된 세 가족의 여행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평소에도 부모님들끼리 잘 알고 있던 터라 세 가족은 화기애애했다.

“하이고~ 맨~날 게임이나 처해 싼다고 등짝 스매시나 날렸는데, 갑자기 프로게이머가 되었다며 계약서를 들고 왔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요.”

“하, 하하. 태산 아버님도 그러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맨날 시후~ 시후 하면서 놀 궁리만 하기에 언제 사람 되나 싶었는데 말이죠.”

“하, 하하. 이거 본의 아니게 저희 시후가 두 분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저희 자식들이 프로게이머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Safety World 프로게이머라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니. 저희가 되레 시후에게 감사하죠.”

“하, 하하~ 그렇습니까? 이거 제 자식 자랑을 대신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들끼리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바람에 시후와 태산과 인호는 부끄러움에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태산아, 너희 아버님 형사라고 하시지 않았냐?”

“어. 맞아.”

“그것도 강력계 냉혈한이라며.”

“어. 그렇다니깐.”

“저기 저렇게 웃으시는 분이 강력계 냉혈한이라고?”

“우, 우리 아버지가 자식 사랑이 좀 남다르셔서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태산 역시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웃는 얼굴을 처음 봤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후와 인호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자 화제를 돌렸다.

“그러는 너희 아버님은.”

“우, 우리 아버지가 뭐?”

태산이 인호 아버님을 거론했다.

“너희 아버님 수학 선생님이라며. 그것도 강남 제일고에.”

“어. 맞아.”

“거기에 별명이 ‘제일고 호랑이’시라며.”

“맞…아.”

“저분의 어디가 호랑이시냐? 나 저렇게 웃는 고양이, ‘쉬렉’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같은데.”

“끙…”

태산의 지적에 인호는 아버지를 봤다.

집에서도 잘 웃지 않고 언제나 필요한 말만 하던 아버지가 오늘은 나서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뒷머리가 간지러워 긁적이는 인호였다.

그렇게 셋의 아버님들이 자식 자랑을 늘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자 윤여정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어른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구나. 너희는 나가서 놀고 올래?”

윤여정의 뒤로 펜션 안에서 맥주와 소주를 들고나오는 어머니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어른들의 시간을 가지시려는 것 같아 윤여정이 애들은 나가 놀라고 했다.

“네. 그럼 세 시간 정도 놀다가 올게요.”

“그러렴.”

그렇게 부모님들이 어른들의 시간을 갖게 되자 시후와 태산과 인호는 산책을 나섰다.

그렇게 산책로를 걸어 안쪽으로 들어간 셋은 계곡물이 모여 있는 큰 바위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산길을 거닐자 시후는 나름 여유롭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제주도 결전에 있어 조민이 조사해온 포달랍궁 세력에 대한 정보를 되새겼다.

그들은 천년의 세월에 걸쳐 준비한 것치고는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현대 시대 무림이 쇠약해진 것과 관계가 깊었다.

천년 대업이니 천년의 안배이니 하며 암암리에 서로를 견제하며 싸우느라 여건이 마땅치 않았던 거였다.

덕분에 포달랍궁의 세력은 시후가 마련한 세력과 비등했다.

개개인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겠지만 시후 쪽도 초절정에 오른 이들이 몇이나 있고 각 문파의 정예부대는 절정의 고수들 수가 상당했다.

그랬기에 시후는 제주도에서 두 세력이 맞붙게 될 시 흘러갈 전황을 객관적으로 예상했다.

이번에 중국에서 만난 달뢰라마와 일전에 만났던 마이클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상단전이 열리지 않았다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후가 모르는 어떤 사술을 달뢰라마가 부리지 않는 이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분명 달뢰라마는 상상하지 못한 어떤 사술을 들고 나타날 게 분명했다.

그랬기에 시후는 이번 결전의 승리 요소는 오로지 본인의 힘이라 여겼다.

“결국, 내가 잘해야 한다는 말이지.”

시후는 자기 암시를 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그럼. 우리 그만해도 되는 거야?!”

힘에 겨워하면서도 악에 받친 목소리로 태산이 소리쳤다.

“그, 그래! 너 잘나서 너만 잘하면 되는 거라면! 우리 좀 살려줘라!”

태산의 말에 호응하듯 인호가 외쳤다.

그에 시후는 손을 슬쩍 휘둘렀다.

그러자.

