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포달랍궁 궁주의 미친 계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샐러맨더.
조금 전 투정을 부리던 그가 맞나 싶은 정도로 그는 진지했다.
시후는 그런 샐러맨더와 눈을 마주하며 침묵을 유지했다.
아직 그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거였다.
[그렇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지.]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얼마 전에 네가 포달랍궁 라마를 만났다고 들었다.]
“어. 하지만 네가 보여준 얼굴은 아니었어.”
[그렇겠지. 그는 영생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의 영혼을 옮기는 방법을 찾았으니깐.]
“역시.”
샐러맨더가 보여준 과거의 회상을 보며 시후 역시 짐작했다.
예부터 포달랍궁은 중원의 무림인과는 달랐다.
영역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무공만 놓고 보자면 당연히 중원 무림인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포달랍궁의 녀석들과 싸우게 되었을 때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은 사술에 능했지.’
중원에서는 ‘사술’이라 불리는 그들의 힘.
무림인은 삼매진화를 일으키기 위해 일 갑자의 내공이 필요함에도, 그들은 특이한 손동작과 주술과도 같은 속삭임만으로 그것을 해냈다.
웬만한 무공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을 쉬이 해내는 포달랍궁 이었다.
그런데.
“그 끝이 영생을 위한 것이라니.”
결국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고자 그런 힘을 키운 것이라니.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단 한 명을 위해 몇백, 몇천, 몇만 명의 목숨이 필요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점점 분노에 차오르는 시후의 모습에 샐러맨더는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세월을 보낸다. 필멸자의 굴레에서 벗어난 불멸자가 된다. 그 가치가 작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시후만 하더라도 천 년 전의 기억을 토대로 단기간에 결과를 보인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강시후로 깨어났을 때, 금나수 한 번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던 몸을 무림인의 몸으로 만들었었다.
천 년 전의 기억을 가진 것만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그런 일을 했는데, 천 년 세월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다면.
“어마어마하겠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준 것은 결코 형벌이 아니다.”
누구는 죽음이 안식이라고 말했고 또 누구는 죽음이 있기에 더 평온한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시후 역시 생물학적인 죽음이 그 사람의 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샐러맨더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알고 있다. 나 역시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존재. 그렇기에 녀석들의 마지막 퍼즐이 나인 거다.]
단순하게 영생을 하는 존재를 취해 영생을 이루겠다는 유치한 발상이었지만, 샐러맨더의 반응을 보니 그것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네가 약해진 것은?”
[보지 않았나. 성화당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녀석들의 힘을.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음….”
샐러맨더는 아마도 라마의 공격에 버티기 위해 본신의 힘을 소진한 듯했다.
본래 정령이란 계약자의 힘을 쓰는데, 그런 계약자의 힘을 상회하는 엄청난 힘에 대항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 힘을 쓴 이유가 성화신녀를 구하기 위해서였고?”
[맞다.]
“그럼, 네가 구한 성화신녀는? 그녀의 맥은 이어져야 하지 않았나?”
정령이 본신의 힘까지 사용해 지킨 성화신녀도 어차피 인간.
천 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혹시 후대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었다.
하지만.
[없다.]
“왜?”
[그때 그녀 역시 성한 몸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었으니까.]
샐러맨더는 그때를 회상하며 인상을 구겼다.
묻지 않아도 그의 표정만으로 그때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네가 케네디 가문으로 넘어간 것은?”
시후는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분명 중국에 있었던 녀석이 갑자기 미국에 나타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성화신녀가 죽고 나 역시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갔었다.]
“정령이 사는 세계가 따로 있어?”
[그렇다. 정령계라 불리는 곳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어, 그래.”
갑자기 ‘차원’이니 ‘정령계’이니 하는 단어들이 튀어나오자 시후는 대충 넘겼다.
괜히 알아봐야 머리만 아플 테고 지금은 딱히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샐러맨더 역시 시후가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런 것은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역시 교활한 인간이 말은 잘 통한다.]
“됐고. 그래서?”
[천 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나를 불러낸 인간들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천마신교처럼 성화당을 만들고 성화신녀를 만들지 않았다.]
“그 말은. 대우가 형편이 없어서 떠났다?”
정확한 지적에 샐러맨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그때 이후로 아무나 나를 불러낼 수 없게 몇 가지 제약을 걸었다.]
샐러맨더가 걸은 제약이란 마나 감응도가 특출나야 자신을 불러낼 수 있게 하는 거였다.
여기서 ‘특출’은 ‘천재’를 뜻하는 것과 같았다.
마나를 느끼는 것만으로는 샐러맨더를 부를 수 없는 거였다.
“그런데 의외의 장소인 미국에서 너를 불러냈다?”
[그렇다. 나를 불러내고 나를 대우해준 곳이 바로 지금의 케네디 가문이다.]
“음….”
샐러맨더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시후는 충분히 그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의 말대로 천마신교는 성화를 신처럼 모셨으니 말이다.
성화당에 갈 때면 성화신녀와 즐겁게 놀던 샐러맨더의 모습을 종종 봤다.
인간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라 생각하며 하대하는 샐러맨더.
그런 그가 그녀를 그렇게까지 대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를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인 샐러맨더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포달랍궁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지 충분히 이해했다.
“좋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뭔가.]
“포달랍궁에 대한 이야기는 케네디에 했나?”
[했었다.]
“했었다?”
상당히 과거에 일을 말하듯 아련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먼 옛날, 케네디 가문의 가주가 그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었을 때.]
“우두머리가 되었을 때라면…?!”
시후는 역사책에서 읽은 미국 대통령 저격 사건을 떠올렸다.
