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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26화 (226/275)

제226화

묵빛으로 주변의 빛까지 집어삼킬 것 같던 무혈검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탁했던 피가 제 색을 찾아가듯, 점점 붉은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좀 전보다 스산해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이클과 평치혁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후와 공방을 주고받아서 그런지 쉽사리 덤비지 못했다.

대신 시후가 먼저 제안한 그 내기를 기억했다.

삼 초식만 막으면 그의 패배.

시후는 절대 자기 입으로 내뱉은 말을 번복할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평치혁은 절대 시후와 무박 나흘간 수련할 생각이 죽어도 없었다.

“후우… 절대, 그때 그 시간을 또 가질 수는 없어.”

시후 덕분에 자하신공을 터득한 수련의 시간이었지만 그 후로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웠는지 모른다.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내공을 가졌음에도 그런 수련은 견디기 힘들었다.

평치혁이 그렇게 치를 떠는 사이 마이클 역시 이를 갈았다.

“노예?! 하?! 마이클 케네디에게 노예?!”

마이클은 유독 노예라는 단어에 흥분했다.

그가 미국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행동이었다.

시후는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짙은 붉은색의 무혈검을 가슴팍까지 끌어 올리며 준비할 뿐이었다.

“……!”

순간 마이클과 평치혁은 느꼈다.

시후가 준비 자세에 들어가자 지금까지 스산하게 느껴지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를 중심으로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일렁이듯 자신들이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평치혁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200평에 달하는 수련실에서 그것을 해내기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를… 헉!”

시후가 펼치는 무공의 내용을 설명하려던 평치혁은 급히 숨을 멈추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핑-

평치혁의 목이 있던 자리에 짧은 파공성이 지나갔다.

시후가 명경지수를 펼쳐 평치혁이 말을 하는 순간에 생긴 호흡의 틈을 파고든 것이다.

평치혁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늘한 시선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시후는 없었다.

“크레이지!”

쾅-

평치혁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 마이클이 어느새 지척에 다가왔던 거였다.

덕분에 호흡이 틀어졌고 시후가 이번에는 마이클의 틈을 파고들었다.

평치혁에게는 쾌(快)의 묘리를 담고 마이클에게는 중(重)의 묘리를 담아 공격했다.

덕분에 수련실 내부에는 두 가지의 파공성이 울렸다.

핑-쾅-핑-쾅-

파공성이 길어질수록 평치혁과 마이클은 수세에 몰렸다.

시후가 휘두르는 검에 둘은 방어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파공성이 어느덧 멈추고 시후가 홀연히 수련실 중앙으로 내려섰다.

평치혁과 마이클은 시후의 공세에 못 이겨 어느새 수련실 구석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헉, 헉헉.”

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후를 노려봤다.

시후는 그런 둘에게 검지를 치켜세웠다.

“일 초식.”

“…꿀꺽.”

이제야 일 초식이 지났다는 시후의 말에 둘은 마른침을 삼켰다.

길어야 5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둘의 기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마이클은 평치혁에게 속삭였다.

“이렇게 끌려가다가는 당한다. 무슨 좋은 수가 없나?”

“칫, 여기서 꺼낼 게 아닌데….”

“있으면 해. 빌어먹을 내기에 이기려면.”

마이클의 말에 평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시후에게 보여줄 것은 맞았지만 이렇게 많은 관객이 있는 곳에서 펼쳐 보일 것은 아니었다.

평치혁은 자하의 기운이 담긴 검신을 검지와 중지로 훑었다.

그러자 일렁이던 기운이 매끄럽게 변해갔다.

그 기운에 잘 다듬어진 검신은 선분홍색을 띄었다.

시후는 평치혁이 보이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머리 좀 굴렸구나. 검기성강(劍氣成罡)에 검사(劍絲)를 섞다니.”

“…….”

시후의 말에 평치혁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시후가 모르는 무공은 무엇인지, 시후의 견식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자하신공을 터득한 이후 미치도록 머리를 쥐어짜고 만들어낸 경지였건만.