풍덩-

태산과 인호가 그대로 물속에 잠겼다.

그랬다.

계곡물이 모여 있는 이곳에 다다르자 시후는 둘을 냅다 물속에 던졌었다.

둘에게 사전에 말해놨듯이 새로운 무공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시후는 솔직히 둘이 제주도에 가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둘의 저력은 분명 도움이 될 정도였기에 조민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제주도에서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둘이 알게 되었기에 시후가 말려도 둘은 참전할 게 분명했다.

그랬기에 시후는 둘이 조금이라도 덜 위험할 수 있게 계곡물에 던졌다.

처음 계곡물에 빠진 그때 시후가 둘에게 설명했지만 벌써 두 시간째 하는 것이라고는.

“푸하!”

“파! 우웩.”

계곡물을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둘은 시후의 의념기가 걷히자 수면 위로 목만 빼꼼 내놓았다.

그리고는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이게 정말 수공(水功)을 배우기 위한 거야?”

“그냥 우리 골려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두 시간째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라면 누구나 부릴 만한 투정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가차 없었다.

“너희가 물고기가 아닌 이상 아가미로 숨을 쉴 수는 없어.”

“당연하지.”

“하지만 너희는 무공을 익혔지. 땅속에 파묻혀도 살 수 있는 무공을 말이야.”

“근데?”

“그걸 응용해봐.”

지금 시후는 둘에게 비천잠행술을 수공에 접목해 보라고 힌트를 주었다.

태산과 인호 역시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시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둘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라면 둘이 스스로 깨달으면서 나아가기를 바랐다.

무공이란 일정 수준에 오르게 되면 영약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리고 둘 역시 이미 그런 것을 경험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그렇다고 몇 날 며칠 동안 저기에 담가둘 수는 없기에 좀 더 힌트를 주기로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거 알아?”

“뭐?”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10달 동안 있던 경험으로 아기들이 수영장에서 자가호흡을 하며 수영을 한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갑자기 ‘세상에 이럴 수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나올 만한 말이었지만 태산과 인호 역시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다.

“아기들은 수중에서 호흡했다?”

역시나 태산보다는 인호가 똑똑해서인지 무언가 감을 잡은 것 같았다.

풍덩-

“어? 야!”

갑자기 인호가 물속으로 들어가자 태산이 소리쳤다.

자신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인호가 무언가 알아차리고 시도를 하러 들어갔다는 것에 초조함까지 느꼈다.

시후는 그런 태산을 위해 한 가지 힌트를 더 주기로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는 것과 해봤던 일을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인 거 알지?”

“어… 어?!”

풍덩-

태산은 시후의 말에 무언가 뇌리를 스친 듯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여간, 감은 좋아.”

인호처럼 머리로 이해를 한 것이 아닌 감으로 해결 방법을 찾은 거였다.

그리고 둘의 그런 점은 곧장 결과로 이어졌다.

벌써 물속으로 들어간 지 10분이 훌쩍 넘었지만 둘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귀식대법은 땅속에서만 하는 게 아니야. 거기에 너희가 익힌 비천잠행술은 그저 그런 은신술이 아니고.”

태산과 인호가 무공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비천잠행술의 모든 힘을 끌어내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로 둘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사막에서라도 몸을 숨길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더 빠른 결과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줘볼까.”

스윽-

둘은 원치 않는 도움이겠지만 둘이 빠르게 강해지게 하도록 시후는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촤악- 촤악-

시후가 손을 뻗은 곳은 태산과 인호가 잠수한 지점이었다.

그런데 잔잔하게만 보이던 그곳에 점점 물결이 거세지더니 가운데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소용돌이가 생겼다.

잔잔한 호수를 헤엄치는 물고기보다 태풍이 몰아치는 험난한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가 더 강한 법.

시후는 둘에게 시련이라는 옵션을 부가해줬다.

그러자.

“커헉. 가, 강시후. 띱때….”

“미친 새…. 크윽!”

둘은 죽을힘을 다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욕을 내뱉었다.

다소 힘이 부족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지만, 그 의도만큼은 충분히 시후에게 전해졌다.

“음, 한 단계 더 올려달라는 거지?”

시후는 둘의 강한 의지에 보답이라도 하듯 소용돌이를 조종했다.

이제는 소용돌이가 아닌 용오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툭툭-

하늘로 치솟으려는 용오름 속에서 시후는 정신을 잃은 둘을 꺼냈다.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는 둘의 꼴을 시후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뭐, 젖은 옷은 해결해주지.”

