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모두 타.”
시후의 부름에 맬리아와 도플갱어가 삼두의 등에 올라탔다.
“컹컹-”
삼두는 우렁차게 울부짖고는 당당하게 명계 입구로 들어섰다.
본래 케르베로스는 명계 입구를 지키는 존재이기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이번에 김 차사가 특별히 입장권을 가져와 들어갈 수 있었다.
은은한 빛을 내뿜는 명계의 문을 지나자 주변 풍경이 순식간에 변했다.
“생각보다….”
“밝죠?!”
김 차사의 말대로 명계는 시후의 생각보다 밝은 이미지였다.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기에 상당히 우중충하거나 생전의 벌을 받고 있는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저건 논인가?”
“네~ 맞습니다~.”
“저건 과수원?”
“네~ 그것도 맞습니다~.”
“저건 옷 가게?”
“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주변에 풍경은 마치 작은 마을 같았다.
하다못해 삼두가 걷는 바닥까지. 아스팔트가 아닐 뿐이지 상당히 잘 다져져 있었다.
시후의 시선에 김 차사가 바짝 다가왔다.
“이 바닥도 조만간 작업을 진행할 겁니다. 마차가 다니기 편하도록요.”
“아, 그래.”
딱히 여기에 아스팔트를 깔던, 벽돌을 깔던, 대리석을 깔던 시후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생각했던 명계의 이미지와 다르기에 신기해서 쳐다봤을 뿐.
그런데 이어지는 김 차사의 말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것들 모두가 히프노스 님 덕분이지요~.”
“히프노스?”
“네~ 히프노스 님께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며 건축을 하는 방법이며….”
김 차사는 그동안에 히프노스가 명계에서 이룬 업적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농사, 건축, 재봉, 요리 등등.
‘모두 의식주에 해당하는 것이잖아.’
입고 먹고 자는 것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토대로 이런 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차사의 설명을 전부 들은 시후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굳이?’
명계는 망자들이 모여 있으며 그들을 심판하여 벌을 받게 하는 곳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굳이’ 의식주를 제공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김 차사는 시후의 표정을 읽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고는 말을 이었다.
“하, 하하~ 다들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히프노스 님은 아무리 벌을 받기 위해 명계에 온 망자들이라도 이제는 명계의 주민이니, 벌을 받는 동안이 아니라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벌을 받기 전이나 받은 후에는 여기에서 생활한다고?”
“네~ 이런 마을이 여기뿐만 아니라 명계 전역에 퍼져 있지요~.”
“허, 대단한데.”
시후는 진심으로 히프노스를 칭찬했다.
명계로 들어온 이들은 벌을 받기 위해 재판을 받는다.
그런데 재판을 주관하여 벌을 주는 이들의 수는 적기에 언제나 긴 기다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기다림 또한 벌이라 여겨 형량을 감해주지만, 자신이 언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고통이 수반될 터.
히프노스는 명계에 생활 터전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런 고통을 줄여준 거였다.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시후는 손을 치켜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거대한 화로가 있는 곳으로 쇠를 두드려 무언가를 만드는 대장간이었다.
탕-탕-칙-
일정한 간격으로 메질과 담금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한쪽에 널려 있는 것들도.
“그저 그런 농기구로는 보이지 않는데?”
“하하~ 그렇습니다. 저곳은 무기를 만드는 대장간으로 저곳에서 만든 물건들은 하데스 왕국에서 팔립니다.”
한눈에 보아도 상당히 잘 만든 무기들. 검, 도, 창, 부, 해머, 건틀릿 등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열된 무기들은 대력공방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저 정도라면 히든 등급 이상은 되겠는데.’
그만한 것들이 하데스 왕국으로 옮겨져 유저들에게 팔린다고 한다.
‘팔리기만 할까. 왕국을 방위하는 자들도 사용하겠지.’
시후는 슬슬 하데스 왕국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치 백조 같군.”
“백조… 요?”
“그래, 백조. 수면 위에서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 밑에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하는 백조.”
지상에 있는 평화로운 하데스 왕국과 명계에 있는 이런 생산 시설을 비하한 시후의 발언이었다.
