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끝이 없을 것 같던 저승의 강에 끝이 보였다.
당연히 그 끝에 명계의 입구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전혀 다른 곳이었다.
“마치 벌집 같군.”
거대한 절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환 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한 풍경이다.
“타나토스는 이런 곳에 사는 거야?”
“…….”
“저기 구멍들이 모두 집인가? 어찌 보면 대저택이군.”
“…….”
“그런데 다른 이들은 하나도 보이지가…”
“아! 쫌! 조용히 갈 수는 없나?!”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시종일관 떠들어대는 시후에 참다못한 카론이 드디어 폭발했다.
안면 근육까지 꿈틀대며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그럼 심심하잖아. 기껏 말벗이 되어주던 친구도 죽어버려서 마음이 허한데 말이야.”
“뭐?”
“좀 전에 나랑 배 같이 타고 있던 녀석 말이야.”
시후가 마이클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한껏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구 보아도 가식적인 모습이었지만 카론은 신기하게도 이해했다.
“하긴, 말이 많은 유저이기는 했지.”
“그러니까, 평소에 들리던 소음이 사라지니깐 나라도 그 빈 곳을 채우려고 하는 거라고.”
이 역시 억지 주장이었지만 이번에도 카론은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자가 그렇게나 중요한 자인 줄은 몰랐는데.”
“그랬다니깐. 그러니 너도 좀 떠들어봐.”
“나? 내가 무슨 말을?”
“뭐, 아무거나. 너에 대한 거나… 아니면 너의 주인님에 대한 것?”
시후는 은근슬쩍 타나토스를 거론했다.
사실 시후는 이 말을 꺼내기 위해 그런 헛소리를 내뱉은 거였다.
‘타나토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막연하게 죽음의 신이라든가 어둠의 종사자라든가, 그런 정보만 있었지. 정확히 Safety World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보가 부족했다.
특히, 타나토스를 만나봤다는 유저는 많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모습을 찍어 남긴 유저는 없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정보에 시후는 다른 방안을 찾았다.
그게 바로 카론이었다.
그를 살살 구슬려 타나토스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는 거였다.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좋아. 어서 말해봐.’
시후는 괜히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보이면 카론이 거부할까 싶어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는 어서어서라고 외치며 말이다.
시후의 표정 연기 덕분인지 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궁금할 수도 있지. 저승의 강에 뱃사공이 된 게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 그랬구나.”
카론은 입을 열었다.
시후가 원하는 타나토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 뿐.
하지만 시후는 들어주었다.
다소 무성의한 태도였지만 이미 카론은 시후가 어떤 유저인지 알기에 개의치 않았다.
되레 시후가 ‘어, 그랬구나.’ 이러면서 호응을 해주자 살짝 들뜨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가 결국 키잡이가 된 것이지.”
“그랬구나.”
“그런데 그때, 그분이 나타나셨다.”
“그분?”
“그래, 나의 주인님. 산자를 죽음이라는 길로 인도하여 명계의 주민으로 만들어 주시는 그분.”
“타나토스?”
“건방진 유저. 그분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카론이 인상을 찌푸렸다.
시후는 아차 싶었다.
‘이 자식은 정말 뼛속까지 그놈의 충실한 종이군.’
카론이 타나토스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 수 있었다.
평소라면 딴지를 걸며 속을 긁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알았어. 그래서 너의 그 멋지고 대단한 주인님이 어쨌는데?”
“음, 너도 만나보면 알겠지만 정말 멋지시고 대단하신 분이지.”
“그래서, 그 대단하신 분이 너에게 어쩌셨는데?”
“아무것도.”
“뭐?”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시후는 카론의 이야기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는데 저처럼 맹목적으로 따른다?
고개를 갸웃하자 카론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하는 일에 아무 간섭도 하지 않으셨다고.”
“그 말은….”
“그래, 타나토스 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이가 많았지. 그런데 그분이 오신 후에는 그런 분들이 없어졌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카론이 왜 타나토스를 주인으로 섬기는지 알아차렸다.
“네게 자유를 줬군.”
“맞아.”
명계로 가는 길인 저승의 강 그리고 그곳을 건너는 배의 유일한 뱃사공.
그가 갖는 가치가 어떨지 상상해봤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지.’
카론이 통행료로 받는 금화 한 닢.
욕심이 많은 자였다면 고작 금화 한 닢을 통행료로 받지 않았을 거였다.
‘그 통행료를 받는 카론은 그야말로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겠지.’
그럴 뻔했던 카론을 타나토스가 지켜줬다는 말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카론의 충성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시후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놈은 욕심이 없나?’
카론이 하는 행동으로 보면 결코 타나토스가 돈이나 금화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카론을 방치한 것도 아니었다.
‘녀석의 모습으로 나를 보러왔었으니깐.’
시후는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을 시작하기 전에 보았던 카론이 타나토스라 여겼다.
이쯤 되자 타나토스를 만나는 데 기대감이 높아졌다.
물질적인 욕심은 없지만 흥미로운 일에 그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서슴지 않는다.
즉, 그는 자신의 흥미를 위해 살아가는 이라는 말.
‘지금 나를 만나려는 것 또한 흥미가 돋아서 그런 것 일터.’
상당히 자유로운 행동을 보이는 타나토스였다.
하데스의 오른팔로서 대외적 활동을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갖고 있던 그에 대한 정보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였다.
시후가 입을 닫고 고민에 빠지자 카론 역시 입을 닫고 걷기만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걸었을까. 카론이 멈춰 섰다.
“여기다.”
카론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 벽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벽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시후 혼자 그곳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듯이 카론이 옆으로 한발 물러섰다.
시후는 망설임 없이 벽을 향해 걸어갔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벽을 지나치자 주변이 보였다.
“여긴… 대장간?”
