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엘프의 마을에 도착한 시후는 어깨를 강하게 털었다.
마이클이 여전히 그의 어깨를 잡고 있어서였다.
“거참, 까칠하기는.”
“까칠? 너 정말 까칠한 게 뭔지 보여줄까?”
“워, 워워 릴렉스~.”
마이클은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시후는 어째 Safety World에 들어오고 나서 마이클의 성격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 것답지 않게 하는 행동이 진지춘과 상당히 비슷했다.
“왜 너를 보니 어디에 돌팔이가 생각날까?”
“돌팔이…? 아! 닥터 진지춘?”
“닥터? 닥터는 무슨.”
“왜, 마음 같아서는 케네디 가문으로 스카우트하고 싶은 정도인데.”
마이클은 진심이었다.
만약 그의 주군이 시후만 아니었다면 당장 스카우트 제안을 했을 거였다.
제갈 세가 수련실에서 그가 보여준 능력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피가 줄줄 흐르는 곳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기만 하면 피가 멈췄다.
그뿐만 아니라 수련 중에 마나 고갈 현상을 겪을 정도로 엄청나게 기력을 잃어도 그가 챙겨주는 탕약을 먹고 나면 거짓말처럼 기력이 돌아왔다.
제니가 마나 고갈 현상을 치유해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였다.
시후는 마이클의 눈빛에서 진지춘에 대한 갈망을 봤다.
‘그렇게 쓸 만한 놈을 줄 수는 없지.’
진지춘이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제갈세가에서 봤을 때는 나잇값 못하는 의원 정도였다.
하지만 시후는 그의 싹수를 알아보고 그를 훈련했다.
침술 능력이 좀 괜찮아 보이기에 그의 몸으로 실기 수업을 했고 약에 대한 지식이 있어 보이기에 신명단과 대환단을 주며 그의 견문을 넓혔다.
시후는 그간 진지춘에게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얼마인데 홀랑 빼먹을 생각을 하는 마이클이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은 거래하는 물건이….”
“알아, 알아. 그래서 말인데.”
마이클은 시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더니 눈을 반짝였다.
“자네가 미국에 올 때 그도 데리고 오는 것은 어때?”
“돌팔이를? 뭐 하러?”
“자네가 미국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닥터 진지춘은 우리를 돌봐주는 거지.”
시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케네디 가문에도 쓸 만한 의료진은 넘쳐날 텐데 왜 이렇게까지 진지춘을 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을 읽은 것인지 마이클이 바짝 다가왔다.
“닥터 진지춘이 오면 우리 기사단 녀석들을 나 때처럼 굴려보려고.”
여기서 말하는 ‘나 때처럼’은 제갈 세가 수련실에서 마이클이 겪은 무박 나흘을 말하는 거였다.
마이클은 정신과 몸이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만큼 자신의 한계를 돌파한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오죽하면 자신을 미치도록 괴롭힌 시후에게 악감정이 전혀 없을까.
마이클은 오로지 장미기사단이 강해질 수단만을 생각했다.
그 모습에 시후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과 동행하는 사이 진지춘이 그런 일을 한다면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진지춘의 충성심은 고작 며칠 만에 변할 그런 것이 아님을 알기에 이런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기회를 놓칠 필요가 없었다.
“으흠, 본디 사람은 거래하는 게 아니라 했는데….”
“거래라니. 그저 잠시, 아주 잠시 봉사활동이라 생각하는 게.”
“난 적선을 제일 싫어한다.”
“끄응….”
시후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하자 마이클은 끙끙 앓았다.
그만큼 마이클은 진지춘에 대해 진심이었다.
그러다 문득 마이클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그러면 마나 수련실을 빌려주지.”
우뚝-
시후는 걸음을 멈췄다.
순간 마이클이 미친놈은 아닌가 싶어서 쳐다봤다.
“마나 수련실은 케네디 가문의 극비라 들었는데?”
