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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64화 (264/275)

제264화

AI의 축객령에 박초연은 시후를 쳐다봤다.

시후를 두고 나가도 되냐고 묻는 거였다.

“나가 있어.”

“네. 앞에 있을 테니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박초연은 그 말을 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나갔다.

AI는 박초연이 완전히 나가는 걸 확인하려는 듯이 문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짝-

“여기 집중 좀 하지?”

시후가 손뼉을 쳐 AI의 시선을 끌었다.

AI는 고개를 돌려 시후를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뻥긋거리자 머리 위에 글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강시후 님.]

정확히 시후의 본명을 말하는 AI.

시후는 Safety World의 아이디가 아닌 자기 이름을 말하는 AI에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도대체 녀석은 뭐지?’

지금 이런 시점에 AI의 본체를 만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 터.

거기에 녀석은 직접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설마 지금까지 그것들 모두가 우연이 아니었나?’

매번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져오며 업적 보상을 얻었던 시후.

어쩌면 그것들이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AI의 개입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AI는 시후가 대답이 없자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궁금증을 갖고 계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하고 대화를 했으면 합니다.]

“뭘 확실히 해?”

[저는 절대 강시후 님의 적이 아님을 말입니다.]

적이 아니니 자신에게 적대감을 느끼지 말라고 말하는 AI.

“선입견을 품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네?”

[맞습니다.]

AI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본론만 하자.”

시후는 빠르게 본론을 물었다.

7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할 일은 태산처럼 많았으니 마음이 다급했다.

시후는 어서 말하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AI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천년 대업을 위해 준비된 자입니다.]

“…어?”

갑자기 천년 대업을 운운하는 AI에 시후는 잠시 멍했다.

이번에 히프노스 때문에 겪게 된 로그인 제한에 관해 설명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천년 대업이라니.

‘법정, 평수혁, 대력공방….’

시후는 천년 대업에 관련된 이들을 되뇌었다.

그중에서도 AI와 관련이 가장 깊어 보이는 대력공방이 떠올랐다.

“그럼, 네가 대력공방과 관계있다는 말이야?”

[25% 관계가 있습니다.]

“있으면 있는 거지 25%는 뭐야?”

[천년 대업을 이루고자 이에 관여한 단체는 상당히 많습니다.]

“단체?”

[…….]

계속되는 시후의 갈고리에 AI는 잠시 침묵했다.

살짝 표정이 굳은 건가 싶은 그때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에 관해 설명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시후가 생각보다 천년 대업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AI가 설명을 듣길 바랐다.

‘나쁘지 않아.’

천년 대업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원인이 어떤 녀석 때문인지는 안다.

그리고 그 자식과 제주도에서 만나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될 터.

뭐가 되었든 천마지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 조금의 정보라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시후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봐.”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이자 AI의 설명이 시작됐다.

[천 년 전, 소림·청성·화산·무당을 비롯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천마신교까지. 무림의 주요 세력이라 불리는 문파들의 수장이 모였습니다.]

처음부터 시후가 모르는 이야기였다.

천마로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자기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 몰래 모였다?

표정에서 의아함이 묻어났는지 AI가 바르게 말을 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천마님께서 천마의 자리에 오르기 전입니다.]

“아… 그럼 오케이.”

시후가 바로 이해하자 그 뒤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모인 문파의 수장들은 오직 한가지의 안건만을 다뤘다.

[천살성(天殺星). 무림의 존재 이후 가장 붉게 빛나는 천살성의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문제는 그 천살성이 찬란하게 빛나다 못해 영속을 약속하듯 자리하는 천기를 읽었다.

천살성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자기 자신 외에 모든 생명을 빼앗을 운명이었다.

“설마 천살성이 달뢰라마?”

[네. 맞습니다.]

“미친.”

달뢰라마가 영생을 꿈꾸던 게 천살성의 천성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평생을 걸쳐 영생을 갈구해 자기 외의 모든 생명을 죽이려는 존재 천살성.

그 미친놈과 지금 7일 후에 제주도에서 만나야 한다니.

시후는 자신이 왜 그런 놈이랑 엮인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천살성이 빛나는 만큼 다른 별이 빛났습니다.]

“설마….”

[지마성(地魔星). 땅에서 피어오른 마의 기운이 하늘을 붉게 물들인 천살성의 기운을 끌어내려 땅에 묻어버린다는 천기가 있었습니다.]

“그게, 설마….”

시후는 이야기의 흐름이 불안하게 흐르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AI는 그거에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네. 그 지마성의 주인이 바로 천마님, 아니 시후 님이십니다.]

“하아.”

시후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AI는 더욱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무림의 수장들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천살성이 완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림의 기간(基幹)이 흔들리는 세월을 지나 지마성이 완전해져 불완전한 천살성을 막기 위해.]

AI의 말에 시후는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성화당이 부서지고 성화신녀가 자신을 희생하여, 샐러맨더가 달뢰라마에게 잡혀가는 것을 막은 일.

천마가 소림사에서 다다라 홀로 싸우다 법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 영혼이 현대 시대 강시후의 몸에 들어온 일.

그것 모두가 탁탁 맞아떨어졌다.