“미, 미친.”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도플갱어는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김 차사의 눈치를 봤다.
김 차사가 누구인가.
그는 차사라는 직분으로 명계에 들어오는 망자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자이다.
말 그대로 명계 소속이며 하데스 왕국의 소속일 수도 있는 그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히프노스고 뭐고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 역시 처음 보는 분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김 차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시후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 차사의 설명은.
“저도 알고 저분들도 알고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아무도 그 시스템에 항거할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그 역시 상당한 불만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만든 이가 다름 아닌 히프노스이니 말이다.
이들에게 그의 말은 감히 항거할 수 없는 법령과도 같은 것이다.
‘밖으로는 타나토스로 외실을 다지고 안으로는 히프노스로 하여금 내실을 다지게 하고, 그렇게 자신의 왕국을 이룬 하데스.’
시후는 하데스를 일전에 만났던 얼빠진 올림포스 신들과는 다른 존재라 여겼다.
본래 무식하게 힘만 쓰는 족속보다는 머리를 써서 다른 이들의 힘을 제힘처럼 사용하는 것들이 더욱 무서운 법.
그래서인지 시후는 하데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어서 만나 그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기까지 했다.
“역시~ 천마님은 다른 유저와는 다릅니다. 그럼, 히프노스 님을 만나러 가볼까요~?”
시후의 흥미롭다는 표정이 히프노스에 대한 것이라 착각했는지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이쪽으로요~.”
김 차사의 안내를 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뒤따라 다녔다.
고즈넉하지만 상당히 깔끔한 거리였다.
시후는 주변을 감상하듯 두리번거렸다.
“예전에 내가 놀러 갔던 곳과 비슷…!”
천마 시절 지괴의 눈을 피해 놀러 나갔던 저잣거리와 비슷한 풍경에 추억을 떠올리던 시후는 갑자기 삼두의 갈퀴를 잡아당겼다.
“컹-”
삼두가 제자리에 멈추며 한차례 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 차사의 물음에 시후는 대답 대신에 코를 벌렁거렸다.
“킁킁, 이거….”
“뭐요?”
다들 시후를 따라 코를 벌렁거렸다.
그러자.
“어? 이거 무슨 냄새예요?”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맬리아와 도플갱어가 먼저 반응했다.
“아~ 이거.”
김 차사도 그제야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계 사람들도 음식을 먹나?”
농사짓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데스 왕국에 납품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죽은 자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기에 시후가 물었다.
“저희도 먹습니다~. 배가 고파 죽을 일이 없을 뿐이지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의외로군.”
아무래도 이곳은 기존의 상식으로만 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앞장서.”
“네?”
그래서인지 시후는 지금 이 냄새의 출처를 확인하고 싶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감이 말해줬다.
김 차사는 그런 시후에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시후의 요구대로 안내하는 김 차사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렇게 몇 번 모퉁이를 돌자 냄새의 출처에 다다랐다.
“포장마차?”
작은 노점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무로 만든 수레에서 한 노인이 음식을 팔고 있었다.
이미 주변에는 몇몇 이가 노인이 파는 음식을 받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음식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있는 음식이다.
“이 냄새가 국수 냄새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끈한 국물 안에 흰색 소면을 넣은 별거 없는 국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맛있는 냄새가 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던 그때.
“뭐여? 국시 먹으러 온 겨?”
노인이 시후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눈을 감은 것인지 뜬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다문 인자한 외모였지만.
“왔으면 싸게싸게 받아와 먹지 않고 뭘 혀?!”
말투가 상당히 거친 노인이었다.
“아이고~ 그럼요~ 그럼요~.”
김 차사는 몇 번이나 와봤다는 듯이 익숙한 발걸음으로 노인이 내민 국수를 받았다.
시후도 그의 뒤를 따라 노인이 말아준 국수를 받았다.
“음, 정말 향이 좋아.”
멀리서 맡았던 음식 냄새였건만 가까이에서 맡으니 더욱 좋았다.
정말 별거 없는 국수였지만 맡는 것만으로도 맛을 기대하게 만드는 냄새였다.
