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여성형 엘프 맬리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간을 찌푸릴 만큼 끔찍했다.
맬리아가 살던 엘프의 마을은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는 곳은 아니었다.
외지인을 극도로 경계하는 엘프의 특성에 맞게 정령의 가호로 보호를 받아 외부인이 찾기 힘들뿐더러 찾더라도 입장에 제한이 있었다.
그랬기에 마을은 쇄국적인 성향의 엘프들에게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던 곳이었다.
엘프들은 자급자족의 삶을 위해 마을 인원들이 교대로 채집을 나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맬리아는 십여 명의 동료들과 사냥을 나갔다.
평소라면 채집만 하고 돌아왔겠지만, 그날은 특별히 사냥이 목표였다.
조만간 중요한 손님이 마을을 방문한다는 정령의 계시가 있어서였다.
엘프들은 ‘손님’이라는 말에 당연하게 아폴론이라 여겼다.
아폴론은 엘프의 숲에 가장 필요한 태양의 신이기도 했으며 의술의 재능이 있어 엘프들을 자주 도왔다.
거기에 평소 아폴론이 마을을 찾을 때면 언제나 음악으로 축제를 벌였기에 엘프들은 고기를 준비해 그를 맞이하려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날따라 사냥이 순조롭지 못했다.
좀처럼 덩치 큰 사냥감을 찾을 수 없어 석양이 드리울 때나 돼서야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늦은 귀갓길, 맬리아와 동료들은 해가 저문 엘프의 숲에 몸을 숨겨야 했다.
처음에는 그저 해가 졌으니 기온이 떨어져 싸늘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엘프의 숲 깊은 곳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들을 발견했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적어도 30마리는 넘는 수의 동물의 사체.
갓 사냥한 듯 아직 굳지 않은 피가 줄줄 흘러 땅을 적시는 동물 사체 무더기 앞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동물 사체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더니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엘프의 숲에서 저런 기분 나쁜 기운을 풍기는 의식을 진행하다니.
미치지 않은 게 아니라면 모종의 음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맬리아와 동료들은 숨죽여 지켜봤다.
의식이 진행되자 동물 사체가 점점 썩어 문드러져 갔다.
마치 그곳만 시간이 고속으로 흐르는 듯 어느새 사체는 뼈만 남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뼈 무더기 속을 파헤치고 믿기지 않는 존재가 나타났다.
덩치는 사람만 하고 세 개의 개 머리를 가진 네발 달린 짐승.
명계 입구를 지키고 감시하는 파수꾼 케르베로스였다.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 위용에 엘프들은 겁에 질렸다.
더는 오금이 저려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도망을 치려는 그때 케르베로스가 한발 빨랐다.
순식간에 맬리아를 포함한 십여 명의 엘프들은 케르베로스의 먹이가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죽어 명계로 들어가야 하는 엘프들을 케르베로스가 이승에 남게 했다.
그러고는 그들을 앞장세워 엘프의 마을을 습격했다.
명계의 파수꾼답게 케르베로스의 힘은 엄청났다.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엘프의 마을은 케르베로스에게 점령당했다.
다행이라면 처음 맬리아와 동료들을 제외하고는 케르베로스는 다른 엘프들을 먹지 않았다.
대신 모두 그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맬리아와 동료들이 명계로 들어가지 못한 명계의 주민이 되기 때문이다.
“명계로 들어가지 못한 주민?”
시후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굳이 맬리아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맬리아가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료들.
맬리아와는 다르게 흉측하게 변한 다른 엘프들.
자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변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꼭 영화 ‘에일이런’에 나오는 괴물같이 변했네요.”
진지춘의 말대로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변했다.
“죽으면 모두 저렇게 변하는 건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시후의 질문에 아폴론이 대답했다.
“살아생전에 쌓은 업이나 명계에서 쌓은 업으로 생전에 모습을 유지할 수 있어요.”
“업이라…. 잠깐, 그런데 명계에서도 업을 쌓을 수가 있다고?”
“네.”
“죽어서도 ‘업’을 쌓는다고?”
반복되는 시후의 질문에 아폴론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Safety World라 그런가? 현실과는 다른 내용이군.’
사람이 살면서 업을 쌓는다는 것은 시후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업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은 분명 업을 쌓는다.
그런데 사자(死者)가 쌓는 업이라니. 그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하다니.
‘특이하군. 설마!’
시후는 순간 새롭게 발견한 이 사실이 이번 퀘스트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자.
띠링-
[올림포스 신의 힘이 깃든 조각상 퀘스트의 연계 퀘스트가 열립니다.]
[해당 퀘스트는 히든 퀘스트로 거부권이 없습니다.]
[어둠의 힘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한 단서를 찾으십시오.]
[해당 퀘스트의 보상은 퀘스트 달성률에 따라 지급됩니다.]
[해당 퀘스트는 ‘천마’님 1인 한정 퀘스트입니다.]
‘연계 퀘스트?’
처음 보는 알림창에 시후는 망설임 없이 조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올림포스 신의 힘이 깃든 조각상 퀘스트의 연계 퀘스트가 열렸다네?
Safety World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조민이 답이었다.
시후의 기대에 부응하듯 빠르게 답장이 왔다.
- 연계 퀘스트? 설마 또 히든 퀘스트로 떴어요?
- 어.
- 와… 오빠는 도대체 뭐죠?
- 내가 뭐?
- 히든 퀘스트 못 받아본 사람이 수두룩한데 오빠는 했다 하면 히든 퀘스트예요?
조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Safety World를 하면서 히든 퀘스트가 나타날 확률은 5%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유니크한 이벤트였고 히든 퀘스트 한번 해보겠다고 현질을 마다하지 않는 유저들이 파다했다.
