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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34화 (234/275)

제234화

끼익-끼익-

카론의 노 젓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주변에 빛이라고는 전혀 없어 오직 뱃머리에 달린 등불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도 비추는 곳이라고 해봐야 세 명이 타니 꽉 찬 이 배의 주변뿐이었다.

“한 치 앞만 보인다는 게 이런 건가? 주변 풍경도 좀 구경하고 싶은데?”

“흐, 흐흐.”

시후의 말에 카론이 웃었다.

뭐가 웃긴 줄은 모르겠지만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덕분에 시후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자, 잠깐!”

순간 마이클이 시후의 팔을 덥석 잡았다.

시후는 마이클이 잡은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왜 이래?”

“그러는 거 아니야.”

“알았어. 그러니 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시후.

마이클은 그럴수록 손아귀에 힘을 더욱 주었다.

“뭘 알았다는 거냐?”

“그냥… 다?”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는 시후에 마이클은 진땀을 뺐다.

여기서 시후의 팔을 놓았다가는 분명 카론에게 무슨 짓을 할 게 뻔했다.

“여기서 저 자에게 무슨 짓을 하면 곤란하다고.”

“내가 무슨 짓을 한다고 그래.”

“진짜 안 할 생각이었어?”

“…어.”

“대답에 시간 차가 있지 않나?!”

“내가? 글쎄?”

시후는 시치미를 뚝 떼며 다시 카론을 봤다.

이쪽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노질을 하는 카론.

하지만 그의 입에 걸린 미소가 여전히 거슬렸다.

‘마음 같아서는 영화 <조크> 주인공처럼 평생 웃는 얼굴로 만들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이클의 말대로 그가 없다면 저승의 강을 건널 수 없을 테고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마이클이 막을 테니 말이다.

시간 낭비가 될 듯한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그러고 보니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시후의 시선은 여전히 카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너는 명계의 주민이 아니야?”

흠칫-

시후의 질문에 카론이 움찔했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여전했다.

끼익- 끼익-

시후의 질문에도 한참을 노만 젓던 카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거 아나?”

“……?”

“내 배는 말이야. 본래 산 자는 탈 수 없어.”

“뭐?”

“산 자가 타게 되면 배가 가라앉기 때문이지.”

시후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자신과 마이클은 죽은 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배가 가라앉을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카론이 농담을 할 것 같지는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시후는 카론을 닦달했다.

빙빙 돌려 이야기하지 말고 본론을 꺼내라는 뜻이었다.

“네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 내가 막고 있는 거라는 뜻이다.”

“고마워해야 하나?”

“그래 주면 나야 뿌듯하지.”

“그럼, 고맙다.”

시후는 이번에도 건성건성 말했다.

그런 시후의 말에 드디어 카론이 고개를 돌렸다.

“크큭, 그래. 농담은 이쯤하고 본론을 꺼내 볼까?”

카론은 두 손으로 젓던 노를 한 손으로 바꿔 쥐었다.

그러고는 다른 한 손으로 강을 가리켰다.

“이 강의 이름은 비통의 강 아케론. 죽은 이가 자기 죽음을 비통하게 여기는 곳이지.”

“그런데?”

“자신 있으면 봐보라고.”

“안 돼!”

카론의 말에 마이클이 버럭 고함을 저질렀다.

시후 역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비통의 강 아케론.’

이곳을 지날 수 있는 이는 카론의 말대로 죽은 자들뿐이었다.

산자가 배를 타면 그 배가 가라앉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케론이 산 자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그 기점이 되는 것이 바로 강을 내려다봤을 때였다.

죽은 자라면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지만, 산 자가 보게 된다면 전혀 다른 일이 생긴다. 바로 아케론이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것이 시후가 아케론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카론이 시후에게 이를 요구한다는 거였다.

한 손으로 쥐고 있던 노는 점차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다.

