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크아아악!!”
제갈 세가 수련실에 마이클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마이클은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광분하고 있었다.
자해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진지춘의 표정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저 자식 또 시작이네. 저 정도면 약을 처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잠잠하다 싶으면 한 번씩 발작하는 거야?!”
그 말에 동의하듯 박초연이 고개를 살짝, 아주 살짝 끄덕였다.
박초연도 처음부터 진지춘과 같은 마음으로 마이클을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시후에게 패배한 이후 벌써 수련실에서 수련한 것이 이틀째였다.
시후는 평치혁에게 걸었던 무박 나흘의 내기를 그대로 마이클에게도 적용했다.
소드마스터나 되는 이가 고작 이틀 못 잤다고 저러냐고 하겠지만 마이클은 그저 가만히 48시간을 깨어있는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파지직-
마이클이 왼손으로 전격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그 전격에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시후였다.
“오오~, 아주 좋아. 갈수록 나아지고 있어.”
“퍼…, 크레이지!!”
마이클은 미국식 욕을 하려다가 최대한 언어를 순화해 내뱉었다.
첫날 미국식 욕을 내뱉었다가 시후가 내뿜은 천마기사에 몸이 묶여 수련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게 떠올라서였다.
그런 치욕적인 순간을 또 겪을 수 없기에 말조심하며 성질을 부렸다.
시후는 그런 마이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잘 참았네? 이번에도 욕하면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아 두려고 했는데.”
시후는 서핑을 타듯 마이클의 전격 마법을 타고 이동하더니 평치혁 옆에 내려섰다.
“잘 봤지? 이번에는 꼭 해내라.”
“네, 후우….”
평치혁은 심호흡을 길게 하며 긴장감을 고양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48시간 동안 시후가 시킨 거라고는 마이클이 마법을 내뿜으면, 평치혁이 거기에 올라타는 거였다.
말이 쉽지. 마이클이 내뿜는 마법은 그야말로 번개였다.
찰나의 순간에 스쳐 가는 전격 마법에 올라타다니.
말도 안 된다며 의미 없는 반항을 해봤지만 시후는 몸소 시연까지 해주며 일축했다.
그 후 마이클이 마나가 고갈되거나 평치혁이 전격 마법에 쓰러지거나.
둘 중의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걱정하지 마. 너희가 쓰러질 때를 대비해서 얘도 있고 쟤도 있잖아.”
시후는 진지춘과 샐러맨더를 가리켰다.
“하, 하하! 나만 믿거라. 다치면 내가 바로 치료해줄 테니까~.”
진지춘이 너스레를 떨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실상 진지춘 역시 죽을 맛이었다.
자신이 치료해야 하는 녀석들이 48시간 동안 저러고 있으니 결국 그도 곁을 지켜야 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봐야 쪽잠이었기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시후에게 못 하겠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시후가 들고 있는 저 회초리.
일 척 정도 될까 말까 한 길이의 회초리가 춤을 출 때면 어김없이 샐러맨더가 비명을 질렀다.
몇 시간 전에도 샐러맨더는 놀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다가 회초리에 호되게 얻어맞았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옆에서 잔뜩 토라진 표정으로 있었다.
쿡쿡-
진지춘은 그런 샐러맨더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그러냐 노친네야?]
“도여히이 혀아오인아. (도련님이 쳐다보신다.)”
[뭐?!]
샐러맨더는 진지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시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힉!]
샐러맨더는 고개를 돌려 시후를 보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시후가 생긋 웃으며 손에 쥔 회초리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맛을 본 그 회초리.
샐러맨더는 살면서 그렇게 강한 충격을 받은 적이 처음이었다.
샐러맨더가 느끼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는 다르다.
신경을 자극하는 전류 신호로 고통을 느끼는 인간과는 달리 샐러맨더는 정령이었기에 그 본질에 충격을 받았다.
바로 영혼.
시후의 회초리에 얻어맞을 때면 샐러맨더는 영혼이 흔들렸다.
그렇다고 그 본질을 잃어버릴 정도로 뒤흔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지러웠다.
[다시는 그런… 뭐라고 했지?]
“멀미?”
[맞다. 멀미! 다시는 멀미하기 싫다!]
“그럼 잘 지켜보고 있다가 저 녀석 마나 고갈되면 충천해 줘야지?”
[알았다. 대신 너도 꼭 약속 지켜라!]
“그래. 네가 내가 하는 말 잘 기억했다가 따르면.”
[그건 걱정하지 마라. 벌써 이렇게 따르고 있잖느냐.]
샐러맨더는 자기 다리를 가리켰다.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다리를 편 후 무릎 아래로 발을 교차해 밀어 넣고 앉아 있었다.
거기에 허리를 꼿꼿이 치켜세운 그 자세는 그야말로 양반다리의 모범이었다.
“가부좌는 잘하고 있네. 아주 완벽히 잘하고 있어.”
[칭찬하는 거냐? 에헴, 네 칭찬은 듣기 좋다.]
샐러맨더는 콧대를 치켜세우며 거만을 떨었다.
진지춘은 그런 샐러맨더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인간이 살아온 세월만큼 살아온 정령이라 들었는데 하는 짓은 다섯 살 어린아이만 못했다.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순수하다면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그 순수함을 보이는 전제 조건으로 시후가 곁에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진지춘은 시후에게 불려와 ‘마법’이니 ‘마나’니 ‘정령’이니 하는 것들을 들었을 때 그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련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이클이 전격 마법을 쏟아내고 샐러맨더가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강인 병원에서 인연을 맺었던 귀여운 제니까지.
