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맬리아는 시후가 내민 금화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루프 관리자에게 보여주면 뱃사공 카론을 만날 수 있습니다.”
뱃사공 카론.
죽은 자들을 명계로 인도하는 배 주인의 이름이다.
시후 역시 한나미에게 이와 관련된 내용을 들어 기억하고 있었다.
‘명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했었지.’
그 다섯 개의 강을 건널 수 있게 도와주는 자가 바로 카론이었다.
그리고 카론의 배를 타기 위해서는 꼭 금화가 필요했다.
시후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두 개의 금화가 말이다.
“이걸 저 녀석에게 보여주면 된다 이거지?”
시후 일행은 어느덧 하데스 왕국 루프 앞에 다다랐다.
시후는 루프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상하네.”
“뭐가요?”
“왜 다들 삼두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
2m에 달하는 덩치와 머리가 셋 달린, 그것도 명계의 수문장이라고 널리 알려진 케르베로스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유저나 NPC나 모두 똑같이 말이다.
마이클이 시후의 곁으로 다가와 작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게 아니야.”
“그럼?”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있는 거야.”
“무슨…! 설마, 우리 삼두가 쟤들에게는 안 보이는 거야?”
끄덕끄덕-
이어지는 마이클의 이야기는 이랬다.
케르베로스는 명계의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이기에 그곳으로 오는 이가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거였다.
즉, 죽어서야 볼 수 있는 게 케르베로스라는 말이었다.
“그럼 우린?”
“우리는 케르베로스가 직접 관여했잖아.”
시후와 마이클과 맬리아는 케르베로스가 잡아먹을 마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기에 볼 수 있었다.
마이클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시후는 삼두의 등에 누워 있는 가짜 지젤이 보였다.
“그럼 쟤는?”
“쟤는….”
마이클은 말을 하다가 말고 채팅창을 열어 시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아마도 케르베로스를 불러낸 장본인이 아닐까 싶다.
메시지를 읽은 시후는 맬리아를 슬쩍 봤다.
지금은 천투변용술로 죽기 직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맬리아는 엄연히 명계의 주민이었다.
그것도 케르베로스에게 물려 죽어서 말이다.
만약 가짜 지젤이 케르베로스를 소환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맬리아는 참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당연히 인과응보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써먹을 곳이 있어.’
가짜 지젤을 이용할 곳. 시후는 자신을 기만한 그녀를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 삼두의 간식으로 줘버렸을 거였다.
삼두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화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을 본 맬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금화가 두 개뿐이시네요?”
“어.”
“그럼… 저는요?”
금화 두 개의 몫은 당연히 시후와 마이클일 거라 생각한 맬리아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어떻게 명계로 가야 하는지 묻는 맬리아의 질문에 시후는 자연스럽게 삼두를 가리켰다.
“쟤 타고 와.”
“네? 케르베로스를요?!”
맬리아는 기겁했다.
자신을 죽인 케르베로스 등에 올라타라니.
지금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후는 단호했다.
“쟤는 케르베로스가 아니야. ‘삼두’지.”
“아니, 이름만 바꿨다고 칼이 똥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당연한 말이었지만 시후의 생각은 달랐다.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삼두를 봤다.
“삼두, 이리 와.”
“컹컹-”
시후의 부름에 삼두는 신명 나게 달려왔다.
멀리 있지도 않았는데 폴짝 뛰기까지 하며 달려와 시후 앞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시후가 녀석을 ‘사육’하겠냐는 메시지에 응했기 때문이었다.
시후는 그런 삼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말했다.
“봤지?”
“…뭘요?”
“삼두라고 부르니까 오잖아.”
“…에?”
‘그거야 당신이 부르니깐 온 것이지’라고 맬리아는 눈으로 말했다.
그러자 시후는 마이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마이클이 말했다.
“삼두야, 이리 와.”
“컹컹-”
삼두는 시후의 손에서 벗어나 마이클에게 다가갔다.