“당연히 극비지. 하지만 닥터 진지춘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지.”
“…….”
시후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꾹 참았다.
마이클의 속셈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마이클은 진지춘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그를 꾈 계획임이 분명했다.
평소 진지춘이 보이는 가벼운 행실에 그에게 돈과 권을 보여주면 따를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후는 마이클이 말한 마나 수련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았다.
수련실에서 샐러맨더와 지내면서 녀석이 말해줬다.
‘천마신교 성화당과 같은 곳이 마나 수련실이라고.’
마나 수련실. 그곳은 어찌 보면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 들어가 마나 수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밖에서 수련하는 것보다 훨씬 비약적으로 마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시후는 제니와 샐러맨더에게 들은 마나의 운용 방식과 마법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쓸모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았다.
‘천마 시절의 내 힘보다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겠어.’
마나를 알게 된 이후 시후는 그동안 좇던 목표 이상의 꿈을 보게 되었다.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데 마이클이 제안한 마나 수련실은 뛰기만 하던 시후에게 자전거를 선물해주는 것과 같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아 그렇게 하지.”
시후는 선심을 쓰는 듯한 표정으로 허락을 했다.
“고마워, 브로!”
마이클은 어찌나 고마웠는지 그를 형제라 불렀다.
마이클의 닭살 돋는 멘트에 시후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케네디 가문이 형제라 칭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후에 알게 되었다.
“됐고, 이제 도착했네.”
둘은 어느새 엘프 마을에 도착했다.
시후가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에 있던 엘프들은 한걸음에 달려 나와 그를 반겼다.
“천마님! 언제 오시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기다리기는 무슨. 그보다 맬리아는 어디 있나?”
“천마님~!”
맬리아를 찾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달려왔다.
그녀는 모여든 엘프들을 밀치며 시후 앞에 다다랐다.
그런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에 시후는 한차례 움찔했다.
‘깜짝이야, 순간 안기는 줄 알았네.’
너무나도 저돌적으로 달려온 그녀의 모습에 시후가 오해를 한 거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맬리아가 얼굴을 붉혔다.
“…시후님!”
폴짝-
잠시 뜸을 들이던 맬리아는 대뜸 시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시후를 끌어안으려는 거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도는 실패했다.
“누구냐?”
맬리아는 자기 목덜미를 잡은 거구의 남자를 노려봤다.
마이클이 달려드는 맬리아를 잡은 거였다.
마이클은 그녀를 본래 자리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천마님의 형제.”
“아! 그러십니까?!”
형제라는 말에 맬리아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시후는 여기서 마이클의 말을 부인해봐야 싸움만 날 것 같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말을 아꼈다.
“됐고. 맬리아, 명계로 좀 들어가야 하는데 길 안내 좀 해라.”
“명계요?!”
명계라는 말에 맬리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명계의 주민이 된 그녀였지만 그곳에 가기는 죽을 만큼 싫은 거였다.
하지만 시후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시후는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엘프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준 은인이니 말이다.
맬리아는 다짐을 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대지와 바람의 어머니이시여, 그대의 자녀가 원하는 곳에 가기를 희망하오니 길을 열어주십시오.”
맬리아는 기운을 일으켜 허공에 주문을 읊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어와 땅에 그림을 그렸다.
“마법진이군. 그런데….”
마이클은 그것이 마법진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땅에 그려지는 마법진이 현실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마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이라면 그저 화려하고 어지러이 그려진 그림이라 여겼겠지만, 마이클은 달랐다.
시후 역시 마법에 관해 공부했기에 맬리아가 그린 것이 마법진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마이클의 반응에 그 역시 호기심이 일었다.
‘조금 이따가 물어보자.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고.’
시후는 호기심에 대한 것은 잠시 후에 풀기로 했다.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거였다.
“다 되었어요. 텔레포트 마법진이에요.”
맬리아가 마법진 위에 오르라는 듯이 시후를 안내했다.
