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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63화 (263/275)

제263화

[요구 조건을 충족할 때까지 로그인이 제한됩니다.]

“…….”

시후는 로그아웃이 되어 나타난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캡슐 안에서 고글도 벗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히프노스의 함정에 빠져 마기를 모두 양도하게 됐고 그 뒤로 손도 못 써본 채로 로그아웃이 되었다.

거기에 이제는 천마지기가 일정량이 차오를 때까지 로그인하지 못한다니.

“이런 개떡 같은!”

쾅-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캡슐을 부수고 나왔다.

“아이고~ 도련님!”

씩씩거리는 시후 곁으로 진지춘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걱정이 가득했다.

시후는 진지춘에게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손을 휘저었다.

“아. 별거 아니니깐 소란 피우지 마.”

걱정하지 말라며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눈물을 글썽이는 진지춘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눈물까지 보이냐며 그를 다독이려는데 진지춘이 시후를 쌩하고 지나쳤다.

그리고는.

“아이고, 내 캡슐. 아이고 이게 얼마짜리인데.”

시후가 부수고 나온 캡슐의 잔해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진지춘이 걱정한 것은 시후가 아니라 자신의 캡슐이었다.

“이 자식이.”

가뜩이나 히프노스 때문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는데 진지춘이 그 꼭지에 불을 붙였다.

오랜만에 기강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들어 올렸다.

‘이럴 때는 역시 천마지기로.’

진지춘도 그동안 실력이 늘어 이제 웬만한 점혈법으로는 그를 괴롭힐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천마지기를 흘려 넣어 그의 몸속에 고통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 뭐야, 이거 왜 이래?”

어떻게 된 것인지 천마지기가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상단전까지 연 마당이라 이제는 의념만으로 기를 이끌 수 있는 경지였고 몇 시간 전만 해도 천마지기를 자유롭게 사용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의념이 아니라 운기를 하여 천마지기를 끌어올리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있는데 안 써져? 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천마지기를 펼칠 때 이런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짐작되는 건 단 하나.

‘Safety World.’

조금 전 Safety World의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이런, 미친.”

히프노스에게 당한 여파가 이렇게까지 나타나다니, 화가 극에 달했다.

당장이라도 접속해 분골착근의 형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시후를 열받게 했다.

“젠장!”

시후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다른 곳에 의념기를 펼쳤다.

그러자 진지춘이 안고 있던 캡슐 잔해가 둥둥 떠올랐다.

“흑흑, 내 자식 같은… 어, 어?!”

진지춘은 떠오르는 캡슐 잔해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 도련님?!”

혹여나 시후가 벽에다가 //던져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말리려던 순간 믿기지 않는 것이 보였다.

우직-

공중에 둥둥 떠오른 캡슐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압축기에 넣은 듯이 우그러지는 캡슐 잔해.

더는 압축되지 않을 것 같은데 더욱 구겨지며 뭉쳤다.

츠으으-

이제 열기까지 피어오르는 캡슐 잔해, 아니 이제는 고철 뭉치가 어느새 축구공 크기가 되었다.

쿵-

쇠뭉치가 바닥에 떨어지자 바닥이 움푹 파였다.

진지춘은 자신이 아끼던 캡슐이 쇠뭉치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직관했다.

하지만 좀 전과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되레 분노에 휩싸인 시후를 걱정했다.

“도련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후….”

시후는 뻗쳐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진지춘에게 Safety World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진지춘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허, 거참. 도련님 제대로 당하셨네요?”

“그러니까. 쯧.”

“그래도 하루만 지나면 복수할 수 있으시잖아요. 들어가시면 녀석의 사지를 못 쓰게 만들어 버리세요.”

진지춘은 자신이 그동안 당했던 점혈을 히프노스에게 써먹어 보라며 시후를 다독였다.

하지만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더 열받아. 로그인이 제한당했으니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어.”

“저런… 네? 로그인이 제한되셨다고요?”

“어. 왜?”

“Safety World에 그런 일은 없는데?”

“뭐?”

진지춘의 말은 이랬다.

Safety World는 다른 게임들과는 다르게 A.I가 운용하기에 개발사라도 유저의 로그인을 제한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망 페널티로 24시간 접속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제한이 없었다.

“하다못해 버그 유저로 파악되어도 로그인 제한이 아니라 캐릭터 삭제가 이루어지죠.”

한마디로 Safety World는 계정을 삭제하면 삭제했지, 로그인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럼, 내가 처음이라는 거야?”

“네. 제가 아는 한에서는요. 도련님은 무슨 접속제한까지 최초를 가져갑니까?”

‘최초의 접속제한 유저’라는 타이틀을 가져가는 시후를 진지춘이 비꼬았다.

평소라면 한 대 쥐어박았을 테지만 지금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박초연에게 전화 걸어봐.”

Safety World에 관한 거라면 엔지니어인 박초연이 알 것 같아 통화를 연결했다.

- 네, 어르신.

“돌팔이 아니다.”

- 어?! 도련님? 같이 계셨어요?

진지춘의 핸드폰으로 통화를 연결해 당연히 그라고 생각했던 박초연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후는 그런 박초연의 질문을 각설하고 조금 전에 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박초연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 로그인 제한이 걸렸다는 말씀이죠?

“그래. 아는 거 있어?”

- 아니요.

“아는 거 없는데 왜 분위기 잡아?”

갑자기 분위기를 잡기에 무언가 아는가 싶었더니 없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약 올리는 건가 싶은 그때였다.

