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조민은 급히 제갈 상민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앞에 제갈 상민이 있었다.
“백부님, 찾으셨어요?”
“어. 왔느냐? 이리 와서 이것 좀 보거라.”
제갈 상민은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조민이 지금까지 누구랑 있었는지 알기에 서둘러 용건만 끝내고 돌려보내고 싶었다.
지금 이 일만 아니라면 절대 부르지 않았을 거였다.
“여기 수련실에 진법으로 보강하기로 했잖느냐.”
“네. 벌써 다 되었나요?”
“마무리 단계이더구나. 그래서 네가 점검해 주었으면 해서 어쩔 수 없이 불렀다.”
조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제갈 세가를 복구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내구성이었다.
외부와 내부. 그 어느 곳의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세우는 게 목표였다.
“시후 오빠의 힘을 버티려고 진법까지 넣어야 했기에 좀 늦었네요.”
“그래도 해낸 게 어디냐.”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동안 조민은 진법을 꾸준히 공부했다.
시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꾸준히 연구했다.
무공으로는 그를 보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법 공부에 좀 더 매진했다.
그 결과.
“수련실 내부에 두 가지, 외부에 다섯 가지의 진법 모두 완성 직전이네요.”
“그렇단다. 이제 네가 마무리를 해주어야 공사가 끝날 것 같구나.”
“네, 그럼.”
조민은 수련실 외부를 거닐며 벽을 주시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설치한 진이 확실한지 확인하는 거였다.
“기둥과 중방에 설치한 진은 완벽하네요.”
“그렇지? 하방 역시 일전에 완벽했으니 별 탈 없어 보이고.”
“네. 그럼, 이곳을 이렇게 하면…. 핫!”
조민은 수련실 외부에 세워져 있는 석상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지금 조민이 설치한 진은 오행파불쇄진(五行破不碎陳)으로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의 기운을 극대화한 절진이다.
이는 제갈 세가 서고에 있던 진법으로 공격보다는 수비에 능하기에 수성전과 같은 곳에 적용하기 좋았다.
조민은 그것을 수련실 외부를 보강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외부에 대한 충격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미처 막아내지 못한 기운을 외부로 방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조민은 오행파불쇄진이 완성된 것을 확인하고는 수련실 내부로 들어갔다.
“대들보와 서까래에 새겨 넣은 진법도 완벽하네요.”
“그럼, 누가 한 것인데.”
“그럼, 마지막으로 종보에 이것을 박아 넣으면.”
조민은 품속에서 철로 된 부채 하나를 꺼냈다.
“가주님의 철선(鐵扇)을 이런 곳에 쓰게 될 줄이야.”
“아깝기는 하지만…. 이것만큼 단단한 것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촤락-
조민은 철선을 활짝 폈다.
그 안에는 ‘제갈세가(諸葛世家)’라는 네 글자가 힘 있게 적혀 있었다.
철선의 이름은 ‘제왕선(諸王扇)’.
제갈 세가 가주에게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였다.
이만한 것을 이런 수련실을 보강하는 재료로 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주님께서는 이보다 더 큰 것을 받으셨다고 하셨어요.”
“알지…. 알지만, 이런 상징적인 것을 저곳에 박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지.”
제갈 상민은 아쉬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천정을 바라봤다.
고작 집 짓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에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조민은 알고 있었다.
그날 시후가 현천미리보를 펼쳐 보였을 때 제갈 신길의 놀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가문의 비전 신법을, 그것도 가주에게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을 시후가 어찌 알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이미 시후는 제갈 세가가 따라야 하는 군주였기에 제갈 신길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그 후 제갈 신길은 큰 깨달음을 가졌고 드디어 고심하던 초절정 반열에 올랐다.
제갈 신길은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고 오늘 아침에 봤을 때는 두 눈에 생기가 넘쳐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갈 신길은 조민에게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다.
조민은 제갈 상민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를 위해 만든 이 수련실이 도움이 되는 만큼 제갈 세가도 그만큼 흥할 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럼, 이제 꽂겠습니다.”
“그러려무나.”
제갈 상민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조민이 제왕선을 던졌다.
정확히 조민이 원하는 천장 그 부분에 푸욱하고 들어간 제왕선.
그러자 수련실이 한차례 흔들거렸다.
제갈 상민과 조민은 피부를 간질거리는 기운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양류양진(陰陽流揚陳)이 잘 작동하는 것 같구나.”
