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달뢰라마(達賴喇嘛).
다른 것은 몰라도 그만은 알고 있었다.
천 년 전 황궁을 찾았을 때, 황제 옆에 착 붙어 있던 녀석.
대외적으로는 황제의 스승이라며 불교의 이념을 전하고 민생을 돕는다고 하였지만 시후가 보기에는 전혀 달랐다.
‘의도가 음흉했지.’
달뢰라마는 스승이라는 명목하에 황제를 조종했다.
처음에는 작은 것을 조언하더니 종국에는 외교에까지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때는 관과 무림의 상호 불가침 조약으로 참견하지 않았지만 분명 기억에는 남아 있었다.
‘특히, 저 눈.’
달뢰라마를 상징하는 제3의 눈이 말이다.
사람에게 눈이 하나 더 달렸다는 것이 신기해 천마신교로 돌아와 지괴에게 물었을 때 그는 꽤 많은 것을 조사해 왔었다.
달뢰라마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그가 알아 온 자료들은 꽤 상세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계승이었다.
포달랍궁에서 ‘환생’이라 전해지는 그것은 달뢰라마가 죽은 후 정확히 어느 곳에 누가 언제 달뢰라마가 되는지를 알려줬다.
그리고 포달랍궁은 그곳을 찾아가 달뢰라마가 되는 이를 데리고 간다고 했다.
그가 정식으로 힘을 얻을 때까지 포달랍궁에서 기른다고 들었는데 그 후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때 그 책이 좀만 더 얇았어도 읽었을 텐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책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공서도 아닌 것을 읽는 데는 취미가 없었다.
시후는 달뢰라마의 정보를 되새기며 제갈재민을 다시 봤다.
다른 눈들과는 달리 희번덕거리는 제3의 눈.
지금의 상황만 아니었다면 제대로 겨뤄봤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
시후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역시, 눈치가 빨라.”
평치혁을 죽이지 않고 활강시로 만들었다.
거기에 그를 이런 곳에 두고 시후를 유인했다.
그리고 제갈재민이 보이는 행동들.
전혀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이는 언동에 시후는 그가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넘겨.”
“뭘?”
밑도 끝도 없는 요구였지만 시후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역시 녀석의 목적은 샐러맨더인가.’
샐러맨더가 일전에 알려주었던 자신을 노리는 이들의 존재.
천 년 전 성화당을 부수고 샐러맨더를 취하려고 했던 것은 포달랍궁이었던 것이다.
제갈재민은 시후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이마에 눈이 점점 붉어졌다.
“크큭. 같이 오지 않았구나?”
“…….”
“내 조건은 그거 하나야. 네 곁에 있는 그놈, 불의 정령을 넘겨.”
“그게 다냐?”
“그래. 그렇게만 하면 이 녀석은 돌려주지.”
제갈재민이 평치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가 평치혁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시후가 움직였다.
찰나의 순간에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순시보로 제갈재민의 옆으로 이동한 시후는 들고 있던 비수로 제3의 눈을 노렸다.
시간이 멈춘 공간에서 오로지 시후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수의 끝이 그의 눈에 닿으려는 그 순간.
그 눈동자가 홀로 움직였다.
그러자.
훅-
비수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깜짝 놀란 시후는 둘의 기척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어떻게 움직였는지 둘은 이미 창고 밖에 있었다.
“쯧쯧쯧. 그렇게 뻔히 보이는 수법이 통할 거라 생각했나?”
“어떻게….”
분명 찰나의 순간에 움직였고 이미 비수 끝이 다다르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둘은 이미 창고 밖에 있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전화나 잘 받아. 약속 장소는 다음에 알려줄 테니.”
휙-
제갈재민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시후에게 던졌다.
가볍게 날아온 그것을 받아든 시후.
그것은 예전에 사용하던 2G 폰이었다.
“벨이 울리면 곧장 받는 게 좋을 거야.”
스륵-
제갈재민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평치혁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시후는 그들이 사라지는 즉시 상단전을 개방해 기감을 아무리 넓혀봤지만, 둘의 기척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그때 그 정보가 필요하겠어.”
시후는 제갈재민에 관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정확히는 포달랍궁 궁주인 달뢰라마의 정보가 필요했다.
“일단은 내려가자.”
소란이 일어난 것을 누군가 들은 것인지 이곳으로 몰려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쳐봐야 좋은 일이 없으니 시후는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화산을 내려갔다.
화산 아래 있는 도시로 들어선 시후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오빠.
“오고 있어?”
- 네. 지금 인천 공항이에요. 1시간 후면 출국할 수 있어요.
“아니야. 오지 마.”
- 네?!
박초연과 연락했을 때 중국으로 오라고 했지만 이제 그들이 올 필요가 없어졌다.
시후는 그 이유를 조민에게 설명했다.
화산에서 평치혁을 만났고 그 옆에 있던 제갈재민의 존재와 평치혁이 탈영활강시가 된 것들 전부를 전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샐러맨더야.”
- 하지만 넘겨줄 수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나 시늉이라도 해야 해.”
-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오빠가 제압할 수…! 없으셨구나?!
“어. 내가 눈앞에서 놓칠 정도로 녀석은 힘이 있어.”
시후는 냉철하게 제갈재민의 힘을 평가했다.
무공과는 다른 그의 힘은 분명 제3의 눈에서 나오는 것 일터.
특이한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그 눈이 붉게 물든 것이 그 증거였다.
그래서 시후는 필요한 게 있었다.
“포달랍궁과 달뢰라마. 그리고 반선라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알아볼게요.
