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그러니까, 네 말은 카론이 선택하라고 했다는 거지?”
“그렇다니까.”
“난도를 높여 보상받을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나머지 두 개의 시련을 지나쳐 명계 입구에 다다를 것이냐를 두고 말이지?”
“어.”
“이 자식 봐라.”
충 감이 왔다.
다른 유저였다면 시후처럼 이렇게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였다.
마이클 역시 지금의 스텟을 얻기 전에는 좌절을 맛봤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난도를 비약적으로 높여 시련을 겪게 했음에도 시후가 여유롭게 통과하니 똥줄이 타는 것이다.
‘보상’이라는 미끼를 던져 더욱 높은 난도를 겪게 하려는 카론의 수작을 눈치챈 시후.
“보상이 뭔지 모르지만, 굳이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지.”
보상이라고 해봐야 고작 아이템 몇 개 던져줄 게 뻔한데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1인 한정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되면 더 막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 말이다.
시후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자 마이클이 히죽거렸다.
“뭐야, 그 볼썽사나운 표정은?”
“아니, 자네가 정말 그 보상을 포기하나 싶어서.”
“그까짓 거 뭐, 대충 줘봐야 아이템 몇 개일 건데 뭐….”
시후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보상이 스텟 증가인데도?”
“그깟 스텟 증가가 뭐 대수…! 잠깐, 뭘 줘?!”
시후는 깜짝 놀랐다.
업적 보상으로나 얻을 수 있는 스텟 증가를 보상으로 들이밀다니.
카론이 그만한 능력이 있는 NPC인가 의문이 들 때였다.
“금방 오셨네?”
카론이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배에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만큼 이 배 자체가 카론의 절대 영역이라는 소리였다.
‘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시후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영역을 파악했다.
언제든 상대와의 접전을 고려하는 시후였지만 지금만큼은 참아야 했다.
“그게 사실이야?”
시후는 대뜸 본론을 물었다.
카론은 마이클을 힐끗 보고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눈치챘다.
“맞아. 그래서 결정은 하셨고?”
카론은 두 손을 양쪽으로 벌렸다.
“목적지인 명계 입구를 향해 다이렉트로 갈 것인지. 아니면 특별한 보상을 위해 또 한 번의 시련을 격을 건지?”
카론은 금화 한 닢이 쥐어진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후의 시선이 그 손에 닿자 카론은 금화 한 닢을 더 얹었다.
“눈치챘겠지만, 시련의 난도는 금화로 올릴 수 있지.”
또다시 금화 한 닢이 더 얹어 졌다.
“피리플레게톤에서 나는 금화 세 닢을 사용했지.”
화염지옥을 연상케 하는 그 엄청난 불길이 금화 세 닢이라니.
마이클은 광폭화까지 사용해 견딘 그곳의 경험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마이클의 반응을 본 카론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런 난도에도 너희는 통과했지. 그것도….”
빠득-
뒷말을 씹은 카론은 이를 빠득 갈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그 뒷말이 카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인 것쯤은 알았다.
카론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후우, 덕분에 남은 두 시련에는 보통의 난도밖에 설정할 수 없었어.”
“……”
“그래서 잠시 다녀왔지. 허락을 구하러.”
그리고는 카론의 손에 또 하나의 금화 한 닢이 올려졌다.
“덕분에 오랜만에 주인님을 뵐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거기에 주인님께서도 이번 시련에 관심을 보이셨다.”
척-
카론의 손에 또 하나의 금화 한 닢이 올려졌다.
총 다섯 닢의 금화.
하늘까지 치솟아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켜 불태워버릴 듯한 피리플레게톤의 불길이 금화 세 닢이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저 다섯 닢으로 이뤄질 다음 시련의 난도를 짐작기도 힘들었다.
“천마, 어쩌겠느냐? 너는 어떤 길을 택하겠느냐?”
카론은 히죽히죽 웃으며 어서 선택하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언뜻 금화가 들린 손이 더욱 앞으로 나와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이클은 카론과 시후를 번갈아 보더니 빠르게 메시지를 보냈다.
- 진짜 저 난도로 갈 거야?
시후의 시선이 금화를 든 손에 꽂혀 있기에 그가 무슨 선택을 할지 뻔히 보여서였다.
다음에 있을 망각의 강 레테에서 어떤 시련을 겪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정보로는 Safety World를 하며 있었던 가장 흑역사를 보여준다고 했었는데.
밤에 이불킥할 만한 경험을 반복하는 부분에서 포기한 유저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정보가 있었다.
마이클은 시후에게 답변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려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광전사라는 직업을 얻은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크 부락에 갔을 때였다.
강함을 미의 기준으로 삼은 그들에게 마이클은 환영할 만한 손님이었기에 몇 날 며칠 잔치를 벌였다.
즐거운 마음에 오크들과 신나게 잔치를 즐긴 마이클은 분위기에 취해 그만 여성형 오크와 입맞춤을 했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그 감촉.
현실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탄탄한 근육에 잡혀 꼼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입술과 코를 덮어 오는 오크 입술의 촉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으, 으아….”
마이클은 그때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에 시후를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한발 늦었다.
덥석-
“보상은 확실한 거지?”
금화가 든 카론의 손을 시후가 마주 잡았다.
“진짜 하려고?!”
마이클이 깜짝 놀라 시후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아직 카론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리는 거였다.
하지만 시후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쫄리면 빠지시던가.”
“누가 쫄린데?!”
덥석-
발끈한 마이클은 시후와 마찬가지로 카론의 손을 잡았다.
카론은 금화가 쌓인 자기 손을 잡은 둘을 번갈아 봤다.
