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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45화 (245/275)

제245화

“이게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

시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물을 마시자 독한 화주를 마신 듯 위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 열기를 토하려고 입을 벌리려는데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시후는 그것이 이번 시련의 시작이라 여겼다.

주변은 그가 퍼 올렸던 강물의 색과 똑같이 푸르렀다.

“이렇게 보니 마치 물속에 있는 것 같군.”

상하좌우의 구분도 없이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마치 깊은 강 속에 빠진 듯했다.

‘방향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지.’

아니나 다를까.

움직이기를 포기하자 변화가 일었다.

온통 푸르던 주변에 검은색 점이 나타났다.

그곳을 응시하자 점점 커지는 점.

아니, 정확히는 거대한 암흑이 시후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단번에 시후를 집어삼키겠다는 듯이 매섭게 다가오던 암흑은 돌연 앞에서 우뚝 멈췄다.

‘뭐지?’

기껏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암흑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니 무엇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Safety World는 다음에 할 일을 알려줬다.

띠링-

[망각의 강 레테가 유저를 주시합니다.]

[망각의 강 레테가 유저의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망각의 강 레테가 유저 데이터에 의문을 품습니다.]

[망…. 각의…. 강….]

삐- 삐- 삐-

“응?!”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알림창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주변이 붉어지며 깜빡였다.

마치 경보 알림 같았다.

연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시후는 어찌해야 싶었다.

‘그냥 뛰어들어?’

분명 눈앞에 멈춰선 저 암흑이 시련의 장일 터, 그곳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쯧.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봐야 시간 낭비만 하는 것이니.”

시후는 허공을 박차고는 암흑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는 여전히 경고음과 경고등이 계속 울렸다.

잠시 후 시후가 있던 그 자리에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크큭, 역시 재미있어.”

그러고는 그 역시 암흑으로 들어갔다.

시후가 암흑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서늘함이었다.

‘뼛속까지 아리는 이 한기.’

이후 느낀 것은 자세였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인가.’

다음으로 느낀 것은 고통이었다.

“크윽.”

옆구리에서 전해지는 거대한 송곳에 찔린 듯한 고통에 눈을 뜬 시후.

한기가 느껴지는 추운 바닥에 누워 있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달빛 하늘이었다.

그것을 보니 이곳이 어딘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 수 있었다.

“AI라는 게 정말 대단하군. 천마동의 이때를 재현하다니.”

스윽-

시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야말로 처참하다 못해 지옥이라고 불릴 정도의 주변 모습.

피가 낭자하며 시체가 즐비하고 주인 잃은 팔다리가 나뒹굴고 있었다.

일반인이 봤다면 기겁을 하며 기절했을 만한 그 모습에 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이때가 내 인생에 전환점이기는 했지.”

이곳은 바로 천마동이었고 시점은 마의 하늘을 보는 날이었다.

두 번째 강인 코퀴토스에서 겪었던 바로 그 시련의 날 후반부의 모습이었다.

후회가 가득했던 이곳에서의 일을 코퀴토스에서는 천마지기를 보여 극복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련의 테마는 극복이 아닌 망각.

거기에 지금 보이는 풍경은 그날의 시작이 아닌 끝의 모습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후는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스팟-

순식간에 자리를 옮긴 시후.

그 앞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벽에 기대어 고개를 가로 꺾어 두 눈을 감고 있는 여인.

바로 월이었다.

이미 사늘한 시체가 된 지 오래된 것인지 얼굴이 창백했다.

“너를 두 번이나 보다니. 저승의 강은 내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보여준 저승의 강.

AI는 이날이 천마 인생에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저 후회가 가득했던 날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고민하던 그때.

“크크큭.”

다 죽어가는 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스팟-

시후는 웃음소리 주인공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너는… 뇌(腦)?”

허리가 잔뜩 굽은 꼽추의 뇌였다.

그 역시 큰 상처를 입은 것인지 숨만 겨우 붙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이날 천마동의 모든 동도가 시후 일행을 덮치도록 다른 이들을 꾄 녀석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주…모자, 라고 나를 생각하나?”

“그럼,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아… 맞기는 맞지.”

