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카론은 멍한 표정으로 노를 저었다.
피리플레게톤의 불길을 목욕탕 온탕처럼 여기는 시후의 모습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였다.
“말도… 안 돼…. 그 불길이… 허, 허허.”
“거참, 괜스레 미안해지네.”
카론이 저 정도로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평소 재수 없는 미소를 입에 달고 살기에 남다른 멘탈 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더니.
“이건 유리 멘탈이네.”
한 번 실패했다고 공황에 빠진 카론의 모습에 시후는 놀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시후는 카론이 이번 시련을 위해 얼마큼의 수고를 했는지 모르기에 이러는 거였다.
카론이 안내하는 저승의 강은 총 다섯 개의 시련이 있다.
첫 번째로, 죽은 자들이 자기 죽음을 비통하게 여기며 눈물을 흘리는 비통의 강 ‘아케론’.
두 번째로, 자신의 과거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을 보여주어 시름에 젖게 하는 시름의 ‘강 코퀴토스’.
세 번째로, 영혼을 불태워 정화하는 불길의 강 ‘피리플레게톤’.
네 번째로, 정화된 영혼이 강물을 마시며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잊는 망각의 강 ‘레테’.
다섯 번째로, 명계를 휘감는 강으로 신들조차 지나기를 꺼리는 증오스러운 죽음의 강 ‘스틱스’.
이 다섯 개의 시련을 겪도록 하는 것이 카론의 일이었다.
물론, 망자에게만 다섯 개의 시련을 겪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저라는 족속들이 태워달라고 하면 금화를 받고 그들을 태워준다.
이때 받은 금화가 카론에게는 상당히 중요했다.
그래서 카론은 유저들이 다섯 개의 강을 건너는 중간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게끔 유도했다.
그래야 그들이 건네준 금화를 본인이 소유할 수 있으니 말이다.
카론이 그렇게 저축한 금화로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시련의 강에 난도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거였다.
유저라는 것들이 아무나 명계로 들어가면 그곳이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기에 카론에게 내려진 의무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금화를 쏟아부어 난도를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카론이 금화를 통해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총 다섯 개의 금화의 가치.
즉, 보통의 난도에 카론이 금화 하나를 사용하면 ‘약간 어려움’ 정도로 난도가 올라가는 거였다.
그리고 조금 전 피리플레게톤에 들어설 때 카론은 금화 세 개를 사용하여 ‘매우 어려움’ 정도로 난도를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시후와 마이클이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불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한 놈은 무식하게 체력 포션을 들이켜며 버티고 한 놈은 그 무시무시한 불길을 즐겼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카론은 망연자실하여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금화는 두 잎뿐.
남은 강의 개수도 두 개뿐.
결국, 카론은 두 개의 강 중 하나에 올인을 하느냐 아니면 하나하나씩 사용하느냐의 선택지만이 남은 거였다.
“하지만, 이다음 강에서는 쓸 수 없다고….”
그랬다.
본래 네 번째 강, 망각의 강 레테는 세 번째 강인 피리플레게톤에서 불길에 정화된 영혼이 강물을 마셔야 시련이 발동되는 강이었다.
그랬기에 시후와 마이클은 네 번째 강에 대한 시련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젠장!”
카론이 괴성에 가까운 절규를 내지르며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노는 계속 저었기에 어느덧 피리플레게톤의 화염을 벗어나고 있었다.
“후아! 통구이가 되어버리는 줄 알았네.”
불길을 벗어나자 지금까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체력 포션을 빨아 먹던 마이클이 일어났다.
그의 몸 이곳저곳은 불길에 그을렸는지 상당 부분이 손실된 상태였다.
“보기 민망하다. 옷 좀 갈아입어.”
“하, 하하. 남자끼리 부끄러워하기는.”
시후의 지적에 마이클은 멋쩍게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냈다.
딱히 벗고 입는다는 동작이 존재하지 않는 Safety World였기에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는 순간 바로 착용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너… 그거.”
“하, 하하. 어때? 어울리는가?!”
자랑스럽게 자기가 입은 옷을 자랑하는 마이클의 모습에 시후는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마이클이 입고 있는 옷은 시후가 입은 옷과 똑같았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조화롭게 이루어진 장포에 새겨진 황금색 무늬까지.
마치 시후가 입은 옷을 그대로 사 온 것같이 똑같았다.
시후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너 그거 어디서 났냐?”
“크~! 알아보는 건가? 이 옷 정말 구하기 어렵더군.”
“그렇겠지. 그래서 묻는 거 아니냐.”
시후가 입고 있는 장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일반적인 상점에서 파는 물건도 아니었고 자그마치 아라크네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그녀가 만들어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라크네의 장포]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20%]
[공격력 : +20%]
[회피력 : +10%]
[아라크네가 제작한 역작. 그녀가 ‘천마’에게 입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심혈을 기울여 제작함.]
[사용 제한 : ‘천마’]
‘방어력과 공격력을 +20%나 올려주는 유니크 아이템을 저 녀석이 어떻게 구했지?’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 중에도 이만한 옵션을 가진 것은 드물었다.
그런데 이런 아이템을 구한 마이클의 능력이 궁금했다.
도대체 돈과 인맥을 얼마나 사용했기에 가능했는지 진심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옷에 대한 진실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이 코스튬을 구하는 데 자그마치 4만 달러를 사용했다는 거 아닌가.”
“뭐? 지금 그게 그냥 코스튬이라고?”
“그렇네!”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마이클.
시후는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지만 고작 코스튬에 4만 달러를 들이붓다니.