지금도 제니는 시후의 곁에서 열띤 설명을 퍼붓고 있었다.
“오빠, 이제 마나에 대해서는 전부 이해하신 거 맞죠?”
“당연하지. 그러니 이런 것도 할 수 있지.”
시후는 손에 들린 회초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내공과는 다른 마나. 하지만 만류귀종이라 했던가.
시후는 제니에게 들은 마나에 대한 설명으로 마나가 자연기와 같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자연기를 빌려와 사용하는 것이 바로 마법이고 정령술임을 깨우쳤다.
‘그렇다면 성화신녀도 정령사였다는 말인데.’
그때는 그저 신비로운 힘이라 여겼는데 그 정체를 알고 나니, 성화신녀의 지난 과거가 하나하나 떠올랐다.
“제니야, 정령사는 꼭 혼자 살아야 하니?”
“혼자? 결혼을 말하는 거예요?”
시후의 기억에 성화신녀는 다른 이들을 멀리했었다.
특히, 남자. 천마 시절 그녀가 정인을 두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어. 정령사는 결혼을 못 해?”
“그건 아니에요. 다만 정령사가 계약한 정령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가능해요.”
“그 말은, 저 녀석이 인정해야 제니 네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네.”
시후는 샐러맨더를 봤다.
장난이 어디까지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저 녀석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니.
어떤 놈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니의 신랑은 참으로 험난한 길을 가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제니가 시후의 손을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는 프리패스가 되었지만요.”
“뭐?”
“샐러맨더 님이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요? 샐러맨더 님이 오빠를 따르는데요.”
제니는 큰마음을 먹고 시후에게 자신의 속내를 말했다.
그런 험난한 길을 오빠는 걸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후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저 녀석이 나를 따를 거래?”
“네. 앞으로 오빠를 따라다니고 싶으시대요.”
“그 말은 미국에 가지 않을 거라고?”
“그건 아니고요. 샐러맨더 님의 분신을 오빠 곁에 두고 가신대요.”
“그래? 으흠… 분신이라. 쓸모가 있겠는데.”
아무리 분신이라 하지만 그 역시 정령일 거였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이곳저곳에 부려 먹을 기회가 넘쳐난다는 소리.
시후는 벌써 어떻게 정령을 부려 먹을지 고민에 빠졌다.
제니는 그런 시후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나이는 자기보다 많지만, 여자의 이런 신호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시후가 좋았다.
“참, 오빠 그거 알아요?”
“뭐?”
“저희 케네디 가문에서는 능력만 되면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는 거요?”
“…뭐?”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시후의 표정에 제니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크큭, 그냥 그렇다고요. 그럼, 저는 저기 마나 떨어지신 오라버니 챙기러 갑니다.”
제니는 시후를 지나쳐 마이클에게로 걸어갔다.
제니의 말대로 마이클은 마나를 전부 사용했는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나 고갈 현상이라 했지?”
마나 고갈 현상.
마나를 다루는 이가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그 이상의 마나를 사용했을 때 겪는 현상이라고 했다.
마치 내공을 전부 소진해 탈진한 모습에 시후는 턱을 매만졌다.
‘자연에서 빌려오는 것이기에 저건 어쩔 수 없지만, 개개인이 담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다르니 그 마나통을 키우면 되는 것인데.’
시후는 소드마스터라는 자식이 뭘 저리 허약해 빠졌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 마나통은 얼마나 되는 거지?”
이제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시후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싶었다.
지금 당장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마나 고갈 현상을 겪게 되면 안 되기에 후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지금은 일단 저들의 수련이 먼저이니 말이다.
마이클이 제니와 샐러맨더의 도움으로 마나를 충전하는 사이 시후는 평치혁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해서 마검사가 될 수 있겠어?”
“헉, 헉헉…. 그거 꼭 되어야 합니까?”
“당연한 거 아냐?”
“왜….”
“네가 약하니까?”
“…….”
시후의 말에 평치혁은 반박할 수 없었다.
약하다는 것이 상대성이기는 하지만 시후의 입에서 나오니 자신이 한없이 약하게만 느껴졌다.
평치혁 역시 마검사가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그 역시 Safety World를 하는 사람이었기에 종종 마검사의 활약을 봤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하게 될 줄이야.
도대체 누가 시후에게 마검사 영상을 보여줬는지 모르지만, 나중에 반드시 찾아 혼내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듯했다.
처음에야 허황한 말이라 생각했던 슬슬 뭔지 알 것 같았다.
방금 전만 해도 시후만큼은 아니지만, 마이클이 내뿜은 전격에 올라탔었다.
그리고 시후 역시 그것을 봤다.
“자하신검을 잘 떠올려봐라.”
“자하신검…!”
평치혁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자하신검. 검사로 검신을 벼른 자하신검.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두 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더 보강한 것이 자하신검이었다.
지금까지 마법과 내공을 따로 생각하던 평치혁에게 또 다른 깨달음이 되었다.
‘그래. 이미 너는 마검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지.’
시후가 이렇게 평치혁을 수련시킨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자하신검을 보는 순간 시후는 평치혁에게서 마검사의 재능을 봤다.
그래서 무박 나흘이라는 수련 시간에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심기일전한 평치혁은 드디어 전격에 올라탔다.
“하, 하하! 바로 이거구나!”
평치혁은 전격에 올라타고는 수련실 내부를 누볐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다들 놀랐다.
평치혁은 역시 새롭게 이룬 자신의 경지에 미친 듯이 신났다.
무공을 배우며 이렇게까지 성취감을 느낀 적이 또 있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평치혁의 성취감을 다른 곳에 사용하는 시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