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케네디 가문.
1800년대 초반에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정착한 가문으로 정계, 연예계, 스포츠 등등 다방면에 특출한 인물을 배출한 가문이다.
특히 케네디 가문은 정계에 막대한 힘을 갖고 있어 다른 세력이 쉽게 넘보지 못한다.
미국에서 입김 좀 분다는 소리였다.
리암 케네디는 그곳의 현재 가주로서 ‘자애로운 사자 (Benevolent Lion)’라는 별명을 가졌다.
자애로울 때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사자처럼 맹수의 기질을 가진 자라는 뜻이었다.
여기까지가 S.W SOFT에 도착하기 전까지 조민이 시후에게 전달해준 내용이었다.
시후는 블칸 영주, 아니 리암과 악수하며 그 정보를 되뇌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군.’
일전에는 그저 속내가 음흉한 노인네로 보였는데 지금은 힘을 감춘 강자로 보였다.
한편, 리암은 시후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Safety World가 가상의 세계라 하지만 그의 눈 속에서 강함과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조사한 대로라면 이곳에서 사용하는 힘을 현실에서도 보이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대단하군요.”
리암은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했다.
가감없는 그의 말에 시후는 피식 웃었다.
정치인치고는 처음부터 돌직구였다.
“대부분 그런 말은 속으로 하지 않나요?”
“제가 겉치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NPC였을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시네요?”
“덕분에 유저들이 곤욕스러울 때가 있지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블칸 영주가 NPC인 이상, 바니힐 마을에 들어오면 그와 마주치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였다.
일전에야 저주에 걸려 있어 그런 일이 적었다고 하지만 시후가 해주 해준 이후로는 고용인까지 들일 정도이니 말이다.
‘T. NPC라, 무엇을 하던 중이었지?’
시후는 집무실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서류 뭉치를 힐긋 봤다.
“이곳에서 하시는 일이 많아 보입니다?”
“좀 그런 편입니다. 가끔 현실에서 하는 일도 여기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일도요?”
그 말은 좀 의외였다.
Safety World가 아무리 다재다능하다지만 현실과는 엄연히 분리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현실에서의 업무를 볼 수 있다니.
시후는 호기심이 일었다.
“정말 중요한 일은 처리할 수 없지만, 일정 조율 같은 간단한 것들은 이곳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리암은 시후가 눈을 반짝이자 그의 손을 놓고 집무실 책상으로 안내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려는 거였다.
리암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 한 장을 스윽 내밀었다.
“이건….”
“보면 아시겠지만, 오늘 제 일정표입니다.”
리암이 내민 것은 오늘 그의 일정표였다.
그는 조금 전 이곳에 접속하고는 현실에 있는 비서와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과 시차가 13시간 정도였나? 그럼. 아침이라는 말인데… 이럴 시간이 있는 거야?’
시후는 일정표에 적힌 오전 일정 중에 유독 눈이 가는 단어가 있었다.
[White House]
화이트 하우스. 미국에서 화이트 하우스라고 불리는 곳은 백악관이 분명했다.
그런 곳에 정계에 입김 좀 분다는 케네디 가문의 가주가 간다?
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면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시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 하하. 그분만큼 시후 님도 중요하니까요.”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시후의 속내를 읽고 답하는 리암이었다.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시후 님처럼 독심술을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
시후는 도대체 리암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케네디 가문의 정보를 들은 시후는 충분히 그들에게 자신의 정보가 넘어갔겠거니 했다.
‘그런데 독안공의 존재까지 알아?’
시후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독안공의 존재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조민은 그저 막연하게 아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리암이 자신의 독안공에 대해 언급을 했다.
정보전에서 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오갈수록 이쪽에는 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그럼, 앉으실까요?”
리암이 집무실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에 착석을 권유하자 시후는 얌전히 따랐다.
시후 맞은편에는 리암과 제니가 나란히 앉았다.
제니는 아버지의 권유에 얌전히 따르는 시후를 보며 살짝 불안했다.
자신에게는 둘도 없는 은인이며 친절한 오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시후였다.
일전에 강인 병원에서 진지춘을 대하는 그의 자세에서 느낀 솔직한 평가였다.
그리고 오늘 그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시후는 정령인 샐러맨더를 거칠게 다뤘다.
하지만 지금의 상대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케네디 가문의 가주, 제니가 아는 한 미국 최고층의 권력자이다.
혹여나 둘의 사이에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했다.
“우리 귀여운 제니, 걱정이 많아 보이는구나?”
“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후 님과는 네가 걱정하는 그런 관계가 되지는 않을 거야.”
리암은 제니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다독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순간 독안공을 펼쳤다.
그리고 나타난 메시지에 역시나 싶었다.
‘이 녀석, 사람의 심기를 읽을 수 있잖아.’
시후는 눈치 빠른 리암의 능력이 스킬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서 자리에 앉는 내내 그를 주시했다.
제니의 굳은 표정에 리암은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스킬을 사용했다.
시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거였다.
리암이 사용한 스킬의 이름은 ‘심기 읽기’.
‘내 독안공보다는 못하지만 분명 속내를 읽고 있어.’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쓸 만한 스킬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그가 스킬을 썼지만, 딱히 자신이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니 말이다.
좀 더 지켜보고 대처해도 충분했다.
그사이 리암은 제니를 진정시켰고 그녀가 안정을 찾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한국은 조금 있으면 저녁 시간일 테니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죠. 이걸 받아주시겠습니까?”
리암은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듯이 품속에서 꺼낸 것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이건?”
“명계로 가시는 데 필요한 통화입니다.”
테이블에 놓인 것은 두 개의 금화였다.
그런데 그것은 Safety World 사용하는 보통의 통화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후는 그중 하나를 집어 자세히 봤다.
