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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37화 (237/275)

제237화

늦은 시간에 방문했지만 박초연은 시후를 깍듯이 맞이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용정차입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용정차를 시후 앞에 내놓았다.

시후는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했다.

“향이 좋구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희 사이가 꽤 좋아 보인다?”

“네… 네?!”

느닷없는 시후의 말에 박초연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곁눈질로 뒤쪽에 있던 평치혁을 힐끗거렸다.

평치혁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후의 한마디에 둘은 이마에 땀까지 흘렀다.

‘이것들 봐라? 꽤 가까워졌구먼?’

일전에 마이클과 엮이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인지 둘은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있었겠다는 게 시후의 추리였다.

“이렇게 되면 마이클만 나가리인가?”

“……!”

마이클의 이름이 나오자 평치혁의 눈이 부릅떠졌다.

여전히 그에게 적대감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박초연이 손사래를 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와 저는 아무 관련도 없어요!”

“누가 뭐라든?”

“지금 뭐라도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잖아요!”

“알았어. 누가 보면 너희 둘이 사귀는 줄 알겠다.”

“사, 사귀다니요! 우리는 그런 사이가….”

솔직히 시후는 둘이 사귀거나 말거나 크게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앞으로 꺼낼 이야기에 박초연이 간장을 풀 수 있길 바라며 말한 거였다.

덕분에 박초연을 비롯한 평치혁 역시 당황하며 다른 쪽으로 긴장하기는 했지만, 덕분에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당황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 알았다니까. 그보다 물어볼 것이 왔다.”

“후… 네.”

박초연은 시후가 화제를 돌리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시후의 웃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압감 때문이었다.

시후가 용정차를 들이켜며 잠시 뜸을 들였다.

탁-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은 시후는 미소를 지우고 입을 열었다.

“Safety World. 네가 만들었다고 했지?”

“저 혼자 만든 것은 아니지만…, 네.”

시후가 그 정도 사실도 모르고 묻지는 않을 거였다.

그렇다면 그의 진짜 질문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박초연은 알았다.

박초연은 자세를 고쳐잡으며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몸으로 말했다.

“Safety World의 A.I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이지?”

“질문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데요?”

박초연이 Safety World의 A.I를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A.I는 그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 S.W SOFT는 Safety World를 또 하나의 세계.

또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세계라는 주제로 제작했다.

그랬기에 그것을 스스로 운영하는 A.I는 그곳에서 그야말로 신이어야만 했다.

시후가 만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더 높은 격을 가져 그들마저 아우를 수 있는 존재로 말이다.

그랬기에 박초연은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후는 상관없었다.

박초연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찾은 것 같았다.

시후는 그녀에게 질문을 하는 순간부터 줄곧 독안공을 펼치고 있었다.

‘신이란 말이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존재.

생사경을 넘어 자연경에 다다라 득도의 길에 오르면 신이 된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시후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만 믿었다.

그랬기에 지금 이러는 거였다.

천 년 전의 일을 재현하는 A.I.

그 능력의 끝을 알고 싶었다.

“그럼, 질문을 좀 함축하지.”

“네.”

“A.I를 다룰 수는 없는 건가?”

“없어요.”

박초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나도 단호해서 되레 시후가 당황스러웠다.

“너무 단호해서 단호박인 줄?”

“…….”

“농담이다.”

“농담일 거라 생각했어요. 웃기지는 않지만요.”

시후는 아무 말이나 하며 박초연의 생각을 읽었다.

‘정말 제어할 수가 없단 말이지.’

다룰 수 없다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처음 A.I를 Safety World에 적용했을 때 몇 가지 안전장치를 했다는 거였다.

너무나도 뛰어난 A.I가 현실 세계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그 반대로 A.I를 조종하여 Safety World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말이다.

만약 그러한 시도가 있다면 A.I는 스스로 제약을 걸고 종국에는 사라지는 안전장치였다.

시후가 입을 닫고 고민에 빠지자 이번에는 박초연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무리 Safety World에 진심인 시후라 하지만 지금의 질문은 그 정도가 지나쳤다.

박초연은 시후가 A.I를 다룰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세상 당황스러웠다.

그가 Safety World를 통치할 마음을 가진 건가 생각했다.

그리고 시후가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그를 막을 자가 이 세상에 있겠느냐는 상상까지 해봤다.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떠올랐다.

시후가 만약 Safety World가 아닌 현실 세계를 갖고자 힘을 쓴다면?

오싹-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등골이 오싹했다.

시후가 살상을 일삼거나 재물욕이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유지하는 세상의 질서는 분명 무너질 거였다.

나라라는 개념이 없어질 것이고 인종이라는 개념도 없어질 거였다.

오로지 시후의 사상에 물든 강자와 약자만 존재할 것 같았다.

박초연은 시후의 대답을 긴장된 모습으로 기다렸다.

시후는 그런 박초연의 생각까지 모두 읽었다.

‘어이가 없네. 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준 모습이 어땠길래 저런 망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초연이 생각대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시후의 사상과는 맞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천마 시절 천마신교를 이끄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시후였다.

지금도 힘을 찾으려는 이유가 오로지 자기 사람들과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였다.

혈교의 잔당이나 포달랍궁만 아니었다면 A.I를 조종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였다.

그렇다고 박초연에게 Safety World에서 빠르게 레벨업을 해서 강해지려고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후는 진실 속에 거짓을 섞기로 했다.

“내가 이번에 받은 히든 퀘스트를 진행 중인데 말이다.”

“히든… 퀘스트요?”

