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카론에 대한 일은 전적으로 마이클에게 맡겨 놓은 시후는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조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오빠.
“내가 보낸 거 봤지?”
- 네. 엄청난 것을 알아내셨네요?
“엄청난 거라니?”
히든 퀘스트에 대한 힌트라며 나타난 메시지는 시후 생각보다 가치가 있었다.
특히, 죽음의 신이라 불리는 타나토스가 말이다.
그는 명계의 왕 하데스의 충복 중 가장 으뜸인 자로 하데스가 하는 일에는 무조건적인 충성심으로 따랐다.
그랬기에 하데스는 그를 자기 오른팔로 삼고 그에 걸맞은 대외적인 활동을 승인했다.
타나토스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자신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하데스의 이름을 거론했다.
전쟁이 끝난 후 승리에 영광을 하데스에게 돌렸고 곡식이 잘 자라 풍작이 되면 하데스의 보살핌으로 그리되었다고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 결과 하데스의 이름은 올림포스 신들에 대한 명성만큼 거대해졌고 결국 제우스 왕국과 헤라 왕국과 더불어 그레이스 제국의 하나인 하데스 왕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는 것은 타나토스가 하데스 왕국의 개국공신이라는 말이야?”
- 바로 그거예요.
“음…. 그런데 왜 이딴 퀘스트가 뜨는 거지?”
그런 충신을 따르는 숭배자들을 찾으라니.
그저 그런 퀘스트였다면 1인 한정 히든 퀘스트로 분리되지도 않았을 거였다.
히든 퀘스트는 반드시 Safety World 세계관에 영향을 끼치는 게 불문율이다.
개국공신과 그를 따르는 숭배자들 그리고 올림포스 신들과도 연관이 있을 정도의 사건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린내가 나는데?”
시후는 타나토스에게 의문을 품었다.
조민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는 이미 정보를 파악한 상태였다.
- 제가 알아본 것들 오빠 스마트 폰으로 보내 놓을게요.
“그래. 수고했다.”
그렇게 통화를 종료하려는데 조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응?!”
- 그렇게 그냥 전화를 끊으시면 어떻게 해요.
“그럼 그렇게 끊지. 수고했다고 영통이라도 할까?”
평소답지 않게 격한 칭찬이라도 바라는 것인가 싶은 그때 언성이 높아진 조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니요! 샐러맨더 님 말이에요.
“…! 아.”
시후는 순간 아차 싶었다.
불의 정령 샐러맨더.
마이클과 제니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녀석은 한국에 남았다.
시후는 녀석이 왜 한국에 남았는지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다.
‘지가 남고 싶다고 했으니깐. 하지만…. 제갈가 녀석들에게는 좀 미안해지는군.’
정령이라도 자유의사가 있으니 시후는 녀석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정령이 거리를 활보하게 둘 수는 없어 제갈세가에 맡겼다.
크루즈에서 조민과 안면이 있던 샐러맨더는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제갈세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때 샐러맨더는 시후에게 손을 흔들며 일 끝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었다.
그렇게 가볍게 여긴 그 약속이 제갈세가를 괴롭혔다.
- 오빠 잊고 있었죠?!
“무슨? 아니야.”
- 거짓말하지 말아요! 방금 ‘아’라고 했잖아요!.
“아니라니까. 그보다 녀석은 지금 뭐 하는데?”
조민이 괜한 트집을 잡기 전에 시후는 말을 돌렸다.
그러면서 시후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조민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 오실 거면 빨리 좀 오세요.
조민의 목소리에서 피곤함이 엿보였다.
시후는 아파트 옥상에 다다르자 조민과의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는 가장 빠른 경신술을 펼쳐 빠르게 날아갔다.
* * *
[으아악! 교활한 인간아! 한 판만! 제발 한 판만!]
샐러맨더는 바닥에 누워 손과 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그야말로 발광했다.
화륵- 화륵-
그때마다 바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녹아버릴 것 같은 열기였다.
그것을 빤히 지켜보던 조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근처에 있는 소화기를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자세로 소화기를 다루는 조민.
칙- 치이익-
짧고 간결하게 불길을 잡았다.
