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36화 (236/275)

제236화

시후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는 그 순간.

띠링-

[‘코퀴토스의 강’의 시련을 이겨내셨습니다.]

[후회로 물든 ‘업적’을 후회가 물들지 않은 업적으로 바꾸셨습니다.]

[보상은 다른 시련을 이겨낸 후에 종합 평가하여 정산됩니다.]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후가 알림 메시지를 모두 읽자 빛이 번쩍이며 풍경이 바뀌었다.

천마동이 아닌 카론의 배였다.

시후는 주변을 한차례 두리번거리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봤다.

‘내가 예상보다 빨리 나왔나?’

어째서인지 카론과 마이클은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음… 다녀왔다.”

시후는 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카론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눈을 껌뻑였다.

“대체 무슨….”

“방금 그거 뭐야?!”

카론보다 마이클이 먼저 시후에게 물었다.

“뭐가?”

“방금 그거! 검은 연기가 막 무서운 얼굴이 된 그거!”

“뭐라는 거야?”

두서없이 내뱉는 마이클의 말에 시후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천마기가 형상화했나 보군.’

천마지기를 끌어 올리면 대기 중에 산소와 만나 수증기를 일으키는데, 그때 피어오른 연기가 악귀의 형상을 보인다.

천마동에서 보였던 것처럼 습도가 높은 곳에서나 발현되는 것인데 이곳이 강가라 그런지 나타난 것 같았다.

갑자기 악귀의 형상이 나타났으니 그것을 본 카론과 마이클이 저리 놀라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역시나, 대충 넘기려는 시후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이클은 집요했다.

“네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흘러나왔다고. 도대체 뭔데, 그거?!”

“그냥, 내 기(氣)야.”

“기?!”

마이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런 형상은 처음 봤다.

크루즈에서 시후가 보여줬던 화마장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흉흉한 기라니.

마이클은 축축하게 젖은 손을 바지춤에 쓱쓱 닦았다.

그리고 그것은 카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되레 카론은 마이클보다 더욱 놀란 모습이었다.

“크, 크흠.”

카론은 헛기침하며 주의를 끌었다.

시후가 자신을 바라보자 카론은 어색하게 웃었다.

“축하한다. 두 번째 시련인 코퀴토스의 강을 이겨내다니. 대단하군.”

말투까지 어색해진 카론.

시후는 눈빛을 빛냈다.

‘이것 봐라?’

마이클은 그렇다 치지만 카론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의외였다.

아무래도 무언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흠, 다음 시련으로 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도 될까?”

우물쭈물하는 모습으로 질문까지 해왔다.

예의 보이던 재수 없는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후는 그런 카론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아니.”

“그래. 그 연기는 무엇… 뭐?!”

“다음에 보자고. 로그아웃.”

시후는 마이클에게 신호를 보내고는 로그아웃해 버렸다.

당황한 카론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이클에게로 향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거였다.

“하, 하하…. 나도 이거 참…. 로그아웃.”

마이클은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로그아웃했다.

흐릿해지는 풍경 너머로 카론의 절규를 들은 것만 같았다.

마이클은 빠르게 고글을 벗고 캡슐에서 나왔다.

그의 캡슐 앞에는 시후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말 잘 듣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로그아웃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다.

마이클이 시후를 따라 부랴부랴 로그아웃한 이유는 시후가 메시지를 보내서였다.

카론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로그아웃하라는 메시지를 말이다.

“그런데 괜찮겠나? 뒤통수에서 카론의 절규를 들은 것 같은데.”

“뭐, 어쩌겠어. 자기 입으로 하나의 시련이 끝나면 로그아웃해도 된다고 했었잖아.”

“아니, 그렇게 막무가내로 그러면 후에 어찌하려고 그러나?”

이다음 시련에 카론이 무슨 짓을 벌일지 걱정하는 거였다.

만약 카론이 다른 시련에 나누어야 할 난이도 설정을 다음 시련에 몰빵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걱정도 태산이다.”

“뭐?”

시후 역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후회의 시련을 겪으면서 시후가 느낀 것은 카론이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거였다.

‘적어도 유저가 깰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는 유지하는 것 같아.’

클리어 불가능한 시련을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이 시후의 생각이었다.

처음 비통의 강 아케론을 그냥 지나가게 해줘 놓고서는 두 번째 시련에 어느 정도 난도 있게 설정했을 텐데도 시후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클리어했다.

물론, 그 척도가 시후에 한해서지만 말이다.

만약 마이클이 시후와 같은 시련을 겪었다면 그는 실패했을 난도였다.

시후는 그런 자신의 의도도 모른 체 여전히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이클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카론과 같은 녀석에게는 얌전히 따라주면 안 되는 거야.”

“카론 같은 녀석이 뭔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녀석 말이야.”

“…….”

마이클은 차마 ‘너’라는 말을 할 수 없어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마이클에게 시후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애의 기술에 밀당이라고 들어는 봤나? 그것처럼 때로는 끌려가지만 때로는 당기기도 해야 하는 거라고.”

“고작 열여덟 살 주제에 무슨….”

“뭐?!”

마이클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시후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해서였다.

“크, 크흠. 자네 어머니께서 저녁 시간에 늦지 말라고 하셨었지?”

