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시후가 평치혁의 모습으로 벌인 일에 대한 파장은 엄청났다.
오죽하면 S.W SOFT에서 준비 중인 월드 오브 리그까지 연기되었다.
가상현실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졌으니 당연했다.
특히, 중국은 ‘무공’에 대한 집착이 다른 나라들보다 남달랐기에 그 여파가 더욱 컸다.
시안시의 좀비와 수천 개의 매화 꽃잎이 하늘을 뒤덮는 영상은 중국 전역에 빠르게 퍼졌다.
[좀비 뭥미?]
└ 좀비 모름?
└ 좀비(영어로 zombi, zombie)는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하며 부두교 전설에 나오며 주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체임.
└ 눼눼. 설명충 꺼지시고요.
└ 지금 중요한 게 좀비가 아니잖아!
└ 맞아! 저거 안 보임? 무공이라고 무공!
└ 정말 무공인가요? 막 하늘 날아다니고 장풍 쏘고 그런 거?!!!
└ 찐임. 현장에 있던 사람인데 저 잘생긴 분이 자기 입으로 무공 익혔다고 함.
각종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퍼지는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었지만.
“오~. 엄청 빠르게 퍼지잖아.”
정작 무공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시후는 태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후가 벌인 이 엄청난 일은 다른 곳에서 수습 중이었다.
“약선방 녀석들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해주고는 있네.”
매화만천을 펼친 시후가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자신은 화산파 속가 제자이며 약선방 사람이라고 말한 게 컸다.
사람들이 그 엄청난 발언에 놀라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시후는 자리를 떴다.
그것도 군대와 함께 좀비 중 살아날 가망이 있는 이들을 찾는다며 자리를 떴으니, 따라나서는 이도 없었다.
결국 모든 시선은 약선방으로 쏠렸다.
군과 함께 움직이는 매화 서생을 쫓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한곳에 머물러 있는 약선방을 찾는 게 수월하다 싶어서였다.
거기에 시후는 이미 이런 일을 대비해 약선방에 어떻게 대처하라고 일러 놓았다.
그 효과가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 벌어진 매화 서생의 무공 논쟁의 끝을 알아보기 위해 시안 인민방송국은 약선방 방주 송하룡 의원님과의 단독 인터뷰를 마련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송하룡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송하룡입니다.]
[이번에 매화 서생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자신은 화산파의 무공을 익혔고 약선방 사람이다.’라고 말했는데요.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양첸화의 질문에 송하룡 역시 즉답했다.
이 역시 시후가 송하룡에게 지시한 내용이었다.
“무공에 대한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야 땅속에 꼭꼭 숨은 두더지가 깜짝 놀라 튀어나오지.”
시후는 제갈재민을 찾기 위해 현대 시대에 무공이라는 폭탄을 던진 거였다.
이로 인해 일어날 여파가 어떨지에 대한 송하룡의 걱정스러운 질문이 있었지만, 그것을 묵인할 정도로 제갈재민의 위험도는 너무 컸다.
“법정이 보았다는 천기의 가장 큰 흉은 녀석이 확실해.”
일전에 원후태령을 데리고 사라졌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평치혁을 탈영활강시로 만들고 작금에 좀비 사태를 만든 것을 보고 확신했다.
만약 시후가 없었다면 좀비 사태는 시안시를 넘어 중국 전역에 퍼졌을 거고 그 이후에는 전 세계로 퍼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산 사람보다는 죽은 이가 더 많은 세상이 올 터.
그런 미친 짓을 제갈재민은 서슴없이 했고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를 찾는 것을 1순위로 두고 일을 벌였다.
“망설임 때문에 내 사람을 또 잃을 수는 없지.”
시후는 천 년 전 자신의 오만과 망설임 때문에 많은 이를 잃었다고 여겼다.
시후는 스마트폰을 들어 초록창 앱을 켰다.
예상대로 실시간 검색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시후가 벌인 일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제 기다리면 되겠지.”
시후는 주머니에서 제갈재민이 던져줬던 2G폰을 꺼냈다.
혹시 몰라 진지춘에게 구해오라고 했던 충전기를 꺼내 연결을 했다.
“주려면 충전기도 같이 주던가. 요즘 누가 이런 충전기를 쓴다고. 쯧.”
시후는 투덜대며 그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기다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삐리리리-
“뭐야, 벌써?”
생각보다 빨리 전화가 걸려 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티는 낼 수 없기에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어.”
- 크크. 크크큭. 큭.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받았건만 들려오는 것은 의외로 웃음소리였다.
“미친 거냐?”
- 미친 거는 너지. 크큭.
시후의 비아냥에도 제갈재민은 여전히 웃었다.
-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무공’의 존재를 그렇게 만천하에 까발릴 수가 있냐? 크큭.
“언젠가는 알게 될 거. 좀 빨랐을 뿐이지.”
- 그것도 그렇네. 그 말에는 동의.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본론만 말해.”
시후는 녀석과 길게 통화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제갈재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 왜, 나는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뭐?”
- 혹시 알아? 내가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다음 약속 장소라도 말할지?
명백한 협박이었다.
여기서 전화를 끊거나 하면 다음에 만날 장소와 일정을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쯧. 말해.”
일단은 한발 양보했다.
- 크큭, 잘 생각했어. 그런데 말이야. 나도 너랑 길게 통화하고 싶지 않아.
“뭐?”
이랬다가 저랬다가 미친놈인가 싶었다.
- 남자 새끼들이 통화는 무슨. 앞으로 7일 뒤, 제주도에서 보자고.
제갈재민이 다음 일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제주도라니.