앞면과 뒷면이 다른 금화는 한쪽 면에는 배, 다른 한쪽에는 등불이 그려져 있었다.
시후는 금화를 만지작거리며 리암을 봤다.
그러자 리암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T.NPC인 것은 아시죠?”
“네.”
그건 알고 있었다. 이미 조민에게 T.NPC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었으니 말이다.
유저가 NPC 역할을 하는 것으로, 로그아웃일 때는 A.I로 운용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거랑 이 금화가 무슨 상관인지 궁금했다.
“본래는 한국에 제니와 마이클이 며칠 더 머물러야 할 상황이 생겼다고 해서 시후 님을 만나 뵙고자 했습니다.”
“…….”
“아비 된 마음으로 걱정이 앞서 그런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는 않으시겠지요?”
“이해합니다. 그럼 이건요?”
시후는 금화를 까딱였다.
그러자 리암은 테이블에 놓인 다른 하나의 금화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시후 님을 만나 뵙기 위해 접속을 하니 이것을 전달하라는 메시지가 뜨지 뭡니까.”
시후는 설명이 길어지는 리암을 향해 금화를 흔들었다.
사설이 길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리암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명계, 즉 하데스에게로 향할 때 사용하는 금화입니다.”
“이게요?”
“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배를 타셔야 하는데, 그곳에서 사용하는 것이지요.”
“배를 탄다라…. 요단강이라도 건넙니까?”
“하, 하하. 비슷합니다. 정식 명칭은 ‘저승의 강’입니다만. 들어보셨습니까?”
그 이름을 들으니 시후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 한나미와 올림포스에 관해서 공부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
“하데스에게 가는 다섯 개의 강이라 알고 있습니다.”
“아신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첫 번째 강인 아케론에 도착하시면 그 금화를 뱃사공 카론에게 주어야 배에 태워줍니다.”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겁니까?”
시후는 생각해봤다. 굳이 배를 타야 할까?
무슨 유람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들여야 하냐는 거였다.
강이 얼마나 넓을지는 모르지만, 경공술을 펼쳐 날아갈 자신이 있었다.
“물론, 시후 님의 실력이시면 태평양도 건너실 수 있으시겠죠.”
“…….”
리암이 시후의 심기를 읽고 대답했다.
시후는 그런 리암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명계로 가는 그 강은 물리적인 요소만 작용하는 곳이 아닙니다.”
“으흠.”
리암이 말이 무슨 뜻인지 시후는 이해했다.
Safety World의 요단강은 현실처럼 또 다른 세계라는 말이었다.
저렇게 단호하게 리암이 말하는 것을 보면 뱃사공을 무시하고 날아가 봐야 명계에 다다를 수 없을 거였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오로지 저 금화라는 것인데.
“왜 두 개죠?”
굳이 두 개가 필요하냐며 물었다.
그러자 리암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돌아오실 때도 쓰셔야지요.”
“아….”
빌어먹을 곳이었다.
돌아올 때조차 저 금화가 없으면 배를 타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리암은 자신이 쥐고 있던 금화를 시후에게 내밀었다.
그렇게 시후의 손에는 두 개의 금화가 쥐어졌다.
시후는 인벤토리에 금화를 넣었다.
“그럼… 이제 진짜 본론.”
시후는 리암을 빤히 봤다.
“원하는 게 뭡니까?”
명계로 가는 수단까지 친절히 제공하지를 않나, 처음 만나는 것치고는 자신에 대해 꽤 많은 조사를 하지 않나.
그저 친목 도모나 하자고 이런 수고를 하지는 않을 거였다.
리암의 진짜 목적이 궁금했다.
‘정치판에 있는 놈치고 무료 봉사를 하는 놈은 없으니까.’
천 년 전부터 시후가 아는 정치인의 참모습이었다.
리암은 시후를 만난 이후로 처음으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하나를 주면 적어도 하나를 받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치인입니다.”
“…….”
“시후 님, 이번에 미국에 오시면 제 손님을 한번 만나주시겠습니까?”
“손…님이요?”
“네. 절대로 시후 님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리암은 상당히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국 대통령과의 미팅이 잡혔는데도 나를 만나러 Safety World에 들어온 자인데.’
그 ‘손님’이라는 자가 리암에게 얼마나 중요한 자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뭐, 미국은 제니 때문이라도 갈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정말이십니까?!”
시후의 허락에 리암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안도의 한숨까지 내쉰 리암의 모습에 시후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월드 오브 리그전 때문에 저를 보자고 하신 줄 알았습니다.”
시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제니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버지를 만나달라고 한 게 모두 월드 오브 리그전 때문인 줄 알았다.
스카웃이나 사전 작업이라도 하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자신이 받은 히든 퀘스트에 대한 NPC 역할과 자기 손님을 만나달라는 청만을 했다.
욕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시후는 월드 오브 리그전을 꺼내며 리암의 속내를 읽어보려 했다.
그 질문에 리암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제니를 봤다.
“리그전이 우리 전력에 시후 님이 필요한 정도야?”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는군요.”
리암은 제니와의 대화로 시후에게 대답을 대신했다.
시후의 미간이 찰나의 시간에 꿈틀댔다.
“그 말은….”
“시후 님, 저희 미국은 충분히 강합니다.”
“…….”
시후는 자신이 혼자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켰다는 것을 알았다.
창피함이 얼굴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로그아웃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리암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조만간 미국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Safety World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리암은 현실에서의 일정이 있다며 먼저 로그아웃했다.
“하, 하하….”
시후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제니를 보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왜, 왜요?”
그 표정에 제니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
시후는 그런 제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제니야, 너희 대표팀 애들 영상 좀 볼 수 있을까?”
“…….”
본래는 거절해야 하는 제안이었지만 제니는 시후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조용히 커뮤니티창을 띄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