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61화 (261/275)

제261화

“히, 히프노스?!”

시후가 노인을 히프노스라고 부르자 다들 깜짝 놀랐다.

오직 김 차사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노인의 뒤로 자리했다.

그러자 노인이 한쪽 눈을 치켜들며 시후를 봤다.

‘깊다.’

안광이 번쩍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눈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한번 빠져버리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의 깊이를 가진 어둠이 말이다.

그 눈빛에 시후가 피워 올린 천마지기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그라들었다.

“허억, 허억.”

그제야 줄을 서 있던 명계 주민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공포를 선사한 시후가 아닌 자신들을 풀어준 노인에게로 향해 있었다.

“지, 진짜 히프노스 님이십니까?”

“…….”

그들은 두려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지만,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자~ 자~. 오늘 국숫집은 문을 닫습니다~. 모두 돌아가세요~.”

김 차사가 그들에게 다가가며 두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하나둘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호오, 저게 차사의 능력인가.”

시후는 그들이 등을 돌리기 전에 표정을 봤다.

공포에 물든 눈동자는 삽시간에 사라지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멍해졌다.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자리를 떠나는 명계 주민들.

그것은 죽은 자를 다루는 차사의 능력이었다.

시후는 맬리아를 힐끗했다.

그녀 역시 이미 죽은 자.

명계의 주민이었기에 만약 김 차사가 저 능력을 펼친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정체를 감추기에는 늦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명계 주민들이 자리를 떠나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노인, 아니 히프노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좀 전에 보았던 눈의 깊이는 잘못 본 게 아니었군.’

그의 양쪽 눈은 더없이 깊었다.

시후는 똑바로 그 눈을 마주했다.

‘한 번 빠졌을 때 헤어 나올 수 없다면, 빠지지 않으면 될 뿐.’

천마지기를 이끌어 안광을 피웠다.

“허허, 이럴 수가.”

그러자 히프노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김 차사를 봤다.

김 차사는 후다닥 달려가 히프노스에게 속삭였다.

아마도 시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 터.

시후는 잠시 시간을 가지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야 천마지기를 통해 히프노스의 안광에 대항할 수 있지만.

“으흥….”

맬리아와 도플갱어는 그러지 못했다.

둘은 어느새 자리에 누워 잠에 빠졌다.

아주 잠시나마 히프노스의 눈을 마주한 것 같았다.

스윽-

시후는 둘에게 천마지기를 슬쩍 흘려 넣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평생 잠이나 잘 테니까.’

이미 잠이 들어 당장 깨우지는 못 하겠지만, 불어넣은 천마지기로 하루 정도 지나면 깰 수 있을 거였다.

“허, 정말 대단하군.”

그 모습에 또 한 번 히프노스가 감탄을 자아냈다.

시후는 그의 옆에서 떨어진 김 차사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단둘이 대화 좀 해볼까?”

“그러지. 네가 저들 좀 챙기거라.”

히프노스의 말에 김 차사는 맬리아와 도플갱어를 양쪽 어깨에 둘러업었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골목을 빠져나갔다.

“저 녀석은 저리 둘 건가?”

“컹컹-”

히프노스가 삼두를 가리키자 녀석이 시후를 향해 짖었다.

자신은 자리를 떠나기 싫다고 말하는 거였다.

시후는 삼두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었다.

“괜찮아. 가서 쟤들이나 돌보고 있어.”

“컹-”

그제야 삼두도 김 차사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자 히프노스가 본래 있던 수레로 걸어갔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좀 앉지.”

툭- 수레를 건드리자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잘 조립되어 있던 퍼즐이 와르르 무너지듯 쏟아지더니 하나의 테이블과 두 개의 흔들의자로 변했다.

히프노스가 한쪽에 앉자 시후도 반대쪽에 앉았다.

“그래.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아마도 김 차사가 시후가 보인 관심을 이야기한 것 같았다.

‘본래는 하데스이지만 뭐.’

