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태산아~, 인호야~.”
시후는 세상 정겨운 목소리로 둘을 불렀다.
“뭐, 뭐냐?”
“나 왜 소름?”
둘은 그런 시후의 모습에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오싹했다.
도대체 주말 동안 무슨 짓을 벌였길래 저리 개운한 표정을 짓고 등교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에 대한 후폭풍이 왜 자신들에게 오는 것인지.
둘은 시후의 표정만으로 모든 것을 유추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3분 남았다.”
교문 앞에 선생님께서 시계를 보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3분 후면은 지각이라고 알려주는 거였다.
태산과 인호는 이미 교문 앞이었기에 시후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둘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시후가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짜식들, 표정이 왜 그러냐?”
시후는 둘 사이에 껴 어깨에 팔을 걸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천근추를 펼쳤다.
“큭, 야!”
“무거워!”
“크큭, 알아. 그래도 버틸 만하잖아?”
둘은 시후의 장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서둘러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턴가 시후는 둘에게 이런 장난을 자주 쳤다.
점심 식사 이후 식곤증을 피할 수 없을 때 수업 시간에 졸기라도 하면 둘에게만 살기를 피웠다.
싸늘한 비수가 날아와 심장에 꽂히는 느낌에 기겁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어떤 날은 매점에 빵을 사러 간다고 하자 천마기사로 둘의 다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묶어버렸다.
덕분에 잔걸음밖에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시후는 어서 매점으로 달려가 가장 잘나가는 멜론빵을 사 오라고 했다.
친절하게 자기 주머니에서 돈까지 꺼내주며 말이다.
가지 않겠다고 하니 그럼 다음 날에나 풀어주겠다는 시후의 말에 둘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매점으로 달려야 했다.
빠른 잔걸음으로 말이다.
나중에야 시후는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다른 이들보다 늦게 무공을 익힌 너희에게는 이런 자극을 자주 줘야 해.”
“그건 이해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시후가 이럴 때마다 힘든 건 사실이었다.
둘이 곤욕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시후는 방긋 웃으며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강시후. 너희는 오늘도 붙어 다니는구나?”
“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셋은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넨 후 교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도 시후는 천근추를 풀지 않았다.
학교 건물에 들어가서야 시후는 둘의 목을 놓아주었다.
그에 둘은 또 당황했다.
“뭐야? 웬열?”
“왜 교실까지 안 가냐?”
평소라면 교실까지 행해졌을 시후의 사랑스러운 훈련이 벌써 끝나자 둘은 되레 불안했다.
시후는 검지를 치켜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 인정 없는 사람인 줄 알겠다.”
“뭐?”
“내가 친구를 얼마나 위하고 사랑하는데.”
“뭐어?!”
“당분간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려줘야겠어.”
“엥?”
둘은 시후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느니 ‘아낀다’느니. 시후의 입에서 저런 단어가 나온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 둘이었다.
시후는 둘의 의심 가득한 눈초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둘의 등을 밀어 교실로 향했다.
그 후 시후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지키려는 듯이 둘을 대했다.
쉬는 시간이면 먼저 매점으로 달려가 멜론빵을 사 왔고 점심시간이면 제일 먼저 식당으로 달려가 자리를 맡아놨다.
하교 시간에는 손수 둘의 가방까지 들어주었다.
의심에 의심을 낳는 시후의 그런 행동은 금요일까지 이어졌다.
태산과 이후는 그런 시후의 이상한 행동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말리고 그만하라고 해도 시후는 괜찮다며 계속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하교 시간, 시후는 둘을 태워주겠다며 제갈세가의 차를 대기시켜놨다.
꾸준히 이어져 온 시후의 이상 행동 때문인지 둘은 저도 모르게 차에 올랐다.
시후는 차에서 음료수를 꺼내 둘에게 내어주었다.
“제갈세가에서 준비한 음료는 언제나 시원해서 좋아.”
“…….”
둘은 시후의 너스레에 의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면서 음료수를 마셨다.
“강시후, 도대체 뭔데 이러는 거야?”
“맞아, 대체 뭐기에 일주일 동안이나 이러는 건데?”
시후는 둘에게 건네준 음료수의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에게 시켰던 것들 모두가 무림인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했던 거는 기억하지?”
“어.”
“예를 들어, 천근추는 너희가 내공을 모두 소진했을 때 근력만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예시한 거고.”
“…….”
“천마기사로 다리를 묶어 매점을 다녀오게 한 것은 너희가 포로가 되었을 때 포박을 당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예시한 거야.”
