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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215화 (215/275)

제215화

조민이 건네준 노트 첫 페이지에는 힘이 느껴지는 필체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시후&조민 연인 되기 계획서]

필체에서 느껴지는 결연함과 달리 어이없는 제목이었다.

시후는 무슨 장난이냐며 조민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조민의 시선이 느껴져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이게 뭐냐.’ 라고 묻는 순간 속사포 래퍼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설명을 들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후는 질문 대신에 노트를 좀 더 보기로 했다.

촤락-

조용히 다음 장을 넘긴 시후는 눈썹이 꿈틀댔다.

[시후&조민 연인되기 계획서 개요]

[강시후가 제갈 조민을 여자로 보게끔 만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도전한다.]

[강시후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들이댄다.]

.

.

.

이 외에도 꽤 많은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 너 지금 나한테 고백하는 거냐?

이번에도 역시 조민을 쳐다보지 않고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조민은 시후가 펴 놓은 노트에 글귀를 적었다.

[아직은 아니에요.]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을 때 조민이 다음 글귀를 적었다.

[오빠가 나를 여자로 보게 되면 그때 고백할 거예요.]

정말 뚱딴지같은 말이었다.

그렇다고 조민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네 녀석이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은 진작 알았지.’

시후 역시 조민이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세가의 무공을 가르치는 절대자라는 위치가 아니라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마음을 준 남자로 생각하는 것을 이전부터 느꼈다.

그렇지만 그것을 캐물을 수는 없었다.

조민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시후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한 마음이 더욱 컸으니 말이다.

그 일에 조민의 능력은 꼭 필요했다.

‘내가 달리 지괴로 삼은 게 아니니까.’

시후는 현대판 지괴에게 앞으로도 많은 일을 떠넘길 생각이었다.

조민에게는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고 시후에게는 그 능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후는 조민을 아직 어린아이로 보았다.

‘어렸을 때는 그럴 수 있어. 특히 무림인이라면 강한 이에 대한 동경이 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지금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후에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다를 거라 여겼다.

시간이 답이라는 소리였다.

그 때문일까. 시후는 조민이 야심 차게 준비한 계획서를 빠르게 읽은 후 조민에게 돌려줬다.

“쉽지 않은 길일 거다. 알지?”

“각오는 했어요.”

“그래. 열심히 해봐라.”

농담 삼아 격려까지 해줬다.

시후는 이때 조민의 집착과 고집이 자기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시후의 농담에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말이다.

조민은 시후의 격려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의지를 다졌다.

그날 조민은 학교에서 단연 화두에 오르는 인기인이었다.

월반까지 하는 천재적인 두뇌에 미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외모를 가졌으니 당연했다.

거기에 조민은 다른 이들을 언제나 예의 바르고 조신하게 대했다.

“어머?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게 생겼을까? 정말 열일곱 살이 맞아?”

“그럼요, 언니~ 저 한 학년 위 생활은 잘 모르니, 언니들이 많이 챙겨주실 거죠?”

“꺄~! 당연하지~.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우리한테 물어봐~.”

쉬는 시간 10분 만에 교실 여학생들 모두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린 조민이었다.

그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칠색 팔색하는 모습으로 시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왜 저러는 거야?”

“그동안 우리가 본 제갈세가 차기 가주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쉿. 요즘 조민의 성취가 좋아 너희가 하는 말 모두 들었을 거다.”

“에이… 진짜?!”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는 조민을 힐끗 봤다.

그러자 조민이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등 뒤로 손을 옮기고는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거기에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움직이며 태산과 인호를 한 차례 쏘아보기까지 했다.

너무 찰나의 순간에 지나간 일이라 무공을 익힌 태산과 인호가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둘은 자연스럽게 시후의 양쪽 팔을 잡았다.

“왜 이래?”

“강시후, 오늘 사람 두 명 살려주는 셈 치고 집에 같이 가자.”

“뭐?”

“아니, 사람 말고 친구 살려주는 셈 치고 같이 가자.”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시후는 둘의 팔을 뿌리치며 저리 가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둘은 다시 한번 간절한 눈빛을 시후에게 보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연예인급의 인기몰이를 하며 바쁜 학교생활을 마친 조민은 시후와 함께 하굣길에 올랐다.

덕분에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조민을 피해 하교를 할 수 있었다.

“오빠한테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오늘은 차를 불러놨어요.”

평소라면 건물 위를 날아가 빠르게 집에 도착하겠지만 할 말이 있다고 하니 조민이 준비한 차에 올랐다.

일전에도 탔던 완전 방음이 가능한 차였다.

조민이 버튼을 누르자 운전석과 뒷좌석을 가로막는 방음 유리가 올라갔다.

“뭐야? 무슨 중요한 이야기이길래 이 정도로 준비를 해?”

어차피 운전사 역시 제갈세가 사람일 터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라면 중대한 사안이라는 거였다.

“오빠, Safety World 월드 오브 리그전이 얼마 남지 않으신 거 아시죠?”

