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네가 죽었다는 소식이 퍼진 후 그곳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샐러맨더는 천 년 전 소림에서의 일부터 꺼내려 했다.
“거긴 넘어가고.”
시후는 손을 들어 샐러맨더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안배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대략 1분 정도 이야기를 들은 샐러맨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네가 그렇게 쉽게 죽을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때의 천마는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지금이야 그때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라 생각했다.
“그러니 본론만 말해봐.”
[알았다. 그럼, 내가 쫓겨난 이야기부터 하지.]
“그래라.”
[네가 없어지고 천마신교는 수많은 전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곧 와해하였지.]
“…….”
시후 역시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했음에도 그 상황을 겪은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으니 새삼 충격적이었다.
[천마라는 상징이 없어진 천마신교. 수많은 전쟁으로 잃은 신도들. 당연히 성화당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랬겠지.”
[하지만 천마신교가 망하기 전에 나의 계약자였던 성화신녀는 나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뭐?”
지금 샐러맨더는 성화신녀가 천마신교를 버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가 보여줬던 신앙심이 고작 그 정도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시후였기에 받아들이는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런 시후를 보며 샐러맨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켜?”
[그래. 그들의 힘은 엄청났고 그들의 야욕은 더러웠으며 무서웠다.]
“혈교 녀석들. 분명 말살했다고 생각했건만.”
시후는 샐러맨더가 말하는 ‘그들’이 혈교라 생각했다.
그때 혈교주 혈마를 죽이며 혈교를 말살했다고 생각했는데 천마가 모르는 힘이 남아 있었나 싶었다.
실제로 얼마 전 중국에서 만났던 혈교 녀석들의 힘은 상당했으니 말이다.
“하긴, 혈천마라강시까지 만든 녀석들이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말한 그들은 혈교 따위가 아니다.]
시후가 혈교를 거론하자 샐러맨더가 말을 잘랐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우리를 그리 만들었던 것은 포달랍궁이었다.]
“……?”
여기서 왜 포달랍궁이 튀어나오는지 시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샐러맨더는 그 궁금증을 바로 풀어주기로 했다.
[내 입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으니.]
스윽-
샐러맨더는 손을 내밀었다.
시후는 그가 내민 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저 손을 매개로 그때의 일들을 보여주려나 보군.’
정령이기에 가능한 능력일 거였다.
시후는 망설임 없이 샐러맨더의 손을 잡았다.
샐러맨더는 역시라는 생각을 했다.
눈치도 빠르고 겁도 없고 그에 걸맞은 힘도 가진 시후.
[그때 네가 있었더라면.]
“…….”
아쉬움이 가득한 그의 표정에 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이었고 후회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지났다.
샐러맨더는 일말의 동요도 없는 시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살짝 어지러울 수도 있다.]
약간의 경고를 한 샐러맨더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시후의 눈앞에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주변이 변해갔다.
너무나도 빠른 변화에 시후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 * *
펑-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시후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여긴… 천마 신교?”
그랬다.
지금 시후의 눈에 보이는 곳은 천마신교였다.
하지만 천 년 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곳은 아니었다.
교인들이 밭을 일구고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곳은 불길에 휩싸여 쑥대밭이 되었다.
거기에 천마신교도의 옷을 입은 자들과 갑옷을 입은 자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군이 이곳까지 쳐들어왔었나 보군.”
시후의 추측대로였다.
천마가 사라진 후 군과 무림은 상호불가침 조약이라는 것을 깨버린 후 전쟁을 치렀다.
명령 하나에 목숨을 내던지는 군과 누군가의 명령보다는 개인이나 문파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무림의 대치였다.
개인이 가진 힘은 무림이 월등했지만, 군은 전술과 막대한 사람 수로 전쟁에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중원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천마신교까지 군이 다다랐다는 것은 전쟁이 막바지라는 뜻이었다.
시후는 군에 맞서 싸우는 천마신교도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모두가 샐러맨더가 보여주는 과거의 회상이기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증거로 시후는 하늘에 떠 있는 시점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군의 승리인가. 그런데 이것과 포달랍궁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있지.]
시후의 중얼거림에 샐러맨더가 답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시후는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이 세상은 샐러맨더가 주인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설마 이 전쟁을 그 녀석들이 일으키기라도 했다는 거야?”
[맞아.]
“…뭐?”
처참한 광경을 보는 것에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 농담을 던졌건만 샐러맨더는 그 농담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좀 더 정확한 증거를 보여주지.]
촤락-
또다시 주변 풍경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영상을 빠르게 재생하듯 시후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지나 다른 장소에 다다랐다
“여긴…?”
시후가 내려다보는 곳은 온통 얼음이 가득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북해 빙궁을 연상케 할 정도로 얼음이 가득한 건물들뿐이었다.
혹시나 주변에 누군가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는 시후의 머릿속에 샐러맨더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화당이다.]
“뭐? 이곳이?!”
언제나 성화의 불길이 치솟아 환하게 빛나던 성화당이 이런 모습으로 변하다니.
시후는 믿을 수 없다며 되물었다.
“너는? 네가 있는데 이렇게 되었어?”
불의 정령이 있는 곳에 어떻게 얼음이 가득한지 묻는 거였다.
그때였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성화당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시후는 그것이 자연재해가 아닌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알았다.
무너져 내리는 얼음 건물 사이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온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곳에서 상의를 탈의한 자.
시후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그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라마….”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가 포달랍궁의 궁주인 라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듯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와 이마에 붉은 점 세 개.
