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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17화 (217/275)

제217화

시후는 천마지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일은 천 년 전에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때는 다른 나라에서 온 자들이 아닌 성화신녀에 의해서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때 성화신녀에게서 받았던 그 느낌을 제니에게서 똑같이 느꼈다.

제니에게 묻고 싶은 게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그녀를 추궁하며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후는 제니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우리 제니. 한번 안아볼까?”

“역시, 시후 오빠야. 오빠~!”

시후는 지금까지의 상황은 잊어버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제니를 반겼다.

제니는 그런 시후의 모습이 좋았다.

자신이 병원에서 힘겹게 원인도 모르는 병마와 싸울 때.

헬스장에서 미친 듯이 운동하는 시후를 처음 봤었다.

곱상한 외모에 호리호리한 몸을 가졌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정말 사람이 저렇게까지 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정도로 몸을 혹사하더니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몸을 만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제니는 손수 팔찌를 만들어 시후에게 선물했었다.

동경의 대상에게 주는 순수한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 제니는 시후에게서 믿기지 않는 선물을 받았다.

자신이 잠들었다고 생각한 시후가 남들 몰래 병실로 들어와 자기 몸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몸이었기에 멋진 오빠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몸을 맡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다음 날 열세 살 인생에 가장 놀라운 기적을 보았다.

매일 한기가 미친 듯이 전신 곳곳을 파고드는 그 느낌이 줄어든 거였다.

한기가 파고들 때면 입술을 악물어 버텼던 제니였다.

그런데 시후가 다녀간 다음 날 제니는 그 아픔을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있었다.

일전이 칼로 전신을 찌르는 통증이라면 그 후부터는 바늘로 찌르는 통증 정도였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할 상황이었지만 여덟 살 이후 그렇게 살아온 제니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점점 커졌다.

제니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시후가 다녀갈 때면 더욱 좋아졌다.

결국, 진지춘이라는 중국 약선방의 장로까지 등장하니 치료가 되었다.

희대의 불치병으로만 알고 죽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제니에게는 그렇게 시후가 은인이 되었다.

그리고 제니는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가문으로 돌아가 힘을 키웠다.

고작 열세 살의 나이였지만 ‘천음절맥을 지닌 자, 천하에 둘도 없는 귀재가 된다’라는 속설을 증명했다.

그렇게 오늘 제니는 자신의 힘으로 만든 자리에서 시후의 품에 포옥 안겼다.

“시후 오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

“녀석.”

제니의 그런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제니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한편, 그렇게 둘이 회포를 푸는 모습, 아니 제니가 시후의 품에 안기는 순간 마이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Oh~ My God!! Jennie….”

통역 마법이 풀린 것인지 마이클의 말이 영어로 들렸다.

그 때문인지 그의 절망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제니는 고개를 마이클을 봤다.

마이클은 절망하다 못해 자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런 마이클의 모습에 제니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후의 품에서 벗어났다.

“시후 오빠,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실래요?”

“그럴까?”

시후는 제니의 손을 붙잡고 크루즈로 걸어갔다.

제니의 반대 손은 조민이 잡았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때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보고는 오랜만이네. 이제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네~. 모두 시후 오빠 덕분이죠.”

그렇게 제니와 조민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마이클 앞에 다다를 때까지 그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에휴… 마이클, 정신 차려요.”

제니는 한숨을 내쉬며 시후와 조민의 손을 놓고 마이클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진정하라며 속삭였다.

그제야 마이클은 쥐어뜯던 자신의 머리채를 놓았다.

“아….”

마이클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인지한 듯 멋쩍은 표정으로 목덜미를 긁적였다.

좀 전의 무서운 것 없다는 듯이 호탕하게 덤비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제니 역시 시후와 조민이 그렇게 생각한 것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반응 충분히 이해해요.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악의는 전혀 없으니까요.”

“뭐, 그래 보이네.”

시후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하지만 정작 궁금한 것은 그의 성격이 어떻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시후가 제니에게 눈치를 주자 제니가 마이클을 일으키며 말했다.

“제 친오빠예요.”

“친오빠? 닮은 구석이….”

시후는 뒤에 이어질 ‘없는데’라는 말은 잇지 않았다.

제니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마이클이 어느덧 예의 신이 나는 표정으로 시후를 보았기 때문이다.

상당한 호승심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그런 말을 했다가는 다시 덤벼들 것 같았다.

도대체 녀석이 왜 그러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 제니의 말이 이어졌다.

“이름은 마이클 케네디. 저희 가문의 차기 가주이자 장미기사단 단장으로 싸움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소드마스터예요.”

“…응?”

시후는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하는 의문에 빠졌다.

분명 중간까지는 알아들었는데 그 뒤는 Safety World에서나 듣던 말들이 들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조민을 바라봤다. 여느 때처럼 저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거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평소 시후의 이런 시선에 딱딱 대답을 내놓던 조민이 눈만 껌뻑였다.

조민 역시 장미기사단이고 소드마스터고 그런 것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 괜찮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조민이 난처한 표정을 보이자 시후가 전음을 보냈다.

그리고 솔직히 장미기사단이나 소드마스터나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적대한다면 부숴버리면 그만이었고, 호감을 보인다면 제니를 봐서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용의가 있으니 말이다.

시후는 조민의 어깨를 살짝 다독이고는 제니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그러잖아도 안에 자리를 마련해 놨으니 들어가요.”

제니는 이미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이 앞장서 크루즈 안으로 시후를 안내했다.

크루즈 안은 이미 시후와 조민을 맞이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커다란 선내 중앙에는 하나의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의자 네 개와 간단한 식기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으로 시후와 조민을 안내한 제니와 마이클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시후 오빠, 아직 식사 전이시죠?”

