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시후는 그들을 따라갔다.
뇌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 자의 그림자에 스며들어서 말이다.
그들은 한참을 달려 한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시후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여긴 마천의 거처인데.’
이곳은 마천존(魔天尊)으로 마천서생 평수혁의 거처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시후가 천마가 되기 이전부터 이곳은 머리 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무공에 대한 실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기문둔갑에 능하고 후에는 기관진식에까지 손을 뻗은 녀석들이었다.
시후는 자신이 모르는 일이 일어나자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최대한 숨죽였다.
‘여기서 들키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시후는 직감했다.
지금 Safety World가 보여주는 이것은 결코 시후의 기억 속에 없는 것.
하지만 분명 시후, 천마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천 년 전의 일을 보여준다는 것에 시후는 숨죽였다.
그사이 뇌의 머리를 끼고 달리던 그들은 드디어 마천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바로 마천존자의 방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이 방 앞에 다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가져왔느냐.”
“네.”
등불로 인해 방안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덕분에 시후는 쉽게 방안의 주인인 마천존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
시후의 기억 속에 있는 이가 아니었다.
천마동을 나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였다.
물론, 천마동을 나와 진짜 천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천마신교 내에 인물들은 전부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그저 그런 인물도 아니고 마천존 우두머리의 얼굴을 모르다니.
그렇다는 것은 두 가지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속였거나, 내가 천마가 되기 전에 다른 이로 바뀌었거나.’
시후는 후자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았다.
무엇이 되었든 한 종파의 종주가 되는 이라 그런지.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이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흑, 크흑. 내 아들… 영(英)아. 크흑.”
시후는 깜짝 놀랐다.
뇌에게 영(英)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과 천마동의 모든 이는 고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에게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거기에 아비가 마천존의 종주?’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시후는 더욱 지켜보기로 했다.
“저희가 당도했을 때는 이미….”
뇌의 머리를 들고 있던 이가 아주 조심스럽게 머리를 넘겨주었다.
뇌의 아비는 머리를 받아서 들고는 품에 꼬옥 안았다.
그리고는 집중해야만 들릴 정도로 힘겹게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나가거라.”
“네.”
그의 명령으로 모두가 밖으로 나가자 시후는 빠르게 다른 그림자로 옮겼다.
바로 뇌의 머리를 안고 있는 아비의 그림자였다.
그의 그림자에 숨어든 시후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런데.
‘뭐야, 흐느끼던 거 아니었어?’
어찌 된 것인지 흐느끼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여전히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지만, 표정은 전혀 달랐다.
마치 목각 인형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윽-
주변에 다른 이들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는 소매로 눈물을 닦더니 뇌의 머리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동작이었지만 그 어디에도 뇌에 대한 슬픔은 담겨 있지 않았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무엇이 시작이란 말인지.
당장이라도 나서서 묻고 싶었지만 지켜보는 게 답이라는 생각에 더욱 숨을 죽였다.
뇌의 머리를 빤히 바라보던 그는 소매 안쪽을 뒤졌다.
잠시 후 그가 꺼낸 것은 두 장의 부적이었다.
그는 한 장의 부적은 뇌의 이마에, 다른 한 장의 부적은 자기 이마에 붙였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하나의 원을 만들더니 뇌의 머리를 가리켰다.
“영아, 부디 네가 이혼귀법서에서 오 성 이상의 성취를 얻었기를 바란다.”
이혼귀법서라면 뇌가 받았다는 비급을 말하는 거였다.
시후가 받은 천마분심공과는 다른 비급.
하등 쓸모없는 것이라 말하던 뇌가 언급한 그것을 어찌 저자가 알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는 잠시 후 알게 되었다.
“이혼귀법서를 익힌 이의 혼이여. 너의 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니 그 모습을 보일지어다.”
시후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두 눈을 부릅떴다.
‘저건 주문술이 아닌가?’
확실히 주문술이었다.
천마일 때 사령신자가 나불대던 것과 똑같은 거였다.
혼을 꾀어 무공을 대신하는 힘으로 사용하던 쓰레기 같은 녀석이었는데 어찌 그것을 저자가 펼치는 것인지.
의문을 품은 그때 뇌의 머리에서 흰색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곧 형체를 이루더니 등이 굽은 꼽추, 뇌가 되었다.
그 모습에 주문술을 외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영, 네가 칠 성의 경지를 이루었구나. 대단하도다.”
그의 말이 들린 것인지 뇌는 그를 응시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뇌는 곧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이십니까?
“역시 내 아들이구나. 맞다, 영아. 내가 네 아비 마천존자이다.”
-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아버지의 작품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미안하구나.”
둘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의 생각을 읽는 듯했다.
이는 뇌뿐만 아니라 마천존자 역시 상당한 지능을 가졌기에 가능한 거였다.
서로의 생각을 읽을 정도로 똑똑하다는 소리.
뇌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담담한 마천존자의 표정을 한참 동안 보았다.