시후 때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었다.
“쟤도 부르니깐 가잖아.”
“아니… 그건.”
마이클도 한주먹 하니 말을 듣는 거 아니냐는 맬리아의 눈빛이었다.
시후는 그런 맬리아의 눈빛을 읽고는 그녀를 가리켰다.
“그렇게 못 믿겠으면 네가 불러봐.”
“제가요?!”
시후의 명령에 맬리아는 삼두를 봤다.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 2m 덩치의 머리가 셋 달린 괴물.
지금 맬리아의 눈에 뵈는 삼두의 모습이었다.
꿀꺽-
맬리아는 극도의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입술을 달싹여 봤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못 하면 우리랑 같이 못 간다.”
시후의 계획은 이랬다.
자신과 마이클이 금화를 써서 명계로 들어가면 나머지 인원은 삼두를 타고 명계의 입구까지 가는 거였다.
본래 수문장의 역할을 하던 녀석이었으니 굳이 다섯 개나 되는 저승의 강을 건너지 않아도 갈 방법이 있었다.
이 계획을 마이클 역시 알고 있었다.
시후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마이클에게 전음으로 설명했다.
맬리아가 삼두와 대치하며 쩔쩔매는 사이 마이클은 시후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뭔데?”
“저 녀석이 명계 입구로 바로 갈 수 있는 거라면, 우리도 저 녀석과 함께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당연한 말이었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데 굳이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그 말에 시후는 혀를 찼다.
“쯧쯧, 아둔한 녀석.”
“응?”
“쟤들은 수련이 필요 없잖아.”
“수련이라면… 퀘스트?!”
그랬다.
시후는 명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저승의 강을 건너면서 퀘스트를 할 생각이었다.
“설마… 다섯 개 강에 나오는 퀘스트 전체를 모두 할 생각은 아니지?”
“으흥?”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마이클은 혀를 내둘렀다.
명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저승의 강.
그 다섯 개의 강에서 발생하는 퀘스트는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정보였다.
하데스 왕국에 들린 이들은 한 번쯤 도전하는 퀘스트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쯤 도전하는 퀘스트지이지, 또 도전하려는 유저는 전혀 없었다.
그만큼 난도가 높았고 굳이 그곳을 갈 바에야 다른 퀘스트를 하는 게 낫다는 게 그곳을 다녀온 유저들의 결론이었다.
이제는 약간 관광상품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명계 입구까지 가다가 그 강에서 죽어 로그아웃하면 강제로 하데스 왕국으로 귀환하는 것은 알고 있지?”
“알아.”
“그걸 아는 놈이 그걸 하나하나 깨면서 가자고 그래?”
마이클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마이클 역시 그곳을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역시 Lv. 350 때, 명계를 들어가기 위해 저승의 강을 건너다가 죽었었다.
지금의 레벨로 그곳에서 죽을 일은 없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법.
마이클은 그곳에 가기 싫었다.
“뭐, 가기 싫으면 말고.”
시후는 그런 마이클의 심정을 눈치챘다.
마이클은 뜨끔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뒤이은 시후의 말.
“너희가 나를 조사한 것 중에 빼놓은 게 있더라.”
“우리가?”
“사실 나, 현실에서 쓸 수 있는 무공들 모두 이곳에서도 쓸 수 있다?”
“어… 뭐?!”
믿을 수 없는 시후의 말에 마이클은 두 눈을 껌뻑였다.
어떻게? Safety World는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었던가?
시후가 자신을 두고 농담을 하는 성격도 아니고 현실에서 보여준 그 놀라운 무공을 이곳에서도 펼칠 수가 있다고? 어떻게?
마이클은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갈고리가 계속 이어졌다.
씨익-
시후는 그런 마이클에게 양쪽 입꼬리를 한껏 치켜올린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루프 관리자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데스 왕국 루프 이용료는 10골드입니다.”
NPC다운 대사였다.