소화기 분말이 뿜어져 나와 불길을 잡자 샐러맨더는 슬금슬금 옆으로 비켰다.
그러면서 불 끄기에 한창인 조민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교활한 인간아! 내가 그거 뿌리지 말라고 했잖느냐?!]
“그럼, 집에 불나는 것을 그냥 두고 봐요?”
[내가 말했잖느냐? 내 불길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하아….”
척-
조민은 발끈하는 샐러맨더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검은 전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전각 모양의 거대한 숯이 있었다.
샐러맨더는 조민의 손길에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전각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저, 저건! 그, 그래! 너무 약한 나무로 만들어서 저리된 거다!]
“…….”
척-
조민은 말없이 다른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검게 그을린 창고가 있었다.
그 창고는 일전에 대역 공방에서 받아온 무기들을 보관한 무기고였다.
다른 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50cm의 두께의 철판으로 지은 곳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듬성듬성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역력했다.
거기에 어떤 부분은 촛농이 흐르듯 녹아 흘러내린 흔적도 보였다.
[저, 저건….]
“저건. 어제저녁에. 반찬 투정을 하시면서. 저리 만든. 것이지요.”
조민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말했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샐러맨더가 알아줬으면 해서였다.
[그, 그건. 너희들이 너무 맛없는 반찬만을 내오니깐 그런 거 아니냐!]
“샐러맨더 님은 정령이시라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맨날 햄이나 소시지를 드시려고 하세요?”
[…….]
“제니가 말해줬어요. 샐러맨더 님께는 질 좋은 나무를 드려야 한다고요. 그래야 탈도 없으시다고….”
[그만. 그만! 듣기 싫다!]
샐러맨더는 조민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조민을 노려봤다.
“왜 그렇게 보세요?”
며칠 같이 지내보진 못했지만, 조민은 나름대로 샐러맨더의 성향을 파악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 지금처럼 저런 눈빛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교활한 인간. 저것들에 대한 복수로 나를 그렇게 무참히 짓밟아 버린 것이냐?!!]
샐러맨더는 입을 틀어막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그건 또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어이없다는 조민의 질문에 샐러맨더는 아주 작은 소리로 답했다.
[아침 드라마?]
“하아….”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조민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후가 맡기고 간 샐러맨더.
크루즈에서 보여준 그의 힘은 감히 조민이 어찌해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대충 이야기의 흐름으로는 몇백 년, 아니 몇천 년을 살았는지 가늠이 안 되는 나이였다.
정령이라고 하였으니 막연히 오래 살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시후가 곁에 없는 샐러맨더는 그야말로 나잇값을 못 하는 빌어먹을 녀석이었다.
그의 정신연령이 외모로 나타난 것인지 초등학생 외모에 버금가는 성격을 보였다.
“샐러맨더 님의 비위를 맞추다가는 초가삼간 다 태우겠어요.”
[그럴 일 없다고 하지 않았냐?! 그냥 네가 저 게임이라는 것을 한 판만! 한 판만 더 해주면 된다고!]
샐러맨더는 정원 중앙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쪽을 가리켰다.
그 앞에는 조이스틱이 연결된 폴스5가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대전게임의 화면이 멈춰 있었다.
샐러맨더가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저 게임은 그가 하도 심심하다고 하기에 조민이 알려준 거였다.
조민은 폴스5를 보며 자신의 어리석은 실수를 격하게 후회했다.
그렇다고 샐러맨더의 저런 행동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도가 지나쳤다.
“그게 벌써 100번도 넘었잖아요.”
[100번은 무슨?!]
샐러맨더는 격하게 도리질하며 조민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두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쫙 폈다.
그중 엄지손가락 하나만을 접고는 조민에게 들이밀었다.
[조금 전 거로 99번이다. 내가 그 정도 숫자도 셈하지 못할 것 같으냐?!]
“잘 헤아리셨네요. 그럼 99전 99패이신 것도 세 신 거죠?”
[그, 그건?!]
샐러맨더는 99번의 패배가 떠오르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말 한 판. 딱 한 판만 더 하면 조민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샐러맨더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너 저걸 99번이나 했어?”
[헉?!]
