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쾅-
갑자기 근처 건물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마이클과 맬리아는 깜짝 놀라 그곳을 봤다.
그 순간 그곳에서 창문을 깨고 탈출하는 누군가를 봤다.
“저건?!”
스팟-
마이클이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괜찮으십니까?!”
마이클이 몸을 날려 받아 든 이는 지젤이었다.
흰색 로브를 보는 순간 그녀가 헤라 신전의 신관임을 알았다.
현실에서 장미기사단장인 마이클의 기사도 정신은 Safety World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며 마이클은 더 극성이었다.
마이클 품에 안긴 지젤은 자신을 받아든 게 시후였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어디냐는 생각을 할 때.
“뒤, 뒤에!”
3층이 폭발한 여파로 생긴 건물 잔해가 마이클의 뒤를 덮쳐왔다.
불길로 뒤덮인 건물 잔해에 맞기라도 했다가는 큰 피해를 볼 것 같았다.
“이 정도쯤은.”
부웅-
마이클은 몸을 살짝 비틀어 한쪽 다리를 휘둘렀다.
가볍게 휘두른 듯한 그 동작에 일어난 결과는 엄청났다.
건물의 지붕과 벽의 파편들이 마이클이 일으킨 풍압에 밀려나더니 되돌아갔다.
너무나도 가볍게 쳐내는 그의 행동에 지젤은 보고받은 내용을 떠올렸다.
- 제국의 방패와 비견하는 힘을 가진 동료.
과장된 보고라 생각했더니만 전혀 아니었다.
지젤은 괜히 그들을 하데스 왕국의 성으로 보냈다고 후회했다.
이곳에도 이이제이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인재가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일러도 늦는 것.
지젤은 다음 계획을 위해 마이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꺄악!”
이미 위험 따위는 없었지만,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어필하기에는 최고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젤의 행동은 완벽하게 먹혔다.
“신관님, 괜찮으십니까?”
마이클은 지젤을 더욱 꼬옥 끌어안으며 본래 자리로 빠르게 이동했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시후 옆이었으니 말이다.
주변을 극도로 경계하던 마이클은 딱히 위협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제야 지젤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지젤은 여전히 마이클에게 찰싹 달라붙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위험에 몸을 숨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신관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는 괜찮습니다.”
“저, 정말요?”
마이클의 안심하라는 소리에도 지젤은 주변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후를 발견했다.
“천마님!”
지젤은 그제야 마이클의 곁을 벗어나 시후에게 다가갔다.
“이런 곳에서 천마님을 만나 뵙다니. 이는 헤라 여신님의 은총이 분명해요.”
시후를 만난 것이 신의 인도라며 지젤은 두 손을 모아 기도까지 올리면서 안도했다.
반면 시후는 그런 지젤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비밀리에 조사할 게 있어서요.”
“하데스 왕국에? 무슨?”
“그건….”
시후의 질문에 지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시후라도 그것만은 말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이클이 나섰다.
“신관님이 말씀하시기 힘들어 보이는군.”
마이클은 지젤 앞에 자리하며 시후를 가로막았다.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마이클을 봤다.
“그래서?”
“신관님께서 난처해하는 질문은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거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뭐?”
시후의 말에 마이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후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왜 쟤 상황을 배려해줘야 하냐고.”
“자네는 힘이 있으니까!”
마이클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강하게 말했다.
시후는 그런 마이클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힘이 있다면 남을 배려해야 하나?”
“큰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말 못 들어봤나?”
“어디 영화에서 들어본 것 같군. 하지만 지금의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지?”
“자네…!”
마이클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시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 그만! 그만하세요!”
지젤은 그런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외쳤다.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녀.
“천마님은 아직 신앙심이 깊지 못해 저를 이해하실 수 없을 뿐이랍니다.”
“…….”
“모두 제가 부족한 탓. 두 분이 싸우실 필요는 없으세요. 흑흑.”
결국, 두 눈에서 눈물까지 주르륵 흐르는 지젤.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해 시후에게 전도하지 못했기에 지금의 사달이 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마이클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 보여 살짝 테스트해본 것이었는데 그가 홀라당 넘어왔으니 말이다.
이대로 몇 마디를 더 던져주고, 눈물만 조금 더 흘리고 신성력이 보이는 기도까지 하면 둘의 다툼이 더욱 커질 거라 생각했다.
지젤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제가 좀 더…?!”
하지만 말을 잇지는 못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둘의 시선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왜….”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냐고 물으려 했다.
그런데 시후가 그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크큭, 그러게. 어쩜 이리도 자네의 말처럼 행동할까?”
지젤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녀가 주춤거리며 둘에게서 멀어지자 마이클이 시후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래도 덕분에 자네 멱살도 잡아보고. 재미있네.”
“뭐, 내 멱살이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녀석들의 꼬리를 잡았으니 잘되었지.”
“…….”
지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둘에 뒷걸음질을 쳤다.
그들의 눈에는 조금 전 보이던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험난한 퀘스트를 같이 헤쳐 나간 동료애도 신관에 대한 경외심도 말이다.
“왜, 왜들 그러십니까?”
“와… 아직도 속이려는 거야?”
“속이다니요. 제가 무슨… 컥!”