시후는 그것 말고도 둘에게 했던 일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기 위한 것인지 설명했다.
둘은 그런 시후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긴박한 상황을 예시할 때는 저도 모르게 음료수로 목을 적시기까지 했다.
그렇게 어느덧 둘의 음료수가 모두 비워질 때쯤.
“참, 너희 내가 만독불침인 거는 알지?”
“어? 어, 알지. 예전에 한국대 총장실 찾아갔을 때 말해줬잖아.”
당가를 찾아갔을 때 시후는 그들이 준비한 독 통로를 통과하며 둘에게 자신이 만독불침임을 말했었다.
‘만독불침보다 몇 단계 위인 만독불사지체이지만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둘에게는 그저 자신이 독에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알려주면 되었다.
씨익-
시후는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입꼬리를 가장 길게 올려 미소 지었다.
태산과 인호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순간.
“어? 뭐야… 이거….”
“강시후… 너….”
둘은 갑자기 의식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밀려오는 잠에 내공을 일으켜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내공이 전혀 모이지 않았다.
점차 감기는 눈꺼풀에 둘은 자신들이 마신 음료수가 원인임을 깨달았다.
“너… 이 씨….”
“이 씨라니. 나는 ‘강’ 씨인데.”
“…미…친….”
털썩-
그렇게 둘은 시후의 아재 개그에 미처 욕도 못 하고 의식을 잃었다.
시후는 그렇게 잠든 둘을 제갈세가 수련실로 데리고 왔다.
시후가 돌아오자 마이클이 한걸음에 다가왔다.
“그들인가?”
“어.”
시후는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둘을 수련실 중앙에 눕혔다.
그러자 마이클이 둘에게 다가갔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에 안 들면 안 할 거다.”
“알았어. 일단 검사나 해봐.”
“칫.”
마이클은 시후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며 혀를 찼다.
마이클이 이러는 이유는 약속한 내기가 끝난 이후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이제 내기도 끝났으니 시후가 마이클에게 돌아가라며 축객령을 내렸다.
당장 자신이 내뿜은 전격 마법을 서핑하듯 타고 날아다니는 평치혁을 봤는데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시후가 어떻게 평치혁을 가르쳤는지.
어떻게 마나를 깨우치지 못한 이가 마나를 다룰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아내야 했다.
그래서 마이클은 체면이고 뭐고 내려놓고, 당당하게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자 시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건을 내걸었다.
“이들의 잠재력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시후가 내건 조건. 그것은 태산과 인호의 잠재력이었다.
그들의 잠재력이 소드마스터급이라면 평치혁에게 했던 짓을 또 하라고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비밀을 알 것이라면서 말이다.
마이클은 그 소리에 미쳤냐고 소리쳤다.
무박 나흘 수련을 또 하라니. 차라리 시후와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뻔히 패배가 분명한 싸움을 할 수는 없기에 마이클은 조건을 걸었다.
만약, 그 잠재력이 형편없거나 자신의 수준에 못 미친다면, 아무 대가 없이 비법을 달라고 했다.
시후는 흔쾌히 승낙했고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마이클은 바닥에 누워 있는 태산과 인호에게 손을 뻗었다.
사아-
마나를 이용해 둘의 몸을 감쌌다.
지금 마이클이 하고자 하는 것은 장미기사단에서 기사를 선발할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기사단장에게만 내려오는 비전이었다.
시후가 원하는 잠재력을 알아보는 비전.
마나로 그 사람을 감싼 후 체내에 미약한 오러를 흘려보내 그 결과를 보는 거였다.
마치 전기가 흐르듯 흘러 들어간 오러는 그 사람의 신체를 한 바퀴 훑고 나온다.
그때 밖에서 그 사람을 감싸고 있는 마나가 오러와 만나면서 충돌을 일으킨다.
이때 생긴 파동이 클수록 그 사람의 잠재력이 크다는 거였다.
지금까지 마이클이 느낀 가장 큰 파동의 소유자는 곁에 있는 제니였다.
기사단은 아니었지만, 장난삼아 이 테스트를 해봤을 때 마이클은 뒤로 서너 걸음을 물릴 정도로 큰 파동을 느꼈었다.
하지만 기사단에 입단한 기사들은 마이클의 속이 살짝 울릴 정도였다.
둘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마이클은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잠시 후면….”
둘에게 불어넣었던 오러가 둘의 몸속을 전부 돌아다니고 튀어나올 시간이 되었다.
“이제 곧… 응?!”
