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이번 일로 약선방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의료계의 선두 주자 약선방]
[위험지역에도 서슴지 않고 구조팀을 보내는 약선방]
[약선방 방주 송하룡, 일선에서 직접 진두지휘]
…
…
시안 인민방송국은 이와 같은 제목으로 약선방 구조팀이 시안시에서 구조 활동 하는 것을 연신 내보냈다.
거기에 이번 일에 가장 대서특필된 ‘매화 서생’의 얼굴도 같이 말이다.
“이 정도면 연예인이나 다름없네.”
시후는 스마트폰에서 매화 서생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이미 방송국뿐만 아니라 SNS에도 빠르게 퍼졌고 너튜브에서는 편집본까지 돌았다.
그야말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 정도면 같이 다니기 좀 불편할 거야.”
시후는 제갈재민을 찾기 위해 그의 얼굴이 아닌 평치혁을 이용하기로 했다.
화산에서 둘은 시후 앞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상단전을 연 시후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의 희한한 술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술법이더라도 몇 날 며칠, 몇백 킬로미터를 그렇게 이동할 수는 없다.
물론 변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시후가 아는 한 천투변용술 외에는 장시간 변용을 유지할 수 있는 술법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시후는 몇 가지 안전장치를 더 해두었다.
서생 같은 잘생긴 외모, 다정한 말투, 매화향, 거기에 매화검까지.
화산에서 꺾어온 매화나무 가지로 급히 만든 목검이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평치혁이 들고 다니는 매화검과 똑같이 보일 터였다.
이런저런 특징들로 아무리 숨거나 변용을 해도 평치혁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상 어디선가는 사람들의 눈에 띌 거였다.
그리고 좀비 소동으로 얼굴이 팔리고 사람들의 두터운 신망까지 얻었다면 분명 SNS에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해질 게 분명했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좀 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시후는 또 다른 것을 준비했다.
“이 정도로는 숨은 두더지를 꺼낼 수는 없지.”
사람들의 제보만 기다릴 수 없기에 그들이 스스로 나올 만한 미끼를 던져주기로 했다.
우웅-
시후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울렸다.
[적당히 모인 것 같습니다.]
샤오롱이었다.
“그럼, 가볼까.”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자.
“꺄아악! 매화 서생님이야!”
“어머어머, 집에 안 가시고 컨테이너에 계셨던 거야?!”
“저거 메디큐브라고 의료 시설이잖아. 어쩜~ 저기서 밤새셨나 봐.”
“저것도 약선방에서 준비한 거라고 하던데. 정말 매화 서생님과 약선방이 관계가 깊나 봐.”
방송국 취재진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평치혁의 모습을 한 시후를 촬영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후는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자신을 찍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걸어 나갔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은 없었지만 시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세상 다정한 미소와 얼굴을 살짝 붉히기까지 했다.
평치혁 역시 상당한 미남이었기에 저런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더욱더 난리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하룡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도련님께서는 연기를 하셔도 되겠어.”
“그렇죠? 크큭. 우리 도련님, 정말 다재다능하시다니깐요.”
옆에 있던 진지춘이 맞장구를 쳤다.
한국에 있던 진지춘은 이번에 시후의 소집에 유일하게 중국으로 넘어왔다.
시후는 다른 이들에게 다시 한국에서 대기하라고 했지만, 그만은 중국에서 할 일이 있다며 불렀다.
그렇게 진지춘은 한발 늦게 시안시에 도착했고 지금처럼 시후가 벌이는 연극을 즐겁게 관람 중이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 저희에게 시키실 일이 뭘까요?”
“글쎄다. 너와 나를 콕 집어서 말씀하셨다고 하던데.”
둘은 시후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시킬지 궁금했다.
그사이 시후는 사람들의 이목을 한껏 받으며 단상 위로 올랐다.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한 시안 인민방송국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기 위해 오른 거였다.
그렇게 주변 사람의 이목을 모두 끈 시후가 마이크를 잡고 내뱉은 첫마디는.
“아직 위험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장내를 싸하게 만든 발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좀비들의 위협을 상기해 주었다.
실제로 시후 말대로 시안시에 좀비 출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후와 중국 정부가 정리한 것은 시안시 일부분이었다.
정부군은 일단 정리된 이곳을 기점으로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좀비들을 사냥했고 시안시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며 집에 숨어 있었다.
덕분에 매화 서생을 향한 환호는 그쳤지만, 사람들을 더없이 그에게 집중했다.
“분명 좀비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들은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군체를 늘리며 저희를 위협하니까요.”
시후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저분 갑자기 왜 저러신대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웃어주면서 희망을 심어주시던 분이?”
양첸화가 당황하며 조용히 샤오롱에게 물었다.
“쉿. 이제 아주 중요한 발표가 있으니 집중하세요.”
샤오롱은 검지로 입을 가리더니 집중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시후가 엄청난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가 저들을 좀비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뭐가 다릅니까? 모두 죽은 자 아닙니까?”
“정확히는 죽은 자와 죽기 직전의 자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사람들은 시후가 줄곧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자 뿔이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후의 말에 다들 입을 닫았다.
“죽은 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죽기 직전의 자들은 본래 모습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진짜요?!”
“네.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시후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이미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이번에 주변을 정리하다가 시후는 좀비 몇을 잡아다가 우리에 넣어뒀다.
몸 여기저기가 물어 뜯겨 피를 뚝뚝 흘리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사람들을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좀비들.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미 산 자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시체였기에 어떤 이들은 그 끔찍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기까지 했다.
시후는 우리로 걸어갔다.