“알지. 그게 왜?”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국가 대표로 나오는 것도 아시고요?”

“알아.”

“그런데 저희는 아직 국가대표가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아시고요?”

“안다니까? 뭔데 이렇게 사설이 길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시후는 궁금증만 커졌다.

조민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태블릿을 꺼냈다.

“저희가 국가대표가 된 것도 아닌데 미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미국? 거기서 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콕 집어서 오빠를 만나고 싶데요.”

“나를?”

시후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딱히 미국과는 접점이 없었는데 그곳에서 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어찌 알았는지도 궁금했다.

시후에게 기분 나쁘다는 기색이 보이자 조민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기분 나빠 하실 수도 있는데 저쪽은 오빠에게 상당한 호감을 표했어요.”

“무슨 호감?”

그 질문에 조민은 태블릿을 시후에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미국 쪽에서 시후를 만나기 위해 내건 조건들이 적혀 있었다.

[1. 강시후 본인이 원하는 일자, 시간, 장소에서 만날 것을 준수한다.]

[2. 강시후 본인이 직접 만나기를 거부한다면, 영상통화로라도 만나고 싶다. 하지만 되도록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직접 만나고 싶다.]

[3. 강시후가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여도 강인 병원에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한다.]

그다음부터는 강인 병원에 무슨 지원을 할 것인지 적혀 있었다.

새로운 검사 기계부터 미국의 유명한 외과 교수들을 파견하는가 하면, 기부금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까지 지원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 모든 게 오빠를 한번 만나보겠다고 내건 조건들이에요. 거기에다가 만나주지 않아도 그것들을 지원은 해줄 거래요.”

“무슨 자선 사업가야?”

“그건 아닌데… 여기 CEO 이름이 신경 쓰이기는 해요.”1

“누군데?”

“케네디요.”

케네디라는 이름을 들었지만 시후는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조민은 그런 시후에게 좀 더 설명했다.

케네디는 미국의 유명한 가문 중 하나로 정치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라고 했다.

특히 과거에 가문의 한 명이 미국 대통령까지 했을 정도로 대단한 가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곳에서 왜 나를?”

이는 시후에게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묻는 거예요. 혹시 Safety World 하시면서 케네디라는 이름의 유저를 만나신 적 없으세요?”

“케네디라… 흠… 케네디…, 어?!”

케네디라는 이름을 되뇌던 시후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누군데요?”

조민이 시후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시후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블칸 영주.”

“제가 아는 바니힐 마을에 그 블칸 영주요?”

“어. 분명 걔 정보에 ‘F.KND’라고 적혀 있었어.”

“아무리 그래도 블칸 영주는 NPC잖아요. NPC가 오빠랑 케네디 가문이랑 무슨 연관이 있어요?”

“근데 그거 말고는 없어. 그러고 보니 NPC 앞에 ‘T’자가 붙어 있었어.”

“네?! 설마, T.NPC라고 적혀 있었어요?”

시후의 말에 조민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순간 기세에 밀린 시후는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민은 시후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뺏어 들더니 빠르게 검색했다.

“여기 있다. Transfer NPC! 와… 대박.”

“왜? 뭔데?”

“오빠가 퀘스트발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어떻게 T.NPC를 만나죠?”

“그게 뭔데?”

“직접 봐보세요.”

조민은 시후에게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그곳에는 T.NPC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Transfer NPC : NPC 역할을 하는 유저.]

[Safety World 세계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NPC 중 유저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유저가 미접속 시에는 A.I가 운용하고, 접속 시에는 유저가 NPC를 운용한다.]

“NPC가 유저라는 말이야?”

“네! 지금까지 탑 랭커 외에는 만나본 유저가 지극히 적은데 오빠는 진짜… 와….”

조민은 시후희 영웅담에 또 한 획을 추가하는 T.NPC와의 만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상에 저런 축캐가 어디 있냐고 생각하던 그때.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럼 블칸 영주가 오빠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왜요?”

“아무래도 블칸 영주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요?”

“그의 영애인 제희도 T.NPC였어.”

“그럼, 아빠와 딸 모두가 T.NPC라고요? 그것도 케네디 가문에?!”

놀라움의 연속에 시후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무리 게임에서 만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게임일 뿐.

현실의 자신과 만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월드 오브 리그전을 앞둔 시점에 만남을 원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쯧, 고민해봐야 소용없겠지. 그쪽에 연락해. 이번 주말에 만나자고.”

“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시후는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를 빠질 수는 없기에 주말에 약속을 잡았다.

시후는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하고, 하교 후에는 S.W SOFT에 들려 다른 프로게이머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틈틈이 다른 이들의 수련도 도와줬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그런지 주말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지루해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말이 되자 시후는 약속 장소로 한강 밤섬에 나왔다.

수풀이 우거진 덕분에 다른 이들의 시선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여차하면 무력을 쓸 생각까지 한 시후였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크루즈 한 척이 밤섬으로 다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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