이윽고 찌푸렸던 인상을 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천 때문이군요.
뇌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 나오자 시후는 살짝 놀랐다.
그 때문이었을까.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기척을 흘렸다.
아주 미세한 기척이었고 천잠음영술의 능력으로 마천존자의 그림자 속이었기에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영혼이 된 뇌는 달랐다.
‘저 자식….’
뇌는 눈동자를 슬쩍 돌려 정확히 마천존자의 그림자.
즉, 시후를 바라봤다.
그리고 살짝 미소 지었다.
- 다행이네요. 당신의 계획대로라면 저는 그와 같이 할 수가 있겠군요.
도대체 이들이 계획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시후는 천잠음영술을 풀고 마천존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데 갑자기 주변이 변하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나 싶더니 순식간에 암흑에 휩싸였다.
이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붉은색 글씨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사실을 잊으시겠습니까?]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을 극복할 시 보상으로 전 스텟 +20이 주어집니다.]
단 석 줄의 알림 메시지였지만 시후는 상당히 놀랐다.
특히, 마지막 줄에 있는 보상에 관련된 ‘+20’이 유독 크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것들을 잊으라는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마일 때도 알지 못했던 사실을 보여줘 놓고는 잊으란다.
전 스텟 +20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상이 눈앞에 있지만 시후는 그것을 택할 수 없었다.
“내가 미쳤어? 지금 이것을 잊게?!”
시후의 강한 어조가 대답이 된 것인지.
붉은색 알림창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띠링-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시련의 시작점인 카론의 배로 이동합니다.]
스팟-
순식간에 시후는 암흑에서 벗어나 카론의 배로 이동했다.
출렁-
배가 요동치며 시후가 내려서자 카론은 즉시 배를 안정시켰다.
“극복하지 못했군?”
“그래.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더군.”
“그랬나?”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카론이라면 분명 시련에 실패했다고 조소를 날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만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
거기에 시후의 물음에도 카론은 대답 대신 연신 노질했다.
어디론가 서둘러 가는 모습이었다.
“저승의 강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바로 밖으로 쫓겨나는 거 아니었어?”
“…….”
카론은 시후의 질문에 대답이 없었다.
대신 한차례 째려보며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티 낼 뿐이었다.
“뭐야? 설마, 친절하게도 밖에까지 배웅해 주려는 거야?”
“…….”
“에이~,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뭐가 잘났…지. 내가 좀 잘나기는 했는데 굳이 그런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돼.”
시후는 대답 없는 카론의 속을 살살 긁었다.
망각의 강 레테에서 본 것들에 대해 상당히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카론에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나가 자신이 확인해봐야 할 일들.
지금은 잠시 게임에 집중할 때였다.
시후의 지속적인 갈굼에 카론은 신경질적으로 배를 몰았다.
출렁- 출렁-
“어쿠, 그래서 어디 뒤집히겠어? 아니다. 뒤집히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대단하겠네. 최초 아니냐? 저승의 강을 건너는 카론의 배가 뒤집히는 것은? 업적 보상이라도 주려나?”
점점 수위를 높여 카론의 능력까지 들먹이자 참다못한 카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서 너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주인님? 타나토스를 말하는 거야?!”
“칫, 건방진 유저. 주인님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이건 시후도 의외였다.
‘분명 1인 한정 퀘스트 내용이 바뀌었었지? 타나토스를 만나는 것으로.’
시후는 혹시 몰라 빠르게 퀘스트 창을 열었다.
[타나토스와 대면 : 1인 한정(천마) 퀘스트.]
[어둠의 종사자를 숭배하는 이들의 진정한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
[현재 업적 보상이 존재하며 이는 퀘스트 클리어 시에 합산하여 보상됩니다.]
분명히 바뀌어 있었다.
정확히 ‘타나토스’라는 명시까지 되어서 말이다.
‘이번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봤을 때만 해도 시후는 낙담했었다.
이번 퀘스트에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그만한 보상을 받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그런데 이런 뜻밖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니.
시후는 좀 전과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에 내려놓으며 앉았다.
그 모습에 카론은 되레 신경질이 났다.
“뭐냐? 갑작스러운 그 행동 변화는?”
“내가? 에이~. 무슨 소리야. 난 언제나 쭉~ 이렇게 얌전했는걸?”
“…미친 거냐?”
“미치다니. 어어?! 앞을 봐 앞에!”
카론은 시후의 변화된 모습에 짜증을 부리다가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 전방을 주시했다.
하지만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 저승의 강 그대로 잔잔한 모습이었다.
카론은 다시 시후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앞을 보고 운전하라고. 전방주시. 운전의 기본 몰라?”
생글생글 웃는 시후의 표정에 카론은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다.
만약, 정말 화를 낸다면 시후의 예상대로 배를 뒤집어 그를 저승의 강에 빠트릴 것만 같았다.
빠득-
그렇게 카론은 이를 갈며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타나토스가 있는 곳까지 배를 몰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