그동안 꽤 많은 유저를 상대했는지 상당히 지쳐 있는 기색이 역력해 심드렁한 표정만 빼면 말이다.
시후는 그런 루프 관리자에게 금화 한 개를 내밀었다.
“이… 이건?!”
“카론을 불러줘.”
“네!”
금화를 발견한 루프 관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대형 뿔피리를 집더니 크게 불었다.
뿌우우-
뿔피리의 소리가 길게 메아리쳤다.
그러자 형형색색으로 빛나던 루프가 그 색을 달리했다.
흰색과 검은색이 한데 어울려 소용돌이치며 마치 회색을 연상했다.
유저들은 루프의 색이 달라지자 루프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촤악-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물길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루프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시후는 한눈에 그가 뱃사공 카론임을 알았다.
카론은 천천히 걸어와 루프 관리자에게 다가갔다.
루프 관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금화를 내밀었다.
그리고 곁눈질로 시후를 가리켰다.
금화를 받아든 카론은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시후를 향해 돌아섰다.
“그대가 저승의 강을 건널 유저인가?”
극도로 낮은 음성이었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목소리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어, 맞아.”
“그대 혼자인가?”
동행이 없냐고 묻는 카론.
시후는 고개를 돌려 마이클을 본 후, 한쪽 손에 들린 금화를 흔들었다.
마이클에게 필요가 없냐고 묻는 거였다.
“칫, 그래! 간다, 가!”
결국 호기심이 귀차니즘을 이겼다.
마이클은 빠르게 걸어와 시후의 손에 들린 금화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걸 카론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카론은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마이클을 주시했다.
“호, 오랜만이군.”
“…….”
“일전에 왔을 때보다는 좀 강해졌군.”
“칫.”
마이클을 알아본 카론이었다.
마이클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젓고는 루프를 향해 걸어갔다.
“나 먼저 들어간다.”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클은 루프로 들어갔다.
이미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 마이클이었기에 카론이 등장한 이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거였다.
카론은 그런 마이클의 뒷모습이 웃긴지 키득거렸다.
“크큭, 이번 여정은 좀 재미있겠군. 그럼 자네도 갈까?”
카론은 시후보고 앞장서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
시후는 손을 내밀어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한 녀석 때문이었다.
카론이 나타나 마이클이 루프에 들어가는 동안에도 맬리아는 여전히 삼두와 대치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손이 삼두의 머리에 닿을락 말락 하고 있었다.
‘좀 도와줘야겠군.’
시후는 여전히 겁에 질린 그녀를 도와주기로 했다.
“삼두, 일어나.”
“컹컹-”
시후의 명령에 삼두가 앞발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삼두 머리 바로 위까지 손을 뻗었던 맬리아의 손에 삼두의 머리가 닿았다.
“히익!!”
덕분에 맬리아는 기겁을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원망 섞인 눈빛으로 시후를 노려보는 맬리아.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후는 그녀를 두고 갈 수 없기에 삼두에게 말했다.
“쟤도 챙겨와.”
“컹컹-”
삼두는 시후의 명령을 이해한 듯 맬리아의 옷깃을 물고는 휙 던져 등에 올렸다.
“처, 천마… 꺄악!”
맬리아의 비명이 길게 울렸지만 시후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렇게 시후는 가짜 지젤과 맬리아라는 혹을 삼두에게 맡겨놓고는 루프로 들어갔다.
루프 안으로 들어가자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을 내딛는 이곳은 일반적인 땅이 아닌 배 위였다.
“이것이 죽은 자들이 탄다는 저승의 배인가?”
“맞아.”
먼저 배에 오른 마이클이 시후를 반겼다.
시후가 배에 오르자 그 뒤로 카론이 뒤따라 올랐다.
“편안하게 앉으시지. 비통의 강 아케론에서 그렇게 서 있다가는 빠진다네.”
카론의 당부 섞인 말과 함께 배가 출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