“네. 살짝 짓누르는 느낌까지 드는 것 보니 확실하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을 해볼까?”
제갈 상민은 혹여나 싶어 벽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충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나 싶어 벽을 공격하려는 거였다.
그런데 그런 제갈 상민의 손을 조민이 슬쩍 잡았다.
“왜?”
“테스트하실 분이 오신 것 같아요.”
“누구… 설마?!”
“네….”
“어, 어서 나가자.”
조민의 난처한 표정에 제갈 상민은 서둘러 수련실을 나섰다.
헐레벌떡 뛰쳐나간 제갈 상민은 벌써 문지방을 넘어오는 시후를 봤다.
“어서 오십시오. 오신다고 미리 언질을 주셨다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
제갈 상민은 빠르게 달려가 시후를 맞았다.
시후는 그런 제갈 상민의 어깨를 다독였다.
“됐어. 내가 못 올 곳에 온 건 아니잖아?”
“네?! 아, 네. 그렇죠.”
뭔가 날이 서 있는 시후의 말투에 제갈 상민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의심되는 것이 있기에 곁눈질로 조민을 봤다.
조민은 시후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이다.
시후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고는 조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흠칫-
조민의 몸이 움찔할 정도로 흠칫했다.
“오, 오빠… 그게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조민은 시후가 자신을 혼내기 전에 죄를 고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하는데 의외의 말이 들렸다.
“저것 때문에 먼저 간 거였구나?”
“네?”
시후는 조민을 스쳐 지나가 수련실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 제갈 상민과 조민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과 똑같은 동선으로 수련실을 둘러본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만들었네. 음과 양의 기운 담아 위력을 줄이고 오행을 섞어 내구성을 올리다니.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을 텐데. 고생했네.”
“아….”
조민은 자신이 한 일을 시후가 단번에 알아보자 감탄했다.
이제 진법이라면 시후를 앞섰겠다고 생각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S.W SOFT에 시후만 내버려 두고 혼자 이곳에 와서 탓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조민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보다가 수련실의 벽에 손을 얹었다.
“어디, 얼마나 튼튼한지 한번 볼까?”
“네. 그렇지 않아도 내구성 테스트를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 그럼 어디….”
화악-
시후는 테스트를 한답시고 수련실 벽을 짚은 손에 내공을 끌어모았다.
그것도 그냥 내공이 아닌 천마지기까지 끌어올렸다
검은색 기운이 시후의 손에 휘감기자 조민이 깜짝 놀랐다.
“오, 오빠?!”
“이 정도는 버텨야지. 천마멸겁장.”
쾅-
조민이 말리기도 전에 시후는 수련실을 향해 천마멸겁장을 날렸다.
검은 기운이 수련실 전체를 휘감더니 수련실을 짓눌렀다.
주변에 있던 모래가 튀어 오르고 먼지가 자욱해지며 시야를 방해했다.
“안 돼….”
조민은 이제 막 완공한 수련실이 허무하게 날아갔을 거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의외라는 듯한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이것 봐라?”
그리고 잦아든 먼지에 수련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마멸겁장을 얻어맞은 수련실은 의외로 멀쩡했다.
쿵-쿵-
시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수련실 벽을 주먹으로 쳤다.
그에 깜짝 놀란 조민이 후다닥 달려갔다.
“오빠! 그, 그만요!”
“왜, 아주 멀쩡한데? 정말 잘 만들었는데?”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그렇게 치시면….”
조민의 말대로 벽을 두드리는 시후의 손에 담긴 힘이 점점 커졌다.
주변을 울리는 소리가 점점 묵직해지는 것이 그 증거였다.
시후는 조민이 말리자 그제야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그래. 이제 완공했는데 부서지면 안 되지? 나를 위해 만든 건데 말이야?”
“맞아요, 오빠를 위해서 만든 거예요.”
“그래, 그래. 우리 조민처럼 오빠를 위해주는 녀석이 참으로 없지.”
“당연한 걸… 네?”
조민은 그제야 시후가 짓고 있는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오빠, 제가 오늘 말씀드리지 못하고 여기 온 것은요….”
“괜찮다고 했잖아. 이런 중요한 걸 만들러 온 거니 충분히 이해해.”
쿵-
이해한다며 시후는 다시 한번 수련실을 두드렸다.
여전히 수련실은 멀쩡했지만, 조민은 느낄 수 있었다.