[그래.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너는 그 사건의 배후에 포달랍궁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다.]
시후는 지금까지 들은 샐러맨더의 이야기를 모두 종합해봤다.
영생을 위해 천 년 전부터 일을 도모한 포달랍궁.
그로 인해 천마신교는 물론 중원 전역이 피바다가 되었다.
샐러맨더가 도망친 덕분에 영생을 이루진 못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아직 기회를 노리는 그들.
거기에 그들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에서까지 막대한 힘을 갖고 있다.
시후는 천마였던 자신과 그들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것도 결국은 혈마 뒤에 포달랍궁이 있어서였고 내가 소림사에서 법정에게 그렇게 된 것도 녀석들 때문이란 말이렸다.’
시후는 자신의 운명을 뒤섞어 놓은 것이 포달랍궁이라 여겼다.
“오랜만에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군.”
중국에 다녀온 이후 복수라는 목적을 잊었던 시후였다.
그런데 포달랍궁이란 존재가 나타났다.
인생을 뒤틀어버린 존재. 복수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녀석들.
“아무래도 녀석들과는 같은 하늘을 볼 수 없겠어.”
시후는 녀석들에 대한 단서를 떠올리며 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전 마주친 제갈재민에 대한 것부터 샐러맨더에게 들은 내용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당연히 천 년 전 시후가 천마였던 것은 빼놓고 말했다.
그렇게 전반적인 설명을 마친 시후는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지도 알렸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지?”
- 네.
조민의 음성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제갈세가에 그와 그의 어머니인 원후태령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알고 있기에 좋은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 제갈재민이 포달랍궁의 궁주인 라마가 되어 시후 앞에 나타났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예요. 갑자기 그런 엄청난 힘을 얻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맞아. 그런 힘을 갑자기 얻었다면 분명 무언가 흔적이 있을 거야.”
- 네. 찾을게요.
조민은 다짐했다.
제갈재민에 대한 사안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낀 거였다.
이제 시후가 딱히 지시하지 않아도 조민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조민과 통화를 종료한 시후는 다음을 생각했다.
포달랍궁의 라마가 된 제갈재민.
그때 보았던 그의 힘은 진짜였다.
원후태령을 꼭 죽여야겠다는 다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그렇게 놓칠 만큼 가벼운 각오도 아니었다.
그런 자신에게서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데리고 사라진 제갈재민.
“라마의 힘을 모두 이었다고 봐도 무관해.”
무공과 다른 포달랍궁의 힘.
시후는 그를 인정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다.
“넌 사고 치지 말고 있어라.”
[벌써 가려는 거냐?]
“어. 내가 좀 바빠질 것 같거든.”
시후는 서둘러 돌아가 Safety World에 접속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몸을 돌린 시후의 바짓가랑이를 샐러맨더가 잡았다.
“왜?”
[나도 데려가라.]
“…왜?”
[심심하다.]
“…….”
척-
심심하다는 샐러맨더의 말에 시후는 검지를 들어 폴스5를 가리켰다.
‘저거나 하면서 놀아. 나를 귀찮게 하지 마’라고 눈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충분히 많이 했다!]
“충분히 한 것치고는 승이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다!]
시후의 말에 발끈하는 샐러맨더.
시후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너 조민이 바빠져서 그러는 거지.”
[헉!]
샐러맨더는 정곡을 찔렸다.
그는 시후와 조민이 통화한 것을 모두 들었다.
통화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따라서 조민이 앞으로 얼마나 바빠질지 알았다.
그랬기에 게임이나 하자며 조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이곳에 홀로 남겨져야 한다는 것인데.
[혼자 있는 건… 이제 싫다.]
샐러맨더는 고개를 푹 숙였다.
외로움이 느껴지는 정수리 때문이었을까.
샐러맨더를 귀찮게 생각하던 시후의 생각이 바뀌었다.
“쯧. 그런데 너 그런 모습으로는 나를 따라갈 수 없어.”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그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건 걱정 말아라! 나는 모습도 바꿀 수 있다!]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시후의 말에 신이 난 것인지.
샐러맨더는 정령의 힘을 이용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본래 초등학생 모습을 하고 있던 그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두 발로 서 있던 그가 네 발로 섰고 타오르던 불길은 붉은색 갈퀴가 되었다.
거기에 텅 빈 눈까지 검은색 눈으로 바뀌었다.
“여…우?”
[고양이다!]
“아, 그러냐? 뭐… 그 정도면 같이 갈 수 있겠네.”
붉은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제법 그럴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샐러맨더는 지금 이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꽤 많은 힘을 사용했다.
본래 인간의 모습을 하는 데 필요로 하는 힘이 1이라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의 힘을 사용했다.
[그동안 인간들이 어떤 동물을 좋아하는지 꾸준히 봐뒀다.]
샐러맨더는 앞발을 들어 혀로 살짝살짝 핥기까지 하며 완벽한 고양이 흉내를 냈다.
동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저 모습이 ‘귀엽다’라는 정도는 알았다.
‘저 정도 모습이라면 부모님도 반대하시지는 않겠어.’
시후는 집으로 돌아가 Safety World에 접속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초등학생 모습의 샐러맨더를 데리고 가게 되면 부모님께 무언가 변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고양이 같은 동물이라면 변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넌 조민이 키우던 고양이인 거다.”
[알았다.]
“그래. 집에 가면 우리 부모님께 잘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부모님을 놀래거나 하면 알지?”
[걱정하지 말아라! 가기나 하자!]
샐러맨더는 폴짝 뛰어올라 시후의 어깨에 매달렸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잔뜩 들뜬 그의 모습에 시후는 살짝 후회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것. 시후는 샐러맨더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