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31화 (231/275)

제231화

케르베로스는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분명 평소에 자신을 호출하던 놈들의 요구에 응해줬다.

그놈들의 요구에 응할 때면 언제나 신이 나는 일이 생겼다.

얼마 전에도 엘프의 숲으로 자신을 불러낸 녀석들 덕분에 엘프 십여 명을 명계 주민으로 만들었다.

명계의 입구를 지키는 역할은 생각보다 지루했기에 케르베로스에게 이런 유희는 반가웠다.

오늘도 녀석들의 호출에 응해 나왔더니 세 명이 보였다.

한 놈은 엘프, 한 놈은 먹기 좋게 웃통까지 벗었고 마지막 한 놈은 잘생겼다.

먹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했던가.

케르베로스는 잘생긴 놈부터 먹기로 했다.

그런 케르베로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잘생긴 놈이 걸어 나왔다.

케르베로스는 손수 마중까지 나오는 음식에 침을 질질 흘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놈이 헛소리를 내뱉었다.

“이놈의 새끼가, 똥개 취급을 받고 싶은 건가. 어디서 이빨을 내보여?”

어이가 없었다.

감히 명계의 수문장 케르베로스에게 ‘똥개’라니.

케르베로스는 먹기 좋은 떡을 먹는 대신에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단숨에 찢어발기기 위해 뒷발에 힘을 가득 담아 뛰쳐나갔다.

먹기 좋은 떡은 자신의 위용에 놀란 것인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컹컹-”

케르베로스는 녀석의 사지를 절단하기 위해 각자 물고자 하는 부위를 달리했다.

머리, 팔, 다리.

녀석의 부위가 이빨에 닿으려는 그 순간.

“앉아.”

쾅-

달려 나가던 케르베로스는 엄청난 힘에 짓눌려 바닥에 꼬꾸라졌다.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가는 엄청난 힘에 고통은 심해졌다.

“깽…?”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케르베로스 앞에 시후가 자리했다.

“시끄럽다.”

“…….”

케르베로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짓눌리는 고통은 느껴졌지만 참아야 했다.

여기서 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대로 생을 마감할 것만 같았다.

이는 본능이 시키는 거였다.

시후는 납작 엎드린 케르베로스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으흠….”

“깨앵….”

“으흠?”

“깽?”

시후가 고래를 한쪽으로 갸웃하자 케르베로스도 그쪽에 있던 머리가 갸웃했다.

반대로 갸웃하자 다른 쪽 케르베로스 머리가 갸웃했다.

시후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케르베로스를 빤히 보다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케르베로스는 시후가 드디어 자신을 때리는 줄 알고 흠칫했다.

하지만 시후가 원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었다.

“손.”

“……?”

손이라니.

케르베로스는 순간 눈앞에 있는 인간이 미쳤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너무나도 진심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쿵-

짓누르는 힘이 배가 되었다.

어느덧 가운데 머리는 벌써 땅을 파고 들어간 상태였다.

시후는 케르베로스가 당연히 손을 내밀 거라고 생각하는지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케르베로스의 앞발은 올라오지 않았다.

“처, 천마님, 케르베로스는 마견(魔犬)이에요. 그런 것을 할 리가 없어요.”

마이클이 곁을 지켜준 덕분에 정신을 차린 맬리아가 말려왔다.

시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았으니 그냥 케르베로스를 죽였으면 하는 거였다.

그 말을 들은 시후는 다시 케르베로스와 눈을 마주쳤다.

“음, 마견이라. 아쉽네, 타고 다니기에 딱 맞는 녀석이었는데.”

“…네?”

“크큭, 자네 지금 케르베로스를 길들이려는 이유가 타고 다니려고 그러는 거였어?”

“어. 덩치 봐. 딱 맞지 않아?”

시후는 케르베로스를 보는 순간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머리 셋 달린 녀석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내달리는 상상을 말이다.

하지만 녀석이 말을 듣지 않으니 아쉬움이 컸다.