시후는 지젤의 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지젤의 얼굴 앞에 시후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짜 지젤은 어찌했냐?”
“컥….”
지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기 목을 움켜쥔 시후의 손아귀 힘은 결코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지젤의 행방을 물었을까.
아니, 어떻게 자신이 ‘지젤’이 아닌 것을 알았을까 하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시후가 입을 열었다.
“너 도플갱어라며?”
흠칫-
시후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지젤, 아니 지젤의 도플갱어가 깜짝 놀라며 흠칫했다.
“진짜 도플갱어였어? 나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대단하군.”
마이클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도플갱어.
현실에서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를 도플갱어라 불렀다.
하지만 Safety World에서의 도플갱어는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어떤 이와 똑같이 생긴 존재라. 신기하네.”
얼핏 들으면 의미가 똑같은 것 같지만 달랐다.
지금 시후의 손에 잡혀 있는 그것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다른 이라면 분간하지 못할 도플갱어였지만 시후는 그녀가 등장하는 순간 이미 알아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이클에게 전음으로 알려줬다.
처음 그녀가 신관이라고 생각했던 마이클은 시후의 전음을 듣고 시후가 벌이는 장단에 맞장구를 쳤다.
마이클은 등에 메여 있던 대검을 빼 들어 그녀의 목덜미에 가져갔다.
그러자 시후가 손에 힘을 풀었다.
“켁, 켁켁.”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
하지만 둘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무심했다.
“쓸데없는 반항은 재미없다.”
“맞아. 무언가 헛짓거리라도 하려는 순간… 댕강, 알지?”
그녀의 생살여탈권이 마이클에게 넘어간 거였다.
그녀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자기 목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지금까지 들리던 지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성의 것은 맞는 것 같지만 상당히 저음의 목소리였다.
거기에 시후와 마이클을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다.
마치 조금 전까지 그녀를 바라보던 둘의 눈빛과 같았다.
“이것 봐라? 강단 있는데?”
“흥. 시간 잡아먹는 대화를 원하나?”
시후의 비아냥을 비아냥으로 맞받아치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에게 시후는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첫째, 지젤은 나를 천마라고 부르지 않아.”
“뭐? 분명 네 머리 위에 닉네임은….”
“맞아. 여기 머리 위에는 ‘천마’라고 적혀 있지. 하지만 지젤은 이런 거에 의존하는 그런 NPC가 아니야.”
그랬다.
지젤은 타란과 마찬가지로 리셋이 되어도 이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는 특별한 NPC.
그랬기에 닉네임을 ‘천마’로 변경한 시후였어도 그녀는 시후를 ‘See 후’로 불렀다.
그런데 이곳에 나타난 지젤은 시후를 보자마자 ‘천마’라고 불렀다.
그랬기에 의심을 했고 그녀에게 독안공을 펼쳐 그녀가 지젤이 아님을 알았다.
호칭이라는 작은 실수가 도플갱어를 잡아낸 거나 다름없었다.
“조사가 부족했군.”
“칫.”
마이클이 비아냥거리자 그녀가 혀를 찼다.
자신들의 조사가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였다.
“그럼, 두 번째는?”
손가락을 두 개 폈으니 다른 이유가 궁금한 그녀였다.
시후는 그런 그녀에게 검지를 치켜세우고는 좌우로 까딱였다.
“질문은 하나씩. 이번에는 내 차례다.”
“…….”
“너의 주인은 누구인가?”
“…….”
그녀는 시후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 전에는 자의로 입을 열지 않은 것 같았지만 지금은 무언가에 제재를 당한 듯이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시후는 괜찮았다.
그녀가 말을 하든 안 하든.
자신이 한 질문에 그녀가 생각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시후는 이번에도 독안공으로 그녀의 생각을 읽은 거였다.
그랬기에 그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왠지 입 밖으로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아직 쓸모가 있을 것 같으니까.”
“뭐?”
자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다 알겠다는 듯이 시후가 말하자 그녀는 당황했다.
독안공의 존재를 모르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넌 우리랑 좀 같이 가자.”
푹-
시후는 그녀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마혈과 아혈을 점혈했다.
꼼짝하지 못하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는 케르베로스에게 휙 던졌다.
그러자 케르베로스가 그녀를 등에 태웠다.
“저 녀석도 명계에 데리고 가려고?”
“응. 생각보다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뭐, 자네가 그렇다면….”
마이클은 시후에게 생각이 있겠거니 하며 따르기로 했다.
시후는 그렇게 일단락이 되자 한쪽에 숨어 있던 맬리아를 불렀다.
“맬리아, 이제 명계로 가자.”
시후의 부름에 맬리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조금 전에 벌어진 정신없는 상황을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명계로 가기 위해서는 하데스 광장에 있는 루프를 타야 해요.”
“루프? 설마 그걸 타고 ‘명계’로 가달라고 하면 끝인 거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나 사용하는 루프로 명계를 드나들 수 있냐고 묻는 거였다.
너무나도 쉬운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할 때 맬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것만이라면 너도나도 명계를 들락거렸겠죠.”
“그럼?”
“명계로 가기 위해서는 금화가 필요합니다.”
“아, 이거?”
시후는 인벤토리를 열어 블칸 영주에게서 받은 금화를 꺼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