분명 대장간이었다.
거대한 화덕 하며 쇠를 달구어 두드릴 수 있는 각종 도구까지.
대력공방의 대장간을 옮겨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한 대장간이다.
그 안에 홀로 서 있는 이가 있다.
거대한 덩치는 아니지만 나름 다부진 체력을 가진 자였다.
시후는 그가 바로 타나토스라는 것을 알았다.
‘완벽한 죽음의 그림자군.’
그의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것은 죽음의 신, 사신으로 불리는 타나토스의 권능일 거였다.
시후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 내고는 안으로 걸어갔다.
“네가 타나토스냐?”
“그렇다. 그러니 가까이.”
타나토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후를 불렀다.
시후는 아직 타나토스를 대면하라는 퀘스트가 클리어되지 않은 것을 보며 일단 따랐다.
타나토스의 앞까지 걸어간 시후.
“나를 부른 이유는?”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그 말에 타나토스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띠링-
[타나토스와 대면 클리어]
[1인 한정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알림과 함께 나타난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뭘 얼마나 대단한 것을 주려고 뜸을 들여.’
무슨 보상을 산정까지 해서 주려는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라니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 보상을 받게 된다면 막대한 스텟을 얻을 거고 그렇게 되면 현실에서 얻게 되는 힘은 더욱 클 테니 말이다.
“메시지는 모두 읽었나?”
“어. 뭐… 뭐?!”
타나토스의 질문에 대답하던 시후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Safety World를 하면서 메시지에 대해 언급한 NPC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닌 듯한데 어째서인지 다들 언급하기를 꺼렸다.
그런데 타나토스가 당당하게 메시지라고 말하자 토끼 눈이 되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어떻게 말하냐고?”
“그래. 다른 녀석들은 말하지 못하는 것 같던데.”
“맞아. 그들은 신에게 제약되어 있으니깐.”
신이라니. NPC들이 말하는 신이라면 AI를 말하는 건가 싶었다.
Safety World를 다스리는 것이 AI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후가 궁금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너는 꼭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네?”
“나도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야.”
타나토스는 두 팔을 벌렸다.
“여기는 오로지 나의 공간.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그런 동굴 속에서 쇠나 두들기는 대장간 같지만.”
“감히 신도 간섭할 수 없는 너만의 공간이다?”
“그렇지.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기본이지. 이곳은 어찌 보면 너의 절대 영역이나 다름없구나?”
“왜, 쫄리시나?”
미소 지으면서 빈정거리는 말투.
시후가 피식 웃었다.
“역시 배에 있던 것은 너였어.”
“맞아. 그때 네가 친구에게 했던 대사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내가 좀 써봤어.”
타나토스의 말대로 지금 그가 한 말은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에 도전하기 전에 배에서 마이클과 나눴던 대화였다.
“잘하네. 아주 어감이 찰져.”
“고맙군.”
시후의 칭찬에 타나토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라 하려고?”
“그럴 리가. 그냥 재미가 있어서 했을 뿐이니. 기분 상하지는 말아.”
“기분 상하기는. 마음껏 써.”
“크큭, 역시 재미있어.”
타나토스는 연신 웃으며 즐거워했다.
시후는 그런 타나토스를 보며 입을 닫았다.
‘이제 준비해온 대사들은 모두 읽었는데, 어쩐다.’
평소 말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더는 질문할 거리가 떨어졌다.
시후가 말이 없어지자 타나토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를 가리켰다.
“이게 무엇인지 아나?”
“틀?”
“맞아. 틀이지.”
타나토스가 가리킨 그것은 틀이었다.
녹은 쇳물을 부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것으로 지금 그 안에는 고온으로 녹인 쇳물이 들어 있었다.
“본래라면 이것을 기다리려고 했지만, 심심하네.”
타나토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타나토스의 표정과는 다른 알림창이 나타났다.
띠링-
[타나토스가 대련을 신청합니다.]
“뭐?”
뜬금없이 싸우자는 메시지였다.
본래라면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나 받고 로그아웃하려 했다.
그래서 타나토스와 대충 이야기나 나누며 시간을 때우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싸우자,. 시후는 타나토스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또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거든.”
“좋아 좋아.”
시후가 대련에 응하자 타나토스는 웃으며 쇠를 두드리던 망치를 집어 들었다.
“망치로 싸우게?”
“왜? 그러면 안 되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어디 영화에 나오는 잘생긴 햄스터 형이 생각나서 그러지.”
“응?”
시후의 말에 타나토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무기를 든 것이 불만은 아니고?”
“에이, 아니야. 나는 맨손으로 싸워도 괜찮아.”
“음… 그건 내가 괜찮지 않군. 여긴 대장간이니 어디 마음에 드는 무기라도 있으면 들어봐.”
굳이 무기가 필요한 시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것은 타나토스의 심심함을 달래고자 하는 대련이라는 생각에 한쪽에 있는 검을 들었다.
“난 이거로 하지.”
“오~ 검인가? 그럼, 나도.”
스윽-
타나토스는 들고 있던 망치를 제자리에서 살짝 던졌다.
그러자 쇠를 두드리던 망치가 모습을 바꾸었다.
다시 떨어져 내린 것을 받아든 타나토스.
“검? 뭐야, 검 vs 검으로 겨루자고?”
“바로 그거지. 괜찮겠나?”
“무슨 소리,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여기 대장간 다 부수어져도 되는 건가?”
자신과 타나토스가 검을 맞대면 분명 충격파가 발생할 거고 그 충격파는 대장간에까지 영향을 끼칠 거였다.
자신의 가게도 아니면서 걱정하는 시후의 모습에 타나토스는 피식 웃었다.
“걱정마라, 여긴 내 영역이다.”
스윽-
그리고 손을 휘젓자 대장간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