- 제가 아는 것은 없는데, 알아낼 방법이 있어요.

“그래? 그럼 알아보고….”

방법이 있다니 찾아보고 연락을 하라고 하려 했다.

그런데.

- 도련님이 필요해요.

“나?”

- 네. S.W SOFT 건물로 오시면 알려드릴게요.

박초연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거라면 전화로는 말하지 못할 정도의 사안이다.

“알겠어. 좀 이따가 보자고.”

- 네.

박초연은 시후가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올지 알기에 짧게 대답했다.

“지금 돌아가시게요?”

시후가 통화를 끝내자 진지춘이 다가왔다.

“어.”

“그럼, 저도….”

“돌팔이 넌 여기서 할 일이 태산인데 어딜 따라가려고.”

“네? 제가 무슨.”

“7일 후에 제주도에서 달뢰라마를 만나기로 했다.”

“네?!”

시후는 제갈재민과의 약속을 진지춘에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서로의 명운을 걸고 벌어질 싸움이었기에 나름대로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진지춘에게 그에 필요한 것들을 설명했다.

“약선방을 돕던 남궁세가 정예들 있지.”

“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활동 중이죠.”

남궁세가에서 실력 좋은 놈으로 추려낸 정예들은 시후가 가르쳐준 은신술을 완벽하게 습득해 지금은 최정예 자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이들을 약선방에서는 정계 진출에 필요한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데 활용했다.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힘이지만, 제주도에서는 그마저도 필요했다.

“몇몇만 남기고 모두 제주도로 보내.”

“그 정도입니까?”

“어. 그리고 돌팔이 너도 애들 치료할 구조팀 꾸려서 오고.”

아마도 전면전이 될 것이기에 그만큼 많은 이가 다칠 게 분명했다.

약선방의 의술이 화타의 경지까지는 아니라도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시후의 설명을 모두 들은 진지춘은 허리를 숙였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여 제주도로 출발하겠습니다.”

그 역시 느낀 거였다.

시후를 긴장케 하는 달뢰라마의 존재를 말이다.

그와 치를 제주도 결전이 얼마나 큰 사건이 될지.

진지춘은 자신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게 되리라 직감했다.

시후는 책임감을 느끼는 진지춘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천잠음영술을 펼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중국에 올 때처럼 경공술을 펼쳐 바다를 건너 S.W SOFT 옥상에 내려섰다.

기감을 펼쳐 박초연이 있는 곳을 확인한 시후는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S.W SOFT 건물의 가장 깊은 곳인 지하 5층이었다.

본래라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하지만 시후는 천잠음영술을 펼쳐 들어갔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그곳은 지금까지 시후가 보던 곳과는 달랐다.

3층에 수십 개의 캡슐이 늘어져 있던 곳도 아니고 직원들의 휴게를 위해 많은 여가시설을 마련해놓은 곳도 아니었다.

마치 아쿠아리움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수족관이 한쪽 벽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물만 가득할 뿐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 앞에서 장치를 다루고 있던 박초연이 시후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오셨어요?”

“어. 저건 뭐야?”

시후가 거대한 수족관을 가리켰다.

“저것 때문에 이리로 모신 거예요.”

박초연은 곁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두 손으로 가리켰다.

시후에게 그곳에 앉으라고 안내했다.

시후가 의자에 앉자 박초연이 앞에 있는 기계를 조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수족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기포가 일더니 이내 사람의 형태를 이뤘다.

이내 색이 입혀지고 완벽한 모습이 되자 시후는 그게 누구의 모습인지 알 수 있었다.

“저건 나잖아?”

“네. 도련님의 Safety World 캐릭터, 천마죠.”

그 모습은 박초연의 말대로 시후의 캐릭터였다.

검은 장포를 입은 것을 보니 가장 최근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내 캐릭터 모습 보여주자고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거야?”

진짜 의도를 말하라는 뜻이었다.

“그럴 리가요. 사실 저‘곳’이 Safety World의 AI에요.”

“저게?”

“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자가 성장을 해야 하는 소프트웨어에요. 그런데 그만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현재 기술로는 살짝 역부족이었어요.”

박초연은 초기 계발 단계에서 겪었던 난항을 회상하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가 저희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전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어요.”

“가문이라면… 대력공방?”

그 말은 좀 의외였다.

대장장이 일을 평생 가업으로 삼은 대력공방이 저런 AI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니.

어떤 이유에 저런 데까지 손을 뻗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만 되었으니 본론을 꺼내라는 시후의 눈빛에 박초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AI는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설명해 드렸죠?”

“어.”

“그런데 이번에 그 AI가 시후 님을 찾았어요.”

“어?”

“그것도 게임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만나 뵙기를 청했어요.”

Safety World 속이 아닌 현실에서 AI가 만나기를 원했다는 말에 시후는 수족관을 바라봤다.

그러자 지금까지 줄곧 눈을 감고 있던 천마 캐릭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시후를 위아래로 훑었다.

시후는 그런 AI의 시선에 눈을 희번덕댔다.

뭔지 몰라도 상당히 거슬리는 시선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눈깔을 후벼 파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Safety World가 영영 사라질 것 같기에 참았다.

“…….”

“…….”

둘은 그렇게 서로를 잠시 마주 봤다.

잠시 후 AI가 입을 뻥긋거리자 머리 위에 글씨가 나타났다.

[천마님과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AI는 느닷없이 박초연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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