“그렇지.”

“그러실 것 같아 저희 가문에 쉐프를 모셔 왔어요. 음식을 드시면서 이야기 나눠요.”

짝짝-

제니가 신호를 보내자 준비된 카트에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양송이수프로 시작한 코스 요리로, 메인은 미디엄 레어로 익힌 안심 스테이크였다.

익힘 정도로만 고기의 맛을 한껏 끌어올린 수준 높은 요리였다.

“음~ 정말 맛있는데?”

음식에 대해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시후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맛이 좋았다.

제니는 시후의 그런 반응에 시종일관 미소를 보였다.

메인 음식까지 모두 먹을 동안 이야기의 주된 주제는 제니와 시후가 주도했다.

대부분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후식으로 와플과 아이스크림이 나오자 제니가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라는 듯이 말이다.

“일단 장미기사단과 소드마스터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 드릴게요.”

“그럴래?”

시후는 굳이 설명해주겠다는데 말리지는 않았다.

“먼저 장미기사단은 저희 케네디 가문에 대대로 이어온 기사단이에요.”

“무엇을 위해?”

“당연히 저희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죠. 총과 대포가 발명되기 전부터 이어온 맥이고요. 마이클 오빠는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곳에 수장인 단장이에요.”

“내가 그런 사람이다.”

선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통역 마법을 상용한 마이클이 한껏 어깨에 힘을 주고는 으쓱했다.

시후는 제니의 말에 장미기사단을 제갈세가나 당가와 같은 것이라 여겼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무력 집단이라는 말이렷다.’

힘이 없는 권력은 없기에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가주라는 마이클의 실력은 의문이었다.

얼음덩어리나 화염 덩어리를 만들고 중력을 조절하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신기했지만 그가 가진 기운에 비해서는 조촐했다.

제니는 그런 시후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싱긋 웃고는 말을 이었다.

“마이클 오빠가 소드마스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사실 오빠의 진짜 실력은 검을 사용할 때죠.”

“그럼, 소드마스터라는 것이 게임에서 말하는 그 소드마스터라는 거야?”

“네. 맞아요.”

시후가 소드마스터에 대해 아는 눈치를 보이자 제니가 마이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마이클은 테이블에 놓인 버터나이프를 들어 기운을 불어넣었다.

사락-

눈에 보일 정도로 붉은색의 기운이 버터나이프를 감싸 안았다.

“검강?”

“우리는 오러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이클은 버터나이프를 감싸던 오러를 길게 늘어트렸다.

그러더니 자기 앞에 놓인 와플을 한입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정말 검강이랑 똑같군.’

시후는 그 모습에 오러를 검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와플을 자르던 오러가 돌연 모습을 바꿨다.

끝이 뾰족한 모양으로 세 갈래로 나뉘더니 작은 포크가 되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게 오러다.”

마이클은 한입 크기로 잘라 놓은 와플을 오러로 변형한 포크로 집어 입에 가져갔다.

시후는 그 모습에 살짝 놀랐다.

오러라는 것이 결국 ‘기’의 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보통 무림인이 단전에 모은 기를 팔에 있는 혈로 이동해 검에 씌운다면, 지금 마이클은 버터 포크에서 바로 오러가 일어났다.

마이클의 몸속에서 오러가 흘러나온 게 아니라는 거였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본질이 다르고 활용도가 다른 오러에 관심이 생겼다.

“크하, 하하! 그러니 다시 붙어보자. 무기를 들고 올 수 없어 미국에 두고 온 내 소드와 함께 말이다.”

“재미있겠네. 그러자.”

호기심이 생겼기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붙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이클이 시후의 대답에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제니야, 저자가 미국에 간다고 한다.”

“내가? 어딜 가?”

“에휴….”

무슨 말인가 싶어 제니를 바라보자 그녀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마이클이 제니의 계획과는 다르게 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았다.

시후는 그제야 제니가 만나자고 한 이유를 알아챘다.

“제니는 오빠를 미국에 초대하고 싶었던 거야?”

“네…. 이렇게는 아니었지만요.”

“미, 미안….”

제니가 째려보자 마이클이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아챘는지 풀죽은 모습을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시후 오빠를 정식으로 케네디 가문에 초대합니다.”

스윽-

제니는 초대한다는 말과 함께 테이블 위에 붉은색 장미 모양의 브로치를 내려놓았다.

“그건 저희 가문에 1등급 VVIP로 모시겠다는 초대장이에요.”

“나를 왜?”

“일단은 오빠가 제 은인이어서 그렇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니는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을 한 듯 말을 이었다.

“오빠의 힘이 필요해요.”

“으흠, 내 힘이라….”

시후는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 제니를 물끄러미 봤다.

쉽게 그 이유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거였다.

선내에 네 명만이 자리할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부터 비밀을 유지하려는 모습이었다.

‘어쩔까나.’

시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라는 곳이 중국처럼 몇 시간이면 날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그곳에 가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할 터인데 덜컥 응할 수는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강해져야 하는 지금 이런 시기에는 더욱 말이다.

‘그래, 미국까지 가서 내가 얻어봐야 뭘 얻겠…!’

시후는 거절할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제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는 협상할 차례였다.

시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거절하면?”

“거절…하실 거예요?”

제니는 시후의 거절 의사에 사슴 같은 눈망울을 글썽였다.

그런 제니의 표정을 보면 그 누구라도 그녀의 말을 따랐을 거였다.

하지만 시후는 달랐다.

“대신 조건이 있어.”

시후는 절대 실속 없이 움직이는 이가 아니었다.

“무슨 조건이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모든 들어드릴게요.”

“그 마법이라는 거, 가르쳐줄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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