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 긴급 속보입니다. 웨이난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식인을 일삼으며, 물린 이들 역시 식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현재 공안이 단속에 나섰으니 시민들은 자택에서 대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시안 인민방송국 전 채널에서 속보로 다뤘다.
화면에는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덮치는 장면이 보였다.
덮쳐진 사람들이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쳐도 미쳐 날뛰는 이들이 서너 명씩 달라붙어 그들의 살을 뜯어 먹었다.
이윽고 발버둥 치던 이들의 몸이 축 처지면, 물어뜯던 이들은 식인을 멈추고 다른 이들을 덮쳤다.
문제는 물어뜯긴 이들이 몸을 비틀대며 일어나 자신을 식인한 이들과 똑같이 다른 사람들 덮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방송국 촬영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게다가 방송국은 사안이 사안인지라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모자이크 따윈 없이 내보냈다.
시안 인민방송국 빌딩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그 뉴스를 시후도 보고 있었다.
“막 나가자는 거야? 미친 짓도 정도껏 해야지.”
시후는 아수라장이 된 시안시의 상황의 원인이 제갈재민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식인하는 이들의 상태가 평치혁의 상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저런 상태의 녀석들을 본 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설마 사령신자 그 자식도 포달랍궁의 꼬리일 줄이야.”
천 년 전 사령을 이용하여 무림을 혼돈에 빠트렸던 사령신자(死靈神者).
천마 신교 영역에 들어온 그가 끌고 다니던 녀석들이 딱 저랬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혼을 잃어버린 자들.
사령신자는 자신이 부리는 사령으로 산 사람의 혼을 빼내고 그들에게 사령을 집어넣었다.
그러면 살아생전에 연마하던 무공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자아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다가 필요가 없어져 사령을 빼면꼭 저들처럼 행동했다.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뜯고 또 물어뜯고.
문제는 물린 놈들이 일어나 다른 놈을 물어뜯는다는 거였다.
그렇게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녀석들을 사령신자는 거닐고 다녔다.
“요즘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좀비가 따로 없군.”
영화에서나 볼 법한 좀비가 시안시에서 출몰했다.
다행이라면 중국 정부에서 빠른 결단력을 보였다는 거였다.
탕- 탕-
후아악-
좀비들이 시안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방어선을 구축해 놓고는 여러 가지 화기들로 그들을 막았다.
뉴스에서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빌딩 위에 있으니 한눈에 보였다.
“어쩔까나.”
시후는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시안시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자신이 나서게 된다면 더는 인명피해가 없을 테지만 그것은 제갈재민이 바라는 결과일터.
아무리 쫓겨난 녀석이라고 해도 그 역시 제갈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이였다.
그것은 화산에서 마주쳤을 때 충분히 당해봐서 알았다.
“평치혁을 이용해 그만한 함정을 팠으니 저것들 또한 마찬가지일 터.”
탈영활강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평치혁.
아마도 시후가 도착하기 전 30분 내외로 그리되었을 거였다.
제갈재민은 그런 촉박한 시간에도 함정을 팠고 시후 앞에서 멀쩡히 빠져나가기까지 했다.
시후는 객관적으로 제갈재민이 포달랍궁의 달뢰라마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의 다음 수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최종 목표가 샐러맨더인 것은 확실한데.”
영생을 위해 불의 정령을 잡으려는 제갈재민의 의도는 명확했다.
그렇다면 그것에 다다르기 위한 최대의 난관인 시후를 치우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치운다고 치울 수 있는 길거리 돌부리도 아니고.
무슨 방법으로 자신에게서 샐러맨더를 빼앗아 갈지 도무지 예상되지 않았다.
평치혁을 납치해 탈영활강시를 만든다?
그래서? 그래서 그가 얻는 게 무엇인가.
고작 활강시 하나로 시후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닐 터.
“나를 막기 위해서는 본인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도대체 이 자식이 원하는 게 뭐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제갈재민 정도면 시후가 인정에 쏠려 일을 그르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시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좀비들이 시안시를 누비며 사람들을 덮치는 광경을 주시했다.
“꺄악! 살려주세요!”
-크아악
“저리 꺼져!”
살아생전 운동능력을 유지한 좀비들의 달리기 실력은 대단했다.
거기에 사람들은 서로 살겠다며 다른 이를 밀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저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녀석이 바라는 것일 텐데. 그건 싫은데.”
사람들을 돕는답시고 좀비들을 처리하는 것이 제갈재민이 파놓은 함정이라 생각했다.
이미 시안시에서 벌어진 좀비 소동을 모르는 나라가 없었다.
여기서 저 녀석들을 처리한답시고 나서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전 세계에 얼굴이 노출될 거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움직이는 데 상당한 제약이 생길…! 아!”
시후는 순간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라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빠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네, 송하룡입니다.
통화 상대는 약선방 방주 송하룡이었다.
“영감, 일은 잘하고 있지?”
- 도련님이시군요. 맡겨주신 일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겸손한 대답이었지만 시후는 알고 있었다.