굳이 그에게 ‘너는 지나가는 길에 만난 돌부리일 뿐이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히프노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명계에 들어왔다면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지.”

“…….”

“거기에 이런 업적을 이룬 것이 내 도움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면 더욱더.”

그러면서 씨익 웃는 히프노스.

시후는 순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자존자대(自尊自大)도 저만하면 중증이다.’

시후 본인만큼 자존감 높은 이를 이런 곳에서 만날 줄 몰랐다.

시후는 저만한 자뻑도 없다는 생각에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우려를 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그래. 만나 보니 어떤가?”

히프노스의 자기애는 끝날 줄 몰랐고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듣고 싶은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시후의 감상은 별거 없었다.

‘당장 겨뤄도 내가 이길 것 같고.’

타나토스를 만난 후에 급격하게 상승한 능력치로 시후는 히프노스와 자신의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

일전에 만났다면 승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뜸 싸움을 걸 수는 없기에 일단 대화를 이어 나가기로 했다.

“뭐, 머리 좋은 놈이라는 생각은 들었지.”

“뭐라?”

의외의 대답에 히프노스의 표정이 굳었다.

“이만한 곳을 이런 식으로 다루면서 너는 그 모습으로 저들을 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야.”

“허.”

히프노스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머리가 똑똑하다는 소리는 분명 칭찬이건만 어째서인지 시후의 표정은 칭찬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다만?”

“역시 똑똑해.”

“…….”

“…….”

둘은 서로의 눈을 잠시 마주했다.

히프노스는 다시 한번 자신의 권능인 ‘수면’을 펼쳤다.

보통 자기 눈을 바라본 자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시후는 그러지 않았다.

되레 그의 눈에 피어오르는 마기는 ‘수면’이라는 권능을 되돌리는 것만 같았다.

당장 마기를 어떻게 얻은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묻는다고 대답해줄 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으니 좀 돌아가기로 했다.

“아,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

“내 정체는 어찌 알았나?”

히프노스는 자신이 정체를 밝히지 않았는데 어찌 알아차린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명계에서 이런 노인의 모습으로 수도 없이 다녔지만,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은 시후가 처음이었다.

시후는 그의 질문에 검지를 들어 뒤를 가리켰다.

그곳은 김 차사가 떠난 방향이었다.

“김 차사, 너무 많은 힌트를 남발하더라고.”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히프노스였다.

김 차사가 지금까지 유저들을 안내한 게 얼마인데, 그간 힌트를 주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시후는 그런 히프노스에게 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웠다.

“꽤 많지만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너에게 가자며 골목을 뺑뺑 돌며 국수 냄새를 맡게 한 것.”

이 골목 저 골목을 돌고 도는 김 차사의 안내에 의문을 품었던 거였다.

“그리고?”

“너를 대하는 그의 태도. 결코 국수나 파는 노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어.”

“저런, 그런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차사라는 직분을 가진 자가 명계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차사는 일종의 고위직 공무원이었기에 절대 명계의 주민들에게 존대하는 일이 없다.

‘그 외에도 네가 맬리아의 참모습을 알아본 것도 있지만.’

굳이 그 점은 맬리아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어 말하지 않았다.

히프노스는 시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런 점을 미루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을 인정했다.

“대단해, 대단해. 자네가 그놈의 부탁만 받고 오지 않았어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정도야.”

지금까지 줄곧 웃는 표정을 짓고 있던 시후의 미간이 처음으로 꿈틀댔다.

‘어떻게 퀘스트 내용을 알지?’

Safety World는 퀘스트 내용은 공유해주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히프노스가 타나토스의 부탁 퀘스트의 내용을 아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여기서 당황했다가는 주도권이 그에게 넘어갈 터.

시후는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다.

“그래, 안다니 잘됐네. 내가 시간이 좀 없어서 그런데 네가 좀 도와줄래?”

“무엇을?”

“안내 좀 해줘. 하데스에게.”

타나토스의 부탁 퀘스트.