시간을 들인다면 길들일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퀘스트가 우선이었다.

시후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케르베로스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케- 케깽!”

케르베로스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울부짖었다.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쳐봤지만, 천마압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허리부터 뒷다리까지 모두 땅에 파고든 상황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시후는 케르베로스의 상태를 잠깐 보더니 천마압정을 거두었다.

몸의 반이 땅에 박혀 있는 상태이기에 쉽게 도망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대신 천마지기를 일으켰다.

사아악-

차가운 냉기가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웠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던 천마지기는 어느새 시후가 내밀었던 손끝으로 이동했다.

길게 길게, 2m에 달하는 케르베로스의 머리 세 개를 단번에 잘라버리기 충분한 길이로 말이다.

“그럼.”

말하지 못하는 짐승의 유언은 들어줄 필요 없기에 시후는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유언은 들어줄 수 없지만 고통 없이 보내줄 자신은 있었다.

빠르고 간결한 검로를 따라 강기를 움직이려는 그때였다.

커컹컹-

척-

케르베로스가 있는 힘껏 울부짖더니 돌연 앞발 두 개를 시후에게 내민 거였다.

“무슨 의미야?”

이 상황에서 덤비는 것은 아닐 테고 살려달라고 비는 것인가 싶을 때 시후는 케르베로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봤다.

“이 자식 봐라?”

조금 전까지 적의로 가득한 케르베로스의 눈빛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시후는 그 이유를 알았다.

‘천마지기에 반응했어?’

혹시나 해 천마지기를 두른 팔을 슬쩍 옆으로 움직이자 그쪽에 있는 케르베로스의 머리가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한 가지 가설을 냈다.

‘마견이라 그러더니 천마지기에 반응한다?’

명계의 입구를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명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가장 익숙해져 있다는 소리.

그렇다는 것은 천마지기 역시 녀석이 익숙한 기운과 비슷하다는 거였다.

시후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케르베로스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음침하게 깔린 안개.

스산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안개를 향해 시후가 손을 뻗었다.

“천마흡기공(天魔吸氣功).”

스스슥-

혹시나 해 천마흡기공을 펼쳤건만 주변에 안개가 빨려 들어왔다.

“하!”

시후는 기합과 함께 빨려 들어오는 안개를 흡수했다.

그리고 느꼈다.

‘마기(魔氣)다.’

안개라고 생각했던 이것들 전부가 마기였다.

시후를 중심으로 반경 5m에 달하는 정도의 안개가 사라졌다.

“크, 크큭. 크하, 하하!”

퉁-

시후는 크게 웃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안개를 뚫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시후는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대략 500m쯤 되겠군.’

주변에 깔린 안개의 규모를 확인한 시후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5m 정도 흡수한 안개, 아니 마기가 천마지기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는지 살폈다.

확연히 달라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미하게 차올랐다고 느껴질 정도는 되었다.

“그렇다면 주변에 깔린 안개 전부를 흡수한다면?”

시후는 지금 흡수한 것에 100배는 더 마기를 흡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너희 잠깐만 기다려.”

“알겠네.”

마이클은 시후가 하는 행동을 보고 무언가 있다는 생각에 그의 말을 따랐다.

시후는 눈치 빠른 마이클에게 엄지를 추켜세우고는 다시 케르베로스를 봤다.

“이런 건 신나게 해야지.”

시간이 없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유희를 무미건조하게 하기는 싫었다.

스윽-

시후는 허공섭물을 일으켜 케르베로스를 땅에서 빼냈다.

이미 녀석의 눈에 적대감 따위는 보이지 않았기에 써먹기로 한 거였다.

“손!”

“컹”

척-

케르베로스는 시후의 명령에 당연하게 앞발을 들어 시후의 손에 올려놨다.

혹여나 그가 상처라도 입을까 봐 인지 발을 잔뜩 오므려 발톱을 숨기기까지 했다.

그러자.