“이들처럼 아직 명계로 들어가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들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시후는 그들이 갇혀 있는 우리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산들거리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시후가 흔드는 손의 움직임을 따라 우리 안에 갇힌 좀비들을 감쌌다.
-크아악!
그러자 좀비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공통된 행동이 있었다.
모두 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는 거였다.
사람들은 끔찍하면서도 놀라운 장면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투두둑-
좀비들이 갑자기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뭐, 뭐야?!”
“그냥 죽은 거 아니야?!”
“매화 서생이 거짓말을 한 거야?”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시후가 좀비가 된 이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했기에, 혹시나 해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모든 좀비가 쓰러지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바로 약선방의 인물들.
그들은 시후가 지금 펼친 무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송하룡은 눈이 찢어지라 부릅뜨고는 진지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보, 보았느냐?”
“아, 네. 우리 도련님 정말 어떻게 저러지?”
“허, 허허. 설마 생사공에 저런 효능이 있을 줄이야.”
송하룡의 말대로 시후가 펼친 그것은 생사공(生死功)이었다.
약선방 방주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으로 약선방에서는 사상지공(四象之功)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의 신체 능력을 조절하는 무공으로 일전에 시후가 황 장로에게 펼친 것처럼 심장박동수를 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런 무공을 시후가 좀비들에게 펼쳤다.
황 장로 때와는 다르게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펼쳤지만, 원리는 같았다.
우선 좀비가 된 이들의 뇌.
그들의 뇌에 신경이 끊어진 부분을 활성화하고 심장을 포함한 각종 내장 기관을 돌봤다.
돌본다는 개념과 좀 남다르게 그 안에 퍼진 사기를 배출하는 것이지만 생사공을 아는 이들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송하룡은 도대체 시후가 어찌 생사공의 저런 효능을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시후가 반로환동한 고수라는 생각이 점점 자리 잡았다.
시후는 약선방 사람들이 자신이 펼친 생사공을 눈치챈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으….”
“어?!! 일어난다?!”
죽은 줄 알았던 우리에 갇힌 이들이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거기에 그들은 좀 전과는 다르게 공격적인 모습이나 흐리멍덩한 눈을 보이지 않았다.
되레 자신들의 몸에 난 상처를 감싸 쥐며 고통에 호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약선방 구조팀이 빠르게 우리 안으로 들어가 치료를 시작했다.
좀비였던 이들이 치료받는 것을 보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이제 좀비가 아닌 거야?”
“무슨 장풍 같은 거 휙휙 하더니 되살아났다고.”
“그러고 보니 저분 목검 휘두를 때도 이상했어요.”
사람들은 시후가 보여준 무공을 이야기에 화두로 이끌어갔다.
좀비였던 사람들이 되살아난 것을 봤으니 그 원인을 찾으려는 거였다.
그에 맞추어 시후는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제가 보여드린 것은 약선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입니다.”
시후의 말에 송하룡과 진지춘은 깜짝 놀랐다.
지금 시후는 생사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였다.
약선방 인원들 역시 깜짝 놀라며 송하룡을 쳐다봤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묻는 눈빛이었다.
송하룡은 그들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분명 시후에게 무슨 생각이 있으니 저러는 것이라 여겼다.
그사이 사람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시후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비전이요?”
“약선방에만요?”
여러 질문에 시후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대답했다.
“네. 약선방 분들은 이미 제가 행한 것이 무엇인지 모두 아실 겁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약선방 구조팀에게로 향했다.
시선이 몰리자 약선방 구조팀은 미소로 화답했다.
부정하지 않는 거였다.
그러자 재빨리 양첸화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럼, 약선방 모두가 좀비를 되살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정확히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시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자로 저었다.
“아닙니다. 이것은 상당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에 약선방 내에서도 고명하신 송하룡 방주님과 진지춘 장로님만 가능하십니다.”
시후가 손을 들어 둘을 가리켰다.
그러자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둘에게로 쏠렸다.
그와 함께 시후의 전음이 둘에게로 날아왔다.
- 웃어.
그 전음에 둘은 방긋 웃었다.
시후의 말에 긍정의 화답을 한 거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매화 서생이 보여준 믿기지 않는 것을 약선방 방주와 장로가 할 수 있다니.
그것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지는 거였다.
‘좋아. 이게 결정타.’
시후는 분위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으니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중요한 것은 저기 계신 분들처럼 아직 살아날 희망이 있는 분들이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총과 같은 화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살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어찌 분류합니까?”
이번에도 역시 정확히 핵심을 짚는 양첸화였다.
시후는 그녀를 보며 머리와 심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머리, 심장. 이 두 가지만 멀쩡하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중에 군 관계자가 빠르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보였다.
양첸화 역시 카메라 앞에 서서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후는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직, 너희는 더 궁금한 게 있잖아. 어서 물어봐.’
시후는 좀 더 기다렸다.
제갈재민을 끌어낼 아주 큰 미끼를 말이다.
그리고 기다림에 화답하듯 질문이 날아왔다.
“그런데 매화 서생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합니까? 고명하신 분들만 익힐 수 있다는 비전을 말입니다.”
그 질문에 시후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대답을 피하는 건가 싶은 그때였다.
“저는 무공을 익혔으니까요.”
시후의 대답이 엄청난 소리로 장내를 진동했다.
마치 곁에서 고함이라도 지른 듯해 사람들은 저마다 귀를 부여잡았다.
놀라는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시후는 기다렸다는 허리에 차고 있던 목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차례 하고는 하늘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매화만천(梅花滿天).”
수백, 수천 송이의 매화 꽃잎이 목검을 떠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무공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