즉, 지금 마이클이 입은 저 옷은 그저 모양과 색을 변경하고 무늬를 집어넣은 다른 아이템이라는 거였다.
결코 시후가 걸치고 있는 아라크네의 장포가 지닌 성능을 낼 수 없는 아이템이라는 말에 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건지.”
“쓸데없다니? 자네는 멋이라는 것도 모르나?”
시후가 멋을 모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가 입고 있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여 입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였다.
언제나 일인자로 군림하고 다른 이들의 우상이었던 천마였기에 마이클의 팬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후였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마이클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는 이해한다.”
갑자기 둘의 이야기에 끼어든 카론.
시후와 마이클은 카론을 돌아봤다.
카론은 노를 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네가 이해한다고 말한 거야?”
“그럼, 이 배 위에 우리 셋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다른 누가 말했겠나?”
카론은 시후의 질문에 앙칼지게 대답했다.
무언가 상당히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
그에 시후는 마이클에게 눈짓했다.
자기보다는 마이클이 그와 대화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크흠, 그래서 뭐를 이해한다는 건데?”
마이클이 시후의 눈짓을 알아듣고 진지하게 물었다.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마이클은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했다.
그저 다음 시련까지 가는 동안 벌어지는 가벼운 에피소드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카론의 연설이 길어질수록 그의 말에 격한 동감을 받기 시작했다.
“그 마음!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이에 대한 경외심. 그것을 그저 마음속에만 품기에는 너무 부족하지. 그래서 그의 작은 것 하나라도 따라 하고 싶은 심정. 그거야말로 진정한 추종자가 가져야 할 마음 아닌가!”
“맞아! 바로 그거야!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거든.”
“그래. 그래서 나도 이것을 입고 다니지.”
카론은 자신의 로브를 가리켰다.
흰색이라고 하기에는 탁하고 그렇다고 회색이라고 하기에는 옅은 색의 로브.
이곳저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저거야말로 거적때기가 아니겠냐고 시후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어둠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 숭배하는 ‘어둠의 종사자’에 대한 단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카론은 ‘어둠의 종사자’가 주로 사용하는 로브를 입고 있습니다.]
[그것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좀 더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더 많은 힌트를 얻으십시오.]
[힌트에 대한 양과 질에 따라 히든 힌트의 개방이 이루어집니다.]
시후의 두 눈이 커질 만한 내용의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어둠의 숭배자들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찾은 거였다.
시후는 메시지를 모두 읽고는 빠르게 마이클에게 공유해줬다.
그리고 마이클이 해당 메시지를 읽는 사이 카론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가 쓸데없는 의심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쩐지. 로브의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더니. 그저 그런 로브가 아니었군?!”
“오, 너도 이것을 알아보는 건가?”
카론은 시후가 로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기뻐했다.
예의 재수 없는 미소가 돌아온 순간이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럼,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을 보면 모르나? 이거 자그마치 유니크 아이템이라고.”
“오! 그게 유니크?”
유니크 등급이라고 맞장구쳐주자 카론은 더욱더 신이 났다.
자신이 걸친 로브는 고작 노멀 등급이었지만 시후가 자기 옷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듯이 말하자 기쁜 거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줄곧 시후를 적대하던 카론의 태도가 바뀌었다.
“천마. 자네가 이 로브의 위대함을 알아주다니. 기쁘기 그지없군.”
“당연한 것을. 그보다 그런 멋진 로브는 누구의 것을 본뜬 건가?”
시후는 칭찬 속에 어둠의 종사자에 관한 질문을 섞었다.
본래라면 극도의 경계심으로 질문에 대한 대답 따위는 하지 않았을 카론이었지만 피리플레게톤에서 받은 충격과 시후의 칭찬이 상호작용을 하며 그의 입을 열었다.
“저자가 너의 장포를 본떴듯이 나 또한 ‘타나토스’ 님의 로브를 본떴지.”
띠링-
[어둠의 종사자 정체를 파악했습니다.]
[타나토스의 정체와 그를 따르고 숭배하는 이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업적 보상은 1인 한정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한 후에 합산하여 보상됩니다.]
[어둠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한 퀘스트가 ‘어둠의 종사자를 찾아라’에서 ‘타나토스와 대면’으로 바뀝니다.]
퀘스트 내용이 변경된다는 메시지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시후는 빠르게 해당 내용을 스샷하고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 이렇게 내용이 바뀌었다.
타나토스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기에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 조민에게 메시지를 보낸 거였다.
그사이 시후가 공유해준 메시지를 모두 읽은 마이클이 슬쩍 다가왔다.
“심도 있는 대화?”
“어. 잘 부탁한다.”
“그래. 잘 부탁… 뭐?!”
“믿는다. 로그아웃.”
시후는 눈을 껌뻑이는 마이클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로그아웃해 버렸다.
세 번째 시련이 끝났으니 로그아웃을 할 수 있었지만 로그인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리 나가는지 마이클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고작 30분 정도 게임을 하자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캡슐에 들어온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이… 이….”
마이클의 쥐어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자 카론 슬쩍 다가왔다.
“쯧쯧, 천마 저자는 상당히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군.”
“자유로운 영혼은 무슨. 그냥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진 것이지.”
“음… 듣고 보니 그렇군. 자네가 고생이 많겠어. 내 그 마음을 알지.”
“카론 자네가 어찌 알지?”
“내가 따르는 타나토스 님도 저런 성격이시거든.”
카론과 죽이 척척 맞아 시후를 열심히 모함하던 마이클은 갑자기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타나토스의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보상 업적 : 전 스텟 +3]
“…미친.”
마이클은 전 스텟 +3이라는 보상 업적에 분노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