자신의 부와 명예를 모두 가져가 호의호식하는 그놈의 격을 낮춰달라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시후는 하데스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인버트 토치를 사용해 격을 낮춘 후에 타나토스가 전해달라는 말을 내뱉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시후는 히프노스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는 못해도 하데스에 대한 어떤 힌트라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크큭, 크크큭.”

갑자기 히프노스가 입을 가리며 웃기 시작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기에 웃는 건가 싶은 그때였다.

“너는 아무래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구나.”

“뭐?”

띠링-

[타나토스의 부탁 퀘스트의 대상을 만났습니다.]

히프노스의 대답과 함께 알림창이 나타났다.

시후는 알림창 메시지에 두 눈을 껌뻑였다.

‘지금 농담하는 거지?’

당연히 타나토스의 부와 명예를 가져간 이가 그의 주군인 하데스라 여겼는데 눈앞에 있는 히프노스라니.

시후는 자신의 추측이 크게 빗나간 것에 허탈함까지 느꼈다.

그와 다르게 히프노스는 여전히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크큭, 유저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알려주는 그것을 보니 이해가 확실히 되셨나?”

스륵-

시후가 알림창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을 지적한 히프노스는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자한 노인의 모습이 아닌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은 건장한 사내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타나…토스?”

타나토스였다, 아니 정확히는 타나토스와 똑 닮은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변용을 하거나 한 그러지는 않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전혀 이질감이 없으니 지금 모습이 히프노스의 본모습이 분명했다.

시후의 반응에 히프노스는 재미있다며 웃었다.

“너무 놀라지 말라고.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뿐이니까.”

“출생…. 설마, 형제?”

“그래. 쌍둥이지.”

“허, 그럴 수가.”

시후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강하게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고작 형제들의 다툼에 끼어든 것이란 말인가.’

이번만큼 하찮게 느껴지는 퀘스트는 없었다.

고작 형제들의 다툼에 끼어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뛴 꼴이라니.

차라리 Safety World에 처음 접속했을 때 마을 입구에 있던 토끼를 잡던 게 더 의미 있어 보였다.

아무리 보상이 좋아도 퀘스트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히프노스의 다음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녀석은 잘 지내고 있나?”

“너희는 형제라며 안부도 안 묻나?”

“형제라고 안부를 묻고 대답을 해줘야 하나?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사이인데?”

“뭐?”

“우리 형제는 말이야. 그 누구보다 서로를 증오한다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올림포스의 신인 하데스가 천상이 아닌 지옥을 다스리게 되면서 그곳을 평정하기 위해 타나토스와 히프노스를 거두었다고 했다.

타나토스의 무력과 히프노스 지략으로 언제나 승리를 한 하데스는 빠르게 지옥을 평정했다.

그 후 당연하게 큰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논공행상이 이루어졌는데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인 둘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남다른 것이 주어졌다.

타나토스에게는 자기 능력이 닿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만들 수 있는 대장간이.

히프노스에게는 바로 이 명계의 관리자라는 직함이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타나토스와 히프노스를 대하는 하데스의 행동으로 사람들의 입에 타나토스가 오른팔이라 불리게 되었다.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타나토스였지만 유독 하데스는 그를 살갑게 대하며 그를 가까이했다.

종국에는 하데스의 후계자는 타나토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참다못한 히프노스가 일을 벌였다.

“녀석이 그렇게 좋아하는 대장간에 처박혀 있게 만들었지.”

“…….”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시후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고작 형제를 유배지에 가둔 이유가 시기와 질투 때문이라니.

덕분에 시후는 망설임이 없어졌다.

“다행이야.”

스윽-

시후는 인벤토리에서 인버트 토치를 꺼냈다.

불이 밝혀지지 않은 뒤집힌 횃불의 조각상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히프노스는 갑자기 시후가 조각상을 꺼내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뭐지?”

“네 형제의 선물.”

“뭐?”

타나토스의 선물이라는 말에 히프노스는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시후가 조각상을 잡고 뒤집자.

번쩍-

순식간에 주변을 녹일 듯이 밝히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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