이조차 시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이제야 칠매반검(漆梅半劍)을 졸업할 능력이 생겼구나.”

“꿀꺽.”

평치혁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칠매반검의 정체도 알고 있는 시후에 다시 긴장했다.

칠매반검은 화산파의 보물 중 하나로 장문인의 직계 제자가 수련을 위해 사용하는 검이다.

이 검의 특징은 자하의 기운을 쉽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이어서 자하신공을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검이었다.

하지만 칠매반검은 어디까지나 수련을 위한 검.

지금 평치혁이 펼치는 검기성강의 경지에 검사를 섞어 완결한 자하검신(紫霞劍身)을 만들어야만 진정한 자하신공을 펼칠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이는 상당한 내공 소모가 필요했기에 지금의 평치혁은 고작 1분 남짓만 유지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비장의 한 수였다.

그리고 비장의 한 수답게 수련실 전체를 아우르는 짙은 매화향이 퍼져나갔다.

반대쪽 구석에 있는 제갈 상민이나 조민도 맡을 정도였다.

제갈 상민은 시후 외에 저만한 나이에 이만한 성취를 이룬 자를 처음 보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자신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

무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느껴야만 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졌다.

조민은 그런 제갈 상민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오빠의 목표는 생각보다 높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

“오빠가 지금 저들과 저러는 이유 말이에요.”

“응?”

제갈 상민은 조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조민은 그런 제갈 상민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적어도 저들만큼 강하게 만들 거래요.”

“나를? 아, 아니 우리를?”

조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민은 이번 대련을 시작하기 전에 시후에게 따로 지시받은 게 있었다.

바로 마이클의 마나 운영 방식을 분석하라는 거였다.

시후가 이미 그들에게 마법을 배우기로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법.

무공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상대와 지척에서 검을 맞대는 데 있다.

그렇게 따지면 소드마스터인 마이클만큼 적임자가 없었다.

거기에 마이클은 소드마스터이면서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시후는 Safety World에서나 보던 ‘마검사’를 육성할 거라고 조민에게 말해뒀다.

허무맹랑한 말이라 여겼건만 마이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조민은 그 희망을 보았다.

마이클은 평치혁이 비장의 한 수를 꺼낸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조금 전과 달리진 것이라고는 검의 모양뿐이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사람이 한순간에 변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놀라웠다.

그만큼 그가 각오를 다졌다는 생각에 마이클 역시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가지.”

파직-

마이클은 오러소드를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이 쪼개지듯 스파크가 튀었다.

마이클은 그 순간 그 스파크를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허공에 마나를 흩뿌렸다.

파지직-

일전에 밤섬에서 보여주었던 것에 배는 큰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색도 달랐다.

겉은 푸른색이면서 안은 붉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시후는 마법진을 보며 조민을 힐끗 봤다.

‘일러둔 대로 잘 관찰하고 있군.’

역시 믿고 보는 조민이라는 생각에 시후는 마음 놓고 기운을 일으켰다.

쿠앙-

좀 전에 명경지수와는 전혀 다른 폭발적인 기운이 시후를 중심으로 터졌다.

마치 시후가 태풍을 일으키는 것같이 기운이 휘몰아쳤다.

“대충 내질렀다가는 저 기운에 검의 방향이 틀어질 거야.”

“그 정도는 보면 안다. 하지만 내 더블매직소드 역시 만만치 않을 거다.”

평치혁의 우려에 마이클은 일갈하고는 마법진에 오러소드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보통 검의 길이만 했던 오러소드가 마이클의 키만 한 대검이 되었다.

마이클은 더블매직소드를 두 손으로 움켜쥐더니 두 다리에 힘을 팍 주었다.

그 순간 마이클이 사라졌다.

시후는 마이클이 다리에 다량의 오러를 쏟아붓는 것을 봤다.

“가속을 위해 그러는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을 저리 사용하다니.”

콰과쾅-

마이클은 200평에 달하는 수련실의 사방을 날아다녔다.

엄청난 넓이임에도 눈으로 그를 좇기에 벅찰 정도의 속도였다.