지금 그가 중국을 벗어나기라도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왜 하필 제주도냐?”
- 그냥, 수학여행 느낌 나고 좋잖아?
“…뭐?!”
- 그럼, 7일 후에 보자고.
그렇게 헛소리만 내뱉던 제갈재민이 통화를 종료했다.
시후는 어이가 없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이 자식 아직 완전하지 못한 거 아니야?”
포달랍궁 달뢰라마의 계승.
영혼을 이은 그 술법에 의심이 갔다.
혹시나 든 그 의심에 시후는 7일 후 그와 만날 일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작전을 짰다.
그만큼 제갈재민의 힘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 그것도 있었지.”
시후는 좀 더 자세한 계획을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조민이 보낸 파일을 열었다.
거기에는 포달랍궁과 달뢰라마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서장 세력의 하나, 라마승들의 불교 문파로 알려져 있다. 이건 내가 아는 내용이고. 이것도, 이것도.”
꽤 많은 양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시후가 아는 내용들이었다.
시후는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멈췄다.
“찾았다.”
거기에는 7일 후 결전을 치르게 될지도 모르는 제갈재민.
아니, 달뢰라마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달뢰라마는 교황이며 황제이며 스승이다? 미친.”
이 정보는 시후가 알아보기 편하도록 조민이 나름대로 편집한 거였다.
달뢰라마를 교황, 황제, 스승과 동일시하며 불교의 윤회설과 결합하여, 승계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
선대 달뢰라마가 사망하면 윤회를 하여 그의 의식이 다른 아이의 몸으로 환생을 한다.
그랬기에 승려들은 기도와 명상으로 다음 대를 이을 아이의 단서를 얻는다.
그렇게 계승자를 찾으면 적법한 심사를 거친 후 16세에서 20세 사이에 정식으로 즉위를 한다.]
그 이후부터는 달뢰라마의 행적에 대해 나열되어 있었다.
“심사를 한단 말이지. 16세에서 20세 사이에 즉위를 하고?”
시후는 달뢰라마를 계승하는 데 필수적으로 행하는 몇 가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제갈재민의 경우와 대조했다.
작년에 제갈재민이 학교를 떠나기 전에 그를 봤을 때만 해도 그의 무위는 별거 없었다.
그저 또래와 비교해서 조금 강하다는 정도로 보았고, 무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제갈가 사람 누구나 알았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갑자기 달뢰라마가 되어서 나타났다.
아무리 계승이라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럼, 포달랍궁이 상당히 옛날부터 점찍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
16세에서 20세 사이에 즉위하는 달뢰라마.
시후는 그것에 눈길을 뒀다.
딱 원후가가 제갈가를 집어삼키려고 했던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아무래도 원후가를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
시후는 제갈재민의 어머니인 원후태령의 본가인 원후가와 포달랍궁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 추측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진지춘에게 원후가를 조사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 조민이 보낸 자료를 모두 읽은 시후는 7일 후 있을 결전에 대비한 계획을 세우는 데 꼬박 반나절을 보냈다.
“하아. 피곤하다.”
시후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이런 것은 지괴에게 맡겼을 텐데 조민은 아직 그 정도의 깜냥은 없었다.
그랬기에 시후는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계획을 세웠다.
태산과 인호의 무공도 동료 몇은 지킬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조민 역시 이번에 큰 깨달음이 있어 크게 정진한 상태였다.
거기에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초절정에 들어선 제갈신길의 가르침으로 한 단계씩 강해졌고 당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궁세가는 시후가 알려준 은신술을 토대로 암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모두에게 주어질 무기.
눈곱만한 내공을 흘려 넣어도 자동차만 한 바위를 가를 수 있는 무기는 대력공방에서 공수할 수 있었다.
이렇듯 웬만한 준비는 된 상태였기에 7일 후에 인력을 잘 배치하면.
“그놈들의 상대는 되겠지.”
그랬다.
포달랍궁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랬기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정도밖에 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답은 대가리라는 건데.”
포달랍궁을 대표하는 이라면 분명 제갈재민일 것이고, 이쪽을 대표하는 이라면 당연히 시후였다.
그 둘의 승패에 따라 전황이 기울 거였다.
시후는 7일 안에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했다.
“이제 와서 영약을 먹는다는 것은 그저 주전부리에 지나지 않고, 무혈검보다 좋은 무기를 구할 수도 없고, 남은 건… 천마지기뿐인가.”
시후는 손바닥을 펼쳐 천마지기를 끌어올렸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어두운 기운에 순식간에 주변 기온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시후는 손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천마지기를 보고 과거를 회상했다.
모든 무공에 천마지기를 실을 수 있었던 천 년 전.
천마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큼 천마지기로 하늘을 가렸었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육 단계까지는 올라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천마지기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마기가 필요했다.
대충 가늠해봤을 때 지금 몸에 쌓은 천마지기에 배 정도 되는 양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순수한.”
잡것이 실리지 않은 그런 정순한 마기를 어디서 채우나 싶은 그때였다.
우웅- 우웅-
스마트 폰에 알람이 울렸다.
- 맬리아 : 김 차사에게 연락이 왔어요.
단 한 줄의 메시지였지만 시후는 지금의 문제를 타파할 길을 찾았다.
“명계, 마기를 얻기에 그곳만큼 딱인 곳은 없지!”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 명계.
사령신자와의 결투 때 사기를 흡수하면 마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 또한 길이라 여겼다.
시후는 곧장 진지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팔이, 너희 집에 좀 가자.”
근처에서 가장 빠르고 좋은 캡슐이 있는 곳이 진지춘의 거처였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