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이야, 이 강은 뭐가 이리 거세.”
시후는 눈앞에 펼쳐진 성난 강줄기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받았을 때처럼 말이다.
“당연하지. 이 강은 증오의 강 스틱스, 신들조차 두려워하는 곳이니까.”
카론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두 손에 힘을 가득 담아 선체를 꽈악 붙잡았다.
촤악-
그와 동시에 배가 거친 물살을 헤치고 솟아오른 파도를 타고 넘어갔다.
그러자.
“그러니까! 조심히 좀 몰아!”
카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키를 잡은 이는 카론이 아닌 시후였다.
“크하, 하하! 걱정하지 마! 이 정도도 헤쳐 나가지 못해서야 어찌 바다 사나이라 하겠는가!”
시후는 호탕하게 웃으며 연신 키를 움직였다.
“바다 사나이는 무슨! 여긴 강이라고!”
카론은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뜻이 다분했다.
그러면서 미친 듯이 기도했다.
“주인님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려주시는 겁니까?! 제발, 제발! 무사히 끝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카론은 기도 속에 타나토스에 대한 원망도 한 숟가락 정도 넣었다.
타나토스의 대장간에서 시후가 나오기 전.
카론은 타나토스의 명령을 전달받았다.
배의 키를 시후에게 넘기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말이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명령에 변함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후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줬다.
자신의 주인님 타나토스가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 말이다.
카론이 속으로 욕을 한 사발 내뱉는 동안 배는 위태로운 곡예로 증오의 강 스틱스를 헤쳐 나갔다.
목적지인 명계를 아홉 번이나 휘감고 있는 증오의 강 스틱스.
이곳의 시련은 타나토스에 의해 넘길 수 있었지만, 증오의 강 스틱스의 거센 물결만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느덧 시후가 운전하는 배의 앞에는 마지막 강줄기만 남았다.
문제는 증오의 강 스틱스의 마지막 강줄기는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는 거였다.
우선 높이부터가 달랐다.
“저게 강줄기야, 해일이야?”
시후가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높게 치솟은 파도는 5m가 훌쩍 넘어 보였다.
“미, 미쳤어!”
카론은 이만한 파도를 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자신이 다니는 뱃길에서는 절대 저런 파도를 만날 일이 없으니 말이다.
지금 시후가 운전하는 이 배는 그저 명계를 향해 일직선으로 미친 듯이 직진할 뿐이었다.
그 말인즉슨, 아홉 개의 강줄기에 미친 듯이 부딪치고 있다는 거였다.
부서졌어도 진작에 아홉 번은 더 부서졌을 배였지만 이 역시 시후 때문에 멀쩡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남자라면 직진! 가으자!”
시후는 높은 파도와 결투라도 하듯 비장한 목소리로 배를 몰았다.
그러면서 선체 전체에 천마지기를 흘렸다.
시후는 거센 강줄기에 부딪히며 배가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발 직후부터 줄곧 천마지기로 배를 감쌌다.
그랬기에 마음 놓고 배를 몰았다.
당연히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카론만이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해일과도 같은 마지막 강줄기마저 시후가 모는 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펑-
이번에는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해일 중간을 그대로 뚫고 나간 시후였다.
그렇게 아홉 개의 강줄기를 모두 넘자 저승의 강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한 모습을 보였다.
“후! 역시 바다 사나이는 이런 맛에 배를 모는 거지!”
시후는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그러자 카론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시후의 말을 잘랐다.
“이건 강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그리고 뭔 사나이? 어떤 미친놈이 배를 이렇게 몰아?!”
배를 모는 것에 프라이드가 있는 카론이 말했다.
시후는 그런 카론에게 정말 모르냐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마도로스 몰라?”
“마도… 뭐?”
“이런 거 쓰는 바다 사나이 말이야!”
시후는 마도로스를 모르는 카론이 답답하다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흰색의 팔각모 모양의 모자.
현실에서 외항선 선원이 쓰는 모자를 카론이 알 리가 없었다.
카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자를 받아들자 시후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모자를 쓰는 바다 사나이는 그 어떤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모는 법이지. 그게 바로 사나이의 멋짐이랄까?!”
“그게 무슨….”
카론은 헛소리도 저런 헛소리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번 시후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마지막 해일과도 같은 강줄기를 부술 때 시후가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라면 안전한 루트를 이용해 한참을 돌아왔겠지만 시후는 오로지 힘만으로 돌파했다.
“그런데 이건 왜 내게?”
카론은 시후가 건넨 모자를 들어 올렸다.
헛소리를 멋들어지게 내뱉고는 넘겨준 마도로스의 모자.
카론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물은 거였다.
그런데 시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사래까지 치며 말했다.
“너 가지라고. 부담은 갖지 말고.”
“…….”
대뜸 부담 느끼지 말라며 모자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시후였다.
카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시후가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인지.
그것도 이런 쓰잘머리 없는 것을 말이다.
“이런 건….”
“에헤! 넣어둬 넣어둬~.”
카론이 거절을 하려고 하자 시후는 내공을 일으켜 모자를 카론의 머리 위로 옮겼다.
심지어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는 벗겨버리고 카론의 머리에 씌워 버렸다.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카론은 모자를 벗을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얼었다.
시후는 그런 카론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쉬~ 내 안목은 정확하다니깐. 아주 멋져!”
연신 칭찬하는 시후.
그사이 배는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곳은 작은 나루터와 흡사한 곳이었다.
시후는 그곳에 배를 대고는 몸을 날려 가볍게 내렸다.
“그거 비싼 거니깐 잘 쓰고. 다음에 보자.”