“그럼 둘 다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카론은 잡힌 손을 빼고는 들려 있던 금화를 배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퐁- 퐁-
금화를 한 닢, 한 닢 강에 떨구었다.
그러자 검게만 보이던 강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강해지더니 강의 색을 바꾸었다.
이제는 푸른빛이 감도는 색으로 바뀐 저승의 강.
강물 색이 밝게 변했지만 어째서인지 조금 전보다 더욱 스산해 보였다.
시후와 마이클이 강물 색을 확인하자 카론이 슬쩍 다가왔다.
“망각의 강 레테입니다. 본래는 피리플레게톤의 불길에 정화된 영혼의 과거를 잊게 만드는 곳이지만 과연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적용될까요?”
속삭이듯 둘의 귀에 들리는 카론의 목소리.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말투까지 바뀐 그의 목소리에 시후는 진저리를 쳤다.
“되지도 않게 걱정이라도 해주는 거야? 뭐가 되었든 마셔보면 알게 되겠지.”
시후는 강물을 마시려고 손을 뻗었다.
텁-
그런데 카론이 시후의 손을 낚아챘다.
무슨 짓이냐는 시후의 눈빛에 카론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시련은 한 명씩입니다. 그리고 그 순서는 천마님이 아닌 파이어 맨 님부터입니다.”
마이클부터 하라는 소리에 시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규칙을 정한 카론.
시후는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무슨 의도가 있냐고 묻는 거였다.
하지만 카론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시련에 투자한 금화가 자그마치 다섯 닢입니다. 그만한 투자를 했는데 저도 즐거움을 만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즐거움?”
“크크큭. 저는 여러분이 겪는 시련을 볼 수 있습니다.”
“뭐?!”
카론은 당황하는 시후의 표정을 즐긴다는 듯이 웃었다.
“제게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시면 이대로 죽으시면 됩니다.”
죽으라며 카론은 로브를 한쪽으로 걷었다.
그러자 허리춤에 걸려 있는 낫이 보였다.
날이 시퍼렇게 선 것이 살짝 닿기만 해도 베일 것만 같았다.
“저승의 강 인도자인 카론이 무기를 들고 있어?!”
마이클은 처음 보는 카론의 무기에 놀라며 말했다.
카론은 이번에도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잠시 빌렸습니다. 여러분 같은 유저는 저도 처음인지라. 호신용으로 챙겨왔습니다. 그보다….”
카론은 자신의 무기에는 그만 신경 끄라는 듯이 로브로 덮더니 강을 가리켰다.
“어떻게, 포기하실 겁니까?”
포기할 의사를 묻고는 있지만, 당연히 마실 거라 생각하는 듯한 카론의 눈빛이었다.
시후는 카론을 잠시 응시하더니 마이클의 가슴을 손으로 툭 쳤다.
“마셔. 어디 갔다가 오더니, 이상한 취미가 생기신 분이 원하시잖아.”
시후의 말에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은 배 밖으로 두 손을 내밀어 강물을 가득 담아 펐다.
입가 가까이 손을 가져간 마이클은 잠시 멈추고는 시후를 봤다.
“뒤를 부탁하지.”
“걱정 마.”
후룩-
시후의 대답과 함께 마이클은 시원하게 강물을 마셨다.
그러자 마이클의 몸에 변화가 일었다.
그가 퍼 올린 강물과 같은 색의 빛이 그의 몸에서 발했다.
두 눈은 흰자만 보이며 뒤집히고는 몸에 힘이 빠진 축 처졌다.
흔들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후도 그렇고 카론도 그렇고 그를 눕히거나 부축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론은 팔짱을 끼고는 마이클을 주시했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였다.
“크큭. 재미있군요.”
그의 말대로 정말 마이클이 겪는 시련을 보는 듯했다.
시후는 그런 카론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주시했다.
“분명….”
시후가 참다못해 카론을 부르려는 그때였다.
“크윽. 크아악!”
갑자기 마이클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후는 마이클에게 손을 뻗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를 깨워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악!!”
스팟-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마이클이 사라졌다.
로그아웃한 거였다.
“뭐야?!”
갑자기 일어난 일에 시후는 카론을 쳐다봤다.
“저런, 저런. 친구분은 여기까지이신 것 같습니다.”
저 말은 마이클이 망각의 강 레테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
도대체 어떤 시련이길래 마이클의 스텟으로도 통과를 하지 못하는지.
시후는 연유를 묻기 위해 마이클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띠링-
[시련의 강 퀘스트 중에는 메시지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이클과 연락할 수단이 막혔다.
기본적인 기능까지 막는 퀘스트에 의문은 깊어져 갔지만 그런 생각조차 길게 갖지 못했다.
“자, 고민은 그만하시고. 어서.”
카론이 이제 네 차례라며 강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그는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았다.
시후는 요구대로 강물을 두 손으로 퍼 올렸다.
그리고는 카론을 응시한 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기대가 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녀와서 보자고.”
“그건 그것 나름대로 기대가 되는군요.”
“기대 이상일 거야.”
“훗.”
어느덧 입가에 강물이 닿은 시후를 보며 카론은 웃었다.
시후는 강물을 입에 가득 담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다녀오면 네가 누구인지부터 까발려주지.”
“……!”
그 말에 카론, 아니 카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반대로 시후의 입에는 미소가 가득 걸렸다.
“See you again.”
그 말을 끝으로 시후는 마이클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몸에서 빛을 발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축 늘어졌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그는 좀 전에 사라졌던 미소를 다시 지었다.
“역시, 역시. 흥미로운 유저야.”
사아악-
시후에게 흥미가 있다며 웃던 그는 점차 연기로 변했다.
그러고는 흔들거리며 빛을 발하는 시후의 눈으로 스며들어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