그렇게 시후와 마이클과 맬리아가 마법진에 오르자 그녀는 마법진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스팟-
흰빛이 셋을 갈무리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땅에 그려진 마법진 역시 함께 사라졌다.
다른 엘프들은 시후와 벌써 헤어져 아쉬웠지만, 그가 찾아가는 곳이 명계임을 알기에 다시 만나기를 기도했다.
“부디 어머니의 가호가 천마님과 함께 하길.”
그렇게 엘프들의 기도를 뒤로한 시후, 마이클, 맬리아가 텔레포트 한 장소에 나타났다.
시후는 어둠의 숲보다 칙칙한 분위기를 가진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짙은 안개만 없다면 바니힐 마을과 대부분 비슷했다.
“여기가 명계야?”
“아니요. 여기는 하데스 왕국이에요.”
“하데스면 분명….”
“네. 명계 주인의 이름이죠.”
음침한 기운까지 느껴지기에 충분히 명계로 오인할 만했다.
그런데 이곳이 하데스 왕국이라니.
그렇다면 명계가 아니라 이곳의 왕을 만나러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싶은 그 순간.
쿵-
“뭐야?”
지축을 울릴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맬리아는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어 화살을 장착했다.
어디서 무언가 튀어나와도 당장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짙은 안개를 빠져나온 그것에 맬리아는 시위를 당길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왜 여기에 케르베로스가?”
컹컹컹-
맬리아가 자신을 알아본 것에 기뻐하기라도 한 듯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가 짖었다.
덩치가 족히 2m는 됨 직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입은 다물어지지 않아 침을 질질 흘렸다.
맬리아는 케르베로스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자 엘프의 숲에서 그에게 물려 죽은 일이 떠올랐다.
털썩-
맬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엘프 십여 명이 달려들어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던 케르베로스의 존재에 맬리아는 절망감을 느꼈다.
등 뒤에 있는 시후와 마이클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말이다.
“웬 댕댕이야?”
“댕댕이라니? 그런 말은 좀 귀여운 강아지에 하는 말 아닌가?”
“저 정도면 충분히 귀엽지.”
시후는 케르베로스가 귀엽다며 마이클과 함께 맬리아 앞에 나섰다.
마이클은 시후의 미적 감각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심하며 그 말에 반박했다.
케르베로스를 코앞에 뒀음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둘의 반응에 맬리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위, 위험해요.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하지만 말과 달리 그녀의 두 다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힐끗 본 시후는 고개를 돌려 케르베로스를 봤다.
“아무래도 댕댕이 교육이 좀 필요하겠어.”
“직접 하려고?”
“어. 쟤나 챙겨.”
“생각보다 신사였군.”
여성형 엘프를 챙기라는 말에 마이클은 시후를 젠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후는 맬리아가 위험해지면 퀘스트에 지장이 있기에 챙길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굳이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착각은 자유니까.’
마이클의 착각이 시후에게는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컹컹컹-
시후가 걸어 나오자 케르베로스는 좀 전보다 배는 크게 울부짖었다.
세 개의 머리에서 콧김을 길게 내뿜는 게 상당히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케르베로스의 다리에 힘줄이 튀어나오는 것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시후는 걸음을 멈추더니 피식 웃었다.
“이놈의 새끼가, 똥개 취급을 받고 싶은 건가. 어디서 이빨을 내보여?”
쾅-
시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케르베로스가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시후가 말한 ‘똥개’에 반응한 것 같았다.
세 개의 머리가 시후 몸에 각기 다른 곳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머리, 팔, 다리.
동시에 세 개를 물어오는 케르베로스.
맬리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들릴 처참한 살이 뜯기는 소리에 대비해 귀까지 틀어막았다.
하지만 손으로 귀를 막은 그녀의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는 살이 뜯기는 소리가 아니었다.
“앉아.”
깨갱-
시후의 차분한 목소리와 케르베로스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