뇌는 말하기가 힘든 것인지 가쁜 숨을 토해내며 겨우 말을 이었다.

시후는 그런 뇌에게 손을 슬쩍 가져갔다.

“뭐,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뇌가 깜짝 놀랄 정도로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말하는 데 헐떡대지 말고 말하라고 주는 거다.”

“…칫, 그런… 너의 그런 점이 싫었다.”

“나도 너 싫었다.”

“거짓말하지 말아라.”

“뭐?”

“너는 천마동에 그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다.”

“…….”

시후는 뇌의 말에 살짝 놀랐다.

겉으로 놀란 것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후가 아무 말도 없자 뇌가 말을 이었다.

“언제나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외톨이 늑대처럼 생활하던 너는 다른 녀석들을 배려했었지.”

“……”.

“그런 너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힘을 키우던 천마동의 질서가 무너졌다.”

“그랬나? 그런 것치고는 너희들 모두 강해지지 않았나?”

뇌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천마동의 율법.

하지만 시후는 천마동에서 얻은 기연, 천마분심공 덕분에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천마분심공 때문에 다른 이들을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연공을 하지 않고 수련에만 몰두하는 자기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어서였다.

만약 그 사실을 다른 이들이 알게 되고 아이들을 이 천마동에 밀어 넣은 녀석들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거였다.

“크큭, 강해졌지. 엄밀히 따지면 네 덕분이기는 했지. 네가 특별한 심법을 얻어서이니깐.”

“뭐라고?”

“뭐야, 천하에 천이 발뺌이라도 할 셈인가?”

분명 뇌는 천마분심공을 아는 듯이 말했다.

우연히 얻게 된 그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뇌가 알았을까?

시후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좀 전과는 달리 표정에 당황한 게 드러났다.

“크크큭 아주 좋구나, 그 표정. 다른 녀석들도 너의 그런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헛소리 말고 말해라.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뇌가 신이 난 만큼 시후가 당황한 것은 당연했다.

사실 과거에 뇌와 이런 대화를 나눈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월의 시신을 보고 뇌의 웃음소리를 듣는 즉시 그를 죽였으니 말이다.

뇌는 피가 줄줄 흐르는 입가를 스윽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누가 알려줬겠냐? 그 시절 우리는 굶주린 배를 견디고자 최대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사실이었다.

지금에야 무공을 익혔기에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천마분심공을 얻을 때만 해도 그러지 못했다.

그때는 감자 하나로 채운 배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다들 움직임을 제한했다.

그래야 다음 날 다른 이들보다 한 번이라도 주먹을 내질러 살아남을 테니 말이다.

시후는 생각했다.

뇌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눈앞에 천마분심공을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굶주렸고 무공을 배우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때의 오감은 무림 후기지수의 것보다 예민했다.

그런 자기 감각을 속이고 천마분심공을 가져다가 놓았다?

그렇다면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자라는 것이다.

천마동의 지리를 잘 알고 무공도 상당한 경지에 오르고 무엇보다.

“우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 아니 자들인가?”

“맞아. 그들이야.”

“마육존(魔育尊).”

마육존 그들은 천마동에 아이들을 밀어 넣은 이들이었다.

시후 역시 그들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왔다.

그저 굶주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마육존은 그렇게 천마신교를 이끌어갈 싹수가 보이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곳이다.

중원 곳곳을 다녀야 하며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했기에 그들은 은신에 특화가 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시후는 자신의 손에 쥐어졌던 천마분심공 비급이 그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궁금하지? 그들이 왜 네게 그런 무공을 가져다가 주었는지?”

역시 뇌라서 그런가.

시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읽었다.

뇌는 이번에도 시후가 표정 관리를 못 하자 즐겁다며 웃었다.

“아주 좋아, 크큭.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답이 되었어.”

“…….”

“그저 우연이야.”

“뭐?”

“크큭, 무슨 거창한 이유 같은 것은 없다고.”

“무슨 헛소리지?”

뇌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시후가 되물었다.

뇌는 그것도 재미있다며 웃었다.

“말 그대로야. 너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나씩 비급이 전해졌어.”