무엇보다 심연을 꿰뚫어 볼 듯한 흰자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흑안.
이 모든 것이 포달랍궁 라마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라마는 무너져 내리는 성화당을 두리번거리더니 피식 웃었다.
“잘도 도망갔구나. 그놈만 손에 넣으면 끝이었건만.”
아쉬움이 가득 느껴지는 라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얼굴에 미소는 여전했다.
“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이 세계의 끝이 있다면 그곳까지 도망가 보거라. 반드시 네 녀석을 갖고 말겠다. 크하, 하하!”
라마가 갖고 싶다고 말하는 무엇이 샐러맨더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왜?
지금 보이는 그의 힘은 천마라도 쉬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절대자의 힘을 가졌음에도 무엇을 위해 힘을 갈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시후의 궁금증에 샐러맨더가 답했다.
[영생을 위하여.]
“뭐?!”
[저자는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나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나를 통해 영생을 얻고자 한다.]
“영생이라니. 미친 거… 잠깐.”
시후는 영생을 꿈꾸는 라마가 미친놈이라 치부하려 했다.
그런데 문득 샐러맨더의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얻고자 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천 년 전의 인물을 회상하는 지금 이 시점에 현재진행형으로 말하다니.
샐러맨더가 말실수한 것인가 싶어 되물었다.
진득하게 느껴지는 찝찝함을 느끼며 말이다.
역시나.
[맞다. 그는 아직도 나를 찾고 있다.]
“미친, 그게 가능해?”
[저 자라면….]
침울한 샐러맨더의 음성과 함께 주변이 또 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영상을 되감듯 모든 것이 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멈추자 펼쳐진 눈앞에 풍경.
시후는 두 눈을 부릅떴다.
“진소령?!!”
시후가 죽을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얼굴.
천 년 전의 연인이었던 진소령이 보였다.
시후는 자신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진소령의 모습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아무리 그녀를 불러봐도 그녀는 자신을 볼 수 없다.
이곳은 그저 샐러맨더의 기억 속이니 말이다.
시후는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샐러맨더가 지금 그녀를 보여준다는 것은 그녀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여긴 그녀의 처소가 아닌가?”
[맞다. 이곳은 황궁이다. 그리고 이곳이 모든 일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이다.]
“무슨… 어?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시후는 진소령 처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라마의 등장에 당황스러웠다.
황궁 격식에 맞게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 전 성화당을 부수던 라마가 분명했다.
이마에 붉은 점 세 개와 검은 눈동자가 그 사실을 말해줬다.
좀처럼 상황 파악을 못하는 시후의 귀에 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보았느냐?”
“네. 분명 정령이었어요.”
“허. 그런 곳에 불로장생의 비밀이 있을 줄이야.”
불로장생이라니.
조금 전 영생 어쩌고저쩌고한 게 이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던 그때였다.
“아바마마, 정녕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바마마라니?
진소령이 라마를 보며 아버지라 말했다.
하지만 시후의 기억 속에 황제는 저런 얼굴이 아니었다.
“소령아, 이제 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내가 죽으면 나를 따르는 백성들이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냐?”
“알고 있습니다. 아바마마께서 돌아가시면 황위 쟁탈전이 일어나겠지요. 그로 인해 많은 이가 피를 흘릴 것이고요.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지금 망설이는 것이냐?”
“하지만, 아바마마. 가가를 힘으로 굴복시킬 수는 없으시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알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게 무슨 말씀…! 설마?!”
“그래. 피와 살육뿐이 모르는 녀석들이 손을 내밀더구나.”
“아바마마!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진소령이 눈물까지 흘리며 소리쳤지만, 라마는 고개를 도리질할 뿐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시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다시 눈앞 풍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춰 선 곳에는 진소령이 아닌 다른 이가 라마와 함께였다.
“저 자식은?!”
[그래. 네가 죽인 혈교주, 혈마 진소월이다.]
왜 저 둘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시후의 기억 속에 혈마는 중원을 넘어가기 전에 자신에게 죽었다.
자기 여인인 진소령을 죽인 대가를 받았다.
그런데 왜 저 둘이 같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였다.
“아바마마. 꼭 그리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래야 한다. 천마를 분노케 하여 그곳을 떠나게 하려면 이 방법뿐이다.”
“…….”
“안다. 네가 소령이를 얼마나 아꼈는지. 하지만… 대의를 생각하거라.”
라마의 말에 혈마는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경신술을 펼쳐 훨훨 날아갔다.
어느덧 혈마가 점이 되어 사라지자 라마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하늘에는 시후가 있었다.
시후는 보이지 않을 자신을 마주 보는 라마를 뚫어져라 봤다.
그리고 보았다.
라마의 입에 가득 피어오른 미소를.
“크큭,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천마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정령을 사로잡으면. 나는 영생을 이룬다. 크하, 하하!”
광소에 가까운 라마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주변을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금까지 보이던 모든 것이 사라졌고 시후의 눈앞에는 샐러맨더가 보였다.
샐러맨더는 시후의 손을 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어느샌가 라마는 황제 행세를 하며 주변을 속였다.]
“미친….”
[지금 네가 본 것처럼 오직 영생을 위해서. 황제를 이용했고 그의 자식인 혈마와 진소령을 이용했다.]
“…….”
[천 년 전 중원 전역에 불은 피바람은 모두 라마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샐러맨더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열었다.
[그의 욕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