상점 아이템으로 고작 10골드인 마도로스의 모자에는 딱히 다른 성능은 없었다.
사실 시후가 카론에게 이처럼 병 주고 약 주고 한 이유는 은원관계를 끝내기 위해서였다.
‘저승의 강을 건너는 데 얼마나 걸린 거야.’
강 하나 건너는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체되었다.
그 과정에서 마이클은 죽기까지 하며 24시간 접속 제한까지 걸렸다.
부려 먹을 곳이 상당했는데 카론 덕분에 그러지 못했기에 그 불만을 그대로 쌓아 두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풀 기회가 타나토스 덕분에 생겼다.
시후는 그 분풀이를 배의 주인 대신에 배를 모는 것으로 했다.
하지만 카론이 없었다면 타나토스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을 거였다.
배를 몰고 가던 카론이 미친 척하고 배를 뒤집어 버렸다면 영락없이 퀘스트를 실패했을 것이다.
‘뭐, 덕분에 엄청난 스텟을 얻었지.’
덕분이라면 덕분이었기에 시후는 그의 노고를 인정했다.
그렇게 얻은 은원(恩怨).
시후는 배를 모는 것과 마도로스의 모자를 선물하는 것으로 그와의 은원을 마무리했다.
카론이 어이없어 허탈해하거나 말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날 이후.
명계로 가는 유저들은 로브가 아닌 마도로스 모자를 쓴 카론을 만나게 되었다.
시후는 그렇게 카론과 헤어진 후 길을 따라 걸었다.
배에서 내리자 보인 길은 오직 하나였다.
거대한 절벽과 절벽 사이에 난 그 길은 방문객을 맞이한다는 듯이 등불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참을 걸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쯧, 또 시간을 잡아먹네.”
명계는 처음이었기에 구경 좀 하며 걸으려던 시후는 그 마음을 접었다.
그러고는 땅을 박차며 경공술을 펼쳤다.
‘차라리 이거 공부라도 하는 게 낫지.’
시후는 이번에 얻은 상단전의 기운을 공부하려 했다.
천 년 전에는 상단전이 열리는 것 대신에 천마지체를 얻었었다.
그랬기에 시후조차 상단전을 활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본래는 로그아웃한 후에 현실에서 사용해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시후는 이곳에서도 현실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경공술을 펼치며 활용하려는 거였다.
천마지체 이후 전신 모든 요혈이 단전인 시후.
상단전을 활용하는 공부를 위해 본래 단전이 있던 배꼽 밑의 혈에서부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다음은 중단전.
중단전을 연 기억이 없던 시후는 한 가지의 가설을 세웠다.
‘마나, 심장에 기운을 응집해 서클을 만드는 그것.’
제니에게 마나에 대해서 배운 후 시후는 가볍게 그것을 익혔다.
마나를 허공에 흩뿌릴 정도로 엄청난 마나 감응 능력을 보여줬던 시후였기에 샐러맨더를 만난 이후 본격적으로 수련을 했고 심장에 서클을 만들 수 있었다.
시후가 만든 서클은 총 세 개.
케네디 가문에 오 서클의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들은 시후는 자신이 고작 삼 서클인 거에 상당한 불만을 토했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제니와 마이클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제니에게 살짝 미안해지는 시후였다.
‘안 되지. 잡생각은 그만.’
시후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배꼽 밑에 기운을 끌어다가 심장의 기운과 융합하고 드디어 미간에 있는 기운과 합쳐야 하는 시점이었기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경공술을 펼치면서 상단전을 공부하려는 시후의 모습을 다른 무림인이 보았다면 기겁하며 말렸을 터.
하지만 시후는 망설임 없이 기운을 일으켰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주변이 변화했다.
분명 경공술을 펼쳐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주변이 점점 느려졌다.
거기에 저 멀리 전방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꽤 친해졌군.’
삼두와 맬리아였다.
하데스 왕국 광장에서 삼두가 무서워 벌벌 떨며 털끝도 못 건드리던 맬리아가 지금은 삼두의 몸을 빗질하고 있었다.
거기에 또 하나.
‘아, 쟤도 있었지. 삼두 이 자식, 아주 호강 중이네.’
그곳에는 또 다른 한 명.
지젤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가 있었다.
녀석 역시 맬리아와 마찬가지로 삼두의 몸을 빗질하고 있었다.
삼두의 머리 세 개 모두가 혀를 반쯤 내밀고 황홀해하는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삼두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 사방을 경계하는 거였다.
맬리아와 도플갱어 역시 화들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뭐야, 내 살기를 느낀 거야? 아니, 저기까지 내 살기가 전달되었다고?’
주변이 변화하고 있지만, 저들이 있는 곳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펼치는 경공술로 자그마치 2분은 날아가야 하는 거리.
적어도 10km는 되는 거리였다.
상단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무공에 펼치면?’
이제 상단전을 오감이 아닌 무공에 활용해볼 차례였다.
시후는 경공술을 펼치는 데 사용하는 용천혈로 상단전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으읍!”
쿠앙-
순간적으로 호흡하기 곤란할 정도로 속도가 붙어버렸다.
시후는 목이 뒤로 꺾이는 것을 겨우 버티고는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정확히 10초 후.
쾅-
“깨갱!”
삼두 앞에 내려섰다.
“후우… 대단하네.”
시후는 다시 한번 상단전의 대단함을 느끼며 심호흡을 했다.
그런 시후를 발견한 맬리아와 삼두.
“천마님!”
“커컹-”
반가운 마음에 소리 높여 시후를 부르며 다가왔다.
하지만 시후는.
“너 이 시키.”
따다닥-
“깨갱!”
삼두의 세 머리에 느닷없이 꿀밤을 날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