“그 말은, 우연히 내게 그 비급이 들어왔다?”

“그래. 나를 예로 든다면 이혼귀법서(移魂鬼法書)를 받았지. 하등 쓸모없는 것을 말이야.”

허탈한 표정의 뇌.

시후는 자신이 받은 천마분심공의 비급서가 우연히 자신에 들어온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다들 한 가지 분야에 특출날 수 있던 것이군.”

“맞아. 아마도 자신들이 받은 비급을 다른 이들 모르게 열심히 공부했겠… 쿨럭.”

뇌는 말하다 말고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아무리 시후가 내공을 전해줬다 하지만 이미 죽기 일보 직전의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끝이 다가오고 있는 거였다.

뇌는 힘겹게 심호흡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후우, 이미 금과 비는 그들이 데리고 나갔다.”

“안다.”

눈을 떠 주변을 돌아봤을 때 그들의 시체가 없기에 그들이 이곳을 떠난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몇 달 후 시후가 이곳을 빠져나간 뒤 다시 그들과 재회했었다.

결국, 이만한 피를 흘린 뇌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이었다.

시후는 뇌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가 아무리 몇 달간 이곳에 더 있어 봐야 그는 천마동을 나갈 수 없었을 거였다.

“이때 내가 천마였다면 이런 곳 따위… 없애버렸을 텐데.”

진심이었다.

이런 곳이 없었다면, 아니 굳이 이런 곳이 아니어도 이곳에 들어왔던 이들을 모두 받아들일 힘이 천마신교에는 있었다.

이런 방법이 아니어도 천마신교는 많은 이를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소리였다.

되레 마동은 많은 인재를 잃게 만든 장소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천마가 되어 가장 먼저 없애버린 제도가 천마동에 관한 거였다.

하지만 뇌를 포함한 모두가 죽은 후에 일이다.

시후는 점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끝을 향해 다가가는 뇌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뇌는 시후와 눈을 마주하더니 피식 웃었다.

“너는 언제나 그런 눈으로 우리를 봤지.”

“…….”

“처음에는 싫지 않았다.”

“…….”

“편견 없이 우리를 대하는 너였으니깐. 그게 ‘무시’라 하여도 말이야.”

“…….”

“너와 진득하니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뇌는 아무 대꾸도 없는 시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시후는 말 대신 눈빛으로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것을 느낀 것인지 뇌는 점점 감기는 눈에 힘을 주어 시후를 응시했다.

“가는 길이니 하나만 알려주겠나.”

“뭘?”

“네가 받은 비급, 다른 녀석들은 모두 알 수 있었는데 너만은 모르겠더라고. 죽기 전에 가장 궁금했던 것을….”

“천마분심공. 마음을 둘로 나누어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심공이다.”

시후는 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지금 이곳이 가상현실게임의 공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천 년 전에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시후는 똑같이 그에게 말했을 거였다.

그만큼 시후는 뇌를 인정했고 그를 동도라 생각했다.

뇌는 자신의 요구를 서슴없이 들어준 시후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힘겹게 웃었다.

“크큭,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진작에 물어볼걸.”

“그러지 그랬냐.”

퉁명스럽게 말한 시후의 대답.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겼다.

네가 그랬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겠지. 사과의 의미로 내가 정말 진짜 비밀을 말해줄까. 쿨럭.”

뇌는 다시금 피를 왈칵 쏟아냈다.

이제는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뇌를 점점 기울어지는 고개에 힘을 주어 마지막 말을 쥐어짰다.

“사실, 나도…. 너와 함께하고 싶었….”

결국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한 뇌.

말을 끝맺지 못해서일까. 뇌는 두 눈을 감지도 못했다.

시후는 천천히 다가가 손수 뇌의 눈을 감겨주었다.

부디 뇌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주시하던 그때였다.

탓-

어디선가 무언가가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후는 반사적으로 천잠음영술을 펼쳐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후가 서 있던 자리에 나타난 자들.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훑었다.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서둘러라. 어서 저 녀석의 머리를 취해 돌아가야 한다.”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뇌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하더니 천마동의 벽을 밟고 유유히 사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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