그가 중국 정계에 진출을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히 깊숙이 관련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래.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그간에 결과물 좀 써 먹어보자.”
- 말씀해 주시면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송하룡의 목소리가 살짝 격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시후의 지시로 마련해 놓은 무기를 써먹을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시후의 지시를 들은 그는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준비되는 대로 바로 터트려.”
- 네!
그렇게 송하룡을 통해 아주 쓸 만한 작전을 전달한 시후는 빌딩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제 제갈재민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여주기 위한 임팩트가 필요했다.
“저기 있군.”
때마침 아주 적절한 상황이 보였기에 바로 몸을 날렸다.
* * *
“꺄악! 살려주세요!”
“엄마!!”
한 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고함을 질렀다.
그런 그녀들 앞에는 세상 모든 것이라도 씹어 먹겠다는 듯이 입을 달싹거리는 좀비가 있었다.
“그어어어.”
좀비는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잔뜩 웅크린 모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마치 엄마와 아이 중 누구를 먼저 씹어 먹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으아앙!!”
때마침 엄마의 품속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크아아!”
좀비가 일을 쩌억 벌리고 아이를 물어갔다.
“안 돼!”
엄마는 필사적으로 품속의 아이를 끌어당기며 자기 등을 좀비에게 내밀었다.
자기 자식이 조금이라도 오래 살았으면 하는 모성애에서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좀비는 그런 모성애에 감동하여 달려드는 행위를 멈출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크아아!”
점점 가까워져 오는 좀비의 외침에 두 모녀는 눈을 질끈 감고 서로를 바짝 끌어안았다.
그런데.
“……?”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이의 엄마는 물어뜯기는 고통을 감수하기 위해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 보았다.
목검 하나를 들고 좀비들을 물리치는 남자를.
그 남자는 책이나 읽을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손속에 사정 따위는 없이 잔인하게 좀비들을 공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매화향이 가득 퍼졌다.
거기에 이제는 매화잎이 보이기까지 했다.
어느덧 눈에 보이는 좀비들을 모두 쓰러트린 남자.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모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목소리까지 한없이 다정했다.
“아, 네…, 저희는… 네.”
아이 엄마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답이 어눌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다며 미소로 화답하며 손을 내밀었다.
“조금만 있으면 구조팀이 올 거예요. 제가 그때까지 머무를 만한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아이 엄마는 구조팀이라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내 상황을 인지했다.
자신과 아이가 이 남자 덕분에 살았고 조금 후면 자신들을 구해줄 구조팀까지 올 것이며 그때까지 이 남자가 자신들을 보호해주리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 엄마는 남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남자는 모녀를 구한 것처럼 다른 이들 역시 좀비들로부터 구하며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각종 화기로도 쉽게 제압할 수 없던 좀비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남자가 휘두르는 목검에는 맥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좀비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남자가 구한 이들은 50명이 넘었다.
“와…. 매화 서생 짱이다.”
“감사해요. 매화 서생님.”
어느덧 남자는 ‘매화 서생’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그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닙니다. 다들 놀라셨을 텐데. 잠시 후면 약선방에서 구조팀이 도착한다고 하네요.”
“약선방이요?! 약선방 분이셨어요?”
매화 서생이 약선방과 연관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약선방은 중국에서 크게 이슈화된 곳이었으니 당연했다.
정계 진출을 위해 약선방이 우선으로 한 것이 바로 민생 안전이었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를 했고 그들에게 좀 더 체계적으로 의료 행위를 돕고자 시설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 효과로 많은 사람의 인심을 얻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정계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자리한 약선방과 매화서생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이들의 생존을 기뻐하며 방송에 송출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안 인민방송국 양첸화 기자입니다. 이번 일에 대해 잠깐 인터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양첸화가 매화 서생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밀며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이, 인터뷰요? 제가… 그런 것은 해보지를 않아서….”
매화 서생은 상당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양첸화 기자님, 인터뷰는 저희가 대신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화 서생을 대신하겠다며 나타난 이는 샤오롱이었다.
약선방 구조팀이 도착한 거였다.
샤오롱은 구조팀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고는 양첸화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아! 당신은 샤오롱 님!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이렇게 또 만나게 되니 상황이 상황이지만 반갑습니다.”
둘은 안면이 있는 듯 악수했다.
그리고 매화 서생을 대신해 샤오롱이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 사이 매화 서생에게는 송하룡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아주 낮은 어조로 속삭였다.
“정말 똑같은 얼굴이시군요.”
“평치혁 얼굴쯤이야. 그보다 내가 지시한 것은?”
그랬다.
매화의 기운을 뽐내며 좀비들을 처치하고 사람들을 구한 매화 서생은 천투변용술을 이용해 평치혁의 얼굴로 변용한 시후였다.
“이미 그 얼굴을 여러 포털사이트에 올려놓았습니다.”
“잘했어. 어디, 너희가 수십억 개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닐 수 있는지 보자고.”
시후는 자신을 찍는 방송국 카메라에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평치혁의 얼굴이 널리 널리 퍼져 숨어 다닐 수 없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