“어. 어둠 종사자들을 찾는 퀘스트인데….”

시후는 박초연에게 이번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금 전 마이클과 함께 카론을 만나고 두 번째 시련의 강을 클리어한 것까지 말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박초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시후 님에게만 그런 퀘스트가 뜨는 거죠?”

“응? 나에게만?”

“네. 1인 한정 퀘스트는 상당히 희귀한 것이라 S.W SOFT에서도 따로 관리해요. 그런데 시후 님과 같은 퀘스트는 처음 봐요.”

“진짜야?”

“네. 진짜요.”

“음….”

시후는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박초연과 눈을 마주하며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떠오르는 대답은 하나였다.

“나니까?”

“아… 네.”

저런 근자감은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저 말만큼 시후에게 어울리는 말도 없었다.

박초연은 A.I의 의도가 왜 시후에게만 저런 퀘스트를 주는지 따로 알아볼 생각을 했다.

그보다 본래 자신이 한 질문에 답을 듣지 못했기에 다시 물었다.

“그래서 A.I는 왜 컨트롤하려고 하셨는데요?”

“그건… 내 퀘스트의 난도와 보상을 올리고 싶어서.”

“네?”

“어차피 클리어할 건데 지금보다 더 어려워야 깨는 맛이 있을 거고 그만한 보상을 고만고만하게 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진심이세요?”

박초연은 진짜 진심이냐고 물었다.

그 보상이 박초연이 생각하는 그런 보상이 아니었지만 시후는 진심이었다.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을 가득 담은 눈빛까지 보이며 말이다.

박초연은 시후가 얼마나 Safety World에 진심이길래 저렇게까지 몰입하나 싶었다.

그러다 자신이 만든 게임에 저렇게까지 진심이라면 도와주고 싶어졌다.

“그러면 이번에 접속하실 때 저도 같이 가요.”

“너랑?”

“네. 시후 님께서 하시는 퀘스트 진행 상태를 보면 난도를 상향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몰라요.”

“그게 가능해?”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A.I의 알고리즘을 알고 있는 저이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에요.”

박초연의 말은 사실이었다.

엔지니어인 그녀만이 가능한 일이 분명했다.

시후가 하는 퀘스트를 곁에서 지켜보고 대상들의 반응이나 주변 변화를 확인하면, A.I의 알고리즘을 알아내 퀘스트 난도를 상향할 수 있었다.

실제로 테스트해본 적도 있었던 일이기에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시후는 그녀의 말대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A.I에 대해 알아보려던 이유 중의 하나였기도 했고 말이다.

박초연의 말대로 Safety World에서 신의 힘을 가진 A.I라면 시후가 가진 천 년 전의 기억도 꺼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뭐든 이용해주지.’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박초연의 호의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저승의 강에 있는데?”

“어차피 거기는 제가 가지 못해요. 하지만 ‘어둠 종사자의 흔적 찾기’ 퀘스트는 거기가 끝이 아니잖아요.”

“그렇지?”

“지금 가시는 곳이 명계라고 하셨고요?”

“어.”

“그럼, 명계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다 방법이 있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카론이 내놓은 시련 퀘스트나 잘 통과하고 오세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박초연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데 더 이상 캐묻기도 힘들었다.

“그럼, 이만 가볼게.”

“벌써 가시게요?”

이제 볼일이 끝났으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평치혁이 나섰다.

“왜, 할 말 있어?”

“네. 그게….”

평치혁은 뜸을 들였다.

상당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뭔데?”

“중국에 다녀올까 합니다.”

“중국? 아, 화산에 말이냐?”

“네.”

평치혁은 일전에 시후가 말한 그것을 찾으러 화산에 가려는 것이다.

이번에 마이클과 지내면서 발전은 했지만, 그에 비례하여 시후의 강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자신과 마이클을 가볍게 주무르는 그의 무위에 평치혁은 더욱 강해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시후가 일전에 말한 것이었다.

시후는 그런 평치혁을 물끄러미 보다가 독안공을 펼쳤다.

‘어쭈? 그새 자하신공이 오성에 달했어?’

아무래도 이번 수련으로 그가 큰 성과를 보인 것 같았다.

오성에 달하면 화산 연화봉을 찾으라는 말을 기억하는 평치혁.

시후는 기특한 그의 모습에 좀 더 힌트를 주기로 했다.

“그곳에 남겨져 있는 것은 검이다.”

“검이요?”

“매화나무로 만든 검이지.”

“목…검이라는 말씀입니까?”

평치혁은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 찾으려 하는 것이 고작 목검이라는 말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시후의 이어지는 말에 그런 생각을 훌훌 털어버렸다.

“자하신공의 끝을 보려면 꼭 필요한 검이지. 천 년 전 화산파 장문인 운암이 사용하던 보검이다.”

“우, 운암(雲巖)이요?!”

그 이름에 평치혁의 언성이 높아졌다.

화산의 무공을 익히면서 가장 자주 듣고 가장 그리워한 이름이 바로 운암이었다.

화산의 역사상 가장 강한 자가 누구인가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던 이가 바로 운암이었으니 말이다.

평치혁에게 있어서 운암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운암의 유산을 찾으라는 시후의 말에 평치혁은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시후의 허락이 필요했다.

시후를 자신의 주군으로 생각하기에 그의 허락을 구하는 거였다.

그런 평치혁의 생각까지 모두 읽은 시후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감사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평치혁은 들뜬 마음으로 다음날 중국으로 떠났다.

며칠 후 시후가 자신을 찾아 중국을 찾아올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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