시후는 망설임 없이 노인 앞에 놓여 있는 젓가락을 집어 국수를 떴다.
“잘 먹겠습니다.”
허공에 인사를 한 후 국수를 깊게 한 젓가락 떠 입에 넣었다.
후루룩- 후루룩-
그것을 시작으로 시후를 포함한 모두가 미친 듯이 국수를 먹었다.
비록 앉을 자리도 없어 한 손에 국수 그릇을 들고 뜨거움을 참으며 먹어야 했지만.
“미쳤다!”
“어머, 어머!”
맬리아와 도플갱어가 내뱉는 감탄사처럼 맛이 엄청났다.
담백한 육수의 맛이 소면에 듬뿍 배어 있지만 육수가 얇은 면의 탱탱함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후루룩-
“크아~ 언제 먹어도 참으로 맛있습니다~.”
김 차사가 게 눈 감추듯 국물까지 먹고 난 후 그릇을 노인에게 돌려줬다.
“저….”
그런데 그 뒤로 맬리아가 조심스럽게 빈 국수 그릇을 노인에게 내밀었다.
“뭐여?”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을까요?”
맬리아는 잔뜩 수줍어하며 한 그릇을 더 요청했다.
볼이 잔뜩 상기된 여성 엘프의 모습은 이쁘다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옘병.”
“네?!”
“네 눈깔에는 저 뒤에 서 있는 녀석들이 안 보인다냐?”
“아….”
노인이 뒤를 가리킨 곳에는 심기가 불편한 듯한 표정으로 줄을 서 있는 명계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서 시후 네가 국수를 먹고 비키기만을 기다린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은 특이하게 빈 국수 그릇이 돌아와야만 다음 국수를 내놨다.
그런데 맬리아가 한 그릇을 더 요청하자 다들 자신의 차례가 멀어지는 것이 못마땅해 저런 표정을 짓는 거였다.
맬리아는 상기된 얼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시뻘게졌다.
“죄, 죄송합니다.”
얼굴을 감싸고 후다닥 뛰어가 삼두의 뒤로 숨은 맬리아.
“쯧. 답지 않게 행동하기는.”
노인은 맬리아의 그런 모습에 혀를 찼다.
그리고 그의 말에 동조라도 하듯.
“거~ 대충 다 먹은 것 같은데 그만 놓고 좀 가지?”
뒤쪽에 있던 자 중에 한 덩치 하는 자가 말했다.
누가 들어도 마지막 젓가락질을 하는 시후를 향한 말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마지막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룩-
그렇게 시후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국수 그릇을 노인에게 건네었다.
“죽은 자들이 온다는 명계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나?”
한껏 날이 선 사늘한 말과 함께 말이다.
노인은 그릇을 받아 들다가 그 말에 눈썹을 꿈틀댔다.
그 반응에 시후는 피식 웃고는 등을 돌려 방금 자신에게 말 건 그자를 마주 봤다.
“천마…님?!!”
시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김 차사가 말려보려고 하기도 전에 시후의 몸에서 기운이 일어났다.
그것은 김 차사의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 만한 엄청난 양의 천마지기였다.
순식간에 주위를 잠식하는 천마지기에 줄을 선 이들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후에게 입을 나불댔던 그 역시 공포에 짓눌린 표정으로 눈물까지 흘렸다.
“사, 살려….”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할 정도의 공포였다.
시후는 그를 향해 천천히 검지로 가리키고는 손가락 끝에 천마지기를 응집했다.
“네, 네 이놈! 그만두지 못할까!”
노인이 수레를 박차고 튀어나왔다.
한쪽 손에는 지팡이를 짚은, 살짝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지만, 한순간에 시후의 기세를 막았다.
손가락 끝에 응집된 천마지기를 스르륵 거두어들인 시후는 고개만 슬쩍 돌려 노인을 봤다.
“그러길래. 왜 쓸데없는 연극 놀이야.”
“뭐?”
무슨 말이냐는 노인의 표정에 시후가 말했다.
“반가워. 히프노스 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