갑자기 시후가 땅에서 쑥하고 솟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시후의 등장에 샐러맨더는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분명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조민이 시후에게 연락을 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후 샐러맨더는 ‘마나 뿌리기’를 펼쳐놓았었다.
마나 수련자라면 누구나 가능한 마나 뿌리기는 일종의 탐색 마법이었다.
공기 중에 자기 마나를 흩트려 놓아 대상을 감지하는 마법이었다.
인간이라면 고작 자기 주변 정도로 가능하겠지만 샐러맨더는 정령이었기에 그 범위가 500m에 달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라면 감지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마나 뿌리기였지만 시후가 펼친 천잠음영술은 감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공기가 아닌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샐러맨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갑자기 나타난 시후가 두렵기까지 했다.
샐러맨더는 시후의 엄청난 능력에 다시 한번 놀라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어디 가냐?”
[가, 가긴 어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샐러맨더는 조민 곁에 다다랐다.
조민을 방패를 이용하려는 거였다.
너무나도 티 나게 자신을 회피하는 샐러맨더의 모습에 시후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자식이. 내 소중한 지괴를 고작 방패막이로 생각해?’
아무래도 녀석에게는 시후만의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조민은 가서 좀 쉬어라.”
“네?!”
“쟤랑 저걸 99판이나 했으니 피곤했을 텐데. 가서 쉬어.”
“아, 네. 그럼.”
역시나 눈치 빠른 조민.
시후가 샐러맨더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을 보고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그랬기에.
[교, 교활한 인간아. 나를 두고 어디를 가려는 거냐? 헉!]
탁-
조민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꼭 쥔 샐러맨더의 손을 있는 힘껏 뿌리쳤다.
그러고는 허리를 슬쩍 낮추어 속삭였다.
“지금부터는 오빠랑 재미난 시간 보내세요~.”
[재미난 시간?! 천마랑 무슨…. 헉!]
샐러맨더의 입에서 ‘천마’라는 단어가 나오자 시후는 살기를 피웠다.
그것도 곁에 있는 조민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샐러맨더에게만 말이다.
정령이지만 당장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샐러맨더는 숨이 막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자 조민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렇게 시후와 샐러맨더 둘만 정원에 남았다.
시후는 샐러맨더에게 피우던 살기를 거두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원래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너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생하는구나.”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불의 정령이기에 쉽게 주변에 불이 일어나니깐.]
“웃기는 소리 하네. 그거 하나 못 다뤘으면 천 년 전 성화당은 쑥대밭이 되었게?”
천 년 전 성화당을 찾을 때면 매번 마중을 나오던 샐러맨더였다.
그리고 성화당은 언제나 녀석이 피워낸 불길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그곳 어디에도 그을리거나 탄 흔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샐러맨더가 있기에 가능했던 거였다.
그런 녀석이 전각과 무기고를 저리 만들어 놓고는 실수라고 말하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샐러맨더의 표정이 상당히 난처해 보였다.
[그, 그건… 내가… 약해져서….]
샐러맨더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파리가 날아가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시후는 정확히 들었다.
“약해져?”
[으응.]
샐러맨더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분명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귀찮아.’
그 사연을 물었다가는 천년 세월 동안의 이야기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샐러맨더를 교육하기도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할 게 뻔하단 생각에 시후는 말을 돌리기로 했다.
“뭐, 그렇다 치고.”
[그래. 내가… 뭐?!]
당연히 자신이 약해진 연유를 물을 줄 알았던 샐러맨더는 당황스러웠다.
이미 머릿속에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시후라도 제갈세가에서 자신이 한 일들을 그냥 넘겨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태연하게 들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말문이 막힌 샐러맨더의 반응에 시후는 옳다구나 싶어 말을 돌렸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뭐가?]
“왜 네가 미국에 있었던 거냐?”
[그거야 계약자가 미국에 있었으니 그랬지.]
“내 말은. 넌 분명 중국에 있었는데 왜 케네디 가문이 있는 미국에 있게 된 거냐고.”
시후는 크루즈에서 샐러맨더의 정체를 알았을 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묻지 못했지만 아무 말이나 내뱉어 녀석의 관심을 돌리기에는 충분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샐러맨더의 입에서 나온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였다.
[쫓겨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