마이클은 시후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캡슐방을 나갔다.

얼마나 빨리 달려갔는지 거실에 있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금세 들렸다.

“놀리는 재미가 있어.”

시후는 오랜만에 찾은 애착 인형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마이클이 사용한 캡슐이 눈에 들어왔다.

“Safety World, 그저 그런 게임이 아니라 이거지?”

이번에 품은 의문.

아무리 사람의 뇌파에 간섭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천 년 전 천마동에서의 일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시후는 Safety World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후는 품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 두 시간 후에 찾아가지.

-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빠르게 돌아온 답장에 만족한 시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사교성이 좋은 마이클 덕분에 저녁 식사 자리는 시끌벅적했다.

오랜만에 부모님의 웃음소리를 들은 시후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럼, 바래다주고 올게요.”

저녁 식사 이후 시후는 마이클이 집을 나설 때 그를 바래다주고자 집을 나섰다.

아파트 밖으로 나와 시후와 함께 거리를 거닐던 마이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도. 덕분에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 식사 자리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한국에 와서 너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말이다.”

“진짜? 모든 시간이?”

시후는 자신과 한 내기에서 진 이후 노예 생활을 한 그 시간까지 즐거웠냐고 묻는 거였다.

그에 마이클은 환하게 웃었다.

“그렇다. 나를 그렇게 대한 이가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가식 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뭐, 네가 그랬다니 다행이네.”

시후는 마이클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케네디 가문에서 마이클의 지위.

장미 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서 그가 보여줘야 하는 모습.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닐 거였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천마 시절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는 언제나 품위를 지키라는 지괴의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들은 시후였다.

마이클도 그와 같을 거라는 생각에 시후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시후는 마이클에게 선물 하나를 주기로 했다.

“네가 사용하는 그 오러 말이야.”

“응? 오러가 왜?”

“오러를 몸에 두르거나 다르게 변형하여 사용하는 게 아주 멋지더라.”

“훗. 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마이클은 시후의 칭찬에 코밑을 쓱쓱 문지르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몸에 두를 수 있다면 좀 더 거대하게 활용해 보는 것이 어때?”

“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예를 들어 이렇게 말이야.”

후웅-

시후는 손을 펼쳐 그 위에 기를 응집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이 없어 마음 놓고 무공을 펼쳤다.

마이클은 시후가 자신에게 무언가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입가에 걸쳐 있던 미소도 지운 채 집중했다.

시후의 손에 응집되던 기는 축구공만 한 크기로 변했다.

“기는 형태가 없지. 그렇기에 그것을 다루는 자의 의지로 변형할 수 있으며.”

파라락-

축구공만 했던 기가 사방팔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그러고는 시후와 마이클을 감쌀 정도로 거대한 구체가 되었다.

“그 영역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있지.”

파지직-

“크윽!”

마이클은 자신을 감싼 구에서 스파크가 일자 깜짝 놀랐다.

잠깐 번쩍인 스파크는 어느새 마이클과 시후의 몸속을 관통했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이게 무슨?”

어리둥절한 표정의 마이클을 보며 시후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영역 안에서만큼은 절대자가 되란 말이다.”

“절대… 헉!”

파지직-

번쩍이던 스파크는 한순간에 시후가 들어 올린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마치 번개가 피뢰침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놀란 것은 시후의 모습이었다.

스파크를 받아들인 그의 전신이 빛을 발하며 번쩍이기 시작하는 거였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몸 전체에 스파크가 일며 몸속의 장기까지 보여주었다.

꿀꺽-

마이클은 그런 시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시후의 말대로 지금 이 영역 안에서만큼은 시후가 절대자였다.

마이클이 아는 그 어떤 이라도 지금 시후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알아들은 것 같군.”

시후는 마이클이 자신이 표현한 이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것을 보았다.

한참을 떨리던 그의 동공이 점차 안정되더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시후가 마이클에게 보여준 것은 ‘절대 영역’이라는 거였다.

무를 배운 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제공권’의 최상위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 안에서만큼은 신도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게 시후의 생각이었다.

시후는 몸에 떠돌던 뇌기(雷氣)를 검지 끝에 담았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을 겨누었다.

“이건 예시다.”

쿠앙-

시후의 손가락 끝을 떠난 뇌기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선을 만들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나가는 뇌기를 보며 마이클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지금 이거 실화인가?”

“정신 차려. 내가 주는 선물이니 다음에 미국에서 봤을 때까지는 네 것으로 만들어 놓길 바란다.”

“허… 이런 엄청난 선물을 받다니. 어깨가 무겁군.”

마이클은 극도의 긴장감을 떨치듯 어깨를 들썩였다.

시후는 그런 마이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제니의 오빠이기에 주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는 있지?”

“알았다. 제니를 잘 보살피마.”

제니의 안부를 당부하는 시후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마이클이었다.

“그럼, 여기서 이만 작별하지. 다음에는 미국에서 보자고.”

“그래. 고마웠다.”

그렇게 둘은 짧지만 긴 만남을 뒤로하고 작별을 했다.

그리고 시후는 마이클과 헤어진 후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시후가 당도한 곳은 대력공방이었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방주실을 찾아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력공방 방주 박초연이 마중을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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