마이클은 시후가 그렇게 자신 있어 하니, 혹시나 해서 충격에 대비해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어 땅에 고정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마이클은 무언가 잘못된 건가 싶어 빠르게 둘의 몸속에 불어넣은 오러를 확인했다.
“뭐야, 왜 없어?”
어떻게 된 것인지 둘의 몸속에 마이클이 불어넣은 오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이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순간.
그의 뒤에서 시후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일주일을 노력했지.’
시후가 한 노력.
그것은 시후가 일주일 동안 태산과 인호에게 했던 행동 안에 있었다.
첫날 둘에게 어깨동무할 때 시후는 마나를 흘려 넣었다.
태산과 인호 역시 이미 상당한 경지였기에 자기 몸속에 무언가 들어오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시후는 연막이랍시고 어깨동무를 하며 천근추를 펼쳤다.
무게감이 낳은 고통에 둘은 마나를 느끼지 못했고, 저도 모르게 마나를 흡수했다.
시후는 그 이후로 멜론빵을 건네주거나 식당에서 자리를 맡아주거나 식판을 건네주거나.
둘과 접촉할 때면 줄곧 마나를 흘려 넣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바늘구멍에 물을 쫄쫄 흘려 넣듯이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간 수시로 마나를 흘려 넣은 결과가 바로 저것.
마이클이 흘려 넣은 오러를 마나로 인식하고 흡수해버린 거였다.
‘흡기공의 응용이지.’
다른 이의 기운을 빼앗는 흡기공을 시후는 이렇게 응용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태산과 인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흡기공을 배웠다.
그것도 내공이 아닌 마나를 흡수하도록 말이다.
오로지 마이클이라는 고급 노예를 부리기 위한 시후의 계획은 성공했다.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마이클만 머리가 복잡할 뿐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오러를 흡수하지?”
마이클은 머리를 쥐어뜯다가 믿지 못하겠다며 다시 오러를 흘려 넣어봤다.
하지만 같은 결과에 그의 절망만 커질 뿐이었다.
“오… 마이…, 갓.”
현실을 부정하는 마이클 곁에 시후가 슬쩍 다가갔다.
“어때? 쟤들 잠재력은?”
“…….”
마이클은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오러를 흡수한다? 그것도 동양의 무공만 할 줄 아는 자들이. 거기에 의식까지 잃은 상태에서?
그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본능에 의해 그런 것이라는 게 마이클의 생각이었다.
본능만으로 믿기지 않는 일을 해내는 자라면, 그 잠재력을 짐작하는 게 우스웠다.
빠득-
또다시 시후와의 내기에서 진 것에 마이클은 이를 갈았다.
그 소리에 시후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 무박 나흘 잘 부탁해~.”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나면 마검사를 만든 방법을 꼭 알려줘라.”
“알았어. 네가 저 둘을 도우면서 알아채지 못해도 내가 가르쳐줄게.”
“칫.”
마치 선심을 쓰듯 말하는 시후에 마이클은 고개를 홱 돌려 수련장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이클의 뒤를 시후가 졸졸 쫓았다.
“…뭐야?”
“뭐가?”
“왜 따라와?”
“내가? 에이… 아니지.”
“뭐?”
“내가 가는 길에 네가 앞장서는 거지.”
“무슨 헛소리야?”
마이클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시후에 신경을 끄고 싶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런 마이클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무박 나흘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뭐라는 거야? 저들은 아직 잠들어….”
“내 일부터 도와.”
“…뭐?”
“너 Safety World에서 한가락 한다며?”
“…….”
“이번에 받은 퀘스트 도와줘.”
“헬프?!”
당당하게 도와달라는 시후의 말에 마이클은 어이가 없었다.
내기로 자기를 수련 노예로 부리기로 한 그가 ‘부탁’이라는 것을 했다.
마이클은 순간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두 번의 내기에 진 패배자라는 절망감이 쓱쓱 지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크흠, 뭔지 들어나 보고.”
“그게….”
시후는 자신이 던진 당근을 넙죽 받아먹는 마이클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히든 퀘스트를 설명했다.
그 설명 가장 끝에 시후가 ‘명계’라는 말을 꺼냈을 때 마이클은 움찔했다.
“명…계? 설마, 하데스의 영역을 말하는 건가?!”
“맞아, 거기. 어때? 구미가 좀 당겨?”
“…….”
마이클은 시후를 빤히 바라보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 수련실을 나섰다.
그리고 뒤따라오지 않는 시후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여기 가장 성능 좋은 캡슐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