마치 ‘네가 아케론을 보지 않으면 배는 나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왜 아케론을 보는 것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후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좋아, 한번 보도록 하지. 대신 말이야.”

“대신?”

“그래. 내가 만약 아케론을 보고 아무렇지 않으면 어쩔래?”

“크큭, 내기하자는 건가?”

“맞아.”

“좋아. 만약 네가 아케론을 보고 아무렇지 않다면 내가 명계의 주민인지 아닌지 알려주지.”

“그거로는 부족하지. 이쪽은 목숨을 걸고 하는 짓인데.”

시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카론이 어떻게든 아케론을 들여다보게 하려는 이상 시후는 그에게서 무언가 하나라도 더 뜯어낼 생각이었다.

이미 자신이 이길 거라 확신하는 자는 무엇이든 걸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좋아. 원하는 것이라도 있나?”

“무료 이용권.”

시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건을 말했다.

“무슨… 이용권?”

“무료. 나 또는 나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 한해서 명계로 가는 뱃삯을 무료로 해달라고.”

“훗. 저승의 강을 건너는 이 카론의 배를 무료로 해달라?”

“응.”

시후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간단하게 했지만, 카론의 배를 타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카론의 배를 타기 위해 지급하는 금화.

그것은 일반적인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데스 왕국에서 진행하는 특별한 퀘스트를 클리어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어떤 유저는 명계를 들어가지 않고 금화만 팔기도 했다.

그것도 엄청 고가에 말이다.

명계는 험난한 여정이 약속된 지역이다.

그런데도 그곳에 가는 데 필요한 금화를 사들이는 이들이 있다.

시후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내기를 거는 거였다.

‘그곳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곳이라는 말이지.’

지금 시후의 머릿속에는 ‘명계=고진감래(苦盡甘來)’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게 경험치든 아이템이든 무엇이든. 그곳에 고생해서라도 깨야 할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후는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었다.

카론은 시후의 조건에 잠시 뜸을 들였다.

자신의 배를 타기 위해 내는 금화는 곧 카론의 수입이니 말이다.

“하나만 묻지.”

“그래.”

“네가 말한 인원은 총 몇 명이지?”

“많아 봐야 20명이 넘지 않아.”

시후는 앞으로 늘어날 인원까지 생각해 말했다.

카론은 스무 명이라는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내기 내용을 변경하지.”

“말해봐.”

“아케론을 포함한 다른 강을 모두 통과했을 경우. 네 조건을 받아들이지.”

“안 돼!”

이번에도 마이클이 먼저 반박을 했다.

마이클은 카론을 등지고 시후에게 속삭였다.

“난도가 너무 높아. 다섯 개의 강 모두를 클리어하라니.”

마이클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다섯 개의 강을 모두 클리어한 유저는 없었다.

카론에게 뱃삯으로 금화를 주고 다섯 개의 강을 건너 명계로 들어간 유저는 있지만, 정작 다섯 개의 강을 모두 건넌 유저가 없는 이유.

카론 때문이었다.

카론은 금화 외에도 강을 건너는 도중에 골드를 요구한다.

처음 그에게 건넸던 금화가 아닌 Safety World에서 사용하는 골드를 말이다.

유저들은 카론에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골드를 지급하고 명계로 간다.

그럼, 유저들은 왜 카론에게 골드를 주고 저승의 강을 스킵하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 각각의 강에서 겪어야 하는 것들의 난도가 너무 높았다.

처음 비통의 강이라는 아케론에서는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시련을 주지만 두 번째 강부터는 그 난도가 점점 오른다.

거기다가 주제가 다른 그 역경을 이겨내도 딱히 보상받지 못한다.

그저 무임금 노동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거기에 강을 건너는 시간은 무조건 카론에게 달렸다.

그가 노를 얼마나 빨리 젓느냐에 따라 시간이 결정되는 거였다.

마이클은 그것들을 빠르게 시후에게 설명했다.

뭐가 되었든 카론이 내건 내기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이다.