치이-

둘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시후가 삼매진화의 기운을 둘의 몸속에서 피워내 물기를 날려버린 거였다.

그러자 잠시 후 둘이 눈을 떴다.

“으….”

둘은 신음을 흘리며 시후를 봤다.

시후의 친우라고 할 수 있는 둘이었기에 그의 눈빛만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미친. 이 짓을 당분간 계속해야 하는 거야?”

“어.”

“언제까지? 아니다. 어느 경지에 다다를 때까지?”

기간보다는 경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챈 인호가 물었다.

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 둘이 바닷속에서만큼은 일당백이 될 때까지.”

“그게 가능해?”

“가능해.”

조금 전보다 더욱 담담하게 말하는 시후.

하늘까지 치솟을 것처럼 솟아올랐던 용오름이 사그라들고 본래의 잔잔한 계곡물로 돌아온 수면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주변에 있던 돌덩이 하나를 집어 획 던졌다.

퐁당-

깔끔하게 계곡물 가운데에 떨어진 돌덩이.

그로 인해 생긴 잔잔한 물결이 셋이 있는 곳까지 퍼져왔다.

“너희는 제주도 바닷속에서 녀석들을 맡아.”

“우리 둘이?”

“어. 다른 이들은 제주도 육지에서 싸울 거야.”

“그런데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바다에 있으라고?”

“어.”

둘은 시후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만 격전 지역에 내버려 두고 우리끼리 그런 곳에 있기 싫어.”

각오가 남다른 둘이 그럴 수 없다며 말했다.

하지만 시후는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너희이기에 가능하고 너희에게만 맡길 수 있는 일이야.”

“무슨 말이야?”

좀처럼 시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둘에게 시후는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전부 들은 둘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어. 부탁한다.”

“알았어.”

둘의 대답에 시후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 역시 시후를 따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에구구. 강시후 네 명령 따르려면 죽어라 훈련받아야겠다.”

“그러게. 그래도 오늘 같은 훈련 강도면 할 만할 것도 같고.”

둘은 세 시간 가까이 물속에 잠겨 있던 기억을 미화했다.

하지만.

“제주도에 가기 전까지 매일 새벽 6시에 뚝섬으로 나와. 프로게이머 훈련 때문에 저녁 늦게 들어간다고 말씀드려놓고.”

“6시?”

“뚝…섬?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 시후를 마주한 둘은 이번에도 그의 눈빛에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악마 같은 놈.”

시후는 제주도에 가기 전까지 온종일 오늘과 같은 훈련을 반복할 생각이었다.

그것도 점점 강도를 높여서 말이다.

둘의 악담에도 시후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따라오겠다고 한 건 너희다.”

“알아. 안다고.”

“너 같은 친구를 둔 우리의 업보라 생각해야지 뭐.”

둘의 너스레에 시후는 더욱 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절대 너희를 잃지 않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며 말이다.

“이만 내려가자. 부모님께서 찾으시겠다.”

그렇게 태산과 인호에게 수공을 가르쳐주기 위한 계곡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그 후 시후의 말대로 태산과 인호는 뚝섬에서 미친 듯이 수련했다.

결국, 둘은 고작 5일 만에 인어라고 생각될 만큼 물속에서 유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

시후를 포함한 모두가 부산항에 모였다.

AI의 계획 덕분에 제주도로 가는 모든 교통수단이 끊겼기에 대력공방에서 준비한 크루즈선을 타고 제주도로 향하기로 한 거였다.

제갈세가, 당가, 남궁세가에 대력공방의 고수들까지.

모두가 크루즈 선에 오르는 것을 보던 시후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AI가 어떻게 제주도 주민들을 대피시킨 거지?”

70만에 육박하는 인구 외에도 그 많은 관광객까지.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건가 싶어 궁금하던 그때 조민이 곁으로 다가왔다.

“오빠. 모르셨어요?”

“뭘?”

“이거요.”

조민은 시후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자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동안 태산과 인호의 수련을 도와주는 바람에 바깥소식에 어두웠던 시후가 오랜만에 초록창 뉴스를 봤다.

[제주도 한라산 분화 조짐.]

정확히 시후가 AI와 이야기를 나눈 그날부터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를 뜨겁게 달군 이슈를 이제야 본 시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