마이클의 신형이 사라진 후에야 소리가 들릴 때쯤 시후의 정수리가 찌릿했다.

“제법.”

“빅뱅(Big Bang).”

쿠아-

기술 이름에 어울릴 만큼의 압력이 느껴졌다.

시후는 자신이 일으킨 기의 태풍의 약점인 위에서 공격해오는 센스와 움직임을 제한하는 기술에 마이클을 칭찬했다.

하지만 칭찬은 칭찬, 그의 장단에 어울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화접목.”

시후는 평치혁이 펼쳤던 이화접목으로 빅뱅에 맞섰다.

평치혁이 펼친 것보다 몇 겹은 더 쌓인 이화접목에 태산이라도 부숴버릴 듯했던 마이클의 소드가 방향을 틀었다.

쾅-

“똑바로 못 해?!”

그리고 거기에는 평치혁이 있었다.

평치혁은 어느새 시후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마이클과는 달리 시후가 일으킨 기운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몸을 던졌었다.

그랬기에 좀 더디기는 했지만 시후의 지척에 다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빅뱅이 자신에게 날아왔지만, 태풍의 기운을 이용해 순식간에 자리를 이동했다.

그곳은 바로 시후의 뒤.

평치혁은 훤히 드러난 시후의 등에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무인의 뒤를 잡았다는 것은 그의 목숨을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강시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자이기에 평치혁은 다음을 다잡고 검을 휘둘렀다.

“매화토염(梅花吐艶).”

시후가 자신의 공격에 대비했을 거라는 생각에 뱀의 혀처럼 요사스럽게 검기를 쏟아내는 매화토염을 펼쳤다.

지척에 있었기에 어느덧 뱀 같은 자하의 기운이 시후에게 다다랐다.

촤악-

그리고 어김없이 시후를 갈랐다.

평치혁은 자신의 검이 시후를 가르자 깜짝 놀랐다.

무언가 대비를 했을 거라 여겼건만 이대로 그가 당한 것인가 싶었다.

그 순간.

“무혈삼식(無血三式). 천환검(天幻劍).”

무심한 듯한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평치혁의 검이 가른 시후가 고개를 180도 돌리며 말이다.

“크, 크레이지….”

“미친….”

마이클과 평치혁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읊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후가 펼친 무혈삼식 천환검은 하늘도 속이는 검으로, 무혈검으로 또 하나의 시후를 만들어낸다.

즉, 평치혁이 베었다고 생각한 것은 시후가 아닌 시후의 모습을 한 무혈검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시후는.

마이클과 평치혁은 눈앞에 귀신같은 시후가 있지만, 그가 진짜가 아님을 알았다.

그랬기에 진짜 시후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초식이다.”

바로 한쪽 구석에 있던 제갈 상민과 조민과 박초연의 뒤에서 말이다.

“으악!!”

그 목소리에 셋은 기절할 듯이 비명을 질렀다.

제갈 상민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두 손까지 번쩍 치켜들며 놀랐다.

시후는 그런 제갈 상민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고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마지막 삼 초식.”

스팟-

마지막을 알리는 시후의 음성과는 다르게 그의 모습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마이클과 평치혁이 최후의 한 수를 펼친 덕분에 기력이 떨어진 탓도 있었지만, 감히 인간의 눈으로는 좇을 수 없는 속도였다.

바로 순시보(瞬時步)였다.

조금 전 공격으로 마이클과 평치혁은 한 걸음 정도 거리에 자리했다.

그런 둘의 코앞에 번쩍하고 나타난 시후.

시후는 둘의 미간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일양지(一暘指).”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타오를 듯한 뜨거움에 둘은 사색이 되었다.

이대로 시후가 기를 방출하는 순간 둘의 머리에는 바람구멍이 생길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둘의 뇌리에 자리하는 순간 둘의 눈에서 투기가 사라졌다.

시후는 그런 둘의 눈빛을 읽고는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얼굴을 슬쩍 들이밀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Welcome to Hell(웰컴 투 헬).”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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