- 내용 공유해 주시면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아니. 못해.
- 왜요?
- 이거 1인 한정 퀘스트라는데?
- 네?! 진짜요?!!
1인 한정 퀘스트라는 시후의 말에 조민은 화들짝 놀란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빠르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1인 한정 퀘스트는 다른 말로 ‘레전드리 퀘스트’라고 한다.
자고로 퀘스트는 참여하는 유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난도가 오른다.
간혹 한스텔 마을 입구에 있는 토끼를 잡으라고 한다면 Lv. 50 유저가 휘두르는 주먹 한 방이면 가볍게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퀘스트를 네 명이 공유한다면 네 방은 때려야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유저들은 퀘스트 공유를 할 때 꼭 고레벨 유저와 함께한다.
퀘스트 난도가 오르기는 하지만 저레벨 퀘스트는 아무리 올라봐야 고레벨 유저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이니 말이다.
하지만 1인 한정 퀘스트는 달랐다.
일단 그 난도부터 상당히 높았다.
퀘스트를 받은 유저의 레벨에서 가장 극악의 난도를 보였다.
정말 죽어라 노력해야 깰 수 있는 정도로 말이다.
- 내 레벨에 가장 극악의 난도라는 거지?
- 네. 그래서 1인 한정 퀘스트는 다들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 그러고 보면 오빠는 괜찮겠네요?
- 네 생각도 그래?
- 와… 부럽다. 그거 보상이 장난 아닐 텐데. 레전드리 퀘스트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난도가 극악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거 클리어하면 무조건 레전드리 아이템이 나오거든요.
- 잘되었군.
시후는 조민과의 대화창을 닫으며 해당 내용을 진지춘에게 메시지로 알려줬다.
메시지를 모두 읽은 진지춘 역시 조민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 와… 이 정도면 도련님은 축캐네요. 축캐.
진지춘의 메시지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동안 해온 일을 생각하면 축캐가 맞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당장 두 손 들고 좋아할 수는 없었다.
곁에 있는 아폴론과 엘프들은 여전히 심각했으니 말이다.
시후가 Safety World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곳 또한 하나의 세상이라는 거였다.
게임이라고 분류되지만, 이곳에 있는 NPC들은 저마다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마냥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시후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맬리아에게 물었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빠졌잖아.”
“어떤…?”
“너희가 왜 아폴론을 공격했는지 말이야.”
솔직히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맬리아를 포함한 이들을 명계의 주민으로 만들어버린 존재들.
그들이 왜 다른 엘프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는지. 맬리아는 어떻게 다른 엘프들을 꼬드겨 아폴론은 공격했는지를 알아야 했다.
만약 맬리아가 입을 열지 않으면 다시 분골착근을 경험하게 해서라도 입을 열게 할 참이었다.
“다 말씀드릴게요!”
“어? 어, 그래.”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맬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저희에게 업을 주었어요.”
“업을 줘? 그게 가능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업이란 자신이 행한 일에 관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이에게 양도할 수 있다니.
혹여 맬리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독안공을 펼쳐보았지만.
‘진실이야?!’
시후는 무슨 소리인지 더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말해봐.”
“네. 저희도 그때는 믿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명계 주인의 허락이 있기에 업을 줄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 제가 그들의 업을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 너만 이 꼴인 거고?”
“네….”
시후는 그제야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맬리아만 완전히 괴물이 되지 않은 것을 이해했다.
“그들이 명계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고?”
“네.”
“아폴론.”
시후의 부름에 아폴론이 한걸음에 다가왔다.
“내가 궁금한 게 무엇인지 알지?”
“네. 하지만 지금 당장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명계는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요.”
“알겠어. 다음에 만날 때까지만 알아 와.”
“네.”
시후는 아폴론에게 명계에 가서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명계의 주인 하데스를 추종하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허락을 받아 ‘업’을 나누어줄 수 있는 추종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추종자를 잡아다가 그 이유를 캐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빠른 방법을 택했다.
바로 명계의 주인 하데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거였다.
시후가 직접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올림포스 신인 아폴론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시후의 생각이 맞는다면 어둠의 추종자들이 이곳을 찾은 것과 시후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같을 것이다.
“맬리아라고 했지?”
“네.”
“올림포스 신의 조각상은 아직 이곳에 있나?”
“없습니다. 그들이 가져갔습니다.”
역시였다.
이곳이 그렇다는 것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다.
시후는 진지춘을 봤다.
그러자 진지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후와 맬리아의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던 진지춘이 이미 다른 동료들에게 물은 거였다.
다른 곳 역시 올림포스 신이 동행했지만, 조각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시후는 동료들에게 전체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은 그만하자. 올림포스 신들에게 하데스의 행적을 조사 좀 하라고 하고 모두 로그아웃해.
시후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조사를 맡기고 로그아웃하라고 했다.
“도련님, 그럼 저희도 로그아웃할까요?”
“그래야지. 녀석들 좀 마무리하고.”
“아….”
진지춘은 시후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는 뒤로 물러났다.
촤라락-챙-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시후의 허리띠가 검이 되었다.
투산이 만들어 준 월영검이었다.
시후가 월영검을 꺼내자 맬리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시후의 질문에 모두 대답하였지만, 그 끝이 이리될 것이라고 진작 알고 있었다.
이미 명계의 주민이 된 몸.
거기에 괴물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이기에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맬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자신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맬리아….”
아폴론은 그런 맬리아의 모습에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엘프들이기에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명계의 주민이 된 그들이기에 아폴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후는 월영검을 치켜들고는 낮은 어조로 말했다.
“내가 이제 너희를 거둘 거야.”
“네.”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아.”
“네… 네?!”
맬리아는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시후의 월영검이 허공을 갈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