“그래, 맞아. 우리 시간도 별로 없잖아.”

마이클은 조금 있으면 어머니와 저녁 약속이 있지 않냐고 말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마이클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는 카론의 말이 들렸다.

“강 하나를 건너면 로그아웃이라는 것을 해도 된다.”

“…미친. 왜?!”

“크큭. 오랜만에 찾은 즐거움이라 특별히 들어주지.”

이례적인 조건을 내거는 카론.

시후를 보는 눈빛이 반짝였다.

“그럼, 내가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저런. 강을 건너는데 몇 날 며칠 고생할 생각인가?”

저 말뜻은 다른 유저들에게 해주었던 스킵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시후는 마이클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카론이 제시한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칫.”

마이클은 혀를 차며 카론을 노려봤다.

“크큭, 그렇게 노려보면… 내가 더욱 즐거워지지 않나.”

“미친.”

“그럼, 내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고.”

띵-

카론은 언제 꺼냈는지 금화 한 잎을 들고 있었다.

그것을 하늘 높이 튕긴 카론.

퐁-

금화는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하더니 빛을 발하며 비통의 강 아케론에 빠졌다.

그러자 시후 앞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띠링-

[유희를 즐기는 카론의 내기에 응하셨습니다.]

[해당 퀘스트의 성공률에 따라 히든 퀘스트 ‘어둠 종사자의 흔적을 찾아라’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뜻밖의 메시지였다.

‘여기서 히든 퀘스트의 힌트를?’

그렇다는 것은 카론과 녀석들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카론과의 인연이 짧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시후였다.

“자,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지? 강물에 내 얼굴을 비춰보면 되나?”

“크큭, 서두르지 마시지. 오랜만에 즐기는 유희라 첫 번째 강은 보너스로 스킵해드릴 테니.”

“응?”

지금까지 했던 말의 뉘앙스로는 처음부터 상당히 어려운 과제를 낼 것 같더니 의외였다.

하지만 보너스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땡큐~.”

“크큭.”

시후가 장난스럽게 감사를 전하자 카론은 뭐가 즐거운지 웃었다.

그러고는 노를 빠르게 저었다.

사실 카론은 처음부터 시후에게 첫 번째 비통의 강에서 시련을 줄 생각이 없었다.

고작 이런 곳에서 비통의 강 아케론의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대신 카론은 다음 강인 시름의 강 코퀴토스의 난이도를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카론은 총 다섯 개 강의 난이도에 개입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적절히 분배하여 개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카론은 첫 번째 강을 스킵하는 대신에 두 번째 강의 난이도를 한 단계 올렸다.

촤악-

물길을 가르며 빠르게 나아가던 배가 점차 느려졌다.

카론은 두 손으로 젓던 노를 한 손으로 잡아 쥐더니 시후를 돌아봤다.

“이곳이 시름의 강 코퀴토스이다.”

“좀 춥군.”

주변은 입김까지 나올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상태였다.

시후의 말에 카론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시길. 이곳을 빠르게 통과하면 바로 더워질 테니.”

결코 더운 것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다음 코스를 예시하는 카론이었다.

“기대하지.”

“나도 기대하지. 그럼, 강을 내려다보실까?”

드디어 본격적인 카론과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시후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내심 기대했다.

그동안 Safety World를 하면서 히든 퀘스트를 할 때면 언제나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다른 일반적인 퀘스트들은 그저 경험치를 얻기 위해서 하는 활동처럼 여겼지만 히든 퀘스트는 난도가 높아서 그런지 재미가 있었다.

역경을 이겨냈을 때 느끼는 희열을 맛보는 재미를 알게 된 시후는 카론의 지시대로 강을 내려다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코퀴토스 강은 한눈에 보아도 얼음장같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투명한 얼음이 서려 있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시후는 자기 얼굴을 마주했다.

“…? 이게 끝인…?!”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냐고 말하려던 찰나.

주변 풍경이 변하는 것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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