띠링-

[명계의 수문장 ‘케르베로스’를 사육하시겠습니까?]

알림창이 나타났다.

사육하겠냐는 메시지에 시후는 망설임 없이 확인을 눌렀다.

그러자 독안공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케르베로스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좋았어, 그럼 가볼까?”

“커컹컹-”

시후는 훌쩍 뛰어올라 케르베로스의 등에 올라탔다.

딱히 안장이 없었기에 등에 난 털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시후의 손이 닿자 케르베로스의 모습까지 달라졌다.

본래 짙은 갈색이었던 녀석의 털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마치 천마지기에 반응한 듯이 변화된 케르베로스의 모습에 시후는 더욱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삼두야~ 가자!”

타다닷-

시후의 명령이 떨어지자 케르베로스는 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후는 팔 하나를 쭉 뻗어 천마흡기공을 펼쳤다.

그렇게 시후와 케르베로스가 주변의 안개를 흡수하며 사라지자 마이클과 맬리아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나만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둘은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삼두? 설마… 머리가 세 개라서 삼두(三頭)라고.”

“…….”

맬리아의 말에 마이클은 자신이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썩은 작명 센스라니.”

둘은 시후의 작명 센스를 나무라며 앞으로 ‘삼두’로 불리게 될 케르베로스가 가엾게 여겨졌다.

그리고 둘과 마찬가지로 시후의 작명 센스에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었다.

마이클이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3층 건물 안에 있는 무리.

흰색 로브를 입은 지젤과 검은색 로브를 입은 자들이었다.

“이런 미친! 감히 우리 케르베로스 님을 뭐?! 삼두?!?!”

지젤은 이를 빠득 갈며 울분을 토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옆에 있는 자들 역시 시후가 내달린 쪽을 노려봤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대가리를 터트리고 오겠습니다.”

다소 아부성이 깃든 말투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만큼 이들에게 케르베로스는 중요한 존재라는 거였다.

“저희가 어떻게 케르베로스 님을 소환했는데 저깟 놈이.”

그랬다.

지젤과 함께 있는 이들이 바로 엘프의 숲에서 케르베로스를 소환한 장본인들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들의 뒤로 처참한 광경이 보였다.

종족을 가리지 않고 시체가 중앙에 쌓여 있었다.

아마도 이 건물에 있던 자들일 거였다.

지젤은 시체 더미를 힐끗거리더니 계속해서 입을 놀리는 그를 쳐다봤다.

“가봐.”

“…! 네?!”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가보라고.”

“아, 그게….”

녀석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분위기를 타서 입을 떠벌렸지만 시후가 케르베로스를 꼼짝 못 하게 하는 모습을 똑똑히 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아니, 시후가 내지르는 주먹 한 방이면 생을 마감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지젤이 나가보라고 하니 난처했다.

지젤은 우물쭈물하는 그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는 너희가 감히 어찌해볼 수 있는 자가 아니야.”

“…….”

“그를 제거하려면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단을 써야 해.”

“그 말씀은?”

“너희는 하데스 왕국으로 가라. 저자는 내가 맡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들은 지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시후는 케르베로스를 타고 돌아왔다.

시후 덕분인지 주변에 음산하던 안개는 모두 사라졌다.

지젤은 시후가 일행들과 조우하는 순간 심호흡을 크게 했다.

“후우….”

그리고는 품속에서 주먹만 한 돌을 꺼냈다.

“화염석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지젤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화염석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화염석은 Safety World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 아니었다.

오직 하데스 왕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그것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오로지 왕국에서만 파는 것이었다.

그만큼 희소성이 있는 화염석을 지젤은 아쉬움을 가득 담아 시체 더미에 던졌다.

그러자 화염석 중심으로 불길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주변 시체를 모두 태워 버린 화염석은 불길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 순간 지젤은 눈빛을 번뜩이더니 3층 창문으로 몸을 내던졌다.

쾅-

“꺄아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지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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