오행파불쇄진의 기운이 흔들리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두면 진법은 깨지고 그와 함께 수련실 외벽도 부서질 것이다.
조민은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자신이 시후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방금 말했듯이 말하지 않고 이곳에 온 게 잘못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이 있다는 건데.
조민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시후를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울 것같이 울먹이면서 말이다.
시후는 그런 조민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가왔다.
“박초연에게 나에 대해 말한 게 있더구나?”
“제가요? 무슨….”
“월드 오브 리그전 규칙. 내가 모르는 그 규칙을 만드는 데 너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며?”
“……!”
조민은 그제야 시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는 인상을 구겼다.
자신이 박초연에게 조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후가 ‘그런’ 규칙을 들었을 때 화를 낼까 하는 질문에 하지 말라고 한 것뿐이었다.
시후는 조민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는 박초연에게 들은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이제야 제갈 세가로 들어오는 박초연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어쭈, 이것 봐라?”
박초연은 문지방을 넘는 순간 시후의 표정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그, 그게…. 컥!”
시후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그때 시후는 이미 눈앞에 있었다.
시후는 어느새 박초연의 목을 쥐고 번쩍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박초연의 목이 졸린 상황이 되자 뒤따라오던 평치혁과 마이클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갔다.
“강시후! 뭐 하는 건가?!”
“시후 님!”
둘은 박초연을 걱정하며 시후를 다그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서 놓아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시후는 박초연을 끌어당겨 눈앞에 가져왔다.
“네가 나를 우롱해?”
“커어…. 그… 아… 니라.”
“그게 아니면? 사실에 입각한 거짓을 말한 건가?”
“커, 커어….”
박초연은 시후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번 건은 오로지 자기 잘못이었다.
S.W SOFT에서 시후가 물었을 때 사실을 말했어야 했다.
그때 박철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시후에게 거짓을 말했다.
조민이 시후의 성격에 관해서 언급해준 것은 사실이었다.
개인전에 출전한 선수가 단체전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내세우면 시후가 싫어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조민은 그 뒤에 다른 말도 붙였다.
그렇다고 시후가 꽉 막힌 사람은 아니기에 월드 오브 리그전의 취지를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라고 말이다.
박초연은 그 말을 믿고 박철에게 그대로 전했지만, 박철이 일을 먼저 벌인 거였다.
그런 후에 박초연에게 시후를 설득하라고 했다.
만약 그 사실을 그대로 시후에게 전했다가는 박철이 어떻게 될지 박초연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외모는 곱상하게 생긴 고등학생이지만 대력공방의 장로들을 거리낌 없이 죽인 것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래서 변명이랍시고 조민을 들먹인 것이었는데 시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민에게 달려갈 줄은 몰랐다.
그제야 실수를 깨닫고 말을 전하려 했지만 이미 시후는 점이 되어 사라진 후였다.
부랴부랴 평치혁과 마이클의 도움으로 제갈 세가에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박초연은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시후가 자신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잘못은 자신이 한 것이 맞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초연의 생각.
마이클과 평치혁은 달랐다.
마이클은 박초연의 안색이 시퍼레지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 없었는지 시후의 손을 잡아갔다.
“그만.”
텁-
마이클은 박초연의 목을 조른 시후의 손을 잡고는 힘을 주었다.
악력을 줌으로써 강제로 손을 놓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어, 어어?!”
시후를 쥔 손이 저도 모르게 펴졌다.
마치 손에 쥔 풍선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마이클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자 이번에는 평치혁이 나섰다.
“시후 님! 박방주가 어떤 마음에서 그랬는지 조금만 헤아려 주십시오.”
“…….”
“그게 다 제 사람 살려보자고 한 거 아닙니까?!”
평치혁의 말에 시후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 말은, 박철 사장은 박방주 사람이고 나는 아니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고 보니 지금 네 눈에 피어오르는 살기를 보니 너도 나를 네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네?!”
“좋아.”
휙-
시후는 의식을 잃기 직전인 박초연을 평치혁에게 던졌다.
“커헉, 커억…. 헉, 헉헉.”
박초연이 기침을 토하며 숨을 들이켜는 사이 시후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마이클과 평치혁이 박초연을 챙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후는 조민을 힐끗 봤다.
“마침 좋은 게 있네.”
“…! 설마?!”
조민은 시후의 눈빛에 담긴 의도를 단번에 읽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