“잠깐,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아는 거야?”

강한 의문이 들었다.

과거의 사건들이야 여러 가지 자료로 남아 있겠지만, 현재 자신의 행적을 어떻게 AI가 아는지 말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AI가 입을 열었다.

[강시후 님이 천마님이 되실 줄 몰랐습니다.]

“그럼?”

[제가 가진 데이터를 토대로 이맘때쯤이면 지마성이 등장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하게?”

[아닙니다. 막연하지 않았습니다. 지마성은 그만의 키워드가 확실히 있습니다.]

“나한테?”

자신을 증명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에 시후는 몸을 더듬었다.

혹시 몸에 무슨 표식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그랬다.

그런데.

[하아, 그런 일차원적인 것이 아닙니다.]

AI가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후는 그 말에 다소 놀라 눈을 껌뻑였다.

‘AI가 인격이 좀 그러네.’

어째 다혈질의 성향이 보이는 AI의 모습이었다.

시후가 그러거나 말거나 AI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천마분심공. 지마성을 가진 이만이 터득할 수 있는 무공이 그 키워드입니다.]

“천마분심공이 그런 거였어?”

그저 마음을 둘로 나누어 다른 이들보다 배는 빠르게 무공을 익히게 해주는 심공이라 여겼건만.

그것이 지마성의 존재를 나타내는 척도라니.

시후는 운명이라는 굴레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자각했다.

그 후로도 AI는 천년 대업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전했다.

천 년이라는 세월을 넘어서까지 준비한 이들의 노고도 전했으며 이번에 막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것까지.

“기회가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이번에 시후 님께서 패하시면, 인류는 몇 년 후에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에이, 무슨 그렇게까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화산에서 겪어보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거.”

시후는 화산에서 겪었던 좀비 사태를 떠올렸다.

강시를 다룰 수 있는 달뢰라마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쯧.”

시후는 그 후를 상상해봤다.

자신이 죽게 되면 달뢰라마는 자신의 과업을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할 게 뻔했다.

어쩌면 시후의 시신을 강시로 만들어 인류 종말에 앞장서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손으로 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영혼 없는 내가 지인의 목을 비틀 수도 있었다.

시후는 문득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 세상을 보지 못한 어머니 뱃속의 동생도 같이 말이다.

“그럴 수는 없지.”

사아-

악몽 같은 그 상상에 절로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급속도로 주변이 냉각되기 시작했다.

의자와 기계를 넘어 AI가 들어 있는 수족관의 물까지 서리가 일었다.

[자, 잠깐만요. 여기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다급한 AI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후는 그제야 심호흡과 함께 살기를 누그러트렸다.

“좋아. 그래서?”

시후는 슬쩍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면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표현이었다.

[이번 결전이 제주도라고 들었습니다.]

“어.”

[그곳의 현재 인구는 7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격전이 치러진다면 어떤 피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래서 7일간 제주도의 모든 인원을 내륙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70만에 육박하는 인원 모두를 7일 만에 이동시키겠다는 AI.

무슨 방법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시후는 이득이었다.

강시를 다루는 달뢰라마의 능력을 봉인할 수도 있거니와 마음 놓고 힘을 펼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쓸 만한 게 생각났다.

“이번에 내가 Safety World에서 겪은 일. 그거 풀어주는 건 어때?”

시후는 로그인 제한을 거론했다.

Safety World를 운영하는 AI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건 이미 값이 입력되었기에 취소할 수 없습니다.]

“값? 그게 뭔데.”

[그 설명을 하자면 이진법부터 말씀드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니, 그럼 됐어.”

수학 시간에 언뜻 들은 용어를 거론하자 시후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입력한 설정값이 실행되는 순간 아무리 AI라도 Safety World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설명을 하려던 AI였다.

[대신 지금 이것 하나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뭐?”

[로그인이 제한되셨지만 천마지기는 꾸준히 차오르고 있습니다.]

“그건 알아.”

[그것이 끝났을 때는 총량이 늘어나 있을 겁니다.]

“진짜?!”

천마지기의 총량이 늘어나 있을 거라는 AI의 말.

그 말은 천마지체의 단계가 오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펼칠 수 없는 천마지기.

하지만 달뢰라마의 격전에서 꼭 필요한 천마지기.

시후는 기대감을 가슴 한편에 넣어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외에 나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살짝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지만 없다고 하니 시후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렇게 시후가 방을 나가자 홀로 남은 AI는 시후가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본래 모습이 아니지만 오랜만, 정말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련한 눈빛의 AI는 그 뒤로도 한참을 시후가 있던 곳을 응시했다.

한편, AI와의 만남을 마치고 나온 시후는 곧장 박초연을 찾아 제주도에서 대력공방이 해줘야 할 일들을 전했다.

그 후 제갈 세가를 찾은 뒤 제갈신길과 조민에게도 7일 후의 일을 알렸다.

둘은 그것을 들은 즉시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작전은 제갈세가가, 무기는 대력공방이, 의료 시설은 약선방이. 그럼 이제 나는.’

그렇게 전쟁을 위한 준비를 전달한 시후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갔다.

남은 7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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