“그래. 그리고 평치혁을 찾는 시늉도 좀 해야 하니깐 진지춘에게 연락해서 약선방 좀 움직이라고 해.”
시후는 자신이 평치혁을 찾고 있다는 것을 제갈재민이 알 수 있게 약선방을 이용했다.
그것이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쪽이 안달 난 모습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조민에게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시후는 다시 몸을 날려 한국으로 돌아갔다.
* * *
시후와 평치혁이 싸우는 바람에 부서진 화산파의 창고.
소란을 듣고 달려온 이들은 부서진 창고를 열심히 치우고 있었다.
“이 야밤에 이게 무슨 헛짓거리래?!”
“그러게 말이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이게 왜 부서져?”
“에이 젠장!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괜히 반장님이 술 한잔하고 가라고 해서는.”
투덜대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모였다.
그가 이들의 반장인 듯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치우고 남은 술이나 마저 마시자고.”
“됐습니다!”
반장의 다독거림에도 그들은 술에 미쳐 남았던 자신들을 탓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때였다.
“그러게. 왜 이 시간까지 남아 있어서 명을 단축할까?”
“까, 깜짝이야!”
갑자기 창고 안에서 제갈재민과 평치혁이 걸어 나오자 사람들은 기겁했다.
분명 창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둘이 걸어 나오자 다들 등골이 오싹했다.
“누, 누구요?!”
반장이 삽을 치켜들고는 다가왔다.
제갈재민은 그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쩌억-
“히익!! 귀, 귀신이다!”
제갈재민의 이마에 선이 그어지며 제3의 눈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멈춰.”
우뚝-
그런데 제갈재민이 멈추라고 하자 다들 걸음을 멈췄다.
“으악!”
“다, 다리가 안 움직여!”
“사, 살려주세요!”
공포에 질린 그들은 자신의 다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제갈재민은 천천히 그들에게로 걸어갔다.
그의 이마에 제3의 눈에서 붉은색 피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오늘 내가 힘을 좀 많이 썼어. 빌어먹을 그 새끼가 더 강해졌더라고.”
“으아아!”
“제, 제발! 살려주세요!”
“빌어먹을!”
사람들은 그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목 놓아 울부짖었다.
누구는 살려달라며, 또 누구는 욕을 내뱉으며 현실을 부정하듯 말이다.
“닥쳐.”
하지만 또다시 제갈재민의 명령에 한순간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에 조용해진 장내는 제갈재민의 걸음걸이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렇게 걸어간 제갈재민은 자신에게 삽을 치켜들었던 반장 옆에 멈춰 섰다.
“평생을 살아봐야 의미 없는 삶일 텐데. 내게 보시(報施)하고 떠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
“…….”
반장은 공포에 질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이었다.
제갈재민은 그런 그의 얼굴을 망설임 없이 양손으로 잡더니 똑바로 마주 봤다.
반장이 공포에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때 제갈재민의 이마에 달린 눈이 번쩍였다.
그어어어-
괴기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반장의 육신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몸에 있는 수분 모두를 한순간에 빨린 듯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버렸다.
“하아, 아직 부족해.”
제갈재민은 말라비틀어진 그를 옆으로 툭 던지고는 다음 사람을 잡아갔다.
그렇게 한 사람씩 차례차례 모두를 미라로 만들어버린 제갈재민.
“후우, 이제 좀 살겠네.”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웃었다.
“왜? 너도 해보게?”
제갈재민이 고개를 돌려 평치혁을 봤다.
여전히 평치혁의 눈은 흐리멍덩했지만 어째서인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역시 대단해. 그 자식은 어떻게 너 같은 수하를 뒀을까? 부러워, 아주 부러워.”
제갈재민은 평치혁에게로 다가가며 비아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탈영활강시가 된 평치혁이건만 자신이 벌인 짓에 분노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혼을 갈아버렸어야 했는데. 그랬다가는 그저 꼭두각시가 되어버릴 뿐이니 그럴 수도 없고.”
제갈재민은 평치혁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제3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어어어.”
그 안광에 쏘인 평치혁이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몸의 떨림이 점차 잦아들었고 안광이 사라지면서 그의 떨림도 사라졌다.
그러고는 좀 전보다 더욱 흐리멍덩한 눈으로 제갈재민을 봤다.
“도사의 맥을 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녀석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그런가. 아쉽네.”
무슨 이유에서인지 평치혁의 정신 상태가 불안했다.
그만한 인재를 완벽한 탈영활강시로 만들 수 없는 데 아쉬움이 컸다.
후에 요긴하게 써먹을 일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때까지는 저 녀석들을 써먹어야겠어.”
딱-
제갈재민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조금 전에 미라가 된 이들이 비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지.”
딱-
또 한 번 제갈재민이 손가락을 튕기자 미라였던 그들의 몸이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의 눈은 전혀 생기가 없었다.
“좋아. 아주 좋아.”
제갈재민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너희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 그저 내려가서 다른 이들을 너희처럼 만들어.”
-그어어.
그들은 알아들었는지 입을 모아 울었다.
제갈재민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했다.
화산파 밑에 있는 도시부터 일어날 소란이 그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제갈재민은 손을 휘휘 저었다.
“가라. 가서 너희가 할 일을 해.”
-그어어.
그렇게 그들이 줄을 맞추어 산에서 내려가자 남은 것은 제갈재민과 평치혁뿐이었다.
제갈재민은 평치혁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가자. 당분간 네가 지낼 새 보금자리를 알려줄 테니.”
그렇게 둘이 사라진 후, 다음날.